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랍스터> 리뷰
사랑에 관한 제일 잔혹한 동화
사랑만큼 보편적이면서 흔한 소재가 또 있을까. 아이들이 따라 부르는 아이돌들의 노래 가사부터, 심지어 로맨스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액션이나 스릴러 영화에서도, 그 형태가 어찌 됐건 '사랑'은 매번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보편적이라는 건 다시 말해, 뻔하기 쉽다는 말이기도 하다.
로맨스 영화의 대표적인 클리셰들부터, 사랑하면 떠오르는 흔한 러브 스토리들까지. 사랑은 어느샌가 그렇게 특별한 감정이 아닌, 누구나 느낄 수 있고 누구나 설명할 수 있는 흔한 이야기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이 흔한 이야기에 반전을 주려는 움직임은 예전부터 꾸준하게 계속 있어왔다. <웜 바디스>처럼 로맨스의 대상을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영역을 넓히기도 하고, <그녀>처럼 역설적이게도 차가운 AI의 시선으로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뜨거운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르게 조명해 보기도 했다.
<더 랍스터>역시 마찬가지로 이런 움직임들과 결을 나란히 하는 영화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이 낯선 이름의 그리스 출신 영화감독은 <더 랍스터>라는 영화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었던 사랑에 관한 모든 흔한 설정들에 반기를 든다. 그 첫 걸음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의 가장 기본적인 클리셰들을 하나둘씩 파괴하는 데서 시작된다.
45일 안에 호텔 안에서 짝을 찾지 못하면 자신이 원하는 동물로 변하게 된다. 기묘하면서도 어딘가 신선한 이 설정에서 시작된 영화 <더 랍스터>. 불행하게도 이 영화 속 인물들 앞에 놓인 선택지는 항상 두 개뿐이다. 중간은 없다. 이들은 항상 극과 극의 선택지 앞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 첫 번째 선택지는 자신의 성적 취향이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영화에서는 단 두 개의 선택지만 존재한다. 망설이며 '양성애자'를 고를 수 있냐고 묻는 데이비드에게 호텔 직원은 '그런 건 없다'는 차가운 대답을 내놓는다. 성적 취향에서 시작된 이 가혹한 선택지는 생활방식에서까지 영향을 미친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0.5 사이즈는 없다. 45가 아니면 46, 크거나 작거나 둘 중 하나만을 골라야 한다. 영화는 연출을 통해 반복적으로 이러한 '선택'과 '대비'를 강조시키며 사랑에 관한 이분법적인 사고를 대놓고 비웃는다.
이 기묘한 호텔에서 짝을 찾는 방식은, 나와 같은 특징이 있는 사람을 운 좋게 발견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사랑'은 감정적 교류나 육체적인 끌림보다는, 나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정의된다. 다리를 절거나, 코피를 자주 흘리거나, 아니면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성격을 지녔거나.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긴 채, 남들과 비슷한 자신의 모습을 억지로 꾸며낸다.
코피를 자주 흘리는 여자와 커플이 되기 위해 한 남자는 자신의 코를 시도 때도 없이 때려 피를 흘리게 만든다. 데이비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동물이 되는 것은 면하기 위해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자비 없는 사이코패스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지만 금세 본모습은 탄로 나기 마련이다.
데이비드가 꼼짝없이 갇혀 45일 동안 머물러야 하는 이 호텔 또한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투숙객들의 사랑을 장려한다. 어설픈 연극을 통해 남녀가 함께 한다는 것의 장점과, 혼자 산다는 것의 위험성을 보여주기도 하며 메이드들은 투숙객들의 육체적인 욕망을 자극하기도 한다. 나름대로 사랑의 육체적 순기능과 사회적 순기능을 보여주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독려하지만, 어딘가 이상하고 기분이 찝찝하다.
호텔에서의 사랑은 철저히 시스템을 위한, 규칙과 규율로 탄생한 감정이다. 이곳에서의 사랑은 동물이 되는 '처벌'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자 유일한 탈출구에 불과하다. 동시에 단순히 영화 속 설정이 아닌, 어딘가 낯설지 않은 현실의 풍경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개인'이 아닌, 개인이 구성하고 있는 '사회'를 위한 사랑. 인정하기는 싫지만 우리가 한 번쯤은 봤을 법한, 그런 종류의 사랑이다. 일상적인 예시로는 '선자리'가 될 수도 있고,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재벌가의 정략결혼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호텔 밖의 세상. 숲속에서의 사랑은 이보다 더 나을까? 철저히 이분법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더 랍스터>의 세계에서 세상은 크게 호텔과 호텔 밖의 세상으로 나뉜다. 호텔 밖의 세상은 호텔을 탈출해 혼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세상이다. 호텔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숲속으로 사냥을 나가 숨어 살고 있는 사람들을 '사냥'하며 호텔 내에서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도 한다.
사랑, 그리고 짝 맺음을 '강요'하는 호텔 속 세상과는 달리, 숲속에서는 호텔에서의 모든 진리들이 철저히 거부된다. 숲 에서는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만 한다. 이성과의 잠자리나, 연애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 대가는 가혹하다. 입술을 잘리거나, 들짐승들의 먹이가 된다. 이곳에서는 생존부터 죽음까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심지어 자신의 묫자리를 직접 파야 하기까지 한다. 한 마디로 사랑은 이곳에서 금지다.
아이러니하게도 데이비드는 사랑을 해야만 하는 호텔에서는 오히려 사랑을 찾지 못하고, 사랑이 금지된 숲속까지 이르러서야 마침내 사랑할 이유를 발견한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토끼 고기를 손수 선물하기도 하며, 자신이 마음을 품고 있는 여자에게 다른 남자가 토끼 고기를 선물하자 그를 한껏 경계하며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호텔 내에서의 수동적인 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누구보다 사랑에 적극적인 한 남자의 모습이다.
데이비드는 우연히 발견한 '근시'라는 자신과 그녀의 공통점에 누구보다 기뻐하며 그녀를 향한 데이비드의 마음은 깊어만 간다. 억지로 누군가와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 공통점에 자신을 끼워 맞추던 호텔 안의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사랑의 풍경이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숲속의 규칙을 따르지 않은 대가로 장님이 되자, 데이비드는 스스로의 눈을 멀게 하려고까지 한다. 사랑은 자신을 죽이고 누군가의 특성을 따라 하며 동질감을 얻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약점마저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하나가 되는 것. 요르고스 감독이 전하는 사랑의 첫 번째 메시지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더 랍스터> 또한 기존에 우리가 봐왔던 사랑의 문법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의 핵심은 디테일에 있다. CD 플레이어 하나로 음악을 나눠 듣는 것이 아닌, 각자의 CD 플레이어로 타이밍을 맞춰 음악을 같이 듣는 데이비드와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사랑으로 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뻔한 사랑에 관한 화법 대신, 상대방이 있고, 내가 있기에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견을 대담하게 내놓는다.
사랑이 금지된 숲속에서 마침내 진정한 사랑을 찾은 데이비드처럼, 사랑은 누군가의 강요로 이루어질 수도 없으며 언젠가는 적절한 시기에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된다는 것. 조금은 잔혹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사랑 이야기에서 찾아낼 수 있는 사랑에 대한 단서들은 나름대로 철학적이며, 무릎을 탁 치게 만들지는 않지만 깊게 여운을 적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기본적인 법칙들에 의문을 던지고, 더 나아가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영화. 지금 우리는, 사랑을 하고 있는가.
더 많은 영화 이야기는 여기서: https://maily.so/weeklymovie
더운크리스마..
추천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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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리뷰입니다. 어른들을 위한 날카로운 우화였어요.
좋은 후기 잘 읽었습니다😊
불편하지만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감독이죠.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