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니름 주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뜨거운 강강강의 애틋한 카타르시스
(구체적이지 않지만 영화의 내용에 대한 언급이 있을 수 있으니 미리니름에 민감하신 분들은 유의해 주십시오)
뒷북입니다만, 메인관 막차는 놓치지 말아야겠다 싶어서 얼마전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을 관람했습니다.
<귀멸의 칼날>은 왕도라고 할 만한 전개의 소년만화면서도 고전적인 작법과는 결이 다른 고유의 맛이 있는 작품입니다. 그게 작가의 개성 때문인지 편집부니 연재 상황이니 하는 어른의 사정에 기인한 것인지 알 방도는 없지만, '군더더기 없이 빠르다'고 할 만한 초반의 템포는 호쾌하게 느겨지면서도 한편으론 어색하기도 했고, 다소 난데없이 시작된 최종국면은 총 분량의 1/4정도를 쉼 없이 몰아붙이며 마지막까지 도달하는 식이었는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 지는 독자/관객의 몫입니다. 물론 호불호를 논하자면 전 좋게 본 쪽이고.
작법은 그렇다 치고, 정서랄까 하는 측면에서도 <귀멸의 칼날>은 좀 특이합니다. 가차없다는 말이 어울리는 냉혹한 정서가 작품을 지배하는지라, 희생과 죽음이나 단죄를 처리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무척 냉랭한 구석이 있고 당연하지만 표현 수위도 높은 편입니다. 그 와중에 또 인물간의 교감은 당혹스러우리만치 순진한 면이 부각돼서 냉/온의 편차가 크죠.
주인공 탄지로만 해도 '구김살 없이 착한 장남 캐릭터'같은 걸 21세기에 들이민다니 가당키나 한가 싶지만 이게 먹혀요. 피가 쏟아지고 육편이 튀다가 한번씩 호흡을 가다듬을 때쯤엔(그리고 이럴때 쓰는 그림 스타일이 묘하게 정감가죠) 무슨 교과서나 동화책에서나 느낄법한 화기애애함이 넘쳐나는데 이게 또 괜찮습니다. 보면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남성 작가의 정서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작가가 여성이라길래 그렇군 했던 기억이 나네요.
언제나처럼 서설이 길었는데,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의 중요 캐릭터인 염주 '렌고쿠 쿄쥬로'야말로 제가 느낀 '귀멸'의 감흥에 상당히 들어맞는 인물이라 그렇습니다. 다소 착잡한 개인사를 갖고 있지만 시종일관 눈을 크게 뜨고 호쾌한 목소리로 말하는 이 인물은 '주' 중에서도 상당한 실력자임에도 결과적으로는 상현 하나 제압하지 못한 채 최후를 맞이하지만, '무한열차편' 내내 텐션을 유지하며 마지막까지 뜨거움을 잃지 않는 강렬한 캐릭터입니다. 이 작품을 하현 엔무가 잠식시킨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긴장의 상황 와중에 인물들의 내면이 드러나는 전반부와 엔무를 제압하고 상현 아카자와 벌이는 혈투 위주의 후반부로 크게 나눌 수 있다고 하면 압도적으로 후반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 또한 오로지 쿄쥬로의 힘입니다.
빠르게 판단하고 일단 결정하면 흔들림이 없고, 고민은 서둘러 끝내고 타협하지 않습니다. 아카자와의 전투에 들어가면서 '지금 막 만났을 뿐이지만 난 네가 싫다'라고 잘라 말하는 쿄쥬로의 대사는 어떤 면에선 캐릭터의 성격을 아주 극명하게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무척 흥미로웠던 것이 바로 이런 쿄쥬로에게 끊임없이 '혈귀가 되라'고 종용하는 아카자의 설득인데, '난 너에게 반했다. 혈귀가 되어 나와 함께 영원히 겨뤄보자'며 계속 던지는 게 사실상 구애의 수준입니다.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다들 '렌고쿠 씨'라고 부르는 마당에 아카자만 '쿄쥬로'라고 이름을... 들이대는 거 맞네)
당연하지만 작품의 텐션은 시종일관 높고, 후반에 접어들면서는 감정선을 건드리는 대목이 많아서 작품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울컥할 지점도 꽤 있습니다. 많은 걸 비틀고 반전을 만들고 그걸 다시 뒤집고 그 와중에 나온 온갖 이종들조차 지겹다고 느껴질 정도의 시대에, 이런 정공법의 캐릭터가 힘있게 다가오는 것은 의외라면 의외지만 결코 싫지 않네요.
말 그대로 '온 힘을 다 하고 모든 걸 불태우는' 장렬한 강강강의 템포가 클라이막스를 넘을 때쯤 분수조차 잊은 채 악다구니를 내지르는 탄지로의 눈물과 절규가 눈물샘을 콕콕 찌르면서 감정을 한번 정리해준 뒤 한층 애틋하고 안타깝게 맞이하는 '뜨거운 남자'의 최후를 옆에서 함께 보는 듯한 마지막은 무척 인상적입니다. 강렬한 연출과 성난 액션이 어우러진 롤러코스터의 종착역이 연민을 자아내는 강직한 인물의 최후에 동참하며 눈물로 떠나보내는 장면이라뇨. 이게 이어질 얘기가 더 있어서 그렇지 단막극이라면 이렇게 결말 못 낼 겁니다.
더 재미있고 훌륭한 작품이 많이 있을지라도 감정적으로 보게 되는 소년만화는 많지 않고, 그래서 오랜만에 정말 뜨겁게 볼 수 있었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가끔은 나이도 잊은 채 애니메이션을 보며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쿨쩍.
- EST였어요.
EST
추천인 20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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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우시더군요 ㅠㅠ
올만에 극장에서 관객과 감정 공유를 하며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아직 애니메이션을 보며 이런 감정을 느낄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구나 싶었어요
오히려 원작에서 빠진 디테일들이 TVA나 극장판에서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인공 사인방만 해도 순정만화 주인공을 방불케할 미형이라
특히 멧돼지 가면벗으면 완전히 다른 이노스케,남성 작가 그림체는
아닌데 싶긴 했는데,여성 작가라 그래서 아아 했습니다.저도
만화,특히 소년 만화는 완전 담쌓았었는데,소년 만화스런
감격을 느낀건 진짜 간만이네요.성우도 반갑고..
유곽편 예고편도 잘빠졌던데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도 아카자가 뜨겁게 구애하는 것처럼 느껴졌네요.^^
막판에 갑툭튀한 캐릭터인데 참 강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