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독

1978년 장철 감독.

78년은 [취권]과 [사형도수]가 히트한 해입니다. 그 여파로 몇년간 XX권 YY권 ZZ권하는 온갖 권법들을 내세운 영화들이 유행했습니다. 실존하는 무술이건 영화에서 만들어낸 무술이건 좌우간에 온갖 희한한 무술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나오는 와중에 [오독]도 그런 흐름속에서 나온 영화입니다. 이름이 5독. 한편의 영화에서 하나도 아닌 다섯가지 무술을 떨이로 대방출하는 것입니다.

맹독이 있는걸로 유명한 다섯가지 축생-뱀, 지네, 전갈, 도마뱀, 두꺼비. 얘네들을 소재로 해서 무술을 짜내고 다섯명의 배우들에게 각각 하나씩 맡깁니다. 각본도 완성되기 전에 일단 액션부터 찍기 시작했다는군요.

그렇다고 각본(예광과 장철이 공동집필)이 완전날림이냐면, 뭐 날림으로 쓴게 맞긴 하지만...^^ 예상외로 괜찮은 이야기입니다. 판에박은 무협스토리와는 다른 독특함이 있고 범인찾기 미스테리도 있고 호러적인 요소(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자가면 고문포르노...)도 있고 중간중간 싸움질이 들어갈 구실도 꽤 그럴듯하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보통 쿵후영화 하면 내용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쌈박질 구경만 하는 영화라는게 일반적인 인식인데 그런 쿵후영화 스탠더드에서는 꽤나 잘뽑힌 이야기라는 소리를 듣고있습니다.

타이틀롤인 5독의 다섯명 외에도 탐정역할을 하는 한사람을 더해 여섯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사람들은 장철이 대만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모집한 신인들로 다수가 이 영화로 처음 주연급으로 올라서게된 사람들입니다. 이중에 누구 한사람을 뚜렷한 주인공이라 특정하기 보다는 여섯명의 공동주연체제라고 볼수있습니다. 이 여섯은 신인인데다 대부분 단독으로 내세우기에는 스타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외모도 여자들이 첫눈에 반할 인상은 아니고...

일종의 박리다매...라고 할까... 성룡같은 원톱스타는 없어도 여섯명이 뭉쳐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이들은 이후로도 계속 팀으로 영화에 나왔기 땜에 같이 나온 첫작품의 이름을 따서 오독팀이라고 불리게되고 오독팀은 쿵후영화 팬덤에서 어지간한 원톱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끌게됩니다. (여섯명중에 한명은 곧 팀을 떠나게 되어서 다섯명이 되지만 다섯명이 5독이란 이름에 더 잘 어울리기도 했죠,)

[오독]은 홍콩에서는 아주 크게 대박을 낸 건 아니지만 무명배우들 데리고 단기간에 싸게 찍은 영화라서 가성비로는 꽤 쏠쏠한 흥행을 했습니다. 그후로도 오독팀의 영화들은 적절한 가성비의 흥행을 계속했기 때문에 대만에서의 실패 이후 한동안 저조했던 장철은 다시한번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다만 이 시기 이후로는 더이상 과거의 진지함은 볼 수 없게 되었고 쌈마이정신에 투철한 (보통 컬트로 받아들여지는) 영화들만 만들게되기 때문에 과거 장철의 영광스런 시절만을 기억하고 싶어하는 일부팬들은 이 시기 영화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기도 합니다.

[오독]은 국내에는 수입되지 않았습니다. 국내에서 히트할만한 스타가 전무했던 데다 영화 내용이 지방의 유지가 사익을 위해 사람들을 납치고문감금하고 그걸 관에서 묵인하고 오히려 적극 협조한다는 내용이라서... 당시의 검열을 통과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죠. 그래서 꽤 오랫동안 국내에서는 미지의 영화였다가 90년대 말쯤 되서 서양에서 날리는 컬트영화라는 명목으로 소개되고 2000년대 리마스터판 DVD가 나온 뒤에야 제대로 알려지게됩니다. 줄줄이 나온 오독영화들도 [차수]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들어온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장철은 왕년에 진지한 무협영화의 걸작들을 만들어낸 사람으로만 기억되고 있었죠.

그와는 달리 양덕들에게는 [오독]이 장철을 대표하는 영화입니다. 서양에 홍콩 영화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게 이소룡 이후라서, 이소룡 이전시대 이야기인 장철의 진짜 리즈시절은 상대적으로 서양권에는 덜 알려져있었고 [오독]이 폭발적인(혹은 컬트적인) 인기를 끌게되면서 장철이 본격적으로 양덕들의 탐구대상이 되었죠.

[오독]은 [소림36방]과 더불어서 쿵후영화라는 장르 자체를 상징할 정도의 위치에 있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 흑인사회, 그중에서도 힙합계에서 [오독]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고 하고 [오독]뿐 아니라 오독영화 전반 글고 오독 멤버중 몇명이 참여한 영화까지도 전부 오독계열영화로 분류되어 관심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