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더락! 본 후기] 씹덕을 노리는 락덕후들
애니를 보다보면 가끔씩은 디테일이 없어서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덕후의 심장을 불태우는 건 바로 사소한 디테일이거든요
또 어떠한 소재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너무 대중적인 것만 나와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 또한 그렇습니다
기타는 그냥 현을 튕기는 악기이며, 밴드는 그저 음악가들의 모임에 불과한 것처럼 묘사하는 것들이요
보통 그런 것들은 음악물이 아니라 다른 장르에 음악을 섞었을 뿐인 작품이지만요
<봇치 더 락!>은 간만에 나온 디테일이 살아있는 음악애니입니다
그중에서도 인디 락을 주요 소재로 잡고 있는데 단순한 모에를 노리는 씹덕용 애니처럼 보여도 세부적으로 들어가 밴드와 락에 대한 묘사의 디테일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물론 모에도 상당하지만요
고토 히토리는 심각할 정도의 대인기피증을 가진 소녀이지만 인기인이 되고 싶다는 속물적인 생각만은 버리지 못합니다
중학생 시절 티비에서 락밴드의 기타리스트를 보자 히토리는 인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기타를 하루에 6시간씩 연습하게 되며 굉장한 실력가가 됩니다만... 그땐 이미 추억 하나 남기지 못하고 중학교를 졸업해버립니다
고등학교에 와서 기타리스트로서 인기인이 되고자 했지만 대인기피증 때문에 좀처럼 다가가지 못하는데
어느날 우연히 인디밴드의 기타리스트를 찾는다며 다른 학교의 한살 선배 이치지 니지카가 히토리를 밴드에 들어오라며 제의합니다
한편의 성장물로서 봐도 괜찮고 한편의 음악물로서 봐도 괜찮은 작품입니다
성장물로선 여러가지 기법으로 표현하는 심리묘사가 일품이고
음악물로선 락밴드에 대한 세부적인 장르와 인디밴드문화에 대한 현실성 가득한 디테일이 일품입니다
먼저 음악물로 보자면 인디밴드 문화를 밀착 취재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묘사입니다
라이브하우스에 모이는 소규모 팬층과 공연을 하기 위한 조건, 티켓판매 등 극히 현실적인 요소가 가득해요
더불어서 연주 장면의 디테일도 상당합니다
대표적으로 연주 장면에서의 각 연주자들끼리의 팀워크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디테일합니다
밴드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합주"임을 굉장히 잘 묘사합니다
그래서인지 대인기피증이 심한 고토 히토리가 굉장한 실력가임에도 불구하고 첫 합주 때 엄청 못 친다는 평가를 듣는 재밌는 전개도 볼 수 있었고요
음에 따라 달라지는 운지법을 세세하게 작화로 표현했어요
사실 이 부분은 예전부터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들에게 바라는 점이기도 했어요
옛날 <스폰지밥 더무비>의 클라이막스 기타연주 장면처럼 음에 따라 달라지는 손 작화를 기대하지만 기타를 치는 건 그저 기타를 친다는 느낌만 주는 동화만 보이는 경우도 허다했거든요
나중에 찾아보니 실제 배우가 연주하는 장면을 모션캡쳐해서 로토스코핑으로 덧댔다고 하더군요
(운지법에 따라 세세하게 달라지는 손)
(짧은 시간 서로 아이컨택하며 시작하는 료와 니지카)
성장물로서 보자면 대인기피증을 가진 고토 히토리가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무대에 서서 고개를 드는지에 대한 과정이 꽤나 드라마틱한 전개로 사이키델릭하게 묘사됩니다
고토 히토리라는 캐릭터의 첫 등장은 혼자인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 뒤로 히토리는 사람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며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닙니다
이는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기타를 칠 때도 마찬가지죠
연주할때마다 항상 고개를 숙이고 연주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닥을 치는 자존감에 인기인이 되고 싶다는 자신을 글러먹은 사람이라 표현하며 안 그래도 숙이고 있던 고개를 더 숙입니다
이때의 심리묘사가 굉장합니다
친구가 없어서 가족(그중에 강아지까지 포함)에게 티켓을 팔아야 하나 고민하는 장면, SNS를 하는 자신을 상상하는 장면 등 심각할 정도로 떨어진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가진 혼란스러움을 사이키델릭한 방향으로 여러가지 기법을 사용해 보여줍니다
하지만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서히 고개를 들게 되는 것이 보입니다
처음 라이브하우스에서 알바하면서 손님한테 음료를 제공하는 순간, 길 가다 만난 이상한(?) 언니와 함께 처음으로 버스킹을 하는 순간 등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드는 것이 잘 묘사되요
알바를 가기 싫다며 발악하는 귀여운(?)장면에서 오늘도 알바를 가야한다고 독백하는 평범한 장면의 수미상관도 잘 넣었습니다
(다른 팀원과는 다르게 얼굴에 그림자가 진 히토리)
(글리치 연출)
(스크린톤 작화)
여러가지 단점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단점을 잡기 싫어지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우연히" 밴드를 결성하는 근처 학교 니지카 라는 여자애가 있는데 얘가 돌아다니던중 "우연히" 치지도 않을 거면서 기타를 매고 다니는 히토리 라는 여자애를 만난다는 설정부터가 작위적입니다만 그럴거면 작품은 시작도 못했겠죠
기타를 못 치는 이쿠요가 몇달 기타를 배웠다고 보컬, 기타 연주를 전부 소화하면서 애드리브까지 해내는 전개는 말도 안 되는 장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 뒤의 봇치의 보틀넥주법 개쩔었잖아요
후반에 나오는 메이드카페 장면은 굳이 넣을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전체 내용에서 붕 뜨지만 애초에 덕질하는데 캐릭터들이 메이드복 입은 거 보고 싶잖아요
봇치가 메이드복 입은거 다들 보고 싶었잖아요...
무엇보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왔다간다(키타 이쿠요)...
(한때 인터넷 밈이었던 그 장면)
("솔직히 최고의 배트맨은 조지 클루니라고 생각해요")
(봇치야 그게 무슨 말이니)
결과적으로 간만에 대만족한 애니였습니다
곧 극장총집편이 개봉하는데 일하는 업종이 업종인지라 확언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된다면 꼭 보러가고 싶네요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9점입니다
작성자 한줄평
"소녀의 마음에도 락은 존재한다."
여담이지만 학교에 교복도 안 입고 츄리닝 입고 오면서 머리는 분홍색으로 염색한 애가 뒷자리에서 고개 숙이고 있으면 저도 다가가기 힘들 것 같은데요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기타케이스를 들고 온다?
이거 미국이었으면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었을 겁니다
스누P
추천인 7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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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장면을 디테일하게 만든 걸 보니
교토 애니메이션의 초기 히트작 중 하나인 '케이온!'이 생각나네요.
경음악부 여고생들의 좌충우돌 일상을 다룬 코미디 애니메이션인데,
교내 공연 장면에 굉장히 공을 많이 들여서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죠.
주연 성우들도 노래를 굉장히 잘했고요.
역시나 쿄토 애니메이션의 히트작 중 하나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로 학교 문화제의 밴드 공연 장면에 상당히 공을 많이 들여서
강한 인상을 남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