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제인] 12,000명의 여성을 구한 '제인스'의 실제 이야기 (약 스포)
심오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접근하다
영화 <콜 제인>은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에 실제 존재했던 여성 연대 '제인스'의 실제 이야기를 그렸다.
'제인스'(The Jane Collective)는 1973년 로 대 웨이드 사건으로 낙태가 합법화될 때까지 12,000여 명의 여성을 구하고, 여성 인권을 위해 가부장제 사회에 투쟁했던 여성 연대이다. 계층, 인종, 나이를 초월해 많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단체에 합류했었다고 한다.
지금보다 남녀 불평등이 심했던 그 때. 원치 않던 임신을 하게 되면 그 여성은 어떡해야 하는가? 동시에 남자가 무책임하게 행동한다면? 이런 이유들로 불법 낙태수술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오늘날도 문제 되고 있는 이 문제가 저 때는 얼마나 더 심했겠는가. 이 영화는 기준을 '아이', '생명' 등의 요인들보다도 '여성'에 집중해서 바라보게 해준다.
필리스 나지 감독은 심오하고 어둡디 어두운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그렇다고 이야기들이 전혀 가볍게 느껴지지 않으며 오히려 다가가기 쉬워 메시지에 더 힘이 실린다. 탁월한 접근이었다.
보고 나면 더욱 이야기할 게 많아지는 영화
60여 년 지난 지금도 낙태에 대한 찬성·반대 의견들은 무엇이 옳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부딪힌다. 엔딩크레딧이 흐르고 극장에서 내려와 지하철 타니 여러 생각들이 쏟아졌다. 낙태에 대해 나는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남녀평등 관점에서 과연 저 때보다 지금이 더 나은 사회가 맞는지.. 여러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큰 틀에서는 저 때보단 지금이 더 나은 사회가 아닌가 싶다. 수많은 제인들의 노력은 엄청 기울어져있던 운동장을 그나마 덜 기울어지게 만들어냈지 않나. 다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모두가 의견을 퍼뜨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이의 역기능으로 인해 과거엔 없던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테면 특정 남녀의 어떤 사건이 사회 전체에 왜곡과 과장되어 퍼지면서 남자들과 여자들이 서로 벽을 치고 혐오 감정을 키우거나, 왜곡 그 자체가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일들, 서로 보고싶은 부분과 보는 상황, 서로가 좋은 부분은 외면한 채 안 좋은 부분만 확대해석하는 일 등등. 최근에는 <피지컬: 100>으로 또 젠더 갈등으로 난리더라.
젠더 이슈는 정말 어렵다. 당장 우리 집만 해도 심각한 가부장제와 시집살이 때문에 어머니가 힘들어했는데, 그 모습들을 꼬맹이 때부터 지켜보며 결국 아버지를 악마처럼 생각하게 됐던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결국 나는 아버지와 꽤 많은 충돌을 했고, 그러나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진 못했다. 아버지, 어머니, 나 모두 괴로운 상황을 만들어버렸던 것 같다. 여전히 나는 아버지가 가부장제에 빠져 구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세상이 있을 텐데. 20대까지의 나는 그거를 1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무조건 그걸 잘못된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지금도 어느 정도는 여전하긴 하지만). 게다가 내가 너무 어머니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였던 것은 완벽한 나의 잘못이다. 어머니한테 들었던 어떤 일이 나중에 시간이 흘러 셋이서 이야기를 나눴을 때 알고 보니 약간 다른 일이었거나 아예 다른 일이었던 거. 그런 경험들을 한두 번 겪다 보니 아버지에게도 죄송하고, 정의나 정답 같은 건 애초에 없는 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너무 어렵다. 그래서 지금 나는 기계적 중립 기어라는 명목으로 회피하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 사이의 그런 젠더 이슈들에 대해 회피하니 결과적으로는 부딪힐 일이 별로 없다. 내가 아버지와 충돌하면 어머니에게 하나도 좋은 게 없다.
안 부딪히는 게 최선. 정말 어렵다 정말.
아쉬운 부분
- 처음부터 끝까지 희망과 경쾌한 무드를 꽉 붙잡고 가는데, 이로 인해 덜 조명되는 부분들이 있다. 당시 여성 연대가 맞닥뜨렸을 외압에 대한 묘사가 너무 적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 부분을 다뤘다면 그 자체가 예상 가능한 이야기적 클리셰가 될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실화 영화이지 않은가? 앞부분을 좀 압축하고 사회운동가들의 고충이 좀 더 추가되었다면 어땠을까.
- 남편과 딸을 좀 더 입체적으로 그렸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물론 둘 다 평면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정말 좋은 사람이고 남녀평등을 선호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불평등을 유발하는 습관들이 베여있는 남편,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국은 이해하는 딸. 그치만 조이(엘리자베스 뱅크스)가 하는 일을 알게 됐을 때의 충격을 좀 더 진하게 보여줬다면 몰입도가 더 높아졌을 것 같다. 그것이 단지 불법이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시대적으로 용인이 안되는 분위기인데 내 가족이 하고 있다? 충격이 더 셌어야지.. 물론 그렇게 되면 영화가 계속 가져가던 유쾌함이 옅어질 수는 있다.
기타 생각과 여담
- 엄마 앞에서 딸이 테이프 돌리는 장면 인상 깊었다. 슬픔과 재미가 동시에 다가왔던 장면.
- <콜 제인>은 '진짜' 페미니스트 영화!
- 이웃집 아줌마 누군가 했더니 루니 마라의 언니였다. 케이트 마라!
힙합팬
추천인 3
댓글 8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