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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발리우드] 영화 《화이트 타이거》파보기 (약스포)

raSpberRy raSp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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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영화 이야기를 쓰는 raSpberRy라고 합니다.

 

 부커상 수상 원작이며 명망있는 작가 감독이 연출하고 발리우드 스타들이 출연해서 힘을 실은 영화 《화이트 타이거》가 지난 1월 22일 금요일에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되었습니다.

 

 따끈따끈한 신작인 만큼 붐업 시키고자 하는 의미에서 영화에 작품에 대한 리뷰를 끼적여 보았습니다. 

 

 스포가 될법한 영화의 굵직한 사건은 최대한 줄이기는 했으나 가급적이면 영화를 보신 후에 리뷰를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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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타이거'의 저자 아라빈드 아디가

 

아라빈드 아디가

 

 첸나이 출신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서 미국에서 기자 생활을 했는데 타임지의 프리랜서 생활동안 썼던 이 글로 데뷔했는데 이 데뷔작이 무려 부커상을 수상했던 것이죠.

 참고로 인도계 부커상 수상자는 살만 루슈디(한밤의 아이들), 아룬다티 로이(작은 것들의 신), 키란 데사이(상실의 상속)에 이어 그가 이 작품 ‘화이트 타이거’로 네 번째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 중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소개된 소설은 이 작품뿐이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만들어진 '크리켓 보이즈'는 그의 소설 'Selection Days'를 원작으로 한 미니시리즈입니다. 

 

 아마도 이 소설 ‘화이트 타이거’도 부커상 수상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원작 판권을 구해 출간한 느낌이 드는데 출간 10여년이 지나서 구입한 책인데도 제가 산 게 초판이더라고요... (부커상 아이고 의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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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민 바흐러니 

 

  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이 《브로크백 마운틴》을 만든다고 아무도 딴죽을 거는 사람이 없듯 민족이나 국적이 그런 작품을 만들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진 않겠죠. 

 인도의 처절한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오히려 이것을 영상화해서 전달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이런 이야기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높은 사람이냐가 중요할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라민 바흐러니 감독은 적임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라민 바흐러니 감독은 2005년 《카트 끄는 남자》라는 작품으로 데뷔합니다. 뉴욕에서 이동식 카트를 끌면서 생계를 꾸리는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이 작품은 베니스 영화제를 비롯해 세계적인 찬사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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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트 홈》의 라민 바흐러니 감독(좌)과 배우 앤드류 가필드 (우)

 

 그리고 《불법 카센터》나 《굿바이 솔로》 등의 영화로 호평을 받고 우리나라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배우 앤드류 가필드가 주연을 맡은 2015년 영화 《라스트 홈》이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었죠. 

 

 그의 영화 세계에서는 주로 자본주의에 의해 소외되거나 멸시되어 온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자본을 위해 자본의 땅으로 굴러들어왔지만 물질 자체가 목적이 된 목적전치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걸 그리는 이민자 출신의 감독. 이걸 두고 제작자이자 핑키 마담 역을 맡은 배우 프리얀카 초프라는 라민만의 ‘이중적인 관점’에서 묻어나온 감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발전하고 있는 인도의 밑바닥을 기면서 살고 있었던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그에게 적격이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데뷔 초기 ‘네오리얼리즘’의 계승자라는 평가와는 달리 사실적이면서도 극적인(서로 모순적인 단어이긴 하지만) 이 작품을 만드는 건 이질감이 있지 않을까 우려도 되었는데 영화가 생각보다는 잘 나온 것 같네요.

 

 

 이 영화의 출연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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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다쉬 고라브(발람 역)

 

 이 영화의 주인공인 발람 역은 아다쉬 고라브라는 배우가 맡았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연기자로 픽업 된 후 연기자를 꿈꾸고 있었는데, 2010년 우리나라에도 큰 사랑을 받았던 샤룩 칸 주연의 《내 이름은 칸》에서 어린 리즈반 역을 맡았습니다. 

 

 2017년. 인도 내에서 연기파 스타로 언급되는 배우 마노즈 바즈파이와 함께 공연했던 영화 《Rukh》라는 영화에서 준조연을 맡기도 했지만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상업영화라기보다는 독립영화에 가까웠고 때문에 아다쉬는 여전히 무명배우에 가까웠는데 그래서 아다쉬는 오히려 영화의 배경이었던 자르칸드에서 발람처럼 식당 노동자가 되어 생활할 수 있었고 이를 영화에 반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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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즈쿠마르 라오(아쇽 역)

 

 라즈쿠마르 라오는 발리우드에서 티켓파워와 연기력을 둘 다 갖춘 좋은 배우로 언급되는 배우입니다. 개인적으론 인도영화제에 간간이 상영되는 《뉴턴》이라는 영화를 추천하는데요, 그 영화에선 우직하게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는 선거 공무원으로 출연해 이 영화로 아시아 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소설에서 묘사된 아쇽의 이미지는 키가 큰 미남이었던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흐)리틱 로샨(영화 《청원》의 배우) 같은 배우가 맡았으면 했지만 근데 소설을 읽어보니 그 외모 다 필요 없더라고요. 

 

 영화에선 젠틀해보이고 진보적이어 보이지만 딱히 능력도 없고 결과적으로 가족들의 부패를 답습하는 사업가(워너비?) 역할을 맡았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서비스되는 《루도》에서는 또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이 배우를 눈여겨보신다면 이 영화도 한 번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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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얀카 초프라(핑키 마담 역)

 

 아쇽의 아내로 발람의 행동에 변화를 주는 핑키 마담 역은 배우 프리얀카 초프라가 맡았습니다. 인도계 출신이지만 영화 내내 영어로만 대사를 구사하는 이 배역은 출연 분량이 길지 않지만 인상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내셔널 어워드 수상을 통해 인도의 대표적인 스타로 거듭난 프리얀카 초프라는 2015년 ABC 미니시리즈 ‘Quantico’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면서 입지가 높아집니다. 

 

 《화이트 타이거》에서 핑키 마담의 역할이 그렇게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라민 바흐러니 감독이 이 작품을 넷플릭스와 함께 영상화 한다는 소식을 듣고 프로듀서를 자처해서 영화화를 추진하는데 앞장서게 됩니다. 

 

 이 영화의 프로듀서로서 그녀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세계적으로 잘 다뤄지지 않았던 인도와 같은 곳의 이야기를 전해주고자 했던 것이고 한 편으로 영화가 인도의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이 영화의 이야기가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전합니다. 

 

 인도에서 활약한 영화를 많이 소개해드리고 싶어도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영화는 할리우드 진출작밖에 없네요. 아쉽지만 언젠가 ‘인도영화배우’로서의 그녀를 소개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그 밖에 길진 않지만 ‘황새’역의 마헤쉬 만즈레카 같은 배우도 나옵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라티카를 데리고 있던 조폭 두목역할을 맡은 배우인데 발리우드 영화에서도 주로 이렇게 포스있는 역할을 합니다. 가끔 《고통을 못 느끼는 남자》 같은 영화처럼 인자한 할아버지 역할로 나올때도 있지만요.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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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화이트 타이거’와 영화 《화이트 타이거》

 

 영화는 거의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는데요. 주인공인 발람이 원자바오 총리 쓰는 편지를 영화에서 보이스오버로 넣고 있는데 원작 소설자체가 7일 동안의 편지 서신으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영화는 얼핏 보면 누군가에게 보내는 서신 같지만 사실은 자기 인생에 대한 반추이자 고백입니다. 

 

 의식의 흐름으로 만든 이야기 같지만 전개랄 게 있긴 해서 영화화 하기는 다소 쉽지 않았을까 했습니다. 작가의 욕심 때문이었을지 모르지만 라민 바흐러니 감독이 원작자인 아라빈드 아디가로부터 초고를 넘겨받았을 때는 200페이지 분량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바흐러니 감독 역시 이 작품의 팬이라서 어떤 부분을 쳐내야할지 고심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다보니 인도사회 전반보다는 주인공 ‘발람’의 개인에 집중하면서 영리하게 극을 끌어가지만 한 편으로는 발람의 구불구불한 삶과 함께 펼쳐지는 인도의 밑바닥 이야기, 인도의 선거 이야기, 낙살이나 힌두 지역사회의 무슬림혐오와 같은 이야기는 많이 빠져있거나 희석되어 있어 원작의 독기가 많이 빠진 건 아쉽지만 한 편으론 매끄럽게 잘 된 영상화라고 보고 싶습니다.

 

 사실 멀리 떨어져서 있는 사람이 보면 저 정도도 꽤 인도사회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닌가싶고요. 그래도 원작을 억지로 훼손한다든지 하는 우는 범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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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로 ‘영상화’했기에 더 풍부해진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영화에선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쇼트가 많은데 그것은 시각적으로 구체화 되어 있으며 심리적으로도 주인공의 현재를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극적 구성도 아예 발람의 현재 상황에 대해 패를 까놓고 기억의 순서대로 정렬한 구조에서 영화적인 긴장감을 위해 순서를 편집한 것은 영화매체만의 매력이 느껴지도록 한 구조라 좋았습니다.  원작과는 달리 영화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부분을 영화의 시작점에 배치합니다 . 

 

 그런데 극적 구성 뿐 아니라 영화의 매니페스토가 될만한 부분도 앞에 배치했습니다. 이를테면 ‘닭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발람은 인도는 하나의 커다란 닭장이라고 말합니다. 소설역시 이 부분은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담겨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중간 부분에 등장하거든요. 아예 초반에 배치해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관객에게 상기시키는 듯합니다. 

 

 이밖에 발람이 자신의 월급보다 비싼 방향제에 놀란다든가 사업 수완을 늘리는 등의 묘사들은 소설과는 다른 재미를 주는데 무엇보다 원작에선 그냥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시끄러운 미국부인인 핑키 마담이 발람에게 변화를 주는 장면은 원작과 차이가 있습니다. 단순히 자신이 보기에 짜증나는 행동을 고치도록 명령하는 것에서 벗어나 하인으로서의 삶을 탈피하도록 종용하는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면서 인물 심리 변화의 개연성을 확보한 건 꽤 잘 된 각색이라고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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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발람의 이야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주인공 발람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은 발람이 지주 출신인 ‘황새’의 집에서 운전사를 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사실 이 부분부터 영화의 의도적인 냉소가 담겨있는데요, 국정 운영이나 어떤 집단의 대표가 되는 사람에게 ‘핸들을 맡긴다’는 표현을 쓰잖아요. 영화엔 나오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아쇽이 발람을 두고 지적인 잘난체를 하면서 낄낄대지만 정작 자신의 길잡이가 되는 사람은 저런 사람이라는 것이죠. 

 

 이 영화는 대개 주인공 발람을 비롯해 속이 시커먼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현시창(현실은 시궁창)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수단 방법 안 가리는 발람은 사실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 발톱을 드러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단, 상대방이 약해지고 내 발톱이 날카로울 때 말이죠.

 

 이를테면 람 바하두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무슬림 혐오자인 황새의 오랜 기사였으나 발람의 계략으로 감쪽같이 사라지는 인물입니다. 발람이 이 인물이 퇴장할 무렵, 종교는 다르지만 같은 노고를 겪은 사람으로서 ‘형제’라는 단어를 쓰지만 사실 그런 끈끈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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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람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대단한 멘탈을 가지고 있지만 이 이야기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게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점입니다. 

 어쩌면 매슬로우라는 사람이 쓴 욕구의 5단계라는 것은 어쩌면 인도의 카스트와도 맞닿아 있을 거라고 봅니다.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하는 발람은 계속 가장 낮은 단계인 '생존'의 단계에서 엎어지고 가족도 그를 도와주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을 존중할 수 있겠습니까.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정글에선 본능만이 이런류의 인간을 살게 만드는 것이겠죠. 

 

 영어도 안 되고 아는 것도 없는 발람이지만 소위 어디서도 안 굶어죽을 타입인 발람. 소위 눈치와 간파능력으로 생존을 이어가면서 때로는 아쇽 가족들을 조롱하곤 하는데, 인도사회를 모르는 이들을 놀리면서 ‘아쇽 대신 내가 황새 집에 태어났으면 더 일찍 천하를 호령했을텐데’하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가 어떤 우여곡절을 겪고 화이트 타이거가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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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공간적 변화와 세 번(?)의 이름의 변화

 

 ‘단바드(Dhanbad)’라는 곳은 자르칸드 주에 있는 소도시로 아누락 카쉬아프의 2012년 영화 《와시푸르의 갱들》의 주요배경이기도 한 곳인데 석탄을 둘러싼 이권다툼이 많았고 영화에선 깊게 다루어지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조금 더 묘사가 된 지역입니다. ‘황새’라는 이름의 지주가 주인공 발람을 기사로 채용한 곳이기도 합니다. 자르칸드의 어느 이름 없는 시골에서 신분 상승의 기회를 얻은 곳이죠.

 

 그리고 ‘델리(Delhi)’는 발람에게 인생의 모멘텀이 생기는 곳입니다. 사실은 외국 관객을 위해 편의상 '델리'로 한 것 같고 원작에선 실제로는 델리 북서쪽의 구르가온(현 구루그램 Gurugram)지역인데 근래에 들어서 계획도시로 부촌이 들어선 곳입니다. 이 역시 인도의 급성장을 빗댄 공간적인 설정인 것이죠. 

 

 그리고 최상위 포식자 화이트 타이거로 변신한 발람이 있는 '벵갈루루(Bengaluru)'가 종착지입니다. 영화에도 소개되었듯 외국 기업이 많이 들어와 있고 인도에서 IT 산업의 중심지로 꼽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쇽이 최종 목적지로 삼은 곳이지만 아쇽의 그릇을 보면 거기 가서도 왕대접을 받았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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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인상깊게 봐야 할 코드가 '이름'입니다. 인도사회는 ‘이름’으로 카스트를 알 수 있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름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소설에서는 아예 이름=존재임을 명확히 밝히고 시작합니다.

 

 주인공 발람의 이름은 사실 발람도 아니었고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출생신고(그런 게 있어?)도 못해서 이름도 '문나(munna)'로 불립니다. ‘문나’는 ‘초투(chhotu)’와 함께 남자를 일컫는 말 중 하나인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무명(nothing)’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농경사회에서 하층민 가족들은 일꾼이 필요하니 자식을 낳기는 많이 낳지만 그 자식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에 생일은 언제고 이름은 뭐고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그만큼 하찮은 존재인 것이죠.

 

 그러다가 학교에서 ‘람’이라는 이름을 받을 뻔하다가 ‘발람’으로 변경됩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발휘한 영특함으로 학교에 온 장학사는 그에게 ‘화이트 타이거’라는 별명을 붙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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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이한 사실은 발람은 지명수배자가 되었음에도 자신의 이름 ‘발람’을 바꾸지 않습니다. 대신 성을 바꾸죠. 영화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지만 발람의 성은 ‘할와이’로 과자를 만드는 카스트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베이커’는 말 그대로 Baker에서 나온 성씨인데 인도처럼 너희는 빵이나 구워라라고 하면 (드라마 ‘멘탈리스트’의)사이먼 베이커 같은 배우는 지금쯤 빵집이나 하고 있겠죠. 서양에도 계급이 잔존한다고 하지만 인도처럼 완벽하게 인간의 생사까지 쥘 정도의 억압은 아니겠죠. 결국 발람은 사업가로 변신한 후 상위 카스트의 성씨인 ‘샤르마’로 개명합니다. 이름의 존재유무, 성씨가 주는 카스트의 존재감을 통해 신분이 상승한 것입니다.

 

 재밌는 사실은 영화에서 아쇽 역을 맡은 라즈쿠마르 라오는 원래 '야다브'라는 성씨였으나 '라오'라는 성씨로 바꿨습니다. (사실 원래 이름은 다른 인도영화 배우들이 생각보다 많답니다. 꼭 카스트때문은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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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 타이거》는 이런 이야기 아닐까? 

 

 혹시 이런 이야기 아시나요? 한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밖에 나왔는데 길 건너편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청소부를 보더니 아이에게 “너는 저 사람도 잘 살 수 있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거야~”라고 했다는 이야기. 

 겉으로 봤을 땐 훈훈한 이야기구나 하겠지만 이 이야기엔 함정이 있습니다. 일단 ‘저 사람’이라는 말에 타자화(他者化)가 들어있으며 더 나아가선 ‘청소하는 사람’에 대한 계급성이 기저에 깔려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답니다. 

 

 극중 아쇽은 양심도 있고 죄의식도 있는 사람 같고 발람에게 하는 행동이 젠틀해서 겉으로 보기엔 친근해 보이고 친구인 척하지만 절대 친구는 될 수 없는 존재. 결정적인 순간에선 카스트제도와 인도 내의 기득권의 권력은 충분히 누리면서 겉으론 깨어있는 척하는 가짜 진보주의자들의 모습이 극중 아쇽을 통해 표상화 되고 있는 것이죠. 

 이를테면 영화 《노예 12년》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맡은 주인이 노예를 향해 눈물을 떨군다고 그가 노예를 부리지 않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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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에도 언급되지만 영화에는 ‘닭장’이라는 게 나옵니다. 인도에서 소위 ‘부림’을 당하는 발람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닭장 안의 닭 신세임을 언급합니다. 단지 목에 호스 꼽고 맹물만 주는 닭이 좋은 먹이를 먹는 닭을 부러워 할 뿐이죠. 그런 생태계에서 발람은 어떻게 최상위 포식자가 되는가를 냉소적이면서도 처절하게(또 상반된 개념이긴 한데...)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저만 생각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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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여담이지만 《화이트 타이거》라고 하면 로씨야 전차영화로만 많이들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랬고 심지어 부커상 원작 소설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출간된지는 이 영화의 존재를 알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소설이 또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는 건 고무적인 일이지만 사실 인도에서도 고가의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넷플릭스’를 발람과 같은 위치에 있는 관객이 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기회가 있어도 보진 않겠죠. 아마 영화엔 안나오고 소설에만 언급된 ‘주간 살인’ 같은 싸구려 잡지를 선택하는 게 그들의 운명이겠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영화 밖의 사람들이 고쳐야 하기에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계속 좋은 사회를 추구해야겠죠. ‘계급이 존재하고 네가 상위에 있다면 그 유혹을 떨칠 수 있을까?’이런 삽소리로 자신에게 또 남에게 되묻지 말고요...(사실 그건 물음도 아니잖아요 ㅎㅎㅎ) 

 

 

 

 그리고 이건 조금 사사로운 이야기인데, 넷플릭스 내의 인도영화 좀 붐업 시켜서 넷플릭스 코리아에서 인도영화 좀 신경써 달라고 ‘넷플릭스 파티’ 같은 걸로 한줌 있는 인도영화 팬들 집결 시켜서 같이 플레이 하곤 하는데요, 몇몇 분들은 좀 인도영화다운(?!) 신나는 영화 좀 보자고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이런 분들이 성에 차실만한 영화들은 외국 넷플릭스에만 서비스 되고 있어서 좀 안타깝습니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이 재밌어지든지 재밌는 영화를 들여오든지 해야 할 텐데.., 일단은 뭐 한줌이라도 움직여서 미동이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인도영화가 넷플릭스 일일 차트에까지 오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날이 올 때까지 이런 리뷰라도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raSpberRy raSp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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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예고편 봤는데 아주 흥미진진할 것 같아서 찜해뒀습니다.
귀멸의 칼날 예습 마치고 빨리 보려고요.^^
12:56
21.01.25.
profile image
raSpberRy 작성자
golgo
소설의 신랄함을 다 담지는 못했지만 대신 선택과 집중을 잘해서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게 좋았습니다.
한 번 보셔도 좋을듯
13:12
21.01.25.
2등
어제 봤는데 아주 좋았습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같은 경쾌함과 음악도 있고 R등급같은 톤도 들어있고 유머도 있고 발람역 배우 연기가 실감나더군요. 야숍 캐릭터도 흥미롭고 전체적인 이야기가 지루함 없이 잘 흘러가서 저도 강추합니다.
13:06
21.01.25.
profile image
raSpberRy 작성자
goforto23
사실 잘 모르는 배우였는데 이 영화로 각인될 것 같더군요.
발람 역을 위해서 신분위장(!)까지 하는 열의를 보일지 몰랐습니다.
13:13
21.01.25.
profile image 3등
아 유명한 감독이셨군요. ㅎㅎ
영화 너무 재미있게 보았어요. 영화 보고 나서 글 읽으니 좀 새롭게 다가오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주연 배우분 연기 너무 잘 하시더라는 ㅎㅎ
13:53
21.01.25.
profile image
raSpberRy 작성자
픽팍
우리나라에선 거의 영화제에서만 돌다가 《라스트 홈》이 할리우드 배우들이 많이 나와서 운좋게 개봉되었습니다
주연배우 친구 10년 넘게 무명이었는데 이 영화로 빛 좀 보려나요? ㅎㅎ
14:04
21.01.25.
profile image
raSpberRy
이 영화 지금 넷플릭스 영화 글로벌 탑 10 에서 2위로 올라섰더라고요. 반응이 좋아서 그런 듯 해요 ㅎㅎ
14:16
21.01.25.
profile image
raSpberRy 작성자
MEGAB□X
감사합니다.
인도영화도 국내차트 수늬꿘에 드는 그날까지 (불끈!)
15:14
21.01.25.
raSpberRy
재밌고 훌륭한 인도영화를 많은 분들과 공감하기를 원하는 인도영화의 등대지기 raSpberRy님을 응원합니다(불끈!!!). ^^
15:28
21.01.25.
profile image
raSpberRy 작성자
파트라슈1
안타깝게 다른 나라에 비해 인도영화가 느므 적어요... 😥
15:56
21.01.25.
정말 도움이 되는 글 감사합니다. 댓글을 달려고 가입을 했네요:) 영화가 정말 인상깊고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정보가 없어서 여러 방면 찾아보다 이렇게 흘러들어왔습니다.
04:13
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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