<가여운 것들>을 보고 (스포O)
0.
<더 랍스터>, <킬링 디어>, <더 페이보릿 : 여왕의 여자> 등 연출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신작 <가여운 것들>을 보고 왔습니다.
워낙 센세이셔널한 이야기의 연속이라 보고 나서 생각을 정리하고 시간이 조금 걸렸네요.
논쟁적인 영화인지라 저도 충분히 다루고 싶어서 다음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1.
개인적으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 중에서 <킬링 디어>를 가장 좋아하는데요. 이번 최신작의 바로 직전 작품인 <더 페이보릿 : 여왕의 여자>가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화법으로 만들어진 것을 생각하면 이번 신작은 정반합의 개념에서 완전히 작가주의 색채 짙게 밀고 나갑니다.
전체적으로 색감이 강렬하게 사용됐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푸른색이 강하게 사용됩니다.
음울하고 억압되는 뉘앙스에 주로 활용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첫 오프닝에서의 파란색 드레스나 중반부 배 챕터로 전환될 때 남색 하늘이 그렇습니다.
2.
색감 뿐만 아니라 영화의 모든 요소가 맥시멀리즘의
작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초반 이야기의 설정이나 인물을 소개하는 50분 동안 에는 흑백화면으로 연출되기도 하죠.
초반에는 과거 시제를 컬러로, 현재 시제를 흑백으로 대조해서 주인공의 억압을 색감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뿐만아니라 영화 전반적으로 왜곡된 카메라 렌즈와 앵글, 줌인/줌아웃 등 의도적으로 카메라 존재 들어내면서 이야기의 비현실성을 거칠게 강조하고 관객의 몰입을 끊임없이 차단하는 거리두기 작법으로 텍스트에 대해 골몰하게 만듭니다.
사실상 시대배경도 교묘하게 비틀어서 텍스트가 현대사회에도 유효함을 드러내고 있죠.
3.
충격적인 공학적 상상력의 시각화로 초반 불편했다면 극이 전개될수록 철학적/사회적 논쟁을 건드리면서 불편함을 일부러 자아냅니다.
주인공의 일차원적인 성격을 상류층에 대한 풍자로 활용하거나 후반부에는 노골적으로 관련 주제를 언급해 도마 위로 올려놓기도 합니다.
영화의 양상은 사실상 주인공의 로드무비인데 인물이 이동하는 배경에 따라 챕터를 구분해놓기도 했습니다.
‘리스본’과 ‘배’를 통과하면서 사랑과 소유를 논하고 ‘배’와 ‘알렉산드리아’를 통과하면서 냉소주의자 해리를 등장시켜 토론하면서 현학적인 탐구를 하는 식으로요.
챕터가 넘어갈수록 주인공은 빠르게 성장하고 학습하면서 과다할 정도로 많은 텍스트를 흡수하면서 그 시점을 따라가는 관객 입장에서는 꼭 철학 속성 수업을 듣는 듯한 인상이 들기도 하네요.
4.
<보이즈 어프레이드>만큼이나 인물의 행동은 과장되고 영화의 에너지는 과잉됐으며 감정선은 격앙된 채로 거침없이 질주해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게 될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후반부 ‘파리’ 챕터에서부터는 기존에도 영화가 다룬 여성해방주의에 대한 접근이 다소 논쟁적인 부분이 크게 다가와서 텍스트를 현학적으로 토론케함은 자명하지만 과연 그 의도 만큼이나 방법론이 적절했는지는 의뭉스럽긴 합니다.
5.
이제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서 서사를 봉합하는데 과연 요르고스 란티모스다운 봉합술이 아닌가 싶습니다.
끝까지 구속, 해방에 대한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맥시멀리즘 복수극으로 서사를 종결하고 그로테스크한 유사 가족 영화의 뭉클한(?) 엔딩을 그려내니까요.
아리 애스터 감독 만큼이나 강렬하게 뚝심을 (생각보다 더) 밀고 나가서 다 보고나면 저처럼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하실 것 같네요.
이 센세이셔널한 작품에서 유아퇴행, 낮은 신체
협응 능력에서 시작해 챕터 별로 내적 성장에 대한 묘사나 널 뛰는 감정선에 노출연기까지 불사한 엠마 스톤은 이미 뛰어난 배우지만 경력 최고 연기를 다시금 경신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원작을 다 읽진 못했지만서도 윌렘 대포의 캐스트와 연기는 탁월했네요.
마크 러팔로의 연기도 좋았고요.
다음주에 보는데 무척 기대됩니다. 엠마 스톤 두 번째 오스카상 거머쥘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