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V 페라리] 간략후기
1960년대 '포드' 사의 르망 24시간 레이스 도전 실화를 다룬 영화 <포드 V 페라리>를 시사회로 미리 보았습니다.
제목만 봐서는 당대 자동차 산업에서 미국의 '포드' 사와 이탈리아의 '페라리' 사가 벌인 대결이 중심인 듯 보이나,
실은 이 기업 간의 대결을 명분삼아 펼쳐진 두 남자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주인공들에 대한 서사와 감정을 견고하게 쌓아 올리는 가운데, 많이도 나오지 않는 레이싱 장면의
어마어마한 파워과 더해져 거창하게 들리는 제목이 외려 수수해 보일 정도의 인상을 남기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포디즘(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조립되는 생산라인)을 도입하며 자동차 대량 생산으로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바꾼 미국의 포드 사는 1960년대 이탈리아 페라리 사의 도전을 받게 됩니다.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연이은 우승을 하며 브랜드 가치를 올리고 있는 페라리를 인수하려던 포드는
역으로 페라리로부터 굴욕을 당하면서 '르망 24시'에서 페라리의 코를 납작하게 하려는 야망을 불태우고,
그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인물로 르망 24시 우승 경력의 자동차 디자이너 '캐롤 셸비'(맷 데이먼)와
그가 매우 신망하는 레이서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가 프로젝트에 영입됩니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셸비와 마일스, 두 주인공이 이 기회를 통해 실현하려는 꿈과
그들을 이용해 포드가 실현하려는 기업으로서의 야심이 빚어내는 충돌에 있습니다.
셸비와 마일스에게 포드는 이번이 아니면 다시 없을지도 모를 소중한 기회를 준 고마운 곳이기도 하겠지만,
자신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장애물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걸리적거리지만 떼어낼 수 없는 이 자본의 존재감 때문에 셸비와 마일스가 추구하는 꿈은
그저 이상적이기만 한 아메리칸 드림의 표상이 아니라 씁쓸한 애환을 품은 복합적인 형태를 띠게 됩니다.
영화 주인공으로 나올 만큼 남다른 캐릭터로 밀어부치며 극적인 드라마를 쓴 인물들이지만,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는 기본적으로 자본에 의해 기용된 '을'의 입장에 있습니다.
그들이 '르망 24시' 우승을 위해 어떤 계획과 전략을 짜든 포드의 기업 전략을 벗어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사회 생활을 해 봤다면, 기업이라는 조직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상황이 불쑥불쑥 나타나며
셸비와 마일스가 아메리칸 드림을 그려가려던 찰나에 요상한 풍경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본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한계 속에서도 셸비와 마일스는 꿈을 꿉니다.
각자 건강과 생계 때문에 심장을 억눌러야만 했던 두 남자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시기를 영영 놓친 줄만 알았던 심장의 박동이 다시 시작됨을 느끼고,
그 박동 속에서 셸비는 24시간을 꼬박 질주해도 끄떡 없는 자동차를 만들 것을 꿈꾸며,
마일스는 내외적으로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형성돼 거칠 것 없는 질주만이 남은 '퍼펙트 랩'을 꿈꿉니다.
결국 자동차 역사를 써내려 가는 것은 기업의 얄팍한 야망보다 더 거대한 개인의 꿈입니다.
거시적인 어감의 제목을 한 <포드 V 페라리>가 전하는 이야기는 이렇듯 무척 개인적입니다.
갖은 이해 타산이 얽힌 현실의 제약 속에서 인간은 무한한 꿈을 과연 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언뜻 회의적으로 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실어 자동차를 설계하고 운전하는 영화 속 셸비와 마일스의 모습은
그럼에도 내 심장을 7,000RPM만큼 뛰게 하는, 그리하여 모든 것이 희미해진 채
오직 질주하는 나 자신만을 목격하게 되는 순간을 만날 수도 있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자동차가 낼 수 있는 힘은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그 속에서도 있는 힘껏 질주할 때
어느 순간 무한한 비상의 순간을 선사하듯이, 레이싱을 설계하는 건 기업이라 한들
레이싱에 뛰어드는 자동차의 향방은 그 핸들을 쥐고 있는 레이서에게 달려 있듯이 말입니다.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서사를 통해 그 절박함을 익히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만나는 레이싱 장면들은
영화에서 세 번 남짓 등장할 뿐이지만, 도로의 질감과 차내의 공기까지 옮겨 놓은 듯한 촬영과 어우러져
나올 때마다 가슴을 뒤흔들며 영화가 지닌 파워를 정의하는 수준에까지 이릅니다.
기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용되었지만 그 속에서 끊임없이 각자의 꿈을 담금질한 남자들의 이야기는
두 배우의 명연을 통해 미국의 울타리를 넘어서 보편적인 감동을 주는 드라마가 됩니다.
앞으로의 삶을 위해 심장을 차갑게 지켜야 하지만 자신의 꿈과 동료에 대한 애정으로 꾸준히 끓어오르는
캐롤 셸비 역의 맷 데이먼은 나즈막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극의 엔진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한편 천성적으로 뜨겁게 뛸 수 밖에 없는 심장을 장착하고 크고 넓은 시야로 질주하는
켄 마일스 역의 크리스찬 베일은 보는 이를 두근거리게 하고 뭉클하게 하는 연기로 동력을 쏟아냅니다.
세계 최초로 포드 사가 자동차 산업에 도입했다는 '포디즘'은 생산 효율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거기에 투입되는 사람이 마땅히 품어야 할 노력과 열정을 건조하게 거두어 간다는 비판을 계속 받고 있습니다.
<포드 V 페라리>의 두 주인공인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도 그러한 기업의 전략에
자신들의 열정을 자칫 내주어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뛸 때 비로소 존재하는 심장의 가치를 지켜냅니다.
한 사람의 삶, 한 산업의 역사를 만드는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의 뛰는 심장임을 보여주는
<포드 V 페라리>에서는 자동차의 기름 냄새와 사람의 땀 냄새가 함께 느껴집니다.
추천인 9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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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네요.
시사회때보고 아맥으로 예매해놨는데 기대됩니다.
정말 재미있고 좋은 영화인데 생각보다 예매율이 별로라 좀 아쉽네요ㅠㅠ
얼른 수요일을 기다려야겟네요... 요새 용산을 부쩍 자주 가는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