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돌풍 - 간단 후기
오랜만에, 걸출한 드라마를 만났네요. 생각 없이 어젯밤에 스트리밍 시작했다가 끊지 못하고 밤새 봐버렸습니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남성 취향 정치 드라마!
돌풍!
이 드라마는, 적절하거나 잡다하게 타협한 과거사에 대한 미화용 드라마가 아니라 현대 정치를 정면으로 다룬 보기 드문 드라마입니다. 그런 까닭에 대략 "30년"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한국의 현대사를 간혹 섞어서 보여주기는 합니다. 전대협으로 상징할 운동권 정치인, 공안 검사로 대표할 독재 권련 휘하 정치인, 또 이들과 맞서려고 하는 노동 변호사 또는 그에 준할 검사 출신 정치인 등이 각각의 캐릭터로 분해 대한민국 정치를 상징하는 기수로 등장합니다.
즉 정치 드라마이자 캐릭터드라마입니다.
스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캐릭터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주인공인 박동호는 이제 재벌과 손을 잡아 변절했다고 확신하는 대통령을 시해하려 합니다. 박동호는 국무총리이자 과거 검사 출신입니다. 세상을 정의롭게 바꾸겠다는 결의에 차 있기에 변절한 대통령을 자신의 손으로 시해하고 국무총리가 대통령을 대신하는 기간 동안에 대한민국을 바꾸어 보려 합니다.
이에 맞서는 정수진은, 경제부총리이고, 과거 전대협 출신으로 현재는 누구보다 정치와 돈에 미친 정치인입니다. 겉으로는 고상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악의로운 사람입니다.
이 둘을 축으로 대한민국의 권력을 쥐기 위해 공안 검사 출신 정치인, 철새 정치인 등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조력하거나 조종하는 대한민국 실세 경제 그룹으로 대진그룹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이들 캐릭터의 갑론을박 용호상박이 드라마의 플롯입니다. 여기에 우리에게 실제 벌어졌던 현대사를 붙여보면 됩니다.
캐릭터 드라마라고 하지만, 이 드라마가 캐릭터를 투영해 현대사에 취하는 스탠스는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아시겠지만 결국 감상을 말하는 이는, 드라마를 본 관객이자 시청자입니다. 즉 이 드라마가 썩어빠진 정치 드라마로 기능할지, 아니라면 진취적인 정치 드라마였을지는 결국 관객의 몫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게 있어요. 뭐냐, 바로 개별 인간, 보통 인격체 같은 일반적인 사람입니다. 그게 없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과거 특정 사건을 다루기보다는 주로 현재, 그리고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다룬 "정치 스릴러"였다고. 그런 까닭에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가 아니었으면 드라마 공개 여부 자체가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여기에 더해서 드라마가 깔고 있는 관점이 점점 드러날수록 재미를 떠나 당혹스러움이 폭풍처럼 피어났다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네요. "너희 모두가 잘못이야!" 같은 모두까기 관점이나 인식... 위에서 적었던 우려스러운 스탠스!
일단 이 드라마의 장점 먼저 설명을 드리면!
아마도 16부작 정도였을 드라마를 12부작으로 줄인 "티"가 곳곳에 납니다. 그런 고로, 드라마의 속도감이 장난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질질 끄는 반복 설명 등이 상당히 거세되어 있고, 드라마 자체가 35-45분 사이라 잠시 한눈을 팔면 드라마가 이미 상당하게 진행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만큼 플롯이 거침없습니다.
정치 드라마에 맞게 대한민국 현대사를 두루 활용하고 아우릅니다. 특히 지난 2천 년 이후 한국의 현대사를 놓치지 않고 깨알같이 이용하는 터라 대한민국 사람이면 정말 공감도가 높을 드라마라 여겨집니다. 누구의 편이기도 했다가 누구의 편이 아니기도 했다가.
박동호와 정수진으로 대표할 캐릭터라이징이 선명한 탓에 이들 둘의 다툼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힙니다. 한쪽이 이겼다 싶으면 다른 쪽이 반격하고, 막아냈다 싶으면 재차 공격하는 형태가 실제 정치 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다채롭게 진행됩니다.
여기에 실제 있을 법한 정치인들의 뒷배이자 때로는 그들을 주무르는 재벌 그룹과, 이들에 기생하려는 여러 정치 세력의 모습이 잘 녹아들었습니다. 정말 다시 보기 힘들 현대 정치 드라마였습니다.
군더더기 없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겠으나 그만큼 이 드라마를 어떻게 하면 속도감 있게 치고 나갈 것인지를 고민한 결과라고 보아야겠습니다. 거기에 실제 벌어진다면 이 드라마처럼 진행하고 말 대한민국 정치의 특징적인 맹점을 잘 악용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상당한 공감을 불러냅니다.
더불어 후반부로 갈수록 정치에 기생하는 재벌과, 재벌에 기생하는 정치를 그럴싸하게 포장해 잘 보여주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실제 그럴 거야, 하고 생각할 거라 봅니다.
다만 단점도 명징합니다.
이 드라마에는 "All or Nothing", 안타고니스트만 있거나 반대로 프로타고니스트만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과거 운동권, 극중에서 전대협 출신으로 묘사되는 정수진과 남편인 한민호는, 과거의 신념에서 변절한 사람들입니다. 전대협 의장이었던 한민호는 국회의원에서 낙선한 뒤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하는 부인 정수진의 뒤에서 기생합니다. 정수진은 한때 동경했던 남편을 위해 여러 악의적인 거래를 서슴없이 연결하고 때론 재벌의 앞잡이가 되거나 재벌을 직접 운용하려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과거 운동권을 묘사했다면 "특정의 캐릭터"라 치부하겠지만 정수진이 자의적으로 운용하는 거의 모든 단체와 개인의 면면이 실제 명칭마저 떠올릴 수 있는 운동권, 노동권이며 이들 모두가 거대한 카르텔이자 악인으로 분화되어 돈이면 움직이는 괴물로 묘사된다는 점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 드라마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모든 캐릭터가 실존 인물 누구를 딴 것 아니냐는 추정을 하게 만듭니다. 이것만큼은 잘못한 캐릭터라이징이라고 감히 말씀 드리고 싶네요.
이 드라마에서도 어느 정도 다루어지는 바이지만 좋은 게 좋다고 덮고 잘못한 걸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으니 벌어지는 일에 대해 밀도 있게 다루거든요. 이것을 독재자와 군사 정부와 연계해 이렇게도 말합니다. "독재자는 경제 발전을 시키려 했느냐, 군사 정부는 대한민국 성장을 안 시켰느냐" 같은 논리로 현대 정치인 특히 운동권 정치인을 같은 선에 놓고 말하게끔 둡니다. 이것은 아직 농익지 않은 또는 현대사를 학습하지 않은 관람자에게 눈가림이나 호도할 가능성이 높은 잘못된 인식과 방향성을 제시하게 됩니다. 더욱 고민하고 다루었어야 할 텐데 적절히 봉합하고 끝냅니다. 이걸 따지면 그러겠죠, 드라마 가지고 뭐 그러냐고. 그래서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드라마를 빙자해 잘못한 거라고.
길어졌네요.
또 다른 단점이라면 드라마 후반부로 향할수록 분명 다른 내용인데 같은 상황이 반복 재생산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 때문에 10화 이후가 지루해집니다. 무엇보다 둘의 대결에만 초점이 맞추어지고 속도 위주로 전개하다 보니 지루함과 더불어 드라마가 빈약해집니다.
결론해 보겠습니다.
이 드라마는 장점과 단점이 명징한 드라마입니다.
현대사를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박수칠 만합니다. 반면 작가의 특징적이며 오판, 호도하기 쉬운 관점이 가감없이 드러납니다. 또한 모두가 악인이라는 흐름에서 미친 듯이 살아도, 착하고 정도를 잃지 않으며 선하게 살아가는 일반적인 "밑바닥인" 국민에 대한 숙고나 예의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질타를 받거나 욕먹을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이 드라마에 깔린 정서는 지식인이 보는 입장에서 정치에 대한 동경과 그 반대 급부에 해당할 반목과 질타입니다만, 국민에 대한 예의가 없다는 측면에서는 보면 볼수록 괴랄하다는 생각이 진하게 들고 맙니다. 국민은 개, 돼지라던 어느 공무원의 말이 작가를 통해 현화하고 말았구나, 하는.
정치가 아무리 개돼지 같은 수준이어도 국민이 그렇지는 않거든요. 일반적인 통계로 보자면 96%의 국민은 선량합니다. 이를 나눈 것도 정치인이고 이를 이용하는 것도 정치인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 드라마를 가장 잘 이용한 것도 결국은 정치인을 빙자한 창작자들일 거니까요.
특히 이 드라마에서 보자면 촛불을 든 국민도 언제든 바보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정서가 곳곳에 깔려 마음 한편으로 섭섭함을 넘은 착잡함이 깊이 있게 틈입하더이다. 프로파간다에 이용당하는 국민이라는 설정이겠으나, 그것이 이 시대 지식인의 관점이구나, 해버리면 그야말로 우리나라는 정치를 넘은 절망이 곳곳에 엄습해 있다는 반증에 지나지 않잖아요.
이 드라마의 창작자가 이용한 드라마적 장치, 특히 대한민국 정치에서 벌어졌던 실제 일들 -대통령의 자살, 검사의 대통령 면박주기 수사, 운동권 변절, 정치를 움직이려는 재벌, 재벌을 이용하려는 정치인 등-을 모두가 악인이라는 시선으로 처리해내다 결국 검찰의 손으로 귀결하는 마무리는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렇게 까며 마무리합니다.
모두까기의 절망적인 결론을 말하고 싶었을 창작 의도와 달리 어디에도 국민은 없는 그저 정치 놀음, 지식 놀음으로 끝맺은 넷플릭스발 "참칭한"(드라마 속 대사 인용입니다) 은혜가 아니었다면 열심히 만든 드라마를 개봉이나 했겠느냐고. 이런 드라마적인 정치 놀음에 감사해야 할 관련 창작자들은, 과연 시청자에게 감사할까, 아니라면 넷플릭스에 감사할까, 하는 우문 하나로 말입니다.
추천인 11
댓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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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드라마 속도감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게 잘 만든 거 아니냐 하면 이 드라마는 100점입니다.
부디 기말고사 잘 치르시기를 바랍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십시오.
오늘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즐겁게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날 되세요.
오늘도 행복하고 좋은 일 가득한 하루 되세요.
"또한 모두가 악인이라는 흐름에서 미친 듯이 살아도, 착하고 정도를 잃지 않으며 선하게 살아가는 일반적인 "밑바닥인" 국민에 대한 숙고나 예의가 없습니다."
꼭 보려고 기대했던 작품인데 소설가님의 이 문장에 맘이 흔들리네요. 요즘 시국을 보고 있자면 이른바 이 "예의없는 자들"이 국민들을 얼마나 피곤하고 예민하게 만드는지 정말 절실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비록 드라마라 할지언정 정신적 피로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일단 1, 2화 정도 달려보고 계속 볼 지 여부를 정해야할 거 같네요.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그래도 한 번 보면 멈출 수 없는 마성이 있는 드라마였습니다.
즐겁게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
오늘도 좋은 날 되십시오. 행복하세요!!!
이번 돌풍은 한번 봐야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십시오. 부디 즐거운 감상이 되시기를 바랄게요.
비 많이 오는데 피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십시오.
[[촛불을 든 국민도 언제든 바보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정서]]
이게 왜 섭섭하죠??
저는 오히려 열심히 촛불든 사람으로써
별 이상한 놈들이 촛불정신 타령하면서 자기 권력위해 노력하는게 딱 보일때도 많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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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
권력자와 약자가 신분처럼 고정된게 아닌데
무조건적 스스로가 정의라고 믿는게 더 무섭죠
그런게 파시즘이고, 중세 종교재판이고 메카시즘인거죠
혁명가와 독재자는 동전의 양면이고
중국 소련 부터 잘 알수있죠
홍위병들은 스스로 악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종교재판이나 십자군저쟁은 스스로 악하다고 새각했을까요??
ㅡㅡㅡ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현대인이라면
프랑스혁명은 존중하지만
혁명이후 무고한 어린애까지 강에 던져죽이던 행위를 하던 혁명이후 독재자는 또 비판할수 있는것 아닌가요??
6.25이후 전쟁으로 수백만의 가족을 잃은 대한밋국 96%는 반공정서를 가지고 빨갱이 멸공을 외쳫을텐데
님 생각대로96%국민은 선량하다면 그시대 메카시즘이나 반공주의는 선량합니까??
제 생각엔 선량할수도 아닐수도 있다고 보는데
ㅡㅡㅡㅡㅡㅡ
그 시대 주류가 가진 생각이라고 다 옮은 결과가 나오는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대한민국은 20세기 중반이후
1. 지정학적으로 소련 미국이 충돌하는 위치에서도 독립하고 정부를 수립했구요
2.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발전을 이루었고요
3. 놀랍게도 민주주의를 이뤘습니다
1을 가지고 지분 요구하는 이승만 혹은 건국세력이 아직도 남아있죠
2를 가지고 지분 요구하는 박정희 세력이 박근혀퇴조로 많이 사라졌죠. 물론 아직도 지분요구하죠
3을 가지고 1986년적 세계관으로 계속 지분요구하는 분들은 아직 잘 살아남아있죠
ㅡㅡㅡㅡ
제가 96%의 촛불시민인데요
1 2 3 모두 그 시대에 필요성이 지나갔는데
계속 지분을 요구하면??
언제까지 그럴건지??
ㅡㅡㅡㅡ
그 시대 주류 국민이 다 지지했다고 해도
그 시대가 지나고서 정신차려 보면
비판거리는 많이 나오게되더군요
저 개인 생각으론
선과 악
권력자와 약자가
고정된게 아니라는 말이.
딱 대통령 노무현이잖습니까.
제가... 지지하던 노무현대통령도.. 고졸 백수가.. 변호사됐다가.
야당의 작은 정치인이 순시간데 대통령이 됐죠
그럼.. 그때부터는 약자가 아니죠.
약자로살던때의 프레임으로 대통령으로 살면 안돼요
노무현은 사실 잘 적응한 편이구요
요즘에.. PC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오는데
미국에서는 문화권력을 PC나 페미니즘이 상당히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스스로 약자니까 허용되는 권리를 누리려고 하는게 문제인거잖아요
( 예를들어, 주류 영화 스튜디어의 시나리오 등에 대거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이 강요되고있죠. 그러니 주류권력인데.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고, 스스로의 권력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하니)
스스로 어마어마한 권력과 영향력을가졌으면.. 그영향력에 맞는 비판과 견제를 받을줄 알아야하는데
촛불이건 프랑스 혁명이건 마찬가지에요
약자이미 보호받아야 하는 그런 뉘양스와 그런 권리가 더이상 아닌때가 있는거죠
구체적으로 이미 촛불로 박근혜 몰아내고... 그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상태라면..스스로가 하나의 거대한 권력임을 인정하고 그 다음을 시작해야하는데
스스로 거대한 권력이니.. 그 거대한 힘에 대한 견제나... 그런것도 인정해야죠
근데.. 거대한 권력을 가졌음에도.. 우리는 약자다, 약자의 저항은 언제나 정당하다.. 뭐 이딴 식의 프레임을 사용해서
강자이면서 약자처럼 견제받지 않으려는.. 뀡먹고 알먹는 내로남불을 하니 욕먹는거죠.
마치 슈퍼히어로인 스파이더맨이..[거대한 힘에는 거대한 책임이 따른다]는걸 잊어버리면 문제죠
노무현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던것같아요
스스로 약자였는데... 강자로 올라선 순간... 강자라는 의무는 또 받아들였던것같은데..
약자 프레임으로 강자로써의 의무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요즘 정치인과는 좀 달랐죠.
요즘에는 스스로주류권력이면서.. 약자 프레임으로 .. 주류권력의 견제를 안받으려하는 정치인들도 많아서요
촛불도 그런자드에게 많이 이용당하는것도 같고
[내가 촛불든게 니들 권력에 이용하라고 든줄 아나..]
오히려 아니였던 적이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