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4
  • 쓰기
  • 검색

'간신'을 여성영화로 볼 수 있는 이유(스포주의)

수위아저씨
19833 2 4
※ 경고: 스포일러가 굉장히 심한 글이다. 영화 볼 계획이 있으면 알아서 대피하자

movie_image_(42).jpg


'간신'의 모양새는 흔해 빠진 에로사극이다. 사실 이런 '비운의 사랑'을 다룬 에로사극은 지겨울 정도로 많이 봤다. '간신'의 외형은 그간 다뤄진 지긋지긋한 사극들과 다를 바 없지만 이 외형을 비틀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전혀 다른 이야기는 민규동 감독이 김태용 감독과 콤비를 이뤄 만들던 초기 영화들과 세계관을 함께 하며 그의 몇 가지 영화들과도 이어진다. 즉 '간신'은 시선을 돌리는 순간 뜻밖의 여성영화가 돼버린다. 이 글은 '간신'이 폭군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여성의 삶을 어떻게 그려내는지 설명할 것이다.


movie_image_(43).jpg


'간신'은 폭군 연산군(김강우)과 채홍사 임숭재(주지훈)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쾌락에 사로잡힌 왕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임숭재는 팔도의 1만 여인을 차출해 왕의 쾌락을 위해 바친다. 이들은 '운평'이라 칭해지며 이들 중 선발돼 왕의 처소에 들 여인은 '흥청'이라 불린다. 

영화 속 연산군의 시대에서 여성이란 왕의 마음을 얻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영화 속 유일하게 권력을 쥔 여성인 장녹수(차지연) 역시 젖가슴으로 상징되는 자신의 여성성을 이용해 왕의 마음을 얻는다. 영화는 그야말로 폭군인 왕과 그의 마음을 얻어 권력을 주무르려는 간신들로 넘쳐난다. 

이들 중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단희(임지연)이다. 역적의 딸로 태어나 백정으로 살던 그녀는 스스로 채홍돼 궐로 들어섰으며 모든 훈육에 능동적으로 임한다. 심지어 임숭재가 가르친대로 왕의 마음을 얻지도 않는다(위험한 발언을 일삼고 제멋대 행동한다). 


movie_image_(47).jpg


단희의 목적은 억울하게 죽은 아비의 복수로 왕을 죽이는데 있다. 단희가 운평이 되고 고된 훈육을 견뎌내는데는 이 목적이 지배적이다. 단희가 왕을 죽이기 위해 처소에 잠입하는데는 박원종(조한철)과의 거래가 따른다. 왕을 죽이고 역모를 꾀하는 박원종은 단희를 전방에 내세워 왕을 공격하려 한다. 영화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주체적이었던 박원종 역시 여성을 이용해 왕을 죽이고 권력을 얻으려 한다. 영화를 보면 박원종의 의도가 그리 정의로워 보이진 않는다는 점에서 그 역시 권력욕이 있으며 그를 위해 단희를 이용하려 함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즉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권력을 탐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캐릭터가 바로 단희다. 여성에 대한 핍박이 극에 달한 시대에서 단희는 다소 이질적이지만 자립심이 강한 캐릭터다. 이 캐릭터가 굳이 '여성'이어야 한 이유도 여성에 대한 억압이 극에 달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영화가 단희를 통해서 무엇을 보여주려 했냐는 것이다. 


movie_image_(46).jpg


단희와 왕을 제외한 남성캐릭터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권력욕, 야망이다. 야망을 가진 남성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죽거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나마 살아남은 또 다른 관료들도 "간신이 되었다"는 설명으로 마무리 지었으니 그들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권력을 쫓던 자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는 여러 사극들에서 잘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산 자와 죽은 자(혹은 살아도 산 게 아닌 자)의 차이는 권력을 탐했는가와 탐하지 않았는가, 혹은 권력을 탐하다 내려 놓았는가에서 드러난다. 사실 권력을 탐하던 간신 임숭재가 권력을 내려놓고 반역무리에 동참한 이유는 권력욕이 없는 단희 때문이다. 결국 권력욕이 없는 이 여자 때문에 간신이 권력욕을 내려놓게 된다. 

사실 여기에 '로맨스'는 좋은 양념이다. 이것이 비록 흔해 빠진 '비운의 사랑'일지언정 이 영화에서는 적절한 양념인 셈이다. 단희와 임숭재의 로맨스는 결국 최고의 간신에게 권력의 허망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임숭재는 역모에 가담한다. 


movie_image_(49).jpg


결국 권력욕을 내려놓은 임숭재는 백정으로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권력욕이 없었던 단희는 고운 옷을 입고 살아남는 것으로 보아 양가집 규수 정도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단희의 고운 손짓은 군중들 사이에서 오롯이 솟아오른다. 결국 가장 권력욕이 없었던 여인이 군중들 사이에 우뚝 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같은 맥락으로 봤을때 살아남은 설중매(이유영) 역시 말미에는 단희를 돕는 여인이라 살아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설중매 역시 권력과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 채홍에 자진한다. 그러나 왕의 쾌락에 이용되고 버려질 위기에 처하자 그녀는 단희를 돕는 여인이 된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단희의 사람들만 다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들은 단희를 중심으로 모여들지 않는다. 생존자들의 틈에는 더 이상 '권력'이 남아있지 않는다. 남아있는 것은 연민과 그리움, 정이다. 권력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게 바로 그것이다. 


movie_image_(45).jpg


'간신'이 여성중심의 영화라는 것은 사실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사실 이 영화는 그럴싸하게 드러나는 정사장면이 없다. 그나마 임숭재와 단희의 정사장면도 상상 속의 일이다. 사실상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한 정사장면은 단희와 설중매의 동성 정사씬이다. 연산군 역시 운평을 희롱하는 장면만 있지 여자와 섹스를 하는 장면은 없다. 

이는 남성지배적인 성관계에 대해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겠다는 뜻이다. 동성의 정사씬 역시 왕과 임숭재, 장녹수가 지켜보고 있지만 에너지를 발산하고 관계를 갖는 공간에는 온전히 둘만 있다. 그리고 경쟁관계였던 이 두 여인은 관계를 가진 후 유대감을 형성한듯 꼭 껴안는다(죽을 위기에 처한 설중매도 사실상 단희가 살려낸다). 섹스에 대해 철저히 남성성을 배제한 결과 둘이 유대감을 갖게 된다. 이 역시 남성중심에 대한 반기를 든 것이 된다. 이 여성성은 남성과 권력자들이 지켜본 가운데 얻어낸 결과로 온전히 두 사람이 힘겹게 쟁취한 것이다. 그래서 둘의 유대감은 마지막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movie_image_(48).jpg


결국 '간신'의 두 남자주인공은 극의 줄기 역할을 하는 배우일 뿐이다. 이 영화의 진짜 가치는 단희와 설중매에게서 드러난다. 두 여인의 유대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영화는 연산군의 폭정과 임숭재의 간악한 정치를 보여준다. 이는 굉장히 지능적인 배치이며 본 뜻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일종의 암호와 같다. 이 암호를 푸는 요령은 단순하다.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비틀기만 하면 된다.

'간신'이 드러내는 진짜 속 뜻은 여성으로서 난세를 견뎌내고 살아남는 법이다. 그것은 과거의 영화들처럼 인고의 세월을 참아내는 여인의 삶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나서서 쟁취해내는 삶이다. 민규동 감독은 다시 한 번 능동적인 여성이 주체가 되는 영화를 만든 셈이다. 


추신1) 단희와 설중매의 정사장면은 영화의 거의 유일한 정사장면이며 가장 공을 들인 정사장면이다. 공 들인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추신2) 일반시사회 무대인사에 여배우 셋만 온 것이 의아했다. 이것은 김강우와 주지훈이 바빠서라기 보다 감독이 공을 들인 중요한 캐릭터 셋을 데려온 것으로 보인다. 이 양반 이렇게 자기 의도를 드러낸다. 

추신3) 새삼 다시 강조하지만 개그코드는 빼는게 더 나았다.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2

  • golgo
    golgo
  • 파도
    파도

댓글 4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1등
포인트팡팡녀!
축하해~! 수위아저씨님은 100포인트에 당첨되셨어 ㅋㅋㅋ 활동 많이 해 +_+
03:08
15.05.12.
profile image 2등

사극 여인천하 같은 분위긴가요?...ㅎㅎ

그걸 실시간으로 못 본 게 한인데...

11:00
15.05.12.
profile image 3등

오 갖은 혹평의 글들만 봐왔는데 수위아저씨님의 글을 보니 그래도 안보는 것보단 낳겠다는 생각이 드네요...궁금궁금해짐....볼까봐요^^

11:18
15.05.12.
여인들 끼리의 정사신은 정말 공들인 티가 나더라고요. ㅎㅎ
17:59
15.05.12.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HOT 케빈 맥마너스-매튜 맥마너스 형제,호러 스릴러 <리덕스 ... 1 Tulee Tulee 28분 전20:00 65
HOT 안데르스 토머스 젠슨-매즈 니켈슨-니콜라이 리 카스,덴마크... 1 Tulee Tulee 52분 전19:36 103
HOT 기네스 팰트로,드라마 <마티 슈프림> 출연 1 Tulee Tulee 52분 전19:36 138
HOT 바닷마을 다이어리 4K Blu-ray 감상후기 1 카스미팬S 2시간 전17:29 175
HOT 리처드 기어, <귀여운 여인>과 <8월의 광시곡> ... 1 카란 카란 1시간 전19:28 202
HOT 지극히 주관적인 90년대 최고의 영화 20편. 12 엄마손파이 엄마손파이 8시간 전12:26 1408
HOT 숀 건, "마블과 DC를 비교하는 것은 사과와 오렌지를 ... 2 카란 카란 3시간 전16:43 745
HOT 대한극장 철거중 2 행복을위하여 행복을위하여 3시간 전17:05 1443
HOT 한국이 싫어서&룩백 한줄평 H무비 3시간 전16:54 574
HOT ‘비틀쥬스‘ 캐릭터들 그때와 지금 - IMAX 1 NeoSun NeoSun 5시간 전15:08 728
HOT 나폴레옹 감독판 (2024) 스포일러 없음. 12 BillEvans 9시간 전11:19 2189
HOT 한국이 싫어서 무대인사 (240831) + 고아성배우 사인 4 동네청년 동네청년 13시간 전06:39 695
HOT 이달의 돌비 9월 4 NeoSun NeoSun 5시간 전14:51 627
HOT 가장 논란이 많았던 오스카 공로상 수상 6 Sonatine Sonatine 5시간 전15:18 1981
HOT 푸니버스 <피터팬의 네버랜드 나이트메어> 예고편 2 카란 카란 6시간 전13:59 397
HOT 8월 영화 기록 및 재밌게 본 영화들 목록 5 톰행크스 톰행크스 7시간 전12:53 559
HOT 미키 마우스 단편 '증기선 윌리'를 호러 영화화한... 2 카란 카란 6시간 전13:51 636
HOT 몰입감 높은 웰메이드 법정스릴러 미드 "무죄추정" 4 방랑야인 방랑야인 7시간 전12:34 714
HOT 한국인이 사랑하는 터미네이터 (0) 7 진지미 9시간 전11:06 867
HOT PS5 프로는 현 세대 최강의 성능을 가진 콘솔 2 호러블맨 호러블맨 9시간 전10:59 1067
1149569
image
NeoSun NeoSun 2분 전20:26 25
1149568
image
NeoSun NeoSun 15분 전20:13 118
1149567
image
Tulee Tulee 28분 전20:00 65
1149566
image
Tulee Tulee 28분 전20:00 54
1149565
image
Tulee Tulee 29분 전19:59 54
1149564
normal
BillEvans 52분 전19:36 424
1149563
image
Tulee Tulee 52분 전19:36 103
1149562
image
Tulee Tulee 52분 전19:36 138
1149561
image
Tulee Tulee 53분 전19:35 89
1149560
image
Tulee Tulee 53분 전19:35 83
1149559
image
카란 카란 1시간 전19:28 202
1149558
normal
BillEvans 1시간 전18:39 325
1149557
image
내일슈퍼 2시간 전18:20 437
1149556
normal
오래구워 2시간 전17:49 136
1149555
image
카란 카란 2시간 전17:30 309
1149554
normal
카스미팬S 2시간 전17:29 175
1149553
image
밀크초코 밀크초코 3시간 전17:28 411
1149552
image
행복을위하여 행복을위하여 3시간 전17:05 1443
1149551
image
카란 카란 3시간 전17:00 437
1149550
image
Sonatine Sonatine 3시간 전16:57 772
1149549
normal
H무비 3시간 전16:54 574
1149548
image
카란 카란 3시간 전16:43 745
1149547
normal
Sonatine Sonatine 3시간 전16:29 218
1149546
normal
으으12 4시간 전16:26 221
1149545
normal
미라이 4시간 전16:21 245
1149544
image
시작 시작 4시간 전16:05 421
1149543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6:02 275
1149542
normal
Sonatine Sonatine 5시간 전15:18 1981
1149541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15:16 452
1149540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15:08 728
1149539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14:51 627
1149538
image
카란 카란 6시간 전13:59 397
1149537
image
카란 카란 6시간 전13:51 636
1149536
normal
소설가 소설가 6시간 전13:46 475
1149535
normal
하드보일드느와르 6시간 전13:46 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