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미스미소우' 초간단 리뷰
1. '좋아하는 영화'라고 말했다가는 변태로 낙인 찍히기 쉽상인 영화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메어 자르치의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다. 공교롭게도 나는 이 간단명료한 '복수극'을 좋아한다. 이 영화는 정말 간단하다. 성폭행 당한 여성이 자신을 성폭행한 무리를 하나하나 찾아내 잔인하게 살해한다는 내용이다. 다소 불편할 수 있는게 아니라 대놓고 불편한 영화다. 조금만 생각한다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영화지만 이쪽 장르의 영화들은 그런 점으로 인기를 끌었다. 나는 이 강력하게 휘발되는 '간단함'이 좋았다. 여러가지 고민없이 원하는 것만 표현하고 쿨하게 돌아서는 마무리가 마음에 들었다.
2. 나이토 에이스케의 영화 '미스미소우'는 꽤 악랄하다고 소문이 난 만화책을 실사영화로 만든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이 이야기도 결국 '복수극'이다. 눈 덮힌 시골 마을에서 왕따 당하는 소녀 하루카(야마다 안나)가 왕따 가해자들로부터 가족을 잃고 복수에 나선다는 이야기다. 간단한 복수가 진행되는 대신 몇 가지 장치가 추가되지만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와 닮은 '복수극'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가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카타르시스를 거세한다. 아마 평범한 사람이라면 영화를 견디면서 볼 수 있을 유일한 이유를 제거한 셈이다. 그 덕분에 '미스미소우'는 꿈도 희망도 없는 지옥이 돼버린다.
3. 사실 엄밀히 따지면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도 호쾌한 카타르시스는 없다. 죽음보다 끔찍한 강간을 당한 여자가 가해자에게 무슨 짓을 해도 그 상처가 씻겨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스미소우'는 '복수=완벽한 성공'이라는 유일한 등식마저 제거해버린다. 과연 저것을 '완벽한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지경이다. 우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먹먹한 감정만 두고 본다면 이 이야기는 '완벽한 새드엔딩'에 가깝다. 복수는 성공하지만 결말이 사이다는 아니다. 그런 낯익은 영화가 몇 개 있다. 주로 리들리 스콧의 시대극들이다.
4. 리들리 스콧의 대표적인 시대극 '글래디에이터'는 반대세력에게 '빨래질' 당한 막시무스(러셀 크로우)가 검투사로 돌아와 복수하기까지의 여정이다. 엄밀히 따지면 '글래디에이터'는 '복수극'이다. 그렇다면 복수에 성공한 막시무스는 어떻게 됐는가. 그가 어딘가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 행복하게 살거나 왕궁에서 호화롭게 살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는 죽어서 가족의 곁으로 떠난다. '완벽한 복수'라고 보기에는 먹먹함이 더 강하게 남는다. 적어도 '미스미소우' 역시 그런 영화인 셈이다. 그러니깐 요약하자면 이 영화는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로 시작해서 '글래디에이터'로 끝나는 셈이다.
5. 우선 '미스미소우'는 상처를 받는 중이거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깐 이 눈 덮힌 세계에서는 '보편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보는게 좋을 것이다. '광인(狂人)'들이 모여서 사는 세계에서 그나마 가장 정상에 가까운 사람이 하루카다. 하지만 그 아이 역시 미쳐있다. 다행스럽게도 스크린 앞에 앉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끼를 잠재워 둔 채 보편적 생활을 영위하며 살아가고 있다. 별 문제가 없다면 스크린 안과 스크린 바깥의 괴리감은 엄청나야 한다. 스크린 안은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6.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광인들의 세계는 스크린 바깥의 세계와 별로 다르지 않다. '현실반영'이라는 구태한 단어를 끄집어낼 필요도 없이 '미스미소우'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숨겨진 광끼가 조금은 직접적으로 얼굴을 드러낸다. 그 얼굴은 비극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본능이 비이성적인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어쩌면 행복은 정량이 정해져 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행복을 차지하기 위해 타인의 행복을 빼앗고 싸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스미소우' 속, 색깔을 잃은채 오로지 흰색만 남은 세계에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이 마을에 행복이 없다는 사실도 모르고 행복을 얻기 위해 싸우고 있다. 흰색을 물들인 붉은 피를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흰색을 물들인 붉은 색, 과연 그것이 행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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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인데 그래도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