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Closed Circuit, 2013]관람기 -스포일러O
올해 초 흥행했던 [변호인]이라는 영화 기억하십니까? 송강호가 정의에 눈뜨는 속물 변호사로 출연한 이 영화는 국가에 의해 조작된 사건으로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에 관람한 [프라이버시]는 얼핏보면 변호인과 많은 부분 닮아있습니다. 법정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는 변호사이며, 부당한 국가권력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변호인과 유사해보입니다. 그럼 이 영화도 흥행이 잘 될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배우들의 연기를 살펴보면 눈에 거슬리는 부분 없이 자연스럽습니다. 주연부터 조연까지 국어책 읽는 사람도 없고 혼자 오버하는 사람도 없어 이야기에만 편하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배경음악도 비교적 장면과 잘 어울리는 편입니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장점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포스터로 내용을 스포일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포스터에 대문짝만하게 '국가가 범인이다!'라고 써 있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이 영화를 볼 이유가 무엇인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보기전에는 몰랐지만 보고나니 허탈함을 배가시켜주는 요소였습니다. [프라이버시]는 [겨울왕국]처럼 퍼포먼스적 성격이 있어서 스토리와 상관없이 다시 극장을 찾게 만드는 그런 영화가 전혀 아닙니다. 오직 스토리와 배우의 연기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내용을 스포일링하고 들어가면 보는 입장에서 몰입도 안 되고 재미도 반감하게 마련입니다.
정서적인 괴리감입니다. 최근 있었던 강남구청역의 폭탄 오인 소동처럼 우리나라에도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는 어느정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테러는 중동사람들에 이루어지는 자살폭탄테러로 어찌보면 9.11이후로 정립된 전형적인 방식의 테러입니다. 또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왜 대화를 나누면 안 되는 관계인지도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화에서는 그저 변호인과 특별 변호인의 관계라는 내용만 등장할 뿐입니다. 영화관람 후 변호인과 특별 변호인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해보았지만 역시 별다른 내용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 영국의 고유 사법제도겠거니라고 생각하는 수 밖에 없었네요. 요약하자면 크게 공감되지 않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제목에 있습니다. 영어 원제인 [Closed Circuit]은 직역하면 '폐쇄회로'로,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CCTV입니다. 당연히 영화에서 CCTV는 오프닝을 비롯한 여러 장면에 등장하면서 극의 진행을 적극적으로 보조하는 소재로 등장합니다. 물론 원본 포스터를 보면 'They see your every move'라는 문장이 있어 프라이버시라고 번역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닙니다. 오히려 반복관람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고 본다면 최대한 자극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제목이면서 내용과 연관성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습니다.
그러나 한국판 포스터를 접한 관객들의 생각으로는 '이 영화는 사생활 침해가 중요소재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프라이버시], 아니 [Closed Circuit]은 '사생활 침해'의 측면이 아닌, '국가기관에 의한 감시의 공포'를 주제의식으로 삼고 있습니다. CCTV에 의한 관찰이 침해하는 것은 분명 개인의 사생활, 즉 '프라이버시'일테지만 영화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사생활 침해가 아닌 국가가 만들어내는 '빅브라더'입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을 누군가 옆에서 몰래 훔쳐보는 게 아니라 국가에서 대놓고 지켜봅니다. 물론 눈에 잘 띄지 않는 방식으로 관찰하지만 공원에서 엿보던 커플과 길을 지나가다 정면으로 마주치는 장면 등을 통해 사생활 침해보다 감시가 강조되고 있다는 점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영화에서 CCTV는 국가가 우리를 지켜보는 눈이 주변에 너무 많아서 무감각해질 정도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광고와 달리 법정스릴러라고 보기엔 모자라지만 [프라이버시]는 기본적으로 스릴러 영화입니다. 스릴러의 묘미는 서서히 조여오는 주인공에 대한 음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스릴러 영화에서는 언제 덮쳐올지 모르는 적과 사건의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그리고 그 결말이 이어져 하나의 구조를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적절한 서스펜스의 밀고 당기기는 필수적입니다. 무턱대고 조여드는 영화는 불편하고, 대책없이 풀어두는 영화는 재미가 없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방지하고자 하나의 영화에는 큰 줄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서스펜스와 그것을 기둥삼아 발생하는 여러 작은 서스펜스들이 마치 누운 직각삼각형을 바탕으로 한 반원 프랙탈 도형처럼 이어지게 됩니다.
[프라이버시]에서의 서스펜스 구조는 사다리꼴 같은 느낌입니다. 초반부 눈을 잡아끄는 오프닝 이후 마틴의 변호사 선임까지는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고 그 이후부터 속도보다는 밀도에 중점을 두고 전개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극의 전개가 너무 잔잔하고 지루해진다는 점입니다. 감독도 이를 고려했는지 중간중간 갑자기 깜짝 놀랄만한 이벤트들을 삽입해놓았지만 그야말로 순간적으로 놀라는 이벤트일 뿐, 그다지 몰입에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관객들은 종종 일상에서 이루어내지 못한 꿈과 희망을 극에 투영하곤 합니다. 극의 결말부분에서 영화의 주인공이 마침내 위기를 극복해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모두들 암묵적으로 현실이 만만치 않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결말은 전형적인 하강하는 결말입니다. 관객과 주인공은 모든 사실을 알게 되지만 결국 피고인은 정보기관에 의해 살해됩니다. 비록 그 여파로 법무부 장관을 경질하자는 내용이 나오면서 영화가 끝을 맺지만 뭔가 통쾌한 결말을 기다리던 관객들은 현실적인 결말에 실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허탈한거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결말도 참신하고 마음에 드는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프라이버시]는 배우들의 호연, 적절한 배경음악이 좋았고 포스터의 스포일링과 제목의 번역문제, 정서적 거리감 및 지루한 이야기전개는 별로였습니다. 하강하는 결말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네요. 이상 에릭 바나와 레베카 홀 주연의 [프라이버시] 감상기를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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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잘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