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man (1949)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흑백영화. 스포일러 있음.
가장 아름다운 흑백영화로 이름 높았던 영화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폐허가 된 비엔나를 무대로 한 스릴러물이다.
폐허가 된 비엔나에서 직접 찍은 영화이기 때문에, 무척 실감난다. (영화 처음에, 심지어는, 다뉴브강에 떠내려 온 시체 영상을 집어 넣는다.) 1949년 영화이니까, 당시 상황을 당시에 찍은 영화다. 나중에 당시 상황을 픽션으로 찍은 영화들과 달리, 굉장히 자연스럽다.
2차세계대전 후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비엔나에서는 장물시장이 활성화된다. 뭐 초콜릿이나 통조림같은 것을
몰래 매매한다고 대수이겠는가? 하지만, 이들은 가짜 페니실린까지 유통시킨다. 죽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이 당시 비엔나를 세 개 연합국들이 공동으로 관리한다. 영국군경찰들은 페니실린을 몰래 유통시킨 조직의 두목
오슨 웰즈를 추적한다. 말하자면, 공공의 적이다.
미국에서 친구 오슨 웰즈의 초청을 받아 비엔나로 취업하러 온 삼류소설가 조셉 코튼이 주인공이다.
산타페에서 온 사나이같은 삼류 서부극소설을 쓰던 조셉 코튼은 파산한 상태다.
그러던 차에 친구 오슨 웰즈가 비엔나로 불렀으니, 희망에 부풀어 달려온다. 그는 늘 낙관적이고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자기도 자기 자신이 그런 사람인 줄 아마 몰랐겠지만) 끈질기고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할 때는 거는 강단있는 사람이다.
조셉 코튼은 비엔나에 도착해서 친구 오슨 웰즈가 이미 교통사고로 사망했음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것이 좀 이상하다. 오슨 웰즈는 집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 사고를 낸 사람은 그의 운전기사였으며, 마침 부근을 지나가던 오슨 웰즈의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발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슨 웰즈의 시체를 운반한 제3의 사나이가 있었는데, 누군지 정체를 모른다. 조셉 코튼은 제3의 사나이의 정체를 뒤쫓는다.
굉장히 잘 짜여진 복잡한 플롯같은 것은 없다. 사실 그것이 이 영화를 걸작 느와르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모여서 아주 흥미로운 사건들을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 이 영화의 아이덴티티다.
조셉 코튼이 혼자 이 영화를 끌고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돈 한 푼 없어도 늘 즐거운 낙관주의자 조셉 코튼이 빙긋빙긋 웃으면서 살벌한 범죄세계를 파헤치고 다니는 것이 이 영화의 아이덴티티다.
그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알리다 발리가 연기한 여배우 안나다. 범죄조직 두목 오슨 웰즈의 애인이다.
알리다 발리는 오슨 웰즈를 사랑한다. 오슨 웰즈가 자기를 배신하고 차버려도 그를 사랑한다. 일편단심이나 순애보따위가 아니다. "당신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우리가 어떤 일들을 함께 겪었는지......" 이게 그녀의 대답이다.
알리다 발리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도망나온 사람이다 (유태인?). 나찌 치하에서 목숨의 위협을 겪을 때,
오슨 웰즈는 그녀를 도와 패스포트를 위조해주고 함께 죽음의 땅을 탈출해주었다. 그들이 무엇을 함께 겪었는지에 대해 영화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때문에, 알리다 발리는 오슨 웰즈를 사랑하고, 오슨 웰즈가 자기를 배신한다고 하더라도 그를 배신하지 못한다. 오슨 웰즈가 가짜 페니실린을 유통시켜 사람들을 무수히 죽였다고 하더라도, 알리다 발리는 그를 배신하지 않는다. 오슨 웰즈가 알리다 발리를 무슨 버려도 되는 먼지취급을 한다는 것을 알아도 알리다 발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도, 자신의 일부분이 되어있는 오슨 웰즈는 사리지지 않는다" - 무슨 뜻일까? 아마 2차세계대전을 겪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영화에 지금도 깊이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 주제다. 아마 지금 홀로코스트에 대해 만든 영화들보다도 더 홀로코스트에 대해 잘 전달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오슨 웰즈는 사이코패스다. 사람들이 자기때문에 많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서도 싱긋 웃는다. "저 아래 사람들을 봐. 다 점으로 보이지? 만일 누군가가 저 점 하나가 사라질 때마다 돈을 준다고 하면, 너는 거절하겠어?" 조셉 코튼은 자기와 죽이 잘 맞았던 친구로 오슨 웰즈를 기억한다. 알리다 발리는 자기를 목숨을 걸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구해준 사람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였던 그가, 그들이 기억하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오슨 웰즈가 창조력의 절정에 있을 때 출연한 영화로 유명하다. 그는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유쾌하게 행동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안다. 그는 사이코패스다. 저것은 다 연기하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자기 대사도 직접 썼다. "뻐꾸기시계" 대사는 아주 유명하다.
잘 만든 스릴러이지만, 주된 주제는 멜로 드라마다.
폐허가 된 비엔나 밤거리에서 찍은, 빛과 그림자 대비가 아주 선명한 장면들은 아주 아름답다. 그리고, 비엔나 하수도 암흑 속에서 벌어지는 추격전도. 흑백화면의 아름다움을 극단으로 살린 예이다.
이 영화의 엔딩장면은 매우 유명하다. 죠셉 코튼은 오슨 웰즈를 죽인다. 아니, 그를 처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에서 알리다 발리를 발견한다.
그는 먼저 와서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그녀를 기다린다. 저 멀리로부터 그녀가 오는 것을 롱 테이크로 아주 지루할 정도로 길게 보여준다. 알리다 발리는 죠셉 코튼을 쳐다보지도 않고 싸늘하게 지나가 버린다.
우리나라 시인 박인환이 다른 시인들과 이 영화를 보다가 이 정면에서 그 쿨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박인환은 다른 시인들에게 이렇게 시를 쓰란 말이야 하고 소리쳤다고 한다.
** 요즘은 오슨 웰즈에 대해서 좀 들어갔는데, 20세기에는 오슨 웰즈는 대단한 천재로 인정되었다. 그가 각본가가 되었더라면 셰익스피어같은 문학가가 되었을 것이고, 발명가가 되었더라면 에디슨같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그 급의 천재로 인정된 사람이 오슨 웰즈다. 하지만, 기회를 계속 받는 대신, 제대로 된 역을 맡기 위해 뛰어다녔으니 허망한 일이다. **
추천인 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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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고전 흑백영화군요.
제3의 사나이... 멜랑꼴리한 음악 생각납니다.
엔딩이 참 쿨하죠. 박인환 시인 에피소드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