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볼 극장판인데 타겟층은 어른인 희한한 작품 어른제국의 역습 오마주 분석
다시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호평을 받고
비단 짱구 극장판 시리즈를 넘어서 일본 애니메이션 통틀어 역대급 완성도를 보여주는 걸작 <어른제국의 역습>
저도 초등학생 시절에 처음 보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 이제 직장인이 된 지금도 간간히 다시보곤 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어른이 된 현재에 이 작품은 어릴 때 보던 느낌과 전혀 다른 느낌이에요
더 많이 알고 있기에 더 큰 울림이 느껴진달까요
이 작품은 재밌게도 타겟층이 아이들이 아닌 아이들을 극장에 데리고 오는 어른을 겨냥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번엔 아이들은 모르는, 어른들만이 알아차릴 수 있을 이 작품이 오마주하고 있는 요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제목은 그 시대 최고의 스페이스 오페라 명작 <스타워즈:제국의역습>의 패러디입니다
재밌게도 본작 역시 아버지가 악역에 섰다가 다시 선역으로 돌아오는 전개가 나오고, 가족이라는 키워드와 아버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측면에서 괜히 패러디한 부분은 아니겠죠
작품이 시작하면서 짱구 가족이 특촬물을 촬영하는데 이때 촬영하는 작품은 아무리 봐도 울트라맨의 패러디
짱구와 짱구 엄마가 착용한 복장은 1966년 <울트라맨>의 과학특수대 복장입니다
거기에 더불어 괴수의 디자인도 울트라맨 시리즈의 제 1호 괴수 베무라와 닮았군요
당시엔 CG가 없었기 때문에 배우들이 슈트를 입고 연기해야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실제 사람이 연기하기 때문에 과격한 액션씬이 나오면 조금 위험한 촬영이었죠
재밌게도 짱구 아빠가 패러디한 울트라맨에겐 원래 가슴팍에 변신시간의 제한시간을 알리는 컬러타이머가 존재합니다만, 울트라맨의 원작 디자이너는 이 컬러타이머를 싫어했고 오로지 극적 재미만을 위해 만들어진 제작자들의 입김이 들어간 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본작에서 울트라맨을 패러디한 짱구아빠의 가슴팍에는 컬러타이머가 없네요
마찬가지로 짱구 엄마는 마법소녀물을 촬영하게 되는데 그 내용도 그렇고 지팡이의 디자인도 그렇고 영락없는 1966년작 <요술공주 샐리>의 패러디입니다
하지만 복장은 같은 시기에 방영했던 <거울소녀 라라>에서 따온 것 같네요
두 작품 모두 현재 모든 마법소녀물의 시초이자 어머니격인 작품이라 현대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작품입니다
다만 <거울소녀 라라>는 상대적으로 개그만화로서의 성격이 강하기도 합니다
본작의 무대가 되는 장소 20세기 박물관엔 태양의 탑이 하나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이 구조물은 1970년에 개최되었던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박람회는 일본에게 있어 커다란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바로 2차대전의 패전국으로 인한 상처를 딛고 다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된 축제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일본 최고의 전성기였던 버블경제가 앞에 기다리고 있으니 그야말로 꿈과 희망이 살아있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군요
본작의 빌런인 켄과 미셀은 특유의 표정, 안경, 헤어스타일을 통해 당시 최고의 가수였던 존 레논과 그의 연인 오노 요코를 모티브로 디자인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작중 두 인물은 굉장히 끈끈한 연인관계로 보이고 실제로도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달달한 연인이었으나 다들 알다시피 훗날 "잃어버린 주말"이라는 기간으로 불리며 둘은 잠시 별거를 하게되죠
존 레논은 마크 채프먼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고 마크는 여전히 수십년째 교도소에 수감중입니다
의미심장하게도 본작에서 역시 켄과 미셀은 결말에 가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려 하다가 실패하고 삶의 의지를 되찾습니다
하라 케이이치 감독 또한 존 레논이 그렇게 살아있었음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켄과 미셀이 저녁놀 마을을 통해 집에 가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포크송은 1969년 발매된 "하얀색은 연인의 색"이라는 곡입니다
엘리자베스 와그너와 크리스틴 롤세스가 불렀으며 1970년에 히트를 치고 여러번 리메이크 되기도 했던 일본 쇼와시절을 상징하는 포크송 중 하나입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크리스틴은 지금은 고인이 되셨군요
20세기 박물관에서 선생님들이 코스프레하고 있는 복장은 당시에도, 어쩌면 지금도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는 마법소녀 걸작 <미소녀전사 세일러문>의 복장을 모티브로 디자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디테일한 부분이 있습니다
세일러문은 1992년에 처음 연재된 만화이며 애니메이션도 이때 방영되었습니다
짱구 엄마가 <요술공주 샐리>를 패러디한 것에 반해 더 어린 선생님들은 비교적 더 늦게 방영된 애니메이션을 패러디했습니다
지금 다시 봐도 <세일러문>은 여러모로 선구적인 아이디어가 넘치는 작품입니다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짧은 치마가 특징인 복장도 그렇고, 세일러 우라누스와 넵튠은 동성애에 대한 안 좋은 시선들로 가득했던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레즈비언 커플로 등장하는데다가, 악당들 가운데엔 여장남자, 게이 커플도 등장합니다
이보다 PC한 애니가 드물 정도네요
아이러니하게도 1992년은 일본 버블경제의 말기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이때부터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었죠
20세기 박물관에 의해 세뇌된 짱구 엄마 아빠는 짱구를 냉랭하게 내치며 이상한 포즈로 조롱합니다
이건 1962년 처음 연재를 시작하여 1966년에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오소마츠군>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커다란 센세이션을 몰고 왔던 "셰-!" 포즈입니다
국내에선 "안녕~"하고 인사라는 것으로 더빙되었지만 원어로는 확실하게 "셰-!"라고 말합니다
어렸을때는 대체 뭐지...? 하면서 짱구랑 똑같은 반응으로 봤었는데 나이를 먹고 알게되니 새롭게 다가오는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셰-! 포즈의 인기는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일본인 아내 오노 요코를 둔 존 레논 역시 일본에 와서 저 포즈로 사진을 찍었고
현 일본의 왕 나루히토 천황 역시 어릴적에 저 포즈로 사진을 찍은 것이 유명합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이 총 3번 이루어졌는데 2번째인 1988년작은 국내에선 <육가네 6쌍둥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고 가장 최근인 <오소마츠상>은 정신나간 센스의 개그 애니메이션으로 큰 인기를 끌었죠
아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켄이 몰고 온 차량은 1967년 출시하여 전세계에 337대만 생산된 엄청난 레어 모델 "토요타 2000GT"입니다
여러모로 고급차로서 면모가 돋보이는 차량이며 내부에 우드디자인 장식을 넣었다던지, 일본 차량 최초로 4륜 파워 디스크 브레이크를 탑재한 모델로 유명하죠
사진으로 보여드리는 실제 차량은 컨버터블 모델인데 숀 코네리 옹의 <007 두번 산다>의 촬영만을 위해서 토요타 측에서 단 2대만 생산했던 모델입니다
어마어마한 차량이지만 본작에선 유치원 버스에 의해 범퍼가 긁힌다던지, 짱구에 의해 몹쓸 짓을 당하는 등 여러 굴욕을 당합니다
컨버터블 모델로 등장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해집니다
마지막으로 정신을 차리고 최종결전을 시작하기 전 켄의 집에서 대화하는 장면은 그저 지나가는 장면이 아닌 당시 일본 영화 감독 중 구로사와 아키라와 함께 최고의 거장이라 불린 오즈 야스지로의 트레이드 마크인 "다다미샷"입니다
카메라의 높이를 다다미에 앉은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서 찍는 샷인데, 다다미가 주로 깔린 일본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유명한 시점샷입니다
볼 수록 정말 잘 만든 작품입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이 있다면 짱구라는 프랜차이즈의 유치함은 잠시 내려놓고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스누P
추천인 8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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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도 거울소녀 라라(마법의 앗코쨩)와 오소마츠상은 같은 원작자에게서 나왔죠.
끼얏호우!
지금 아이를 낳은 시점에 이 작품을 다시 한번 보고 싶네요. 이 극장판을 처음 봤을때도 눈물이 났었는데 말이죠.
이런 디테일한 포인트를 알게 되서 너무 새롭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오즈 야스지로 느낌이 났는데 좋네요
와.. 이건 쇼와 시대 살았던 일본인들이 아니면 못알아볼 요소들이 가득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