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키티의 망작열전] 레오 까락스의《폴라 X》(19금, 스포)
작년 알라딘 중고샵에서 단돈 몇천원에 구매해두고 오늘에야 다 보았습니다. 이 작품은 본국인 프랑스에서조차 블루레이가 나오지 않았고 (아마존 프랑스에서 판매하는 레오 까락스 블루레이 박스세트에서 유독 이 작품은 빠져있습니다) 아마존 미국에서 검색해도 DVD 뿐이라 (북미판 카트린 드뇌브 박스세트에 포함된 에디션도 있는데 어차피 그것도 DVD입니다) 그냥 한국 정발판을 보는것과 별 차이 없습니다. 물론 주인공 역의 기욤 드파르듀가 상대 여배우와의 섹스 장면에서 실제로 성관계를 해서 유명세를 타기는 했고 국내판에서 그 부분은 잘려 있는데 개인적인 의견으로 중요한 장면은 아니라 별 상관은 없습니다 😂
영화가 시작하면 오프닝 크레딧에서 2차대전 폭격기들의 스톡 푸티지를 보여주며 폭탄이 수십발 떨어져 무언가를 산산조각 내는것을 볼 수 있는데 자세히 보면 십자가들이 꽂힌 공동묘지입니다. 즉 인간의 마지막 안식처를 부수는 것으로 아주 상징적인 장면이겠죠.
폭격으로 폐허가 된 공동묘지. 아주 잠깐 순간적으로 나와서 놓칠수도 있습니다.
타이틀이 나오고 나서 영화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아름다운 저택을 보여줍니다. 레오 까락스는 원래 이 영화를 세 챕터로 구성하려고 했고 첫번째 챕터는 In the light, 즉 "빛 속에서"라는 제목이었다고 하네요. 기욤 드파르듀가 연기하는 주인공 피에르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젊고 잘생겼으며 소설가로서 성공했고,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저택에서 아름다운 어머니 (카트린 드뇌브) 와 귀족처럼 여유롭게 생활합니다. 그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여친 루시도 있습니다. 꿈처럼 완벽한 삶이죠.
그런데... 주의깊게 보면 뭔가 좀 이상합니다.
예를들면 이 장면. 침대 위에서 마치 막 섹스를 끝낸 연인처럼 서로를 욕망이 담긴 끈적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담배를 피는 장면. 피에르는 웃통을 벗고 있고 어머니는 섹시한 가운 차림입니다. 어머니와 아들을 이런 식으로 묘사하는 건 물론 의도적인 연출입니다. 레오 까락스는 근친상간이라는 타부를 다루고 싶은거죠. 재미있는 건 그는 어머니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피에르가 사촌형제인 티보를 만나는 장면은 동성애적으로 연출되었습니다. 마치 오래된 연인이 재회하는 것처럼 둘은 뺨을 부비고 귀에 입술을 갖다대며 그리웠다고 말하죠. 그러니까 까락스는 모든 혈연관계를 성적인 관점에서 보고 싶어하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피에르의 완벽한 삶은 그의 숨겨진 이복 여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이자벨이 나타나면서 무너집니다. 이자벨은 노숙자에다 불어도 잘 못합니다 (불어를 모르는 사람도 그녀가 더듬거리며 이상한 액센트의 불어를 한다는 걸 쉽게 알아차릴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피에르의 숨겨진 여동생이라는 막장 스토리도 사실 그녀의 일방적인 주장이고 증거도 없죠. 그런데도 피에르는 그녀에게 미친듯이 빠져듭니다. 자신의 어머니, 약혼녀, 집, 사회적 지위 등 모든것을 버리고.
이때부터 영화는 설득력을 잃기 시작하고 B급 통속 드라마로 전락합니다. 굉장히 비현실적인 피에르의 강박에 가까운 행동을 설명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며 이자벨이 특별히 유혹을 하는것도 아닌데 그들은 "그냥" 섹스를 합니다. 이게 근친상간이라는 금기를 다루고자 하는 시도라면 거기에는 결정적인 헛점이 있습니다. 피에르와 이자벨이 남매간이라는건 어디까지나 이자벨의 일방적인 주장입니다. 만약 그게 지어낸 스토리라면?
아마도 까락스는 드니 라방 트릴로지 (보이 미트 걸,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 를 마친 후 뭔가 전혀 다른걸 해보고 싶었나봅니다. 그래서 예전의 현란한 촬영기법도 무성영화 오마쥬도 초현실적 장치들도 찾아볼 수 없고 그의 분신과도 같던 드니 라방의 캐릭터와 피에르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습니다. 문제는 기욤 드파르듀는 (최소한 이 작품에서는) 솔직히 연기를 못하고 그보다 약간 못생겼어도 스크린을 압도하던 드니 라방의 연기력과 너무 비교된다는 거죠.
아마도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레오 까락스다운 장면은 피에르의 꿈 시퀀스인데 이 장면에서 피로 이루어진 폭포가 등장합니다. 재미있는건 폭포수는 대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지만 이 폭포는 중력을 무시하고 물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자연의 섭리를 위반한다는 상징인 모양인데 이 핏물 (혈연관계를 상징하는) 속에서 피에르와 이자벨은 열정적으로 벌거벗은 채 키스를 합니다.
이 장면 그리고 아마도 오프닝 크레딧을 제외하면 이 영화에서 레오 까락스의 연출력은 놀라울 정도로 부재합니다. 특히 후반부에서 피에르가 쌍권총을 들고 설치는 장면은 심야 케이블 채널에서 나올만한 B급 스릴러를 연상하게 해서 실소가 나올 정도니까요.
피에르는 쌍권총으로 감히 자신의 원고를 거절한(!) 출판업자를 살해하려고 설치다가 길거리에서 사촌형제인 티보를 우연히 만나자 그를 대신 쏩니다. 왜냐구요? 모르겠어요. 앞서도 말했지만 이자벨을 만난 순간부터 피에르는 맛이 간 사람처럼 행동하고 여기에는 어떤 설득력도 없습니다.
아마도.. 《폴라 X》는 레오 까락스 최대의 망작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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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놀랍게도 이 영화 우리나라에서 관객 좀 모은 것 같더라고요.
역시 레오 까락스 이름 때문인가 !
키에슬로프스키 영화가 대박 거두던 시절이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