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포르노라는 것의 의미가...

가버나움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불행포르노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어요...
이 단어의 의미가 영화 속에서 어떤 고난과 역경들을 적나라하게
제시하면서 보는이로 하여금 자기위안을 삼게하는 느낌이 들게하는거라고 생각하면 잘 이해한건가요...?
이 단어가 처음 접해서 그런지 확 와닿진 않네요... 좋게 본 가버나움이라 그런지 이런단어가 붙는것도 그렇게 느낄수있는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누군가의 불행을 전시해서 위안을 얻게끔하는 영화가 아니라 사회의 일면을 어떻게보면 고발하는 다큐의 느낌도 있는 영화잖아요..
음 여러분의 불행포르노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요!!!
이 단어를 접하고 머릿속이 복잡하네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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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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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뭔가 숨통이 트인 느낌이네요. 권력자들이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으로 단번에 이해가 되었네요. 저도 가버나움 기사나 어떤 리뷰를 볼때마다... 불행포르노...? 라고 느껴질만한 시선이 있었던가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요소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그저 그들의 삶을 관찰한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렇다면 불행포르노는 관객이 어떤 영화를 본인이 어떻게 느끼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적용될 수 있는말이고
영화안에서 어떤시선으로 불행한주인공을 대하고 바라보고있느냐에 따라 적용될 수 있는 상대적인 언어이겠죠...?

불행포르노라는 단어는 불행을 과다하게 전시하고 그걸 '자극적'으로 쓴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예요. 필요 이상으로 주인공을 불쌍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을 지나치게 감정을 고양시킬 목적을 하거나... 그럴때요. 꼭 위안을 얻게 하는 목적은 아닙니다.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거나 슬퍼하게 만들기 의해 쓰기도 해요.
가버나움 같은 경우엔 계속 소년의 고난들을 쭉 나열하잖아요. 환경자체가 불우한데 여동생의 일이라던지, 요나스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데 계속된 불행... 돈을 잃고 집에서 쫓겨나고 등등.
가버나움에 대해 불행포르노라는 비판도 평론가들 사이에서 종종 나오기도 합니다.
좋은 영화라고 해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영화는 아니예요. 저도 가버나움 좋은 영화라 생각하고 추천하지만, 영화 자체의 완결성만 보면 아쉽죠.

불행한 요소의 과도한 나열.
이것 또한 이해가 되네요.
댓글들 보면서 조금씩 스스로 정리를 해봐야할것같아요!
댓글 감사합니다!

불행포르노라는 감상을 붙일만한 작품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겐 가버나움이 그랬을 수도 있지만 저 단어의 어감이나 이미지 등을 생각한다면 쉽게 쓰일만한 단어는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약간 '오글거린다'라는 단어랑 비슷한 느낌이에요. 타인의 감상보다 우위를 선점하게 되고야 마는 단어..

오글거린다는 언어를 생각했을때의 느낌을 예로 들어주시니
어떤느낌으로 쓰이는지 조금 알 것 같긴하네요.
가버나움을 두고도 너무 과잉이다 신파다라는 의견도 지나가다 본적이 있거든요.
댓글감사합니다!

좀 더 자극적인 장면들을 골라서 영상이나 사진에 담는다고 할까요?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ngo 관련 책에서 더 불쌍한 모습일수록 기부를 많이하기 때문에 그런 사진을 찍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가버나움'은 불행포르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상황을 담담하게 풀어내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저도 불행포르노까지라고는 생각은 안들어요 ㅎㅎ.
그저 담담하게 관찰하고있다라는 느낌이었어요.
감상은 오로지 관객의 몫이고 우리에게 무언가를 설교하지도 감정을 강요하지도 않았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댓글감사합니다!
저는 빈곤포르노라는 표현으로 자주 들었던 개념인데요. 자극적인 상황이나 장면으로 동정심(sympathy)만을 자아내어 기부, 모금을 이끄는 자선단체의 캠페인 방식을 비판하는 표현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가버나움은, 조금은 그 점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등장인물들의 불행한 상황이 감정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전시되는데, 그 이상의 윤리적, 미학적 고민이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어요.

윤리적, 미학적 고민이라고 한다면
무언가 영화로서 이 소재를 통해서 전달하고자하는 가치와
너무도 적나라한 모습들에서 오는 것들에 대한것들일까요?
제가 말을 잘 못해서 하하;; infatuacion님의 첨언을 조금더 부탁드려도될까요? ㅠ

각자 생각하고 판단하기 나름이겠지만 전 가버나움이 불행포르노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어요. 자인이가 처한 상황이나 소재의 현실울 내다봤을때 훨씬 자극적으로 그려질만한 부분들이 다분해보였는데 감독이 나름 굉장히 배려하고 조심하면서 찍은게 느껴졌거든요.

저도 많이 공감합니다. 고민을 많이하고 섬세함과 배려가 느껴졌다고 생각했어요!
댓글감사합니다!

가버나움 그런 부분 최대한 자제한거 아닌가요 진짜 작정하고 만들었으면 장면 묘사도 했을텐데 그런거는 없었죠

아까 길게 썼다 지웠는데
저에게는 공감되지 않는 표현이에요ㅠㅠㅠ

[가버나움]이 '불행포르노'라는 말을 들을 여지가 없지는 않죠.
불행포르노라는 수치가 0에서 100까지 있다고 가정하면,
[가버나움]은 100도 아니지만,
0이 아니라고도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좋게 본 영화지만 보면서 그런 생각이 약간은 들었습니다. 조금 과하다는 인상을요.
그런 연장선상에서 작품성이라든가 다른 측면에서도 영화적으로 비판 받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 속 내용과 그에 대한 찬반, 동의여부가
영화 자체에 대한 비판과 반드시 직접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도덕적으로 옳은 말을 많이 나열한 수필이나 소설이라도
당연히 작품으로서 비판을 받을 수 있고,
또, 그렇게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안에 들어있는 도덕적으로 옳은 말까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반대로
도덕적으로 옳은 말을 많이 했으니까 작품성도 높게 평가해줘야 한다는 말도 맞는 말이 아니듯이요.

덕분에 상식 많이 알아갑니다 !
(주의: 가보니움 스포일러!!!)
정확합니다. 더 저세히 말하면 보는 사람이 "나는 절대 저 사람들처럼 그런 환경에 처해진 불행한 사람이 아니야."생각하며 자기위안 삼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불행해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비춰주면서 마지막에는 결국 백인들이, 권력이 있는 사람이 손을 내밀며 구원해주는... 그런 흔해빠진 서사를 통틀어 불행포르노라 할 수 있겠죠. 그런 면에서 보면 가버나움은 불행포르노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것도 평론가들 사이에서 많이 갈리겠지만... 영화 내내 자인 혼자 어떻게든 발버둥치며 살아가고 일자리도 스스로 찾아내 생활을 이어가죠. 인권변호사를 선임한 것도 자인이 교도소에서 방송을 보고 스스로 전화해서 도움 요청하구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마음 아프면서도 역으로 불편하지 않았어요. 불행을 자극적으로 나열한 듯한 느낌이 있으나 마무리가 중요해요. 구원자는 등장하지 않아요. 자인 스스로 원하는 신분을 얻어내는 결말을 보면 과연 불행포르노인가? 질문을 하게 되거든요. 영화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은 현실의 문제를 모두가 알기 위해 만들어졌단 느낌입니다. 단순히 기부을 모집하기 위해서였다면, 자인에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를 부여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