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약19금] '라이온킹' 초간단 리뷰(feat. CGV왕십리 씨네앤리빙룸)
0.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라이온킹' 실사판을 보기 위해 대단한 상영시설을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사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영화들이 대부분 다 심드렁했다). 그 와중에 '라이온킹'은 여자친구가 보고 싶어한 영화라 어디서 볼 지 고민하다가 CGV왕십리의 씨네앤리빙룸관에서 보기로 했다. 나중에 후기를 찾아보니 "정말 거실컨셉이라 상영 때 불도 안 끈다"는 말을 듣고 잠시 흠칫했다. 그러다 얼마 후 "기왕 이렇게 된 거 색다른 경험 해보자"라고 결심했다. 어쨌든 고급진 곳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니 데이트 기분 좀 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오픈된 영화관이 오히려 '관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뒤...나는 굉장한 관크를 만났다. 그 이야기는 잠시 후 해보자.
1. '라이온킹' 실사판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은 어쩌면 '정글북' 실사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존 파브로의 '정글북'은 그럭저럭 재밌게 봤다. 그러나 영화의 뒷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영화는 단 한 장면도 정글에 가서 찍은 게 없다"라고 했을 때 약간 충격을 받았다. 물론 안전한 환경과 완벽한 화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이제 영화가 이런 위치에까지 올랐다는 게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라이온킹' 역시 불가피하게 이런 선택을 했겠지만 저 모든 초원과 동물들이 전부 CG라는 사실은 나를 혼란스럽 게 만들었다. 이것은 정녕 실사영화일까, 아니면 '리마스터'된 애니메이션일까? 대체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2. 사실 '라이온킹'의 장면들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상태였다. 앞서 말한대로 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추억이 많지 않은 사람이다. 때문에 이 이야기는 나에게 익숙하지만 새로운 구석도 있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그러니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게 재미있냐"를 묻는다면 나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 거릴 것이다. 그리고 그 갸우뚱거림이 이 이야기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 영화가 개봉했던 1994년에 나를 떠올려보자. 그때의 내가 이 영화를 재미나게 봤는지 떠올려 보자면 확실히 지금보다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이 "옛날 게 더 재미있었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런 반응들 많이 봤다). 나는 이 영화에 대해 느끼는 '시큰둥함'에 대해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3. 지금 다시 보니 이야기에 구멍도 꽤 보인다. 예를 들어 사자의 본성을 버리고 벌레나 주워먹으며 오랜 시간 살았던 심바(도널드 글로버)가 갑자기 야수성을 찾는 모습이나 스카(치웨텔 에지오포)를 불안하게 여기고 의심하면서도 그에게 아들을 맡긴 무파사(제임스 얼 존스)는 "사자라서 저런가" 싶은 생각도 들게 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 마저 '내가 어른이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마치 '아기공룡 둘리'를 보고 고길동이 불쌍해보이고 '달려라 하니'를 보는데 나애리보다 하니가 더 나빠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돌이켜보면 애시당초 저 모든 동물들을 실제에 가깝게 그려놓은 것부터가 "너의 동심을 여기서 파괴해버리겠다"라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단 애니메이션의 재기발랄하고 역동적인 표정들이 몽땅 사라진 것부터 '동심파괴'의 시작이다.
4. 만약 추억팔이의 의도가 있었다면 '라이온킹'은 실패한 영화다. '알라딘'이나 '미녀와 야수', '신데렐라'처럼 '사람'이 등장하는 영화는 사람의 표정이 나오기 때문에 관객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그것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온통 동물들뿐인 '라이온킹'에서는 인물들의 표정을 읽는 게 쉽지 않다(심지어 '정글북'에도 사람 하나는 있었다). 이 영화의 동물들은 지나치게 '동물'의 외형을 하고 있으면서 사람인 척 연기를 한다. 그동안 '꼬마돼지 베이브'나 '정글북'을 보면서 느낀 적 없는 이질감이 처음 느껴졌다. 왜 그랬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5. 결론: 이 영화는 마치 '라이온킹'에 대한 추억을 가진 어른 관객들의 귀싸대기를 올리면서 "정신차려! 넌 어른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추억여행은 진작에 끝났다. 이것은 1994년 애니메이션과 선을 긋고 봐야 할 영화다. ...뭐 그렇게 봐도 대단히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나을 것이다.
추신1) 어떤 글에서 "'라이온킹'의 성우가 2명 빼고 전부 흑인인 걸 보니 디즈니의 PC가 여기에도 묻었네"라고 하는 글을 본 것 같다. ....배경이 아프리카 초원이잖아. 흑인이 출연하진 않더라도 흑인 악센트가 조금이라도 묻어야 아프리카 초원의 느낌이 더 살지 않겠는가. 오히려 백인 2명이 '블랙팬서'의 쉴드 요원(마틴 프리먼, 극 중 이름 까먹음)처럼 어색해진다.
추신2 - CGV왕십리 씨네앤리빙룸 초간단 리뷰)
0-1. 나는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다. 당연히 영화 볼 때 옆에서 보시락 거리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나도 이런 내가 꽤 스트레스다. 무신경하게 영화에 집중하고 싶은데 집중력장애라도 있는지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관크로부터 자유로울까" 고민하다가 "내가 관크가 되면 되겠구나"라고 결론을 내렸다(소심해서 제대로 실천에 옮기진 못한다). 씨네앤리빙룸을 선택한 것은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불도 다 안 끄고 문도 안 닫고 영화를 튼다고 하니 관크 파티가 열리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나 역시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같이 부시럭거리고 폰 확인도 하면서 보려고 마음먹었다.
0-2. 영화 시작 전 씨네앤리빙룸 소개 영상이 나온다. 휴대폰 불빛에 예민한 사람이 보면 기겁할만한 광고다. "영화 상영 중 휴대폰 보고 메모하는게 왜 안돼!"라며 반박한 뒤 거실컨셉으로 편하게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들을 위해 만들었다며 씨네앤리빙룸을 소개한다. 여기서 CGV의 지향점이 명확하게 보인다. 이들은 n차 관람객이나 아트하우스 매니아들은 필요없으니 닥치고 팝콘하고 콜라나 사서 들어가라는 것이다. 씨네앤리빙룸은 팝콘과 콜라는 고사하고 떡볶이, 튀김범벅, 치킨, 김밥, 오뎅... 뭐든 사들고 들어가도 자연스러운 곳이다. 실제로 주변의 한 관객은 이마트에서 과자와 맥주를 한 보따리 사들고 들어갔다. 만약 CGV가 내 주장을 부정하고 싶다면 전국에 단 1개 아트하우스관이라도 '노 푸드 존'으로 만들어보길 바란다(안 그럴거라는 거 잘 안다).
0-3. 아무 문제 없었다. 뭘 먹든, 뭘 보든. 그곳은 거실 컨셉의 영화관이기 때문이다. 신발 벗고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서 영화를 볼 수 있는 편안한 곳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옆자리에서 발생했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옆자리에서 남녀의 속닥속닥 소리가 들려왔다. 뭐 거실 컨셉이니깐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속닥속닥 소리가 조금 잦아지더니 톤이 이상해진다. 이걸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소리가 더 잘 들려왔다(정확히는 거슬리기 시작하자 신경이 그쪽으로 집중됐다). 이것은 여자의 신음소리다.
0-4. 오래전 CGV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에서 영화를 볼 때 뒷자리 스윗박스에서 점액질의 마찰음(키스소리)이 들려와서 "조용히 하세요"라고 한마디 한 적은 있다. 근데 아까 그 속닥속닥 소리에 이어 신음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까 그 속닥속닥은 키스소리였다고 결론 내릴 수 있었다. 나는 여자친구와 눈빛으로 "저 연놈들을 어떡할까" 상의했다. 일단 영화에 집중하자며 말렸다. 사실 LED 스크린이라 화질 쨍하고 사운드 짱짱해서 영화에 집중하는게 어렵진 않았다. 그러나 이미 불쾌해진 입장에서는 저걸 어떡하나 고민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거슬리는 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딱-'.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들어봤을 소리다. 고무줄이 피부를 때리는 소리, 다시 말해 팬티 고무질이 골반을 때리는 소리다. 둘 중 누군가는 팬티를 벗었다는 소리다. 굳이 누가 벗었는지 알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알고 싶지 않아도 대충 알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입장하는 걸 봤고 여자가 펄럭이는 치마를 입은 걸 봤기 때문이다. ...젠장.
0-5. 이 남녀의 한바탕 거사가 지나가고 나는 다시 상영관을 떠올렸다. 그제서야 이 상영관은 '거대한 DVD방'으로 보였다. 그랬다, CGV는 왕십리에 '초대형 DVD방'을 만든 것이다. 그저 '관크 프리존'을 기대하고 갔던 상영관은 비밀이 보장되자 꽤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시민의식이 아직 여기에 못미친 것일까? 이날 내 자리에도 누군가 버리고 간 쓰레기가 놓여있었다. 극장 안에 뭐 잡다한게 많아서 쓰레기와 구조물의 분간이 잘 안 간다.
0-6. 결론: 상영관이 문제인지 시민의식이 문제인지 따져보고 싶지만 그것도 귀찮아졌다. 그저 "내가 좀 관크다" "내가 오늘 관크짓 좀 하고 싶다" "내가 커플인데 오늘 좀 발정이 났다" 싶은 관객이라면 CGV왕십리 씨네앤리빙룸관을 이용해보길 바란다. 관크 각오하고 갔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관크에 당했다.
추신3) 씨네앤리빙룸 2인 영화값보다 왕십리 인근 모텔 대실비가 '훨씬' 싸다.
추천인 60
댓글 59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제가 지금 뭘 읽은거죠ㄷㄷㄷ
씨네앤리빙룸 후기라서 설레는 마음으로 클릭했는데 말도 안되는 관크네요😱거실 컨셉 상영관이라고 정말 자기네들 집 거실인줄 알았던걸까요;;😱😱위로드립니다ㅠㅠㅠ
라이온 킹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가득하네요ㅠㅠ
ㅋㅋㅋ 공감해요 가격이 주말에 2인 55000원이던데 그돈으로. ..
영화가 동물의 왕국 느낌이 났는데 관크도 동물의 왕국을 찍는군요.
후기가 수필처럼 술술 읽혔네요.... 덕분에 이런 특별관도 있구나 알아갑니다...
역대급 관크네요... 세상에나.... 저런짓 할거면 심야에나 할것이지... 창피하지도 않은가... 동물들 보면서 뭔 재미로 했을까요 차라리 성인영화를 보러 DVD방이나 모텔로 갈 것이지...
DVD방 알바 : 저희도 사양합니다...
진짜 충격적이네요....;
전체관람가영화인데 19금 영화를 찍네요!!
여태껏 읽어본 관크 중에 가장 강력합니다....
다른 영화도 아니고 라이온킹 보러 들어와서 와....
글을 잘 쓰시네요 ㅋㅋ
덕분에 충격적인 관크 얘기임에도 화남보다는 낄낄대며 읽었습니다 ㅋㅋ
아니 그럼에도 정말 대단하네요.. 그 사람들.. ㅋㅋㅋ
직원에게 신고라도 했어야할까요.. 허허
관크 관련글은 읽는 내내 충격이........영화 집중이 전혀 안되셨겠네요...;;;;; 와 어떻게 공개적인곳에서 그런짓을...본인들도 소리가 나는걸 알고있을텐데요 제대로 발정났네요 증말
오와우.. 어휴 제목보고 들어왔는데도 놀랍네요. 라이온킹에 큰의미가 있는 저로써도 왠지 이 후기와 같은 느낌을 받을 것 같네요.
세상에....진짜 미친것들이 판치는 세상이네요.
컴퓨터로 만든 동물의 왕국 대신 스크린 밖에서 야생적인 행위가 유사 4DX로까지 이어졌군요..ㄷㄷㄷ
하하하핳 영화도 상영관도 모두 혼란하군요
하 망할
색다른 느낌을 가질려고 했나....
아무리 그래도 참....
아니 뭔 야설에서나 볼법한 일이 ㅋㅋㅋㅋ
헐 미친 ; 왜 라이온킹 후기가 19금이지 했더니만...
헐 도라이급 관크네요
진짜..창피함을 모르는사람들이네요..;;
씨네&리빙룸 관 생길때부터 예정된 일이었죠, 일반관 그 좁은 좌석에서조차 물고빨고 다 하는데
대놓고 차려진 밥상에서 할거라고는 CGV관계자들도 다 예상했을겁니다
거실 컨셉이지.. 진짜 거실은 아니잖아요.. 에효;;;
이 글보고 충격을... 하.. 진짜
엄청나네요 진짜;;;
'낮~에 했~냐~~~~ 발발이~ 치와와~~ '
라이언킹 인트로가 자동으로 들려오는 내용이군요... (쿨럭)
쑤레기장이군요 ㄷㄷㄷ 끔찍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오신게 대단한 인내심이 ㅠㅠ
헐...끔찍하네요~
야! 차라리 모텔을 가라!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ㅋㅋ
저... 점액질의 마찰...
읍읍
와 이건 충격입니다 ㅠ
글 내용과 댓글의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어쨌든 너무하네요 ㅠㅠ
전 남자 손이 여자 팬티에 들어가있는거 목격하고. 니네 나가라고 직원 부르겠다고.. 하니.. 제 앞에서 손을 빼는걸 본 사람으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CGV 의자에앉을때마다 찝찝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벽쪽 4자리있는곳에 두명만 앉앗드라구요 아주 그냥 한편의 영화를 찍드라구오
한줄 평
라이온 킹! 어떤 동물의 'suck(le) of life? 으응?!
저도 영화보는데 CGV 스윗박스 맨 뒷 좌석에서 남녀커플이 붕가붕가하는 거 본적 있는데 그렇게 천박해 보일 수가 없더군요. 뭐 그나이에 불타오르는 건 알겠는데 짐승도 아니고 장소를 구분을 해야지 아무대서나 그러고 있으면 짐승이랑 다를게 뭔지....
읍읍... 모텔을 가라고...
오우야 왜 라이온킹이 19금인가했네요ㄷㄷㄷ
뒤에 글은 충격이네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정도는 아니라도 놀란 적은 있었단 걸 기억하게 되었어요.
이젠 정말 의자에 뭐가 묻어 있을지 모르는 영화관 ㅠㅠ
허허, 거참... ㅡㅡ;;
어으 제가 뭘읽은건가요ㅜ 더럽네요 대체 왜그러지...
관크 탑이네요.. 맙소사...
이거 다른커뮤에서도 봤어유. 글 퍼가는듯요 ㅎ
야동 쳐보고 그러나...수치를 좀 알았으면
아니 왜 거기서.. ㅎㅎ
옆에서 그런 추태를 벌이면 엄청 민망하겠어요;;;
세상에나세상에나... 절대로 가면 안되는 곳이군요ㅠㅠ
관크 상상이상이네요...
책임도 안지고, 진짜 현재를 즐기는 하쿠나 마타타네요 ㄷㄷ 티몬과 품바가 좋아할듯..
ㅋㅋㅋ 새로운 관크네요
정말 아예 정신나간 커플이네요. 허구야.... 왜 19금인가 해서 읽었더니 세상에.. 공연음란죄 형사처벌감인데
듣도보도 못한 일이네요ㅋㅋㅋㅋㅋ
이게 그 기사 났다는 글이군요.. 아.... 진짜 영화관에서 이런 일이ㅇㅁㅇ!!!!
세상에. . 말세로군요 극장에서 뭔짓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