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야차' 초간단 리뷰
1. 애플TV+ '파친코'는 플래시백을 마치 이연복 셰프가 고추기름 쓰듯이 자유자재로 잘 쓴다. '파친코'에서 플래시백은 이야기를 풍요롭게 만드는 중요하게 만드는 열쇠다. 일반적으로 플래시백은 미스테리를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사건의 결말을 보여줘서 관객에게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고 시간을 되돌려 사건의 과정을 서술한다. 가끔 플래시백을 오남용하면 '쉬운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든다'며 욕먹을 수 있다. '플래시백'은 미스테리를 부각시켜 초반에 관객을 집중시키게 하기 위해 사용돼야 한다. 넷플릭스 '야차'는 그런 의미에서 '플래시백'을 희한하게 쓴 경우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플래시백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과거에 대한 회상이다. 시간은 첫 장면에서 4년 후로 흘러가버리지만, 이후 펼쳐지는 사건의 전개는 플래시백해서 과거로 회상한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야차'는 시작부터 희한한 영화다.
2. '야차'의 첫 장면은 홍콩을 배경으로 주인공 강인(설경구)이 배신자를 추적해 처리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는 그 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됐고 잠수를 타버린다. 강인은 국가정보원 블랙팀의 팀장이다. 중국 선양에서 공작을 펼치는데, 이 영화에서 중국 선양은 여러 나라의 첩보원들이 공작을 펼치는 전쟁터 같은 곳이다. 한편 검찰에서는 재벌비리를 독고다이로 수사하는 검사 지훈(박해수)이 등장한다. 지훈은 나쁜 놈을 잡기 위해 과정도 정의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검사다. 이런 신념 때문에 그는 재벌회장을 검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검찰청에서 국정원 법률자문팀으로 '좌천'된 한지훈은 강인의 중국 선양 블랙팀에 대한 감찰 임무를 부여받고 중국 선양으로 향한다. 여기서 그는 블랙팀이 수사 중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3. '야차'는 표면적으로 '미션 임파서블'과 닮았다. 강인의 블랙팀은 팀장 포함 5인 1조로 움직인다. 여기에는 저격과 기동에 능한 요원들이 있고 사무지원을 맡는 홍 과장(양동근)도 있다. 워낙 '미션 임파서블'이 이단 헌트(톰 크루즈) 중심으로 움직이는 영화라 다른 캐릭터들이 매력적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이먼 페그나 폴라 패튼은 이야기의 양념이 됐고 빙 라메스나 제레미 레너도 제 역할을 해줬다. 그에 비하면 '야차'는 설경구와 박해수, 양동근 말고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서 송재림의 사투리 연기나 스타일링은 나름 개성이 있었다. 그런데 진영과 이엘이 연기한 캐릭터는 너무 성의없게 설계된 인상을 준다. 나름 첩보팀인데 캐릭터에 신경을 많이 안 써준 게 눈에 보인다.
4.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 영화에는 '미션 임파서블'에 없는 게 하나가 추가된다. 강인과 지훈의 버디무비다. 이야기는 첩보작전 외에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도 보여줘야 한다. 강인은 목표한 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 지훈은 목표한 바를 위해 과정도 정의로워야 한다고 믿는다. 두 사람의 생각은 "정의는 그 과정도 정의로워야 한다"(지훈)와 "정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키는 것이다"(강인)라는 대사에서도 갈라진다. 강인과 지훈의 관계는 나름 재미가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리기에는 할 것도 너무 많고 캐릭터도 많다. '야차'가 설경구와 박해수의 버디무비였다는 걸 깨닫기 위해서는 꽤 시간이 걸린다. 즉 '야차'는 '미션 임파서블'과 같은 팀업무비와 '리쎌웨폰'같은 버디무비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두 장르의 장점이 부각될 때도 있지만, 두 장르의 단점도 같이 드러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 이 영화는 첩보영화다.
5. 첩보영화의 묘미는 액션에 있을 수도 있지만, 음모와 배신이 더 중요하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야차'는 팀업무비에 버디무비, 액션무비까지 갈 길이 먼데 거기에 음모와 배신까지 집어넣는다. '미션 임파서블'을 텍스트로 넣은 대목도 이 때문이다. 이 영화의 빌런은 꽤 강력하다. 일반적으로 빌런이 세다면 영화는 재미있다. 중국 선양에서 이 빌런의 영향력은 대단히 막강하며 심지어 나름 매력도 있다. 게다가 실컷 잘해놓고 중요한 순간에 똥볼 차는 능력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미션 임파서블2'나 피어스 브로스넌의 '007' 속 메인 빌런하고는 어깨를 나란히하기 충분하다. 게다가 메인 빌런의 영향력 아래에서 주인공 일행을 괴롭히는 서브빌런들도 매력이 있다. 첩보액션영화에서 빌런 점수의 총점이 100점이라면 '야차'의 빌런에게는 85점 이상은 줄만하다(대단히 높은 점수다).
6. 이 영화는 홍콩과 대만에서 주로 촬영했다. 남의 나라에서 찍는 만큼 액션에도 제약이 많을 것 같은데 괜찮은 액션씬도 몇 개 있다. 특히 몇몇 장면은 저 옛날 홍콩 갱영화나 경찰영화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감성돋는다. 이국적인 풍경에서 액션씬을 찍는 만큼 장면 자체만으로 전에 없는 액션씬을 만들어낸다. 다만 중요할 때 소심해지는 지점도 몇 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설경구가 몇 몇 인물들을 처단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갑자기 위로 빠지거나 멀리서 찍어버린다. 그리고 총소리만 들릴 뿐이다. 마치 "잔인한 장면은 보여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처럼 느껴지는데 소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여기에 충분히 타격감이 있는 액션이 나올 수 있는 장면 몇 개를 그냥 건너뛴다는 인상도 받는다. 이 영화에서 즐길만한 '이국적인 액션'은 타격감보다 분위기를 즐기는 게 좋다는 의미다. 이는 '야차'의 이야기나 촬영여건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7. 설경구가 '나쁜 남자'를 연기한 게 하루 이틀은 아니다. '오아시스'의 홍종두부터 '불한당'의 한재호까지, 그는 한결같이 나쁜 남자였다. 그리고 나쁜 남자일 때 팬들이 특히 좋아하기도 했다. '야차'에서도 그는 나쁜 남자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쁜 남자와는 다른 나쁜 남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한재호나 강철중이 대사 길게 치는 나쁜 남자라면, '야차'의 강인은 용건만 간단히 하는 나쁜 남자다. 용건만 툭툭 던지는데 그게 참 성질머리 사납고 나쁘게 들린다. 설경구의 팬들은 이 모습에서 색다른 매력을 느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또 다른 매력적인 배우는 양동근이다. 이 영화에서 변화가 큰 캐릭터이면서 그걸 잘 소화해낸다. 첩보요원에 어울릴 듯 하다가 안 어울리는데 결과적으로 첩보영화에 잘 어울린다. '야차'에서는 양동근을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다.
8. 결론: 본문에서 호평과 악평이 교차된 것 같은데, 간단히 표현하자면 '별점 5점 만점에 3점' 정도다. 국정원이나 검찰에 대한 상상력 충만한 묘사는 영화적 허용으로 접어두자. 첩보액션영화로 이야기를 쫓아가는 데 크게 난해한 대목은 없다. 소심한 액션일 수도 있는데 이 정도면 극장에서 봐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CG가 거슬리는 장면도 있는데 쿠키영상에서만 대체로 거슬렸으니 이해하도록 하자(원래 쿠키영상은 CG 하청 계약서에 없었던 것일까?). '야차'는 익숙한 것을 나름 준수하게 재가공한 상업영화다.
추신) 영화에 등장하는 설경구와 진경의 관계는 '감시자들'을 생각하고 보면 좀 더 웃기다.
관람하는 편이라....꽤 만족스럽게 볼 수 있겠습니다.
리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