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 후기 - 여성과 남성의 이야기(스포)

 

(스포 있습니다)(<레볼루셔너리 로드> 스포도 있어요)

 

 

 

 

넷플릭스로 봤습니다. 올해 특히 좋은 영화가 많이 나오는 건지, 제가 더욱 감상적이게 된 건지 잘 모르겠는데 올해 들어 영화 보면서 눈물을 유독 많이 흘리네요.

 

<결혼 이야기>는 개인과 가족의 이야기기도 하지만 여성과 페미니즘 전체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에 대한 남성의 이야기기도 하고요. 전 양쪽의 입장이 전부 공감 갔어요.

 

 

 

이혼 소송을 주도하는 것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하는 니콜입니다. 니콜은 찰리를 사랑해 그의 방식을 따라왔고 지금껏 삭이며 살아왔지만, 정작 자신만의 꿈을 실현하고자 할 땐 번번이 묵살당했죠. 찰리가 심성이 착하고 자기 일에 재능 있으며 좋은 아버지긴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니콜이 전부 찰리의 삶에 적응하는 식이었고, 찰리는 거기에 익숙한 사람이라 그것을 바꾸려고 하질 않아요. 게다가 부부 사이가 소원해지자 찰리가 선을 넘어버립니다. 이제 니콜에겐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돌파구가 필요해요.

 

 

 

찰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에겐 이 모든 갈등과 사건들이 불합리하고 억울합니다. 그는 니콜에게 '나에게 맞춰달라'며 강요한 적이 없어요.

 

그는 극단 감독이라는 그의 일에 충실하고, 극단은 이제야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브로드웨이 진출을 앞두고 있습니다. 물론 아내와 일터인 뉴욕을 벗어난 LA에서의 새 삶에 대해 얘기한 적은 있지만(니콜의 고향이 LA) 그게 진지하다고는 생각치 못했어요.

 

니콜이 LA에서 일을 새 직장을 구하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극단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을 버리고 무작정 이사 가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무척이나 위험 부담이 따르니까요.

 

자신과의 삶을 위해 스스로 터전을 옮겨 왔던 니콜이 대뜸 '이젠 너가 내게 맞춰'라 하니 그는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용하고 깨끗하게 정리될 수도 있었던 일을 키우는 건, 다름 아닌 바로 그 조정을 위해 고용된 변호사들입니다. 레이 리오타가 악랄한 변호사로 등장했다가 금방 사라졌던 것이 영화 외적으로 볼 때 불안한 복선이었어요. 그들의 본업을 가장한 이간질에 니콜과 찰리는 아들의 양육 장소를 두고 서서히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하죠.

 

찰리는 지금껏 가족이 뉴욕에서 살아왔고 자신의 본업도 그곳에 있기 때문에 아들 헨리가 당연히 뉴욕에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엄마를 더 좋아하는 헨리는 이미 LA에서의 새 삶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찰리에겐 철없는 아들의 행동 하나와 말 한 마디가 전부 비수가 되어 꽂히죠.

 

한때 헐리우드에서 나름 인지도 있던 배우 니콜은 이미 LA에서 새 직장을 구했고, 고향인 LA에 정착하고 싶어 합니다. 헨리도 LA에 잘 적응하고 있으니 남편 찰리가 공동 양육을 원한다면, 이번엔 그가 LA로 와서 니콜의 새 삶에 맞춰주길 바라고 있죠.

 

결국 그들은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폭발하고 맙니다. 소송 내내 눌러 담았던 것들이 터져, 맘에 있지도 않은 저주까지 퍼부으며 오열하죠. 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그들은 타협의 끝에 다다릅니다.

 

 

 

이야기의 끝에 가니 샘 멘데스 감독의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생각났습니다. 결말은 전혀 다름에도요.

 

그 당시의 여성이 끝내 자신만의 자아를 실현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결혼 이야기>는 시대적으로 몇 발자국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줍니다. 더 이상은 여성이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어머니로 기억되는 걸로 충분한 시대가 아니니까요. 적어도 니콜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할로윈에 비틀즈 맴버로 코스튬을 할 때도 니콜은 존 레논으로 분장하죠. 자신이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찰리(남성)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그가 왜 이해를 못하는지, 왜 빼앗기는 기분이 드는지... 처음부터 그가 잘못한 건 없었기 때문이죠. 미처 몰랐을뿐, 니콜의 변덕은 그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결국 찰리는 니콜의 새 삶을 받아들입니다. 그의 마지막 노래에 담겨 있죠. '혼자는 혼자일뿐, 살아가는 게 아냐', '늘 그 자리에 있을 거야, 너만큼 겁은 나지만', '같이 살아가자'...

 

 

 

아직 이혼 경험은 물론 결혼도 안 해본 제가 이들에 대해 이게 옳다, 저건 틀렸다며 가치 판단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애든, 결혼이든 항상 많은 대화를 하며 상대방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상대방을 항상 존중하면서요.

 

엔딩씬을 보니 전 여전히 이들 이혼 부부에게 재결합 가능성이 50%는 있다고 생각했어요. 찰리는 결국 헨리를 위해 LA에서 직업을 찾았고, 그들에겐 아들이라는 교집합이 언제나 있을테니까요.

마치 제가 오랜 배우자와 이혼을 겪은 것 마냥 깊이 몰입했네요. 아담 드라이버와 스칼렛 요한슨의 멋진 열연에 박수를 보냅니다. 조연 로라 던과 레이 리오타도 완벽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