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각설하고, [부러진 화살](이하 [화살])은 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일반적인 법정영화에서는 이 사건을 둘러싸고 사건을 은폐, 혹은 왜곡하려는 악의 세력과 이에 맞서는 순결한 집단간에 벌어지는 지능적인 대결을 보여주겠죠. 혹은 이 사건을 둘러싸고 체제 내부에서 압박받는 피해자의 자위권 행사에 대해 웅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화살]은 그 길을 가지 않습니다. 대신 공판과정을 훑어내려가며 이 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주체들을 '까는 데' 집중해요. '법정실화극'이라고 광고하고 있으나 여기서 액센트는 '법정'보다는 '실화'에 맞추어야 합니다.
대체로 법조장르물의 속성이 그렇지만, [화살]이 노골적으로 풍자고발극의 형태를 취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화외적인 부분에 기인하지요. 이 사건을 둘러싼 검찰과 사법부의 행태는 어이가 없다 못해 방귀가 나올 지경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증거물을 제출해놓고 과학적인 부분이라고 우기지를 않나(실제 사건의 배경은 겨우 몇년전이다. [살인의 추억]때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증거물을 분실하지 않나, 게다가 사법부는 증거의 확충을 요구하는 피고측의 요청을 누가 봐도 고의적인 태도로 묵살합니다. 그러니까, 낄데 안낄데 구분 못하고 지엄하신 사법부의 권위에 기스를 낸 꼴통에게 쓴맛을 보여주자는 업계종사자들간의 암묵적인 합의인게지요.
실제 사건의 전말이 이따위다 보니, 이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인물을 희화화 시키지 않더라도 자연히 이야기의 분위기는 개그물 비스무레하게 흘러갑니다. [화살]은 이 부분에 주목하구요. 증거수집이나 변론작성, 그 와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인물간의 갈등은 최소한으로 줄입니다. 예를 들어 극초반에서 김명호와 박변호사간의 대립이 나오지만, 이는 긴 싸움중에 일어나는 균열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인물을 관객에게 명확히 인지시키기 위한 일종의 도구로 작용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이런 식으로 사용됩니다. 해서 이런 '부수적인' 요소들을 러프하게 치고 나가면서 [화살]은 큰 줄기인 공판의 진행에 촛점을 맞추어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법체계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데' 집중합니다.
이렇게 스트레이트한 진행은 적어도 본작에서는 그 힘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상영시간이 제법 길고 대부분의 신이 법정을 배경으로 촬영되었어요. 자칫 단조로움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나 중심인물의 존재를 집중적으로 각인시키고 이들을 중심으로 툭툭 끊어치는 흐름으로 구성된 이야기 전개는 상영시간 내내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하더군요. 게다가 극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자잘한 유머신들은 [화살]을 고발극임에도 불구하고 [도가니]나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어]와는 달리 꽤나 명랑한 분위기로 끌고 가는데 일조합니다. 문제는 이 유머신들이 양날의 칼로 작용한다는 거에요. 몇몇 장면들은 그야말로 깨알같은 재미를 안겨주지만, 개중 반 정도는 '음 내가 이걸 보고 웃어야 하는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때때로 어떤 장면들은 큰 흐름 사이를 부드럽게 넘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아 이쯤에서 한번 웃겨주고 넘어가야지'라는 계산이 보이는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살]은 좋은 영화입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직시하고 분노하며 때로는 이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합니다. 가끔 손발이 오그라드는 면이 없진 않지만, [화살]은 이 모든 것이 결국 정의로운 길로 나아가게 될것이라는 희망을 견지하고 있어요. 아울러 법조물이 가지고 있는 장르적 재미 또한 놓치지 않구요. 바람직하고, 따뜻하며, 재미있습니다.
뱀발 : 하지만 제일 손발이 오그라드는 부분은 엔딩크레딧에 나오는 노래였어요. 이봐, 이건 반올림 5탄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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