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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나이트 범우사판

sattva
11359 1 7

90년대 초쯤인가 부터... 국내 출판계에 최초 완역본 붐이 불기 시작했죠.
20세기가 다 끝나가는 마당인데, 그간 국내에서는 고전이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누구나가 다 알고 다 읽어봤다고 생각하는 그 작품들이 사실은 일제 중역판, 그것도 축약판들이었다는 거죠.
그 중에서도 아동문학으로 분류되었던 작품들, '걸리버 여행기'라든지... 하는 것들이 사실은 아동용이 아니었다는 나름 쇼킹한 문구를 내고 나온 것들도 있었습니다. '아라비안 나이트'도 그 중에 하나였죠.

사람들 사이에 "'아라비안 나이트'가 실은 엄청 야한 이야기였대" 이런 소문이 퍼지면서 화제가 되었던것 같고, 최초로 나왔다는 무삭제판 '아라비안 나이트'는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습니다. 수백년된 고전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지 싶어요.(그만큼 야한건 사람들한테 먹힌다는...) 뭐... 그 무렵 디즈니 [알라딘]이 히트한 영향도 조금 있었을 듯도 하지만...

어쨌든 뭐... 그무렵 저도 '이왕이면 원판그대로'라는 주의가 있어서 '삼국지' '수호전' 등 주로 중국 고전 위주로 최초완역판들을 사서 보고있었죠. 그러다가 서점가에 '아라비안 나이트' 열풍이 어느 정도 지나간 몇년 후쯤에 '아라비안 나이트'도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성향대로 전10권을 한방에 구입했죠. 글고 그 이후로.... 책을 한번에 통채로 전권을 구입하는 일은 자제하고 있습니다.(뭐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때 산 '아라비안 나이트'를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 못읽고 있거든요.

시도는 여러번 했죠. 하지만 늘 초반에 한두권 읽다가 막힙니다. 최대한 많이 갔던 게 4권이나 될까... 정말이지 좀처럼 진도가 안나가요. 저만 그랬던 건 아닌거 같아요. 제가 가진 전체 10권중 초반 한두권은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작품답게 재판 인쇄횟수가 상당히 높습니다. 근데 3,4권 이후로는 재판 횟수가 팍 떨어지고 후반으로 가면 다 초판입니다. 사람들이 붐 때문에 처음 몇권은 사서 보다가 대체로 중간에 손 놓은 거죠.

이야기 자체야 잘 알려진 '아라비안 나이트' 이야기예요. 환상적이고 재미난 모험담이죠(전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보고있으면 진도가 참 안나가거든요. 구성 자체가 진도가 나가기 좀 어렵게 되어있긴 해요. 고전을 처음 읽게 되면 부딛히게 되는 일종의 함정인데, 이게... 이야기 좀 한다 싶으면 경치타령 한창하고, 진도 조금 나간다싶으면 시한수 읊고 몇줄 진도 나가다 노래한자락 나오고, 정말로 현대인들의 호흡에는 맞지 않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재미난 '아라비안 나이트' 이야기는 거기서 그런 잘 안나가는 부분을 다 쳐내고 스토리만 골라낸 거죠.

근데 전 그때 중국 고전들을 몇편 읽었기 땜에 고전문학의 그런 스타일에는 나름 적응이 되어있었거든요. 그런데도 읽다가 포기한 건 다른 부분들에서 발목을 잡는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이예요.
일단 책의 구성이 사람 질리게 되어있습니다. 한페이지당 깨알같은 글씨로 빽빽하게 거의 1000자쯤 들어찬데다가 책 한권이 500페이지 가까이 됩니다. 90년대니까 이게 10권으로 나왔지 지금같으면 수십권 분량이 될 거예요. 권수가 적게 나온 건 뭐라할 일이 아니겠지만 가독성이 상당히 떨어집니다. 지금은 이렇게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나오는 책은 사람들이 안보려 하겠죠.

가독성이 좋지 않은데다 문체도 대단히 딱딱합니다. 영문학 교수님께서 고상한 문체로 번역을 하셨는데 이게 술술 넘어가는 문장은 아니예요.
요즘 사람들이라면 싫어할 번역상의 문제도 있는데 그지역 특산품(?)을 현지화 시킨 부분입니다. '진'(지니)을 '마신'으로 번역했는데, 그것까지는 문제가 아니죠. 그런데 원본(리차드 버튼의 영문판)에 '진'이 나오는 횟수보다 한국판에 '마신'이 나오는 횟수가 훨씬 많습니다. 진 말고 다른 괴물들, 미묘하게 다른 존재들을 다 '마신' 하나로 퉁쳐버린 거예요.

가장 큰 문제는, 주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건 우리네가 잘 알지 못하는 아랍, 중동지역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당연히 그동네 풍습과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져있습니다. 게다가 그동네에 실재했던 유명인들이나 사건들이 상당히 자주 언급됩니다. 그런데 거기 대한 설명이 일체 없어요. 읽다 보면 대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지, 시시때때로 이름이 언급되는 저 사람은 대체 누군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에 재미를 느끼질 못하게 되고 어느순간인가 책을 덮어버리게 되요. 다른 건 다 넘기더라도 간단한 해설이나 주석은 필수였다고 생각해요.

이게 완역본이 맞는가 하는 것도 애매한 부분이죠. '아라비안 나이트' 자체가 떠돌던 전설들의 모음이니 완벽하게 정본이라고 내세울만한 게 애초부터 없습니다. 그래도 영국사람 버튼이 가장 집대성에 가까운 판본을 내놓았다고 해서 그걸 원전 삼아서 '완역판'이라고 내놓은 거죠.

근데 이건 아랍의 이야기잖아요. 그렇다면 당연히 번역하는 사람도 아랍 문화에 대해 정통한분이었어야 한다고 봐요. 하지만 그냥 영문학 전공하신 분이 영문학 소설을 번역해서 낸 것같아요. 혹시라도 번역하신분께서 아랍쪽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결과물에서는 그런 걸 느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제대로된 완역판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 '아라비안 나이트'가 처음 서점가에서 히트하던 무렵은 디즈니의 [알라딘]이 히트했던 시기와 대략 맞닿아 있는데 그때 나름 화제가 되었던 것이 ''아라비안 나이트'의 원본에는 알라딘 이야기가 안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10권짜리 책에는 알라딘 이야기는 빠져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버튼이 쓴 '아라비안 나이트'에도 알라딘 이야기는 나옵니다. 버튼은 본편에 해당하는 10권을 낸 후에 6권을 추가로 내놓았고 이것까지 합쳐서 현재 버튼판 '아라비안 나이트'는 총 16권입니다. 나중에 내놓은 여섯권에는 갖가지 주석과 본편에 빠진, 다른 전승이나 다른 판본에 실린 이야기들이 추가로 수록되어 있는데 알라딘 이야기는 거기 들어있다고 합니다.

이중에 먼저 나온, 이른바 본편 10권만 번역해서 내놓고는 '완역'이라고 한 거죠. 어쨌든 본편 10권은 다 번역했으니 아주 거짓말은 아니라 해도 완역이라는 표현을 쓰긴 조금 거시기한 면이 있죠.

그리고 근본적으로 아랍지역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영어 번역판의 중역으로 낸 게 과연 최초의 완역판이라고 할만한 성질의 것인가도 생각해볼 문제일 테고요...


그렇지만 아랍문화에 정통하신 분이 아랍어 원본을 보고 번역하게 될 일은 앞으로도 아마 꽤 오랫동안 없을 것 같으니 그때까지는 이게 그래도 분량면에서는 가장 충실한 버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그게 영어원본에서 사실상 1/3쯤이 빠진 버전인데도 불구하고...) 대략 완역에 제일 가까운...이 되겠죠. 마음에 차지는 않더라도 딱히 다른 대안도 없고...

세월이 꽤 지났으니 이후로도 몇가지 버전의 '아라비안 나이트'가 나온 모양인데 아직도 분량면에서는 이 쪽을 따라잡을 게 없다나봅니다. 완역임을 주장하는 다른 판본도 있는데 그건 또 다른 서양 작가의 번역판을 또 중역한 거라하고, 분량면에서는 이쪽보다 더 적다고 하네요. 양을 중시한다면 결국 이거 밖에는 없죠. 어차피 재미난 이야기를 보고싶으면 축약판 보면 되는 거고


이런 저런 문제들 때문에 20년쯤 전에 범우사에서 나왔던 10권짜리 '아라비안 나이트'는 재미난 이야기책을 보고싶거나 가볍게 읽을 거리를 찾는 사람에게는 좋치 않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했으니 이 책을 보는데 필요한 정보들은 독자가 자력으로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보려고 마음먹으면 못볼 건 없겠지만... 어쨌거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예요.
언젠가는... 이걸 붙잡고 끝까지 읽을 수 있게 되길 희망합니다. 언젠가는...





그나마 읽어본 부분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밥먹기 전에 손 안씻었다고 바로 손모가지를 뎅강 잘라버리던 거.(게다가 손목 잘린 친구가 그때까지 그 이야기 주인공이었음)


sattva
46 Lv. 395329/4000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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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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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1


  • 여름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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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야한 내용 많다고 해서 좀 독파해보려고 했는데..^^;

말씀하신대로 페이지가 잘 안넘어가는 책이라 포기했던 기억 납니다.

11:58
14.01.02.
2등

저는....굉장히 보고 싶었는데, 못 본 케이스에요. 

군대 행정자료실에 1~4권이 있어서 읽고 다음권을 읽으려고 했는데, 너무 야하다는 이유로, 구입거부를 당해서....더 못읽었죠.


근데, 이야기 패턴이 너무 반복되는 부분이 있어서, 좀 지루한 면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재밌는 부분만 넘기면서 읽었습니다. 그래도 다 읽고 싶었죠..

12:07
14.01.02.
profile image 3등

우리나라 번역 퀄리티가 전체적으로 좀 그렇...죠...

익무에서도 영화자막 얘기 종종 나오겠지만...

영어 번역없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요즘엔 자주 듭니다.

그나마 일어는 자막없이 볼 수 있어서 다행 -_-;


12:09
14.01.02.
profile image

주석 없는건 치명적이네요..

가뜩이나 생소한 중동 문화인데, 주석까지 없다면.....

일일이 인터넷 검색해보고 봐야 하려나요... ㅎㅎㅎ


그림동화도 그렇고 우리가 어릴때 보고 자란 이야기들이 사실은 잔인하고 야하고 그런 작품들이 많다고 하더라구요.

그 이야기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12:24
14.01.02.

열권짜리가 완역이 아니었다니.저도 몇권까지 봤는지 기억이 안나요.그전에 축약본 종류만 엄청 많았고

조금씩 다 건드려봐 가지고 막상 완역판은 왜 이리 재미가 없냐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12:28
14.01.02.

처음 동서 문화사 판 읽고 재미있다 하다가 구할 수 없어서 이 범우사 판 10권짜리로 다 읽어야지 했는데 2권 이후로 나가지 않데요.

번역이 문제인가. 진짜 지루하게 나온다. 이것도 작가가 술술 읽히게 손 대는게 좋은가. 삼국지는 작가마다 나와서 읽는 맛이 있는데... 그냥 완역판은 좀.... 번역자의 너무 학술적인 자세 때문인지 생동감 있는 말이 잘 안 보여요.

13:31
14.01.02.
profile image
저도 처음 몇 권 읽다가 관뒀어요. 재미가 없어서...ㅜㅜ
13:36
1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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