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atch of blue (1965) - 내가 본 가장 감동적인 멜로드라마
내가 본 멜로드라마들 중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것이 바로 이 패치 어브 블루다. 내가 이런 말 해 본 적이 없는데, 이 영화에 한해서는
볼 기회가 있다면 무조건 보시라 하고 말씀드리고 싶다.
장님인 셀리나는 무기력한 할아버지, 매춘부 어머니 로즈와 함께 좁은 방에 갇혀산다. 어머니라는 자각이 전혀 없는 로즈는 셀리나를 방에 가둬두고
구슬 꿰는 부업만 시킨다. 셀리나는 밖에 나가 시원한 바람 한번 쐬보는 것이 소원이다. 당시는 지금과 달라서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라고는 없고
장님이 밖에 나가면 왜 이렇게 위험한 데에 나왔냐고 타박받기 일쑤다.
셀리나는 구슬을 두 배 꿰겠다고 약속하고 공원에 나온다. 늘 무기력한 할아버지가 공원에 셀리나를 혼자 두고서 저녁에 데리러오겠다고
하고 가버린다. 셀리나는 햇빛을 기분 좋게 쐬며 구슬을 열심히 꿰고 있는데 구슬을 그만 흘리고 만다.
장님인 셀리나가 구슬을 줍는 것은 불가능하고, 셀리나가 울음을 터뜨리려는데 지나가던 청년 고든이 구슬을 주워준다.
셀리나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하트먼의 연기는 놀랍다. 진짜 장님인 듯하다. 그리고 아주 순수하고 깨끗하게 생겨서
늘 골방에 갇혀살아서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한 셀리나 이미지와 딱 맞는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할아버지와 어머니밖에 없던 셀리나는 젠틀하고 지적인 청년 고든을 마음 속에 품게된다. 그런데 고든은 당시 미국사회에서
사회적 장애인인 흑인이었다. 장님인 셀리나에게는 별로 의미없는 일이었지만.
고든은 셀리나에게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셀리나는 고든에게 사랑을 넘어서서 열애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고든은 셀리나에 대한 감정이 복잡하다. 그도 셀리나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있기는 한 것 같다. 하지만 동정이라는 감정도 없지는 않았고,
더군다나 흑인이 백인을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당시 사회관념도 부담스럽다. 고든의 동생은 왜 우리가 백인에게 동정을 베풀어야 하느냐고
따진다. 백인들은 감히 흑인이 어떻게 백인을 사랑하느냐고 비난한다. 고든은 과연 셀리나를 사랑해도 좋을 것일까? 고든이 셀리나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에 비해 세상물정 모르는 셀리나의 결심은 간단하고 강인하다. "난 그런 거 몰라. 고든을 사랑해야하니까 사랑할 거야."
고든에게 모든 고민을 떠넘기는 태도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셀리나의 이런 태도에 고든도 힘을 얻기는 했을 것이다.
셀리나에게 새 세상이 열린다. 고든과 함께 쇼핑몰에 가서 쇼핑을 하기도 하고 고든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방에 갇혀살 때만 해도
어린 소녀같던 셀리나는 부쩍 성숙한 여인이 되어간다.
영화가 너무 신선하다. 방에 갇혀살던 장님 소녀의 눈을 통해 바라본 눈부신 세상처럼 영화가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 존재하는 몰이해, 차가움, 모순같은 것들도 영화는 확실하게 보여준다. 고든과 셀리나의 사랑은 둘 간 개인적인 것임과 동시에
사회 편견, 모순과 싸워나가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 마지막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고든은 처음으로 셀리나에게 자신이 흑인이라서 안된다고 한다. 사회관념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셀리나는 고든의 얼굴을 더듬으며 이것은 그냥 사람 얼굴이라고 한다.
셀리나는 자신을 받아들여달라고 했지만 고든은 그럴 수 없었다. 셀리나에게 더 많은 가르침과 교육을 주기 위해 장애인학교로 보낸다.
"너는 앞으로 많은 것들을 배울 거야. 그중에는 나에 대한 것도 있겠지. 그러고나서도 내게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나도 널 받아주겠어."
나는 이 장면이 시드시 포이티어의 대단한 명연기라고 생각하는데,
고든의, 지금까지 상처받아왔고 상처받기 쉬운 섬세하고 연약한 내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둘 간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영화는 고든의 아파트 정원에 푸르게 돋아있는 잎들을 보여준다. 이 장면이 둘의 장래를 암시하는 듯하다.
멜로드라마와 사회적 메세지의 절묘한 결합,
매력적이고 생생한 등장인물들과 섬세한 사건 묘사 등 부족한 것이 없다.
내가 본 최고의 멜로드라마들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