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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스포] '판소리복서' 간단 리뷰

수위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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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위 '흥행하는 영화'를 알아맞추는 능력은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다. 빨간 뿔테안경의 영화평론가도, 한 문장이 대여섯줄 나오는 평론가도, 유명 영화 커뮤니티 운영자도 영화의 흥행여부를 정확하게 점치진 못한다(경험상 대한극장 인근을 배회하던 영감님들의 적중률이 높았지만 다 옛날 얘기가 아닐까 싶다). 흥행은 다수의 관객이 결정짓는 일이다. 때문에 관객 개인의 선택이 흥행에 영향을 주는 것도 어렵다. 관객의 취향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판소리복서'의 흥행이 몹시 궁금하다. 분명 흥미롭고 세련된 영화긴 하지만 1년에 극장 3~4번 가는 관객들에게는 그만큼 낯선 영화일 수 있다. 귀엽고 애잔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기에는 이상하고 새로운 지점이 많다. '판소리복서'는 익숙하지만 낯선 영화다.

 

2. 우선 이 영화는 제목부터 이상하다. '판소리'에 '복싱'을 더했다. 언뜻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처럼 언발란스한 것의 조화를 보여줄 수 있지만 사실 영화는 거기에 별 관심이 없다. 대뜸 '세계 최초 유일무이한 판소리복서가 있다'고 정해두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탓에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서 '세계 최초 유일무이'라는 지점은 이 복서가 소수이며 인정받지 못한 존재임을 알려준다. 다만 '판소리복서'라는 낯선 단어의 조합이 안겨주는 익숙한 인상이 있다. '배고프다'는 것이다. 두 단어는 모두 '오래된 것, 잊혀져 가는 것'을 말한다. 병구(엄태구)의 판소리복싱은 펀치드렁크로 기억을 잃어가는 그 자신의 간절함처럼 잊혀져 가는 존재를 붙잡는 것이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잊혀져 가는 존재와 옛것을 붙잡는 과정이다. 

 

3. 오래된 기억을 붙잡는 일은 간절하면서도 괴로운 일이다. 사람들은 오래된 기억을 아름다운 것으로 남기려 하지만 거기에는 이체수수료처럼 부끄럽고 잘못한 일(책임)들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이는 애써 외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병구의 중요한 순간에도, 그가 떠올리는 것은 행복하고 좋았던 추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한 일, 실수한 일 등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좋았던 일과 그렇지 않은 일 모두를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원작 단편영화 제목은 '뎀프시롤:참회록'이다. 정혁기 감독은 "참회보다는 고마움의 표현"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참회를 내려놓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움'에 이르기 위해서는 참회를 거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단편에서 이야기가 확장되면서 그는 참회 이후를 이야기한 것이다. 

 

4. 영화가 관객에게 낯설게 다가갈 지점은 꽤 있다. 먼저 '펀치드렁크'를 묘사하는 과정이다. 펀치드렁크는 복싱선수에게 나타나는 뇌세포손상 질환으로 불안증세나 기억상실, 혼수상태 등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이들은 일정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사물이 다르게 인식되고 환각이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점프컷으로 시간을 건너뛰고 실재를 왜곡하는 등의 시도를 한다. 물론 이것은 여느 스릴러 영화들처럼 심각하고 무섭게 묘사되진 않는다. 때문에 관객들은 어디까지가 진짜고 환각인지 혼돈을 겪게 될 것이다. 이게 스릴러 영화처럼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다면 다행이지만 판소리에 맞춰 복싱하는 영화에서 전개가 복잡해진다면 가드 내리고 있다가 어퍼컷 맞은 것처럼 당황할 수 있다. 

 

movie_image (1).jpg

 

5. 다음으로 낯선 지점은 병구와 민지(이혜리)의 캐릭터다. 둘은 일단 만화적이다. 병구는 독한 면이 있는 유망주였다가 사고 이후 '멍청하지만 착한 친구'가 됐다. 민지는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산 존재인지 모르겠지만 한없이 밝고 착하고 사랑스럽다. 흔히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들에 비하면 단순하고 극단적이다. 병구의 경우 단순한 것과 거리가 있지 않냐고 볼 수 있는데 그는 동전의 양면을 함께 보는 것 같은 복잡한 상태가 아니라 동전의 앞면이었다가 뒷면이 된 경우다. 이처럼 단순하고 극단적인 캐릭터들은 극을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판소리복서'는 만화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캐릭터들이 자연스럽게 붙어있다. 무엇보다 민지는 캐릭터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아진다. 오래전 봤던 '뎀프시롤:참회록'을 떠올려보자면 꽤 심각하고 가라앉은 영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같은 이야기에서 톤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민지의 힘'이다. 

 

6. 무엇보다 가장 낯선 것은 '판소리복싱'이다. 취권같기도 하고 택견같기도 한 이것은 리듬으로 스텝을 밟아야 하는 복싱에 엇박자를 준다. 때문에 상대는 당황할 수 있지만 꽤 어려워보인다. 마치 박정태 현역시절의 '흔들타법'처럼 아무나 따라해서는 안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판소리복싱'을 보는 기분이 묘하다. 어떨 때는 취권처럼 멋있어 보이는데 중요한 순간에는 마치 링 위에 선 찰리 채플린처럼 묘사된다. 감동이 휘몰아 칠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마치 관객에게 감동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태도처럼 보인다. 아마 일반적인 흐름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딱 그 장면에서 정신이 번쩍 들면서 영화를 냉정하게 바라볼 것이다. 이것이 누벨바그 시절처럼 '관객과 거리두기'를 시도한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그 낯선 전개는 관객들이 외면할 것이라는 걸 각오해야 한다. 

 

7. '결정적 장면에서는 낯선 환기'는 마지막 장면을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현실일 수 있고 병구의 꿈일 수 있는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후자에 무게를 두려고 한다. 아마 영화는 낯선 환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병구의 꿈일 수 있다. 영화는 그런 의도와 거리를 두기 위해 마지막 장면에 대해 "이건 정말 꿈이야"라며 거리를 둔다. 그래야 영화가 더 애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이것은 영화 '달콤한 인생'의 나레이션과 같다. 잠에서 깨 울고 있는 제자에게 "슬픈 꿈을 꾸었느냐"고 묻는 스승. "행복한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다"라고 답하는 제자. 해피엔딩이 꿈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지만 영화는 스릴러의 구조를 끝까지 가져간다. 개인적 감상이지만 '판소리복서'의 마지막 장면은 '디센트'의 마지막처럼 오싹한데 슬프기까지하다. 오히려 '디센트'의 마지막보다 더 영화적이다. 

 

8. 결론: 리뷰를 쓰면서 영화를 다시 복기해보니 매력적인 점이 아주 많은 영화다. 그럼에도 걱정스러운 것은 이 영화가 많은 관객들에게 온전히 다가갈 수 있냐는 점이다. 나는 관객들이 "세상에 이런 영화도 있구나"라며 유쾌하고 자비롭게 받아들이길 원한다. 그러나 이 바램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관객의 평가는 세상 어느 것보다 냉정하기 때문이다. '판소리복서'의 흥행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행복한 꿈이 아닐까 염려스럽다.

 

 

추신1) 영화의 흥행에 대해 염려하며 나는 함께 본 여자친구에게 "관객들에게 '염력'처럼 인식될 수 있다"며 "'염력'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염력'은 99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판소리복서'에 99만 관객이 들면 대성공이다. ...그래...99만명만 '판소리복서'를 봤으면 좋겠다. 

 

추신2) '배우 이혜리'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들 중 민지는 가장 사랑스럽다. 어쩌면 이혜리에게 딱 맞는 옷일 수 있지만 배우의 역량을 펼치기에는 부족한 캐릭터다. ...그래도 유쾌하게 봤으니 됐다. 

 

추신3) 사실 단편에 출연했던 조현철 배우는 '복서의 얼굴'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엄태구는 누가 봐도 복서의 얼굴(정확히는 착하고 싸움 잘하는 형)에 가깝다. 정말 잘 고른 캐스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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