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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을 여성영화로 볼 수 있는 이유(스포주의)

수위아저씨
19991 2 4
※ 경고: 스포일러가 굉장히 심한 글이다. 영화 볼 계획이 있으면 알아서 대피하자

movie_image_(42).jpg


'간신'의 모양새는 흔해 빠진 에로사극이다. 사실 이런 '비운의 사랑'을 다룬 에로사극은 지겨울 정도로 많이 봤다. '간신'의 외형은 그간 다뤄진 지긋지긋한 사극들과 다를 바 없지만 이 외형을 비틀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전혀 다른 이야기는 민규동 감독이 김태용 감독과 콤비를 이뤄 만들던 초기 영화들과 세계관을 함께 하며 그의 몇 가지 영화들과도 이어진다. 즉 '간신'은 시선을 돌리는 순간 뜻밖의 여성영화가 돼버린다. 이 글은 '간신'이 폭군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여성의 삶을 어떻게 그려내는지 설명할 것이다.


movie_image_(43).jpg


'간신'은 폭군 연산군(김강우)과 채홍사 임숭재(주지훈)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쾌락에 사로잡힌 왕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임숭재는 팔도의 1만 여인을 차출해 왕의 쾌락을 위해 바친다. 이들은 '운평'이라 칭해지며 이들 중 선발돼 왕의 처소에 들 여인은 '흥청'이라 불린다. 

영화 속 연산군의 시대에서 여성이란 왕의 마음을 얻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영화 속 유일하게 권력을 쥔 여성인 장녹수(차지연) 역시 젖가슴으로 상징되는 자신의 여성성을 이용해 왕의 마음을 얻는다. 영화는 그야말로 폭군인 왕과 그의 마음을 얻어 권력을 주무르려는 간신들로 넘쳐난다. 

이들 중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단희(임지연)이다. 역적의 딸로 태어나 백정으로 살던 그녀는 스스로 채홍돼 궐로 들어섰으며 모든 훈육에 능동적으로 임한다. 심지어 임숭재가 가르친대로 왕의 마음을 얻지도 않는다(위험한 발언을 일삼고 제멋대 행동한다). 


movie_image_(47).jpg


단희의 목적은 억울하게 죽은 아비의 복수로 왕을 죽이는데 있다. 단희가 운평이 되고 고된 훈육을 견뎌내는데는 이 목적이 지배적이다. 단희가 왕을 죽이기 위해 처소에 잠입하는데는 박원종(조한철)과의 거래가 따른다. 왕을 죽이고 역모를 꾀하는 박원종은 단희를 전방에 내세워 왕을 공격하려 한다. 영화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주체적이었던 박원종 역시 여성을 이용해 왕을 죽이고 권력을 얻으려 한다. 영화를 보면 박원종의 의도가 그리 정의로워 보이진 않는다는 점에서 그 역시 권력욕이 있으며 그를 위해 단희를 이용하려 함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즉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권력을 탐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캐릭터가 바로 단희다. 여성에 대한 핍박이 극에 달한 시대에서 단희는 다소 이질적이지만 자립심이 강한 캐릭터다. 이 캐릭터가 굳이 '여성'이어야 한 이유도 여성에 대한 억압이 극에 달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영화가 단희를 통해서 무엇을 보여주려 했냐는 것이다. 


movie_image_(46).jpg


단희와 왕을 제외한 남성캐릭터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권력욕, 야망이다. 야망을 가진 남성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죽거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나마 살아남은 또 다른 관료들도 "간신이 되었다"는 설명으로 마무리 지었으니 그들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권력을 쫓던 자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는 여러 사극들에서 잘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산 자와 죽은 자(혹은 살아도 산 게 아닌 자)의 차이는 권력을 탐했는가와 탐하지 않았는가, 혹은 권력을 탐하다 내려 놓았는가에서 드러난다. 사실 권력을 탐하던 간신 임숭재가 권력을 내려놓고 반역무리에 동참한 이유는 권력욕이 없는 단희 때문이다. 결국 권력욕이 없는 이 여자 때문에 간신이 권력욕을 내려놓게 된다. 

사실 여기에 '로맨스'는 좋은 양념이다. 이것이 비록 흔해 빠진 '비운의 사랑'일지언정 이 영화에서는 적절한 양념인 셈이다. 단희와 임숭재의 로맨스는 결국 최고의 간신에게 권력의 허망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임숭재는 역모에 가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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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권력욕을 내려놓은 임숭재는 백정으로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권력욕이 없었던 단희는 고운 옷을 입고 살아남는 것으로 보아 양가집 규수 정도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단희의 고운 손짓은 군중들 사이에서 오롯이 솟아오른다. 결국 가장 권력욕이 없었던 여인이 군중들 사이에 우뚝 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같은 맥락으로 봤을때 살아남은 설중매(이유영) 역시 말미에는 단희를 돕는 여인이라 살아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설중매 역시 권력과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 채홍에 자진한다. 그러나 왕의 쾌락에 이용되고 버려질 위기에 처하자 그녀는 단희를 돕는 여인이 된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단희의 사람들만 다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들은 단희를 중심으로 모여들지 않는다. 생존자들의 틈에는 더 이상 '권력'이 남아있지 않는다. 남아있는 것은 연민과 그리움, 정이다. 권력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게 바로 그것이다. 


movie_image_(45).jpg


'간신'이 여성중심의 영화라는 것은 사실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사실 이 영화는 그럴싸하게 드러나는 정사장면이 없다. 그나마 임숭재와 단희의 정사장면도 상상 속의 일이다. 사실상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한 정사장면은 단희와 설중매의 동성 정사씬이다. 연산군 역시 운평을 희롱하는 장면만 있지 여자와 섹스를 하는 장면은 없다. 

이는 남성지배적인 성관계에 대해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겠다는 뜻이다. 동성의 정사씬 역시 왕과 임숭재, 장녹수가 지켜보고 있지만 에너지를 발산하고 관계를 갖는 공간에는 온전히 둘만 있다. 그리고 경쟁관계였던 이 두 여인은 관계를 가진 후 유대감을 형성한듯 꼭 껴안는다(죽을 위기에 처한 설중매도 사실상 단희가 살려낸다). 섹스에 대해 철저히 남성성을 배제한 결과 둘이 유대감을 갖게 된다. 이 역시 남성중심에 대한 반기를 든 것이 된다. 이 여성성은 남성과 권력자들이 지켜본 가운데 얻어낸 결과로 온전히 두 사람이 힘겹게 쟁취한 것이다. 그래서 둘의 유대감은 마지막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movie_image_(48).jpg


결국 '간신'의 두 남자주인공은 극의 줄기 역할을 하는 배우일 뿐이다. 이 영화의 진짜 가치는 단희와 설중매에게서 드러난다. 두 여인의 유대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영화는 연산군의 폭정과 임숭재의 간악한 정치를 보여준다. 이는 굉장히 지능적인 배치이며 본 뜻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일종의 암호와 같다. 이 암호를 푸는 요령은 단순하다.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비틀기만 하면 된다.

'간신'이 드러내는 진짜 속 뜻은 여성으로서 난세를 견뎌내고 살아남는 법이다. 그것은 과거의 영화들처럼 인고의 세월을 참아내는 여인의 삶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나서서 쟁취해내는 삶이다. 민규동 감독은 다시 한 번 능동적인 여성이 주체가 되는 영화를 만든 셈이다. 


추신1) 단희와 설중매의 정사장면은 영화의 거의 유일한 정사장면이며 가장 공을 들인 정사장면이다. 공 들인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추신2) 일반시사회 무대인사에 여배우 셋만 온 것이 의아했다. 이것은 김강우와 주지훈이 바빠서라기 보다 감독이 공을 들인 중요한 캐릭터 셋을 데려온 것으로 보인다. 이 양반 이렇게 자기 의도를 드러낸다. 

추신3) 새삼 다시 강조하지만 개그코드는 빼는게 더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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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포인트팡팡녀!
축하해~! 수위아저씨님은 100포인트에 당첨되셨어 ㅋㅋㅋ 활동 많이 해 +_+
03:08
15.05.12.
profile image 2등

사극 여인천하 같은 분위긴가요?...ㅎㅎ

그걸 실시간으로 못 본 게 한인데...

11:00
15.05.12.
profile image 3등

오 갖은 혹평의 글들만 봐왔는데 수위아저씨님의 글을 보니 그래도 안보는 것보단 낳겠다는 생각이 드네요...궁금궁금해짐....볼까봐요^^

11:18
15.05.12.
여인들 끼리의 정사신은 정말 공들인 티가 나더라고요. ㅎㅎ
17:59
1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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