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_맥스는 왜 항상 마지막에 떠날까.
매드맥스 3부작과 매드맥스 퓨리로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매드맥스 퓨리로드의 엔딩을 떠올려봅시다. 폭군 임모탄 조를 몰아낸 후 퓨리오사가 만들어낼 새로운 세상을 뒤로 한 채 맥스는 눈인사 한번 찡긋하고 유유히 인파속으로 사라집니다. 4편 내내 지겹게 황무지를 떠돌아 다녔으니 이제 진력이 날만도 할텐데 그래도 맥스는 떠납니다. 무엇보다 극중 맥스의 활약을 보면 그는 그 곳에 남아서 퓨리오사와 함께 공동 지도자가 될 자격이 충분했습니다. 게다가 더 안타까운 것은 겨우겨우 복구한 애차 V8 인터셉터를 이번 편에서 또다시 잃어버렸습니다. 이쯤되면 누구라도 본전 생각이 간절할 마당인데 맥스는 아무 미련없이 등을 돌립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간답합니다. 맥스는 영웅이니까요. 그것도 셰인 풍의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사리사욕없는 영웅이니까요.
하지만 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맥스가 영웅인건 맞아요. 하지만 맥스가 항상 마지막에 떠나는 건 그의 직업 의식 때문은 아닐까요?
세상이 망하기 전 맥스의 직업은 다름아닌 경찰이었습니다. 토커터 갱단이 그의 가족들을 해치고 그로 인해 맥스가 정신줄을 놓기전까지 그는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의 유능한 하이웨이 패트롤이었죠. 복수를 위해 맥스는 '미친' 맥스가 되어 경찰 신분으로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사적제재라는 방법을 택합니다. 분명 이 때 맥스는 한번 경찰의 길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안티 히어로로 다시 태어났죠.
하지만 맥스가 그렇게 경찰의 길을 벗어난 그 순간, 안그래도 막장이던 세상이 아예 쫄딱 망해버렸습니다. 이제 맥스는 문명이 괴멸하고 반쯤 원시시대로 돌아간 끔찍한 황무지에서 홀로 외롭게 살아가야합니다.
2편에서 맥스의 복장을 보시죠. 어깨 보호대와 다리 보철 등을 덕지덕지 달긴했지만 맥스는 여전히 하이웨이 패트롤의 상징인 가죽유니폼을 입고있습니다. 바다가 말라 지구가 찜통이 되버린 바람에 상의 탈의는 기본이요 엉덩이를 까고 다녀도 팬티가 아니니 부끄럽지 않게 된 세상에서 맥스는 여전히 땀복같은 가죽자켓을 입고 다닙니다. 복장은 그 사람을 정의하는 법입니다. 더이상 지킬 사회 시스템이 완전히 소멸하였음에도 맥스의 정체성은 여전히 경찰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찰이란 직업에 대해 한번 생각해봅시다.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은 그제서야 출동합니다. 근본적으로 경찰은 뒷처리 담당이지 사건을 미리 예측해 사전에 예방하는 건 잘 하지 못하죠. 마사미 유우키의 명작만화 패트레이버에서 주인공은 경찰을 감기약에 비유합니다. 감기가 걸려야 그제서야 비로소 감기약의 역활이 시작됩니다. 감기약은 절대 감기를 예방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감기약은 감기약만의 프라이드가 있다고 말이죠.
지옥같은 아포칼립스가 닥치고 무법자 천지가 된 건 '경찰' 맥스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맥스 역시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한, 이를 방관하며 무관심으로 일관합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맥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는 툴툴거리며 그제서야 사건에 개입합니다. 다소 과도한 듯 보이는 보수를 요구하면서요. 그것은 대단한 정의심도 도덕심도 아닙니다. 다만 눈 앞의 약자를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최소한의 측은지심이죠.
그런데 이런 맥스의 경찰로서의 직업윤리가 발동하는 건 막상 상황이 그에게 1도 도움이 안되게 흘러갈 때입니다. 2편 중후반 맥스는 휴멍거스 갱단에 의해 아끼던 인터셉터도 날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가족과도 같던 개도 잃고 그 자신도 만신창이가 됩니다.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에서 맥스는 말로는 복수를 위해서라지만 사실 휴몽거스 갱단의 약탈을 피해 피난하는 부족민들을 돕기 위해 기꺼이 총대를 맵니다.
격렬한 카레이스로 기어이 휴몽거스 갱단을 도륙내버린 맥스는 자신이 부족민의 피난을 위한 시간벌기용 미끼였음을 알아챕니다. 그러나 남겨진 맥스는 부족민들이 자신을 속였다고 원망하거나 굳이 쫒아가서 항의하지 않습니다. 맥스 입장에서는 자기 하나 죽을 고생을 해서 결과적으로 많은 부족민을 살려냈으니까요. 이에 적당히 만족한 맥스는 걍 씨익 한번 웃고 거지꼴로 다시 길을 나섭니다.
어떤 사건을 마무리한 경찰이 그 현장에 눌러앉아 사건을 해결한 댓가를 사람들에게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경찰은 그 순간 정의로운 조정자에서 땡깡을 부리는 부당한 공권력이 됩니다. 맥스는 한때 사회와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공권력을 집행하던 경찰로서 자신이 나고 떠날 때를 잘 알고 있습니다. 문명이 이미 소멸한 황무지에서도 마찬가지, 그는 자신이 모든 걸 바쳐 정의를 구현한 현장에는 더 이상 자신이 설자리가 없음을 압니다. 그것이 맥스가 체화한 경찰의 프로토콜입니다. 그래서 비록 자기 손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어도 미련없이 떠납니다.
경찰이 임무를 마치면 어디로 갈까요? 공적으로는 자신의 일터인 경찰서로 가거나 사적으로는 자신의 스위트 홈에서 가족들과 함께 포근한 휴식을 취하면 됩니다. 하지만 맥스는 애저녁에 그것들을 모조리 잃었습니다. 감독이 아예 2편 오프닝 나레이션에서 못박았듯이, 그는 껍질만 남은 공허한 인간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이미 멸망한 시대가 남겨준 단 하나의 유산인 경찰로서의 직업윤리만으로 살아갑니다. 스스로는 그걸 깨닫지 못한 채로 말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순간 안티히어로 맥스는 시지프스적인 영웅으로 다시 한번 재탄생합니다. 신의 분노를 사 영원히 산정상으로 바위를 굴려야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처럼 맥스는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을 구하고 악당을 해치우길 반복하고 그때마다 상거지꼴로 떠나겠지요. 하지만 맥스가 구해낸 사람들은 그 곳에서 삶을 영위하며 새로운 문명을 일궈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들을 구해낸 한 영웅-로드 워리어-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자신들의 후손들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이것이 아포칼립스라는 부조리의 총합에서 맥스라는 한 인간이 힘겹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지켜가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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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말하는 '지나가던 선비' 분석글처럼도 읽히네요.^^ 퓨리오사 보기 전에 시리즈 정주행 복습 들어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