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대하전쟁영화 걸작. 스포일러 있음.
과거 한국영화사 최고걸작을 꼽을 때 단골로 등장하던 영화가 바로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다.
지금 보면 이해가 간다. 우리나라 영화사에서 드문 대하드라마다. 벤허나 글래디에이터처럼 말이다.
625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때, 인천상륙작전 후 국군이 북진하여 북한을 점령해가다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막혀
후퇴하는 시기에 벌어진 일이다. 이때 북진하여 가다가 중공군에게 막혀서 몰살 당하는 해병대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해병대 개인의 이야기라기보다, 그들을 통해 본 거대한 역사의 흐름같은 것이 진짜 주제 같다. 영화가 굉장히 넓고
방대한 시대극으로 보인다. 잘 만든 대하드라마하면 내놓을 것이 돌아오지 않는 해병밖에 없었던 시기에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우리나라 영화사 최고 걸작으로 꼽혔다고 해서 이상하지 않다.
전쟁영화하면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에 다 있다. 전쟁의 비극과 휴머니즘, 실제감 있고 살벌한 총격전, 영웅적인 군인과 익살 맞고 인간애 넘치는 군인, 군인들 간 갈등과 전우애, 다가오는 죽음의 두려움과 함께 존재하는 일상의 유머러스함과 즐거움, 유머, 전쟁에 괴로움을 겪는 일반인들, 군인들의 전쟁을 통해 더 거대한 시대의 암울함을 기록해내는 것, 전쟁으로 몰살당하는 군인들의 비극 - 이 안에 높은 수준으로 다 있다. 그러면서도 영화가 난삽하거나 혼란스럽지 않다. 꽉 짜여져 있다. 이런 많은 주제들을 능란하게 다루고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대하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 - 대가만이 가능한 경지다. 그런데 이만희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 당시 겨우 32세였다.
실제 인천의 주먹계 거물이라는 이야기가 있는 장동휘가 해병대 분대장으로 나와서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미국으로 따지면,
찰스 브론슨 식의 남성미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다.
해병대는 북한군을 무찌르며 기세 좋게 북진하는 중이다. 북한군과 벌이는 화려한 총격전이 영화 처음에 나오는데,
이만큼 실감 나는 장면은 다른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진짜 총을 쏘아대고 폭탄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누가 이런 무지막지한 아이디어를 짜냈는지 모르겠으나, 영화 찍자고 목숨을 내건 셈이다. 영화를 보면서 "와, 저렇게 실감 나는 장면을 어떻게 찍었을까"하고 궁금했는데, 정말 내 짐작을 벗어난 비범한 영화다.
배우들에게 총을 막 갈겨댄 것이다. 아마 수류탄도 진짜가 아니었을까?
북한군이 점령한 본부를 탈환하고 보니, 고문 당한 시체들이 쌓여 있다. 그 속에서 자기 여동생을 찾아낸 이대엽은 통곡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은 어린 소녀 전영선을 찾아낸다. 이대엽에게는 죽은 자기 여동생이 살아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인 소녀다.
해병대는 당분간 전영선을 몰래 숨겨 기르기로 한다.
이 영화는 처음에 격렬한 전투 그리고 마지막에 격렬한 전투로 끝난다. 그 중간에 나오는 것이, 북으로 전진하는 해병대원들 간의
희로애락과 전우애 그리고 짧은 일상의 즐거움이다. 짧은 대신 아주 강렬하고 비극적이다.
이 해병대에 새 군인들이 전출되어 온다. 스타 최무룡과 구봉서다. 특히 구봉서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 등장하는
프랭크 시나트라 비슷한 역할이다. 유머러스하고 속없이 웃기고 휴머니스트에다가 이 살벌한 영화에 코메디적인 요소를 부여한다.
씬 스틸러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 거대하고 무거운 대하전쟁드라마를 혼자 떠받치며 인상적인 코메디를 지속해나가는 것이
어디 쉬운가? 이 무거운 영화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씬 스틸러라고 불릴 정도로 영화에 활기와 코메디를 한껏 불어넣는다 -
구봉서는 이 영화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인다.
소녀 전영선을 귀여워하는 해병대원들은 언제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아간다. 바로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것 없다.
그렇더라도 일상은 지속되어야 한다. 막걸리를 잔뜩 사다가 막걸리 파티를 하며 해병대원들이 미친듯 엉덩이춤을 추는 장면은
왜 그렇게 슬픈가? 휴가비를 받아다가 외박 나가는 해병대원들은 (장난으로 자기들보다 상급자로 삼은) 전영선에게 경례를 한다.
"다녀 오겠습니다" 그러자 전영선도 경례를 하면서 "사고 치지 말고 다녀와라"라고 한다. 이 영화의 또 한가지 장점은,
굉장히 생생한 현장감 묘사다. 지금 현재 상상으로 624 당시 국군을 그린 것과는 상대가 안된다.
해병대원들은 중공군과 직접 대결하는 장소에 배치된다. 산으로 둘러싸인, 전략적으로 불리한 장소다.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아마 죽더라도 여기서 중공군 진격을 가능한 한 지연시켜라 하는 의도 같은데, 죽음을 늘 각오하고 있던 해병대원들은
두 말 없이 자리를 지킨다. 인해전술로 밀려오는 중공군들이 산을 덮는 장면은 명장면이다. 마치 파도가 밀려오듯이,
막을 수 없는 force of nature 처럼 중공군들은 질주해 온다. 정말 효과적이고 인상적으로 연출된 명장면이다.
해병대원들은 자기들이 여기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한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총을 쏘며 그들을 막는다. 한 명 한 명이 죽어가면서 마침내 장동휘와 최무룡이 남는다.
장동휘는 뒤에서 총을 쏘아대는 중공군에게 혼자 사격하러 가면서 최무룡에게 명대사를 한다. "너는 살아 남아라.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라. 전쟁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 지금까지도 널리 인용되는 명대사다.
살아남은 장동휘와 최무룡은 산처럼 쌓인 시체들 속에서 절규한다.
1960년대 영화답게 아주 묵직하면서 감상적이지 않다. 그것이 마음에 든다. 전쟁의 참상과 휴머니즘을 말로 어떻게 때워보려고 하거나, "슬프지? 슬프지?" 하고 값싸게 충동질하려 하지 않는다. 묵직하고 생생하게 전쟁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참상과 휴머니즘을 스스로 체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해병대원들 하나 하나의 개성을 살려냄으로써, 그들의 처절한 최후를 감동적인 것으로 만든다.
추천인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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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탄 써서 촬영했다는 얘기가 있네요.
혹시나 유튜브 검색해보니 HD 해상도로 올라와 있고..
말로만 들었던 작품인데 시간 내서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