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크롤러] 기레기 양성의 요람

우리는 작년에 언론의 민낯을 보았다. 사람이라면 고개 숙여 슬퍼해야 마땅할 사건 앞에서 그런 인간적 도리마저 저버리며 철판깔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조회수나 시청률 올리는 데 혈안이 된 미디어의 모습을 목격한 후, 우리가 알던 '진실을 캐는 언론'의 모습은 상당부분 허황된 이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중이 봐야 하는 것을 찾아 헤매기보다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우선 찾고, 때론 대중을 이리도 우습게 봤나 싶을 정도로 여론을 호도하기까지 하는 일부 미디어에게는 '기레기'라는 굴욕적인 별명이 붙었고, 이 말은 곧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국민이라면 누구나 할 만한 부끄러운 대명사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시청률이나 조회수보다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언론이 있을 것이라는, 그런 기자들이 그렇지 않은 기자들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지만, 설마했던 모습을 직접 목격한 후 불신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1인 미디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카메라를 든 누구라도 세상을 보도하는 기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오면서 그 불신은 더욱 적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믿을 수 없어도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믿을 수 없기에 우리가 찾아 나서겠다'는 태도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세상을 알리는 이의 위치를 누구에게나로 분배하면서 세상의 더 많은 곳이 더 빨리 더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는 좋은 점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렇게 접하게 된 내용들에 대해 신뢰도나 도덕성을 묻는 과정이 축소되거나 생략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온라인 상에서 떠도는 출처 불명의 소문이 기자들의 손을 빌려 문자화되어 전파되는 광경도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상의 진실을 만남에 있어서도 더 빠른 속도와 더 확실한 자극을 원하게 된 시대, 지금의 미디어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영화 <나이트 크롤러>는 스릴러의 문법을 빌려 현대 미디어가 속도와 자극의 경쟁에 내몰려 얼마나 아찔한 절벽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정도면 스릴러의 정도가 아니라, 공포라고 해도 무방하다.
출신도 학력이나 경력도 알 수 없는 청년 루 블룸(제이크 질렌할)은 고철을 훔쳐 팔며 생계를 벌고 있지만 집에서 내내 인터넷을 벗삼은 덕분에 잡학상식이 대단히 풍부하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 그는 고철을 내다 팔던 업체로부터 '도둑놈'이라는 폄하를 들은 얼마 후, 우연히 사고 현장을 취재하는 영상 제작사 사람들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경찰의 무전을 듣고 총알같이 사건 현장에 달려가 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한 후, 특종을 원하는 방송국과 흥정하여 영상을 갖다 파는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돈 냄새를 맡은 루는 카메라를 구입해 독자적으로 사건 현장을 촬영해 방송국과 거래하는 사업에 돌입한다. 우연찮게 유혈 낭자한 사건 현장을 근접 포착하는 데 성공한 루는 이 비디오를 거래하는 과정에서 LA 지역 방송국의 보도국장인 니나(르네 루소)의 환심을 사게 된다. 마침 니나 또한 자극적인 범죄 현장을 담아 시청률을 올리고픈 야망이 있었고, 루는 그런 현장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신속하게 담아옴으로써 두 사람 사이의 돈독한 동업 관계가 유지된다. 루는 그 바닥에서 급격히 영향력을 넓혀가며 승승장구하고, 그 영향력에 도취되어 니나에게 보다 밀접한 관계를 요구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하고 만다. 니나를 비롯한 방송국 사람들의 목줄을 자신이 쥐고 있음을, 뉴스 시청률을 좌우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카메라임을 입증하고 싶은 루는 급기야 특종을 위해 자신의 손으로 사건을 조작하기에 이른다.
<나이트 크롤러>는 한마디로 보잘 것 없던 한 인간이 미디어 업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그러나 관객이 그 주인공을 지켜보며 정서적으로 공감할 여지는 거의 없다. 주인공 자신부터가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분야든 뛰어들 준비도, 어떤 지식이든 갈고 닦을 준비도, 어떤 짓이라도 할 준비도 되어 있지만 타인과 세상을 위해 마음을 쓸 생각은 전혀 없는 이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인간의 정신나간 행각을, 영화는 놀랍게도 자수성가 성공담처럼 그린다. 더 자극적인 특종을 잡기 위해 사건 현장에 손을 대고, 의도된 시나리오대로 조작하는 그를 비추며 영화는 감정이 고양되는 분위기의 배경음악을 깔기까지 한다. 물론 영화가 그렇게 주인공을 바라볼수록 주인공을 향한 관객의 마음은 멀어진다. 이처럼 공감의 여지가 거의 없는 주인공에 대한 거리두기식 연출은, 특종 지상주의의 미디어 안에서 주인공이 벌이는 행각과 그런 주인공을 향한 미디어 산업의 시선이 얼마나 서늘하고 비인간적인지를 실감케 한다. 언뜻 주인공의 비정상적인 행각에 대해 우려하는 듯 하지만, 사실 이 바닥은 그렇게 변해가는 그를 환영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세상은 그를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더 깊숙이 끌어들일 뿐이다.
<나이트 크롤러>는 악질 매스컴의 탄생과 진화 과정을 통해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마저 잊어버린 채 특종과 시청률에 집착하는 미디어의 천박한 행태를 비판하지만, 이것은 그런 행태를 묵인하며 받아들이는 현실 때문에 존재한다는 전제를 잊지 않는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주인공 루의 극악한 보도행태는 그걸 필요로 하게 된 배경과 그걸 받아주는 곳이 있기에 영향력을 넓혀간다. <나이트 크롤러>가 주목하는 현대 미디어 참상의 단면은 '1인 미디어'다. 홀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현장을 포착하는 1인 방송국은 물론, 'BJ'로 대표되는 인터넷 방송국, 블로그, SNS까지도 1인 미디어로 포함될 수 있겠다. 루가 카메라 하나 구입하자마자 바로 사건 현장에 뛰어들 수 있었듯, 현대는 장비만 갖췄다면 누구라도 현장을 담아 제보하여 뉴스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TV뉴스도 기성 기자들 못지 않게 '시민 기자'라 불리는 일반인들의 촬영 영상을 빈번하게 보도 소스로 사용하게 되었다. 촬영기술은 물론 통신기술까지 발달하면서 이런 '불특정 다수의 보도'는 세상을 제보하고 알릴 수 있는 영향력을 누구나 언제 어디서라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긍정적 영향이 다르게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보도가 전해지고 확산되는 과정이 급격히 짧아지면서 그 보도 이슈에 대해 윤리적 판단과 검증을 할 시간 또한 자연스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확산되는 세상 곳곳의 뉴스를 접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이것이 진실된 것인가?'라고 되묻기 이전에 일단 공유하고 리트윗하고 좋아요를 누르는 것부터 하고 보게 되었다.
그렇게 검증의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무작위 미디어를 기성 매체인 방송은 쌍수들어 환영한다. 대중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미디어의 파급력에 손쉽게 몸을 실으려는 것인지, TV 등의 기성매체는 그렇게 세상 곳곳에서 범람하는 '불특정 다수로부터의 뉴스'를 분주히 끌어모은다. 이 뉴스가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작성됐는지와 같이 뉴스의 생산과정에 대한 관심은 접어두고, 결과물이 1차적으로 이목을 끄는지에 주목하며 가격 흥정에 돌입한다. TV 보도국은 '진실을 전하는 곳'에서 '외부로부터 온 현장 영상을 필터링 없이 경매로 사들이는 곳'으로서 스스로의 격을 깎아내린다. 조작되고 과장된 영상이 뉴스 시청률을 좌우하는 영화 속에서는 영상 기자가 TV 뉴스의 주도권을 쥔 듯 한데, 아마도 미국에는 파파라치가 보편화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영상 기자'를 '온라인 게시자'로 바꾼다면 우리나라에 대입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풍경이 만들어진다. 본 모습은 감춘 키보드의 권력에 의해 자극적으로 조작되고 과장된 사건이 TV에 넘실대는 풍경 말이다. 조악하지만 말초적인 루의 촬영 영상이 TV로 진입하는 것은 덕분에 너무나도 쉬웠다. <나이트 크롤러>는 비정상적인 윤리를 지닌 채 폭력에 가까운 취재를 일삼는 주인공 루와, 그보다 한 술 더 떠 그런 루를 '시청률 기여자'로서 극진히 대우하는 방송국의 행태를 나란히 둠으로써 루의 이 행태의 뒤에는 그것을 낳은 미디어의 진화 혹은 굴레가, 앞에는 그것을 반가이 맞이하는 기성 미디어의 탐욕이 존재함을 살벌하게 풍자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기겁을 할 주인공 루의 소시오패스적인 캐릭터는 극적 긴장감을 더하기 위한 장치 그 이상이다. 기본적인 인간의 심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루의 성격은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에 한기를 불어넣는다. 루는 표정 변화 없는 얼굴을 하고서 자신이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이유, 자신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 자신이 성공을 위해 쌓은 배경지식을 마치 백과사전처럼 줄줄이 읊어나간다. 철망을 뜯어 훔쳐 내다 파는 첫 등장에서 그의 출신이 불분명하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이후 그가 읊조리는 잡학상식들을 들으며 그 지식들 또한 진중하게 공부했다기보다 인터넷을 통해 닥치는 대로 수렴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기계적으로 축적된 지식들은 세상을 이해하기보다 계산하기 위한 좋은 근거가 되고, 그 계산은 촌각을 다투는 인명 앞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 앞에서도 치솟을 시청률과 거래금액을 떠올리며 미소짓는 공감능력 상실의 주인공은, 어쩌면 사람의 고통 앞에서 아파하기 이전에 하이에나처럼 카메라를 들고 몰려들기부터 하는 현대의 언론에 아주 약간의 비약만을 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루 블룸이라는 이 악마적 인물은 사실 저절로 태어난 게 아니다. 갑자기 나타나 미디어의 물을 흐린 미꾸라지 같은 존재가 아니라, 반대로 업계의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른 끝에 주목받는 모범생이 되고 그 결과 남들보다 가파른 성공곡선을 오르게 된다. 루에게 취재 가이드라인을 전하는 쪽은 미디어 산업에 속한 당사자들이다. 뉴스의 신뢰도까지 시청률이라는 잣대로 판단할 만큼 만연한 상업주의는 뉴스마저도 어떤 식으로든 빠른 시간 안에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자극적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교외에 사는 부유층이 당하는 범죄"를 최적의 보도 아이템으로 제시하며, 주변의 평화와 안전이 무너지는 순간을 여과없이 담으라고 제안한다. 루는 단지 그러한 가이드라인에 매우 충실하게 보도한 것일 뿐이다. 모든 것은 그 가이드라인을 최대의 목표로 삼아 그 목표까지 가는 데 방해가 되는 건 무엇이든 잘라낸 결과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건 루의 비정상적인 성격으로 인한 거라 쳐도, 그런 성격을 지닌 인간에게 '고양이한테 생선 맡기듯' 돈 냄새 폴폴 풍기는 미끼를 던진 곳은 어디인가. 이 '악질 기레기'는 태어난 게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제이크 질렌할은 <나이트 크롤러>에서 지금까지의 커리어 중 최고 수준의 연기를 선보인다. 13kg의 체중을 감량해 수척한 몰골에 사백안(흰자위가 눈동자 사방으로 다 보이는 눈)을 하고서 일체의 감정을 걷어내고 자신의 신조와 성공 전략을 읊조리는 그의 모습은, 호러영화 속 살인마의 비주얼에 준할 만큼 무섭다. 걱정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실패 뿐인 남자의 서늘한 질주를 치가 떨리도록 연기하며 영화에 스릴과 긴장을 부여하는 일등공신이 된다. 그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게 무척이나 아쉽다. 영혼을 가득 담은 연기도 위대하지만, 영혼이 눈꼽만큼도 없는 인간에 관한 연기도 이토록 경탄스러울 수 있는데 이를 외면한 아카데미가 미울 정도다. 더불어 이 영화를 쓰고 만든 댄 길로이 감독의 아내이기도 한 르네 루소가 보여주는 보도국장 니나 역도 인상적이다. <토르> 시리즈 외에는 오랜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비춘 그녀는 여전한 미모와 더불어 주인공 루를 폭력적인 저널리즘의 세계로 인도하다 끝내는 그에게 최면처럼 매료되고 마는 여인을 꽤 섬뜩하게 보여준다. 루의 조수로 일하면서 순진하고도 솔직한 성격으로 루와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인물인 릭 역의 리즈 아흐메드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나이트 크롤러>는 '기레기'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악질 매스컴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진화해 가는지를 거기에 최적화된 한 남자의 성공을 통해 생생하게 포착하는 무시무시한 스릴러다. '흥미진진한 스릴러'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스릴러'라고 말한 이유는, 이 영화가 비추는 참상이 영화 안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대중, 점점 더 시청률에 목말라 가는 방송사, 점점 더 빨리 세상을 공유하려는 야심을 품은 현대기술. 이 셋이 절묘하게 만나 빚어내는 핏빛 뉴스는 영화 밖 현실에서도 누군가 가열차게 만들어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관찰할 권리와 바람직하게 인도할 의무를 동시에 지닌 줄 알았던 미디어는, 이처럼 시청률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광기어리게 범람하는 뉴스들을 반갑게 받아들이고 충실히 받아적는 데 몰두한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사건에 대한 의심과 탐구의 의지보다, 말초적 몰입감을 이끌어내기에 바쁘다. 한국도 미국도, 우리가 모르던 세상을 먼저 발견하고 파헤치던 TV뉴스는 언제쯤 남사스럽게 드러난 세상을 받아적는 데에 만족하는 신세가 된 것일까. 그리고 그 끔찍한 풍경들을 담은 이 영화를 손에 땀을 쥐고 본 우리는 과연 '수준높은 시청자'라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끝까지 자신의 정신나간 눈빛만큼이나 정신나간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며 시청자의 동공은 키우고 이성은 마비시키려는 '취재기계'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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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 영화보고 왔는데 글이 매우 좋습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
글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