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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워터스] 간략후기

jimmani
1778 1 7

익무의 은헤에 힘입어 <캐롤>을 연출한 토드 헤인즈 감독의 신작 <다크 워터스>를 시사회로 미리 보았습니다.

감독의 전작들과는 상당히 결이 다른 사회고발극인 이 영화는 세계 최대의 화학 기업으로 꼽히는

'듀폰' 사의 대표 인기 소재 '테프론'의 부작용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실제 법정 다툼을 소재로 하였습니다.

세계 규모의 거대 자본과 힘없는 개인의 대결을 그리면서 드라마틱한 쾌감보다 지난한 시련에 주목하는 영화는

국가를 막론하고 누구나가 마주하게 되는 부조리한 현실을 건조하게 바라보면서도,

그 현실 앞에서 잠시 눕되 꺾어지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며 조용히 희망을 건넵니다.

1998년 롭 빌럿(마크 러팔로)은 기업을 변호하는 로펌의 환경 전문 변호사로 장래가 촉망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그의 할머니를 통해 연락했다는 윌버(빌 캠프)라는 낯선 농부가 찾아옵니다.

190마리의 소들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보유하고 있던 농장이 말 그대로 '묘지'가 되고 만 그 농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롭을 찾았고, 그 결과 롭은 가만히 있었다면 자신의 고객이 될 수도 있었을

굴지의 거대 기업을 상대로 20여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싸움을 시작하게 됩니다.

연이은 죽음을 당한 소들이 마신 인근의 물에는 PFOA, 일명 C8이라 불리는 화학물질이 수십년간 방류되고 있었고,

그 화학물질은 곧 듀폰 사의 대표 소재이자 전세계 인구 99%가 사용했다고 알려진 '테프론'의 원료였습니다.

집단 소송으로 규모가 커지며 사건은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이 사건이 보도된 한국 뉴스 장면은 영화에도 나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나 사실 이런 설정의 이야기를 우리가 영화에서 처음 만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다크 워터스>가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다윗과 골리앗' 구도의 이야기에서 흔히 기대하는,

약자들이 힘을 모아 강자를 무릎 꿇리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만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영화는 골리앗의 힘이 어떤 방식으로 다윗을 좌절시키는가에 주목합니다.

오랜 세월 조용하지만 굳건히 군림해 온 자본의 힘은 눈에 보이는 폭력이나 핍박으로 약자를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긴 시간에 걸쳐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들의 몸을 서서히 그러나 회복 불가능하게 망가뜨리는 화학 물질처럼,

자본의 힘은 그에 맞서는 작은 개인들을 아주 서서히 절망으로 잠식시킵니다.

국가를 대표함은 물론 작은 지역사회의 존립에까지 영향을 미쳐 온 기업은 그런 자신들에 맞서려 더 나섰다간

가계가 끊길 거라는, 가까웠던 사람들이 등을 돌릴 거라는, 그렇게 결국은 삶이 파탄날 거라는 절망을 주입합니다.

상황이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희망을 적선하듯 던진 후에,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 희망을 절망으로 부식시키는 자본의 교활함과 그 앞에서 무력해지는 개인들을 지켜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인들은 힘겨워 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자기 자리에 버티고 서서 당연한 생명의 권리를 외칩니다.

이권에 연연하는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생계를 위협받는 헛헛한 상황에 직면할지언정,

내가 어느 기업의 이득을 위해 '살아있는 매립지'가 되는 현실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기업을 변호하는 일을 하던 롭 빌럿은 그렇게 내팽개쳐지는 생명의 존엄을, 그렇게 내팽개쳐짐에도

굴복을 거부하고 묵묵히 맞서며 살아있는 사람들을 목격하며 눈 앞의 이익보다 더 확고한 신념을 얻게 됩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부조리한 힘이 몰고 온 어둠을 깨부수는 빛이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기에 있는' 개인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작지만 강인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마크 러팔로는 이 '작지만 강인한 목소리'를 연기하기에 최적의 배우라고 할 만합니다.

잠시 지친들 멈추지 않고 신념을 추구하는 인물의 모습을 특유의 느리고 어눌한 표정과 말투를 동반해

뭉근한 연기로 보여주는 마크 러팔로는 꾸준하게 보는 이의 마음을 방망이질하다 결국 깊은 감동을 줍니다.

같은 변호사 일을 했지만 가정을 꾸리며서 일을 쉬게 된, 그런 만큼 남편의 입장을 잘 알고

그 누구보다도 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아내 사라 역의 앤 해서웨이도 건실한 연기를 보여주고,

첫 인상은 대형 로펌사의 악덕 사장 상인데 막상 보면 그렇지 않은 팀 로빈스의 무게감도 인상적입니다.

 

듀폰 사가 눌러붙지 않는 프라이팬 생산을 위해 PFOA로 만든 테프론이라는 소재는 가공된 것이었고,

이는 사람들의 일상을 윤택하게 한다는 명분 뒤에 목숨을 걸게 하는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 기업의 횡포에 맞선 작은 개인들의 의지는 가공되지 않은 것이었고,

이는 자본이 드리운 어둡고 두터운 그림자를 돌파하는 빛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영화에서 너무나 무심하게 숫자 모양으로 흘러가던 십수년의 시간마저도 꺼뜨리지 못한,

화학 소재처럼 가공될 수 없는 사람들의 뜻이 '어두운 물'보다도 우리에게 더 긴 잔상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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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1

  • 16Carol
    16Car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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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마크 러팔로는 <폭스캐처>에 이어 듀폰과의 인연을 이어가네요. 그리고 <에린 브로코비치>와 비슷한 소재라 더 기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08:54
20.02.21.
jimmani 작성자
16Carol
감사합니다. <에린 브로코비치>보다는 더 건조한 톤이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09:02
20.02.21.
profile image
jimmani
헉 저도 에린브로코비치가 생각났어요. 글구 웨스트버지니아 노래 나오는거 아닌가 했는데 역시나였구요^^*
10:20
20.02.21.
profile image 2등
어떤 카타르시스적인 순간이 없어도 그게 이 시대에 자본에 대항하는 이들의 현실임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거 같아서 좋앟네요 ㅎㅎ
10:38
20.02.21.
jimmani 작성자
2작사
저항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묵묵히 보여줘 인상깊었습니다.^^
12:32
20.02.21.
jimmani 작성자
golgo
좋게 봐주셔서 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12:33
2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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