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넷플릭스 '블랙미러: 미움 받는 사람들' 초간단 리뷰
1. 몇 개의 '블랙미러' 에피소드를 보다가 얻게 된 깨달음: 이 녀석들은 통상 마지막 에피소드에 공을 들인다. 시즌2의 마지막 에피소드였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나 시즌4의 마지막 '블랙 뮤지엄'은 특히 인상적인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시즌3의 마지막 에피소드도 재미있을까? 이 에피소드의 제목은 '미움 받는 사람들'이다. 썸네일을 보니 대략 청문회 내지는 법정으로 추정된다. 살인사건이 등장하고 인터넷 혐오, 협박메시지 등 단어가 등장한다. 이것은 SNS에 대한 진중한 고찰일까? '블랙미러'의 여러 에피소드들 가운데 단연 묵직한 인상을 준다. 게다가 러닝타임도 장편영화 하나에 이를 정도로 길다(1시간29분). 시즌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긴 에피소드다. 이 에피소드를 대하려면 마음에 준비가 필요할 듯 하다.
2. 막상 에피소드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자말벌'이 등장한다. 그때 나는 "아, 이것도 결국 '블랙미러'구나"라고 깨달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듣도 보도 못한 과학기술이 등장하고 그것이 인간을 공격한다. 전자말벌 이야기를 해보자. ADI라고 불리는 이 녀석은 벌의 멸종 후 식량난을 막기 위해 개발된 로봇 벌이다. 벌의 행동 패턴만 입력됐으며 시각센서를 통해 꽃을 구분한다. 놀란 점은 인류가 벌의 멸종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엔지니어 사정 생각 안 하고 막 만든 디자이너의 작품같지만 가능하다면 인류는 벌의 멸종에 따른 식량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과학계에서 우려하는 인류멸망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별의 멸종' 문제를 과학으로 해결한 셈이다. 이것은 대단히 혁신적인 기술이다.
3.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야기에서 드러나지만 ADI가 정부의 승인을 받을 당시 정부는 식량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ADI의 시각센서를 활용하면 첩보활동이 더 쉬워진다는 점을 이용했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ADI의 시각데이터를 보관해 관리하고 있었다. 문제는 ADI 개발에 참여한 한 직원이 이를 악용했다는 점이다. 진중한 사회고발극을 기대한 나에게 대뜸 '전자말벌의 습격'이 등장한 것은 신선한 뒤통수였다. 그것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처럼 스릴과 서스펜스를 주진 않았지만 전자말벌이 무차별로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는 설정만으로 긴장감을 줬다. 물론 중요한 것은 전자말벌이 아니라 SNS였다.
4. '미움 받는 사람들'은 SNS에서 소위 '관종', '어그로충'을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의 이야기다. 이 사람은 온라인에 게임을 열고 '#DeathTo'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을 매일 1명씩 결산해 죽이겠다고 말한다. 돌고 돌아 이 이야기는 SNS의 익명성과 그 익명으로 형성된 집단의 부조리한 폭력을 고발한다. 그런데 뭐 그런 거 생각 안 해도 좋다. 영화의 엔딩에 이르고 나서도 SNS의 부조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갖지 않는다. 이 에피소드도 그것을 잘 아는듯 이 이야기의 결론은 여느 형사 버디무비처럼 마무리된다(마치 속편이 만들어질 것처럼). 이 이야기는 장르영화의 범주 안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뛰어논다.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미움 받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본 '블랙미러' 에피소드 중 가장 재밌어야 했다. 단 한 가지 문제점이 치명적이긴 했다.
5. '미움 받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형사 역할을 맡은 두 주연배우가 연기를 너무 못한다는데 있다. 이쯤에서 나는 OCN에서 봤던 몇 개의 드라마를 떠올렸다. 몇 년 전만해도 OCN 드라마를 종종 챙겨봤다. 지상파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장르로 재밌게 풀어낸 것이 좋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대사와 디테일에 정말 신경을 안 쓴다는 게 느껴졌다. 잔뜩 무게잡은 주인공은 거부감이 들 정도고 이야기는 낯이 익었다. 10개 던지면 하나 마구가 나오는 투수처럼 장면 중 90%는 유치해서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미움 받는 사람들'은 두 형사가 나오는 장면마다 대체로 보기 힘든 수준으로 연기를 못한다. 이 이야기에는 조연으로 베네딕트 웡이 등장한다. 연기를 잘할만한 작품에서 본 적이 없어서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에피소드에서 그는 거의 유일한 '연기 사이다'다. 한 예로 두 형사가 걸어오며 대화하는 장면을 풀샷으로 잡는데 둘의 대사를 들으며 "대체 지금 누가 말하는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둘의 목소리도 비슷하다). 넷플릭스 자막 싱크도 이상할 때가 많은데...
6. 결론: 신선하고 재미있다. 러닝타임 89분이면 거의 영화 1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누가 날 잡아서 다시 만들어봐도 좋을 것 같다. ...아니, 다시 만들어줘...주인공 배우 바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