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RR》 맛살라톡 리뷰 (스포 & 스압주의)
본 토크 내용은 지난 2022년 7월 2일 개최된 영화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이후 RRR)의 맛살라톡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될 수 있으며 회원 개인의 의견은 저의 방향과는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패널소개
raSpberRy – 호스트(인도영화 블로그 메리.데시 넷 운영자)
B모님 – 2020년 라운드테이블 등 다수 참여
J모님 – 신규 참여
M모님 – 강구바이 카티아와디 참여
K모님 – 《피쿠》 등 다수 참여
영화를 보고 나서
요즘 인도영화를 영화제에서도 잘 안 틀어주잖아요. 아니면 틀어주기는 하는데 이게 회자가 잘 안 되는 영화를 하시더라고요. 물론 그 작품이 우수해서 그분들이 가져오신 건 있겠죠.
하지만 그들의 선택에 비해 조금 돌직구로 얘기하면 ‘성이 안 찬다’
아직 코로나가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조금 누그러져서 영화제들도 거리두기도 해제하고 재미있는 축제로 만들려는 노력들이 보이는데 그 사이에 우리 자리는 없는 것 같더라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라도 재미를 찾아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맛살라 톡을 이런 공간을 빌려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이 이 영화의 후기를 올릴 때 보면, 아이맥스 포맷에 돌비 애트모스 포맷으로도 상영이 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비주얼과 사운드 모두 신경을 썼다는 이야기이고 실제로도 그런 티가 나는 영화인데 보고 있노라니 이 좁은 넷플릭스에서 보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사실은 넷플릭스도 전송 속도에 따라서 각질 같은 게 보이고 그렇더라고요. 영상이 아무리 4K로 전송이 된다고 하더라도 4K 스트리밍을 전송받는 것과 4K 블루레이를 재생하는 건 엄연히 차이가 있거든요. 스트리밍은 나름 흉내를 내기는 하지만 블루레이엔 미치지 못하고 또 블루레이는 극장 상영만 하지는 않고요.
제가 극장 관람을 너무 사랑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걸 수도 있는데 스트리밍으로 여러분들과 같이 호흡하고자 이런 식으로 하고 있지만 좀 약간은 흥이 안 차는 게 있어요.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여러분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설이 길었죠?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M: 장면 장면마다 되게 신경을 썼고,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액션을 넣을까를 장인 정신으로 고민한 영화라서 좋았고요. 그리고 이렇게까지 액션에 장인 정신을 발휘하면 다소 악역이 평균적이라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볼 때 영국인들이 너무 스테레오타입 악역 아니야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런 액션 영화는 악역이 너무 복잡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액션 자체에 집중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엄청 민족주의적이고 애국주의적인 영화잖아요. 라마야나의 선악 구도를 그대로 갖고 와서 영국인들을 대놓고 아수라라고 칭하는 데서도 볼 수 있죠. 이렇게 민족 의식을 고취하면서, 또 한편으로 힌두 무슬림의 화합에 대한 메세지를 강조한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현재 인도의 정치 구도상 무슬림과 힌두간의 대립이 갈수록 심해지는데, 대중 영화가 이처럼 화합의 메시지를 주는 게 좋았어요.
J: 오늘 처음 보신 분이?
저는 오늘을 위해서 그냥 아껴뒀어요.
J: 저는 두 번째로 봤어요, 일단 넷플릭스 올라오자마자 보긴 해서. 사실 그때는 제가 일정이 맛살라톡 시간과 어떻게 될지 애매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나서, 두 번째로는 꼭 큰 화면으로 봐야지 해서 봤는데, 두 번째 보니까 역시 좀 잘 안 보이던 게 좀 잘 보여서 재밌었어요. 흔히 RRR이 개연성 없다는 이런 말이 조금 있었는데, 사실 보면 되게 촘촘하게 디테일을 깔아놨어요. 그러니까 되게 호쾌하지면서도 플롯 같은 거 미장센을 엄청 잘해요.
그러니까 《바후발리》 때도 잘했는데 더 발달을 한 것 같더라고요. 그냥 회상 씬을 넣는 타이밍이라든가 영국인들이 사악해도 별로 상관없지 않나 스러운 게, 그러니까 영국인 캐들이 정말 그렇게 약간 B급 악당이라도 상관없다고 느낀 게 입체적인 고뇌는 주인공 중 하나인 람이 이미 하고 있어서요. 악당의 사연, 이 사람도 알고 보면 너무 슬픈 사람이었어요. 그딴 건 알 거 없는 거죠.
M: 맞아요. 그런 사연이 있었으면 너무 산만했을 것 같아요.
J: 네. 너무 산만해지고, 요즘은 특히 그런 게 유행인데, 깊이 있는 악역 좋다고 그렇게 만들다보니 주인공 입장은 또 애매해져서 영화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되고.
그리고 또 이렇게 사연 있는 악당을 넣어놓고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니까 갑자기 악당한테 이상한 급발진을 시켜요. 가령 《블랙팬서》는 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거기 킬몽거… 갑자기 급발진 시키잖아요. 열강 국가들만 공격해도 되는데 엉뚱한 데도 다 공격하고, 뭐랄지 그냥 주인공한테 정당성을 주려고 급발진을 시켜요. 약간 캐릭터에 안 맞는, 그래서 RRR 쪽이 되게 고전적이거든요. 차라리 이게 낫죠. 왜냐면 영국은 실제로 역사적 압제자니까. 얘네 사정 일일이 봐줘야 될 것도 없고. 아까 무슬림이랑 화합 얘기하셨는데 확실히 좀 그런 면이 있죠.
일단은 빔이 무슬림 가족한테 위장해서 들어가고 걔네랑 사이가 좋고, 잘 보면 다른 종교들도 보여주더라고요. 가령 맨 처음에 유리창 깨고 영국왕 사진 액자 깨뜨리는 그 사람은 시크교도거든요. 결국 람한테 붙잡혀서 끌려오지만. 그 사람의 시크교 특유의 터번을 자주 비춰주더라고요. 그것도 있고 코무람 빔의 노래에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같은 장면을 보면, 클로즈업에 젊은 여자도 있고 나이든 여자도 있고 힌두도 있고 무슬림도 있고 조로아스터교도도 있고 그렇게 다 보여주더라고요.
그러니까 약간 우리나라에서는 좀 일반적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신도들의 차림이라 눈치채지 힘들 수는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다 힘을 합쳐서 가자는 메세지도 분명히 주는 거죠.
M: 우리나라에서는 필요가 없었던 그런 민족 융합적인 요소들을 대중문화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은 일단 언어도 같고 종교랄까 이런 것도 대부분 문화가 비슷하니까 독립운동을 할 때도 민족 융합을 할 필요성은 덜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인도는 그 작업이 아직도 안 끝났구나 이런 생각?
J: 지역 영웅들, 사실 주인공으로 나온 인물들도 그 지역에서는 되게 유명한데 전국적으로는 잘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M: 근데 이제 지역 영웅을 조명하는것과 동시에, 전체적인 맥락은 라마야나를 따라가고 있죠. 라마와 시타도 그렇고, 사실 비마도 라마야나의 *하누만 포지션이죠. 비마와 하누만은 둘 다 신화에서 바람 신의 아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 라마야나의 원숭이 신, 라마의 조력자
J: 미국 평론가 중에 《탑건 매버릭》은 되게 음흉한 프로파간다라고 쓴 사람이 있었어요. 요는 메세지가 숨겨져 있다는 거죠. 사실은 미국 만세인데 그렇게 내보내면 좀 그러니까 액션이나 휴먼 드라마로 가렸다는 뜻이죠. 그래서 그냥 프로파간다 할 거면 RRR처럼 아예 노골적인 편이 낫더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M: 노골적이지만, 장면장면의 호쾌한 액션에 신경 쓴 덕분에 반감이 덜 느껴진 것 같아요.
J: 그래서 되게 노골적이긴 한데, 제가 힌디어나 인도 언어를 하나도 모르고 영어로 된 거밖에 못 읽긴 하는데 그 안에서 읽을 수 있는 논란도 많긴 하더군요. 후반에 ‘라마야나’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만, 이미 ‘라마야나’는 되게 정치적인 상징이 되어버렸잖아요. 아요디아에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원래 라마의 사원이 있었다며 모스크를 밀어버리고… 사실 근거는 어쨌든 그렇다고 해서 밀어버렸잖아요.
M: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죠. 이슬람 흔적을 지우고 전통을 되찾자 그러고 있는데, 사실 그게 말이 되는지. 몇백 년이나 무슬림이 그 지역에서 공존하면서 전통을 형성해 온 건데요. 정치적 논리에 의해 의도적으로 어떤 역사의 흔적을 취사선택하려는 게 보여요.
K: 《바후발리》 감독님이 만든 영화라는 얘기만 듣고 왔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이 있을 줄 몰랐는데 처음부터 같이 액션이 나와서… 그런 부분이 당황스러우면서도 놀라운 부분이었고 《바후발리》도 그렇지만 신화적 소재를 되게 잘 살리는구나 그런 생각 들면서 봤던 영화입니다. 전 이렇게 심각하게 본 영화가 아니라
맛살라톡 하다보면 어려운 얘기 해야 되나 보다 해서 참여를 주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인도 신화도 다 꿰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부담 같은 게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실존 인물들과의 차이
B: 람이랑 빔이 실존 인물인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역사를 굉장히 엄숙하게 보기 때문에 실존 인물을 사실과 다르게 묘사하면 정말 논란이 많이 일어나잖아요. 《RRR》의 경우 인도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전혀 만난 적도 없는 실존 인물 두 명이 만나서 전혀 한 적이 없는 일들을 펼치는 그 상상력이 되게 대단하고 놀라웠어요.
M: 실존 인물인가요?
J: 네, 일단 모티프는 실존 인물입니다.
B: 라자몰리 감독 특유의 스타일 있잖아요. 이게 개연성이 있을까 없을까, 물리적으로 말이 될까 안 될까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끝까지 거침없이 나아가는 거. 그런 액션이랑 이야기 전개가 이번 영화에도 잘 어울렸어요.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 때 소설들만 봐도 우울하고 무기력한 게 많은데, 오히려 이렇게 거침없이 상상력을 발휘해서 호쾌하게 제국주의 지배 세력들을 다 물리치는 게 되게 통쾌하더라고요.
J: ‘각시탈’은 솔직히 어중간했어요.
M: 우리나라에서는 항일 정서가 굉장히 성스럽게 취급되는 것 같아요.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성스러움의 영역을 넘어서 좀 우리가 쉽게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을 덧붙여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다시 서술할 수도 있지 않을까… 비장함을 좀 내려놓고 친근하게요.
J: 근데 그것도 제가 영어로 찾아볼 수 있는 논란들은 최대한 찾아봤거든요. 개봉 전에 제일 큰 논란이 빔이이었어요. 일단 이름이랑 곤드족이라는 것은 사실이고 그건 그대로예요. 물론 소수민족이라고 해도 몇백만 명은 되는데 이게 인도 기준이니까 소수긴 하지만…
아무튼 개봉 전 트레일러에서 곤드족 사람들이 화냈던 게 빔이 무슬림 복장으로 위장을 하잖아요. 근데 이게 예고편만 보면 위장인지 좀 약간 알기 어려운 상황이니까 영화 전체를 안 봤으면 어떻게 우리 조상을 이렇게 할 수 있냐고 항의할만하죠. 곤드족 조상신 중에는 빔도 있거든요.
그리고 코무람 빔이라는 사람은 사실 그런 곤드족 원주민의 인권 향상을 위해서 싸운 운동가에요. 왜냐하면 숲이 곤드족 터전인데 그 땅이 빼앗기고 쫓겨나고 있었으니까요. 요즘으로 치면 미국 원주민이나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들의 투쟁이랑 좀 굉장히 비슷한, 기본적으로는 그런 자치권을 획득하기 위해서 싸웠던 사람이에요.
인도 공산당하고도 손을 잡고, 아삼에서 차 농장에서 일했는데 거기 노동환경 되게 악명 높았잖아요. 거기서 일하며 노조 활동도 하고 그랬었어요. 그래서 어쨌든 되게 위인인데 여기서 무슬림으로 나오니까 이게 일단 곤드족들이 화내는 건 이해가 가지요.
문제는 그보다 더 컸던 게 힌두 근본주의자 극우들의 목소리였다는 점이죠. 마치 힌두민족주의적 영웅인 것처럼 자기들 식의 입맛에 맞는 걸로 주장해가지고, 어딜 감히 우리 힌두의 영웅을 무슬림으로 하느냐 이런 식으로 시끄러웠대요.
실제 모델인 코마람 빔(왼쪽), 라마 라주(오른쪽)
비슷한 사례를 이야기 해보자면, 문학가 중에 사닷 하산 만토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독립운동가는 아니지만 포지션이 되게 애매하거든요. 활동을 하면서 인도에도 있다가 현재 파키스탄 지역에도 있다가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정부로부터도 도대체 너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이런 식으로 논란이 있던 그런 사람이었는데 사후에는 양국이 서로가 ‘우리가 낳은 최고의 문학가’ 이런 식으로 추어 올리더라고요.
아무래도 이쪽은 종교적인 갈등이 많다보니 이런 해프닝이 있다고 하면 우리나라는 독립운동을 했지만 해방 후에 노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셔서 논의가 안 되는 분들도 있었죠.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려드리면은 공무원 시험 중에 언급되는 무장 독립 단체가 하나 있는데 나중에 그 단체에서 나오신 분이 괴뢰정부를 세웠거든요…
* 2007년 경기도 9급 공무원 시험문제로 김일성이 소속된 동북 항일 연군과 관련된 문제였다.
B: 아까 J님이 빔의 모델이 된 실존 인물 얘기를 하셨는데, 저는 라마의 모델인 실존 인물에 대한 얘기를 좀 찾아봤어요. 사실 이 두 인물이 동시대에 활동한 인물이고 세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도 서로 만난 적은 없어요.
그리고 지금 이 영화 속 배경이 1920년대인데 실제로 두 사람이 이상 활동한 시기는 1820년대에서 1840년대예요. 그러니까 실존 인물들이 활동한 시대는 영화 속 시대보다 100년 전이죠. 주인공이었던 사람은 영화에서처럼 영국 경찰은 아니었고 막판에 시바 신처럼 하고 나온 옷차림 있잖아요. 그런 차림을 하고 다녔던 사람이고 원래 수도자였대요. 근데 영국이 1820년대 당시에 마드라스 지역에서 숲에서 나온 작물들은 함부로 이동할 수 없다는 법을 만들었어요. 화전민들은 이 숲에서 저 숲으로 옮겨 살면서 농사도 짓고 농산물을 옮겨야 되는데 그 법을 지키면 굶어 죽어요.
그것 때문에 람의 모델이 된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나중에 영국군한테 공개 처형당해요. 그때 그 사람 나이가 만 27세밖에 안 됐었어요.
우리나라도 독립운동은 젊은 사람, 어린 사람들이 많이 했죠
M: 솔직히 머리가 굵어지면…
J: 현실과 타협하고…
아까 나왔던 장면 중에 하나인데, 독립운동하는 사람들 모임에 람이 가잖아요. 물론 그런 사람들이 안 중요한 건 아니지만, 독립운동가 타이틀을 붙이고도 나중에 변절한 사람이 또 얼마나 많아요.
우리나라도 이런 회의에 가면 무장운동을 해야합니다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무슨 소리야 실력을 키워야지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라자몰리 감독의 스탠스가 이거라고 단정지을 순 없겠지만 적어도 (앞서 제가 말했던 부류 중) 후자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 라자몰리 세계관에 입각해선 영화 소재로도 그런 사람들은 재미가 없을 뿐더러 그런 류의 인물들의 극화가 본인 스타일도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심지어 냉정하게, 이런 회의에 오는 사람들 중 일부는 자기의 지적인 허영을 위해서 소위 힙하니까 독립 운동
J: 지금도 많잖아요.
그렇죠! 요즘의 힙스터들도 보면은 어떤 정신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흐름이니까 어떤 주의나 운동에 흘려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시의 독립운동도 일부에겐 그렇게 비춰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람이 회의에서 ‘총독을 한 번 때려보고 싶다’고 하니 조지왕을 치는 게 낫지 않느냐는 답변을 듣잖아요.
물론 어떤 헤게모니를 갖고 그런 데 나와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중요할 수 있어요. 하지만 라자몰리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이런 사람들보다는 민중 속에서 그들의 마음의 힘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나에게는 더 와 닿는다는 것이었던 것 같아요.
라자몰리 감독을 소개합니다
(왼쪽부터) 람 차란-S.S.라자몰리-NTR Jr.
자, 그러면 오늘의 영화 《RRR》의 감독 *라자몰리 감독을 소개하고 넘어가야겠죠?
* Rajamouli의 발음이 ‘RAH-jə-mow-li’ 인점을 감안해 ‘라자몰리’로 표기
지금 많은 분들이 인도 영화, 그중에서 남인도 영화에 애착을 가지신 분들의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고 우리나라 인도영화 정착의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기 때문에 주연을 맡은 NTR Jr.나 람 차란 같은 배우에 대한 소개는 짧게 넘어가려는 것도 있고 사실상 이 영화는 감독이 거의 다 했다고 생각해요.
* 본명은 Nandamuri Taraka Rama Rao로 배우이자 정치가였던 조부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어 NTR Jr.로 불린다.
람 차란 같은 경우는 어떤 인도영화 좋아하시는 분이 이 배우에 꽂혀서 필모를 다 파봤는데 함정이 너무 많네 이러는 분도 계시기도 하고요.
S.S.라자몰리의 데뷔작 《Student No.1》
각설하고, 《RRR》의 두 주연배우와 라자몰리 감독은 모두 ‘시작’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배우들이 이 감독님이면 된다고 생각해서 이 영화로 의기투합해서 만든 영화가 이 영화라고 보고요.
영화는 텔루구어로 만든 영화로 이쪽 시장은 ‘톨리우드(Tollywood)’라고 하는데, 인도 내에서는 OO우드 같은 표현 쓰지 말자고도 하지만 너무도 관습화 된 단어이긴 하죠. 그리고 그 톨리우드에서 라자몰리는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라자몰리 감독은 데뷔작부터 상업적으로 성공했는데 그의 데뷔작인 2001년 《Student No. 1》이라는 영화가 바로 NTR Jr.의 초기작이었기도 합니다. 라자몰리도 다른 텔루구어권 감독과 비슷하게 조폭과 대결하는 젊은영웅의 이야기를 그리다가 하나의 2009년, 하나의 이정표가 되는 작품 하나를 만드는데 그 영화가 바로 《Magadheera》라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텔루구어권의 대스타 치란지비의 아들인 람 차란, 바로 《RRR》에서 람 역을 맡았던 배우의 데뷔작이에요. 라자몰리는 이 영화부터 이제 내가 좀 독특한 인도식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어볼 거야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아요.
라자몰리의 이정표 Magadheera
이 영화를 대충 소개 해드리면 현대를 살고 남녀가 눈이 맞는데 알고 보니 이들은 400년 전에 이루어지지 못했던 커플인 거에요.
M: 익숙한 소재네요.
근데 그런 정서가 사람들의 마음을 오히려 자극하는 것 같아요.
M: 환생 소재는 불교 영향을 받은 나라는 어디나 있는 것 같아요.
인도 영화에 좀 많이 나오는 거지 않을까.
B: 네. 그래서 더 친근감이 들어요.
《옴 샨티 옴》이라든지 최근에 히트한 텔루구어영화 《Shyam Singha Roy》 같은 영화도 있고요. 여담이지만, 인도에서는 계속 만들어진 소재인데 할리우드에서는 그런 영화를 안 만들잖아요. 근데 어떻게 보면 지금이 적기일 수도 있어요.
이게 무슨 소리냐면, 지금 할리우드에서는 ‘유니버스론(論)’ 같은 걸 내세운 영화들이 많이 등장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전생과 환생의 관계는 사실은 다른 유니버스일 수 있다는 거죠. 우리가 전생을 안 살아봤으니 모르잖아요. 몇천 년 전 조상이 알고보니 다른 유니버스의 나일 수도 있고…
J: 요즘 이세계물이 인기잖아요.
B: 다른 사람에게 빙의하거나 다른 사람으로 환생하는 소재가 계속해서 수도 없이 쓰이고 있잖아요. 어차피 한 번밖에 못 사는 인생이니까 주인공이 환생을 하고 삶을 한 번 살아봤으니까 문제도 더 지혜롭게 해결하게 되고, 이런 모습에서 사람들이 대리 만족을 하게 되죠.
M: 그리고 변신이라는 코드가 소설 같은 데 되게 중요하게 쓰잖아요. 환생이라는 거가 되게 전통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바로 몰입할 수 있는 변신의 소재라서 좋은 것 같아요. 가끔 상상해 보잖아요. 빙의라든가 이런 거.
J: 대부분의 종교들은 환생이 있더라고요.
M: 환생 이야기는 세계 어디에나 있는 것 같아요.
다시 돌아와서, 《Magadheera》가 히트를 치긴 했죠. 실패가 없던 라자몰리 감독이기도 했지만, 이 감독의 세계관의 확장이라는 부분이 있었고 CG 티가 많이 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식으로 이런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이 잘 녹아있던 영화였죠.
라자몰리 라이징
그리고 2010년, 인터넷에서 소위 ‘직장 짤림송’으로 유명한 《Maryada Ramanna》라는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는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만든 영화 같아요. 주연 배우도 수닐이라고 조연으로 많이 나온 배우를 데려다 쓴 영화인데 이 영화는 미국 고전 영화 중에 버스터 키튼이 만든 《우리의 환대》라는 영화가 있어요. 이 영화의 리메이크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개연성이 떨어지는 설정일 수 있는데, 집안에 원수가 초대받았는데 집 안에서는 맛있는 것도 주고 극진히 대접하지만 집밖을 나오는 순간 목이 날아간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 집 딸을 사랑하더라 하는 되게 평면적이고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다음 장면에는 뭐가 펼쳐질까를 계속 궁금해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어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 이미 원작이 있잖아요. 그런데 40대의 만년 조연 배우가 버스터 키튼처럼 어떻게 그런 슬랩스틱 연기를 하겠어요.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은 내용만 가져놓고 아예 우리 식으로 만들어보겠다 해서 만든 영화가 바로 이 《Maryada Ramanna》라는 영화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남은 건 ‘직장 짤림송’밖에 없지만…
소위 직장짤림송으로 불리는 'Udhyogam Udipoindi'
그리고 다시 가공할 만한 이야기로 돌아오는데 바로 ‘파리’가 주인공이었죠.
M: 정말 뭐지? 왜 재밌지? 이러면서 봤어요.
J: 데이트 장면이 너무… (웃음)
M: 너무 재밌는데 왜 재밌지 이러면서…
B: 남자 주인공을 초반에 죽여버려서 남자 주연 배우를 일찌감치 퇴장시키고, CG 파리로 남자 주인공 분량의 대부분을 채워버리는 그 획기적인 아이디어!
M: 진짜 재밌었어요.
영화 《나는 파리다》
그 영화는 진짜 나중에 맛살라톡으로 한 번 해보고 싶을 정도로 벼르고 있는 영화이고 풍부한 텍스트를 지닌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여러 부분에서 되게 참신했어요. 라자몰리 감독의 세계관이 이런 식으로 펼쳐지는구나.
라자몰리는 원래 이 이야기를 *흑인 노예에 대한 이야기로 만들려고 했다고 하는데 만들어진 영화가 너무 달라서… 이를테면 《RRR》 같은 경우도 영향을 끼쳤던 영화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고 하는데 오늘 봤는데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남자 둘이 오토바이 타는 로망 이 부분밖에 없는 것 같아요.
* 18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어 영화의 대본으로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는데, 이 영화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년이 가족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죽고 파리로 환생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J: 하나 더 있어요. 한 명이 힐러야! 체 게바라가 의사잖아요. 빔이 치료도 하잖아요.
그렇죠. 맹독도 없애는 명의! 다시 돌아와서 이 영화 《나는 파리다》는 지금 얘기하기 너무 아까워요. 이건 단독으로 한번 보고 톡을 해야 되는데
M: 이 영화는 왜 재미있는가? 이거 가지고 얘기하면 이야기가 계속 나올 것 같아요.
인도 최고의 감독으로 그리고 그의 후원자
그리고 2015년도에 그 유명한 《바후발리》가 나오게 됩니다. 《나는 파리다》가 나온 지 3년 만에 나왔는데 그럴 만했어요. 인도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마히쉬마티라는 왕국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 흥망성쇠를 다 때려박는 두 편의 서사시였죠.
근데 참 재미있는 게 《바후발리》는 구성이 참 특이해요. 후대 바후발리의 이야기가 먼저 시작되잖아요. 그리고 플래시백으로 선대 바후발리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끝내면서 결연한 의지를 다지면서 영화를 끝내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두 가지 감정을 갖게 되죠.
하나는 “더 보여줘! 스토리 더 내놓으란 말이야!” 이런 것하고 선과 악의 대결에서 그래도 전형적인 인도영화이니까 선이 승리하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의 이야기는 펼쳐질까라는 기대를 갖게 되잖아요. 이런 스토리가 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RRR》 같은 경우도 어떻게 보면은 그냥 독립군들이 쳐들어가가지고 승리하는 이야기, 물론 대체 역사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 아니야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이야기를 계속 지켜보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쯤 되면 이런 이야기를 쓴 각본가의 이야기도 빼놓을 순 없죠.
J: 아버지죠?
네, 아버지죠. 비자이옌드라 프라사드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라자몰리의 *초기작부터 각본을 계속 썼어요.
* 데뷔작이었던 《Student No.1》은 다른 각본가가 썼다.
라자몰리와 비.제.이옌드라 프라사드
이 사람이 이야기꾼인 게 다른 맛살라톡에서도 등장하는 에피소드이긴 한데, 《바후발리》를 만들 즈음에 각본을 하나 쓴 겁니다. 《바후발리》는 이미 다 썼으니 아들이 만들기만 하면 되고 자신이 만든 다른 각본을 영화화하기 위해서 찾아간 사람이 바로 《세 얼간이》의 스타 아미르 칸입니다.
그런데 아미르가 이 각본을 보더니, 자신은 적임자가 아닌 것 같고 더 좋은 사람을 추천해준다면서 각본을 보내준 사람이 바로 삼대 칸(Khan)중 한 명인 살만 칸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카쉬미르의 소녀》입니다. 이 영화는 개봉한 해 가장 큰 흥행 수익을 거둔 발리우드 영화가 되었는데요, 이 사람은 다른 언어권에서 자기 각본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된다는 걸 증명한 거예요. 다른 발리우드 스타인 악쉐이 쿠마르가 주연을 맡았던 《돌격 라토르》라고 소개된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도 라자몰리 감독의 《Vikramarkudu》라는 영화의 리메이크예요. 개봉당시 상당한 흥행을 거두었었죠.
RRR의 구성
이런 식으로 그들(라자몰리 & Vi제이옌드라 프라사드)의 작품들은 내러티브가 뻔하면서도 사람들이 계속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작품을 쓰는 사람들인데,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이나 되잖아요.
M: 하나도 안 지루했어요.
라자몰리 감독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보고 졸았다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 감독은 그럴 만하다고… 이 영화만 봐도 전개부터 계속 뭔가가 나오잖아요. 상업영화를 기준으로 일반적인 영화의 서사는 밥을 짓는 구조와 같다고 봅니다. 처음에 쌀을 올리고 서서히 불과 압력을 가하면서 밥이 완성이 되는구조인데요, 그 전개상에 차분히 장치들을 깔아두고 클라이맥스에서 터뜨린다면 이 영화는 시작부터 놀랍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전개가 되고도 이 영화의 서사를 완성할 수 있다는 그런 패기가 있더라고요.
M: 그게 오히려 추리 소설을 떠올리게 하지 않나요? 추리물은 이제 사건의 진상을 모르기 때문에, 장면을 툭툭 던지면 호기심이 일어서 계속 보게 되잖아요. 밑밥을 안 깔기 때문에 오히려 계속 보게 하는 그런 전략? 연재 소설 같은 데는 많이 보이는 전략 같아요.
근데 영화에서는 그거를 깔려면 되게 기술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소설은 글로 쓰니까 밑밥을 이렇게 툭툭 던지는 게 좀 더 쉬운데, 이건 영화의 장면 장면을 보여줘야 되니 밑밥이라는 걸 이해를 시키는 게 여럽죠. 확실히 라자몰리 감독이 대단하네요.
J: 은근 섬세하게 만들어요. 가령 (주인공) 둘이 만나서 처음에 우정을 나누는 그 노래에 나오잖아요. 그 노래 자체도 예고를 하지만, 얘네들이 어떤 파국을 맞이할까? 그 와중에도 얘네들 들판에서 놀 때 람은 팔로 철봉을 하면 빔이 얘를 업고 그러면 빔이 하체가 더 세고 람은 상체가 세고 이런 복선을 깔고(웃음)
B: 그러니까 그 우정 송이 람이랑 빔이 처음으로 만날 때, 중간에 서로의 우정이 위기에 놓였을 때 그리고 둘이 같이 힘을 합쳐서 우정을 완성했을 때 그렇게 세 번에 걸쳐서 서서히 변화되는데, 뮤지컬 넘버가 나중에 리프라이즈라고 약간 변형되면서 다시 나오잖아요(뮤지컬의 노래들을 넘버라고 해요). 그걸 떠올리게 했어요.
J: 어떤 미국 평론가는 그 노래를 그릭 코러스라고,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합창단이 나레이터 같은 역할을 하고 내용을 간추려주기도 하고 과연 이 비극은 어떻게 될까 같은 예고를 하는데, 그걸 현대 영화에서 하고 있으니까 되게 신기해 하더라고요. 그런 노래를 되게 효율적으로 쓰고 있어요.
영화가 이제 제목은 《RRR》인데 ‘라이즈 로어 리볼트’죠? 처음에 오프닝에서 ‘스토리’같은 부분에서 R를 맞추려는 부분이 좀 약간 억지스럽기는 한데요.
B: 유치한 걸 본인이 알 텐데 그냥 밀고 나가는 게 라자몰리 감독의 매력인 것 같아요.
M: 밀고 나가니까 납득이 되고 우리가 말려가는 거예요. 《나는 파리다》도 너무 유치하잖아요. 근데 그걸 진지하게 계속 밀고 나가니까 이렇게 우리 거기에 휩쓸려 가잖아요.
J: 할리우드에 많이 있는 냉소나 감독 등이 어떤 소재를 다루면서 약간 부끄러워하고, 민망하게 여기는 것이 보이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래서 괜히 캐릭터한테 재밌지도 않은 실없는 농담이나 던지게 하고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게 없어 완전 진지해
M: 페이스가 중요한 것 같아요.
B: 그러니까요. 남들을 웃기려면 자기는 안 웃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나한테는 완전 진지한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웃겨 보이게.
RRR속의 캐릭터들
- 람과 빔
J: 아마 인도에서는 익숙하니까 저게 어색하지 않아요. 인도도 아마 서사시나 이런 거 연극할 때 그런 걸 할 거예요. 라자몰리가 본인 말대로 어릴 때부터 인도 신화 만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자기 작품에 늘 녹아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렇기는 하죠. *람과 시타 이런 건 너무 노골적이다.
* 인도신화 ‘라마야나’의 주인공
M: 너무 노골적이게 잘 살렸어요. 비마는 *신화 속의 비마 그 성격 딱 그대로예요.
약간 힘세고 되게 감정적이고 정의로워서 어쩔 줄 모르고 도와주고 싶어 하는 딱 그 모습.
* 인도신화 ‘마하바라타’. 빔은 그 신화의 등장인물 중 하나이다.
B: 시타하고 람이 그렇게 절절히 사랑하는 사이라고 얘기를 여러 번 해도 사실 영화 속에서 서로 감정 교류를 제일 깊이 하는 건 람이랑 빔이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B: 람이랑 시타의 로맨스, 빔하고 제니의 로맨스는 진짜 너무 구시대적이고 평면적이고 전형적이고 재미가 없는데 람이랑 빔 감정선은 엄청 잘 그려내거든요.
J: 그래서 이 사람 브로맨스도 잘 만드네 그래서 놀랐어요.
M: 우정을 나눌 수밖에 없는…
B: 마지막에 람이 라마 신 복장을 하는 것도 영화 보기 전에 라마 신 복장을 한 스틸컷만 봤을 때는 영국 경찰이라더니 왜 갑자기 라마 신 복장을 하고 다니지? 이상했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니 나중에 그것마저도 개연성을 챙겨주더라고요.
그런데 그 의상이 실존 인물이 주로 입고 다니던 의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실존 인물을 오마주 하면서 개연성까지 찾아준 거죠.
J: 그리고 빔에 대해서는 무슬림 차림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면 라마 라주에 대한 논란은 우리 라마 라주님은 약혼녀가 없었어! 싱글이었어! 이런 논란이 있더라고요.
원래 이름이 알루리 라마 라주였는데 시타라는 여자애를 좋아했대요. 근데 걔가 일찍 죽었나 헤어져서 걔 이름을 영원히 자기 이름에 붙여서 새겨 놓겠다 해서 ‘시타 라마 라주’가 된 거에요.
초기 프로모션 포스터의 무슬림 복장이 논란이 되었다
B: 근데 제가 실존인물이라면 내가 짝사랑하는 여자를 내 약혼녀로 만들어줘서 나랑 애절하게 사랑하는 모습을 영화로 만들어주면 되게 좋을 것 같은데요.
J: 그런데 그건 좀 약간 종교적인 이유도 있어요. 왜냐면 그 사람은 수행자였잖아요. 수행자들도 결혼을 안 하는 건 아닌데 극단적으로 금욕 수행하는 사람들은 결혼을 안 하거든요. 그래서 그랬을 리가 없어! 라는 거죠.
B: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여자로서 좋아했다는 얘기가 기독교인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는 거랑 마찬가지네요.
J: 그런 거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어쩌면 본인은 좋아했을 것 같아요. 시타가 살아있고 그러니까. 근데 물론 당연히 라자몰리 감독은 역사적인 요소도 도입하면서 동시에 진짜 라마와 시타의 요소를 섞었죠. 후반엔 옷도 완전히 시타처럼 입었잖아요.
B: 시타처럼 위엄이 있고
J: 그리고 재치 있고 기지가 있고
M: 시타처럼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B: 시타도 라마가 구해주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잖아요. 인내심 있게. 아무리 라바나가 협박을 해도 굴하지 않고.
J: 그래서 거기가 좀 재미있더라고요. 맹세를 하잖아요. 심지어 시타가 얘기를 하는데 거기가 시타랑 라마랑 하누만이 있는 상이야. 그거 너무 노골적이야! 그 얘기를 하고 빔이 후회를 하면서 신상을 보고 각성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시타가 라마를 찾아가선 안되죠. 라마가 시타에게 와야죠. 그래서 내가 데려다 줘야겠어. 그게 하누만의 역할이죠. 자기가 하누만의 역할이라는 걸 각성하는 거죠. 되게 노골적이다!
또 그런 생각을 해봤는데 최근에 본 한 영화에서 주인공이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만드는 겁니다. 두 사무라이의 여행기를 다룬 이야기인데 알고보니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원수였던 겁니다. 감독은 이 설정을 가지고 이 둘을 싸우게 만들까 아니면 꼭 사무라이가 싸워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데요, 이런 영화처럼 두 사람이 숙명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상황이 오는 이야기들은 일반적으로 두 사람에게 대결을 붙이더라고요.
그런데 그것이 고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사람들의 대결에의 욕망이 계속 발현되어 그런 건 아닌가 싶어요. 이런 점에서 《RRR》 역시 두 주인공이 대결을 피할 수 없었죠. 저는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람과 빔이 총독부를 쳐들어가는 내용이 아니라 총독부를 습격한 빔이 람과 대결하는 부분이라고 보고 싶어요.
둘이 이렇게 대치되어 특히 빔의 절절한 사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람은 계속 때리지만 빔은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면서 “자네가 왜 그 군복을 입고 있는지 모르겠네, 나 가슴이 아파.” 이러면서 “자네는 인도인이 아니야?” 이런 것들이 되게 클리셰적인 대사기는 하지만 그 부분에 되게 힘을 많이 실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두 사람의 대결까지 오게 하기 위해서 거기까지 불을 확 지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J: 싸우는 걸 보면 되게 대단하다 싶지만 동시에 되게 안타깝잖아요. 그리고 람을 시켜서 때리게 하잖아요. 피 튀는데 사실 울고 있는데 이거 숨겨야 하니까 피를 닦는 척 눈물을 닦고
누가 SNS에 그런 글을 올렸더라고요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때리더라
B: 눈물 씻으면서 때리잖아요.
일반적으로는 그 순간부터 심금을 울리는 스코어가 나오기 마련인데 그때 음악을 안 쓴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나중에 빔이 노래를 부르게 하기 위해서. 그런 클리셰적인 연출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었고 자기가 쓰고 싶었던 부분은 여기였기 때문에!
J: 효과적인 선택과 집중이죠.
정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던 그렇게 다 만들었는데도 저런 영화를 만들어 낸 걸 보면 신기한 것 같아요.
M: 우리도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어떤 영화는 감독이 하고 싶은 걸 다 해요, 여기저기서 자기가 보고 배운 영화들을 갖다가 쓰는데 하나도 안 맞아요. 이건 능력의 차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B: 노래 부르는 장면에서 정작 형벌을 받고 있는 빔이 오히려 의연하게 노래를 함으로써 그곳에 있는 민중들을 감동시키잖아요. 그런 효과를 노린 것도 있었죠.
그러니까 하나만 했던 것도 설정을 쓰는데 그걸 감독이 다 알고 쓴 거죠
B: 가시 채찍으로 맞으면 아파 죽겠는데 어떻게 노래를 부르냐고, 힘이 다 빠졌을 텐데 하고 개연성을 따지는 사람도 있지만 클리셰도 피하면서 사람들한테 감동도 불러 일으키는 효과를 내잖아요. 그런 데서도 라자몰리 감독이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 같은 것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자기가 내기 원하는 효과들은 다 최대한으로 낸다고 생각을 해요.
M: 사실 남주인공이 그렇게 좀 비이상적으로 강한 건, 만화 같은 좀 과장이 섞인 매체들을 통해 충분히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하네요.
J: 그 장면 되게 라주한테도 이입하게 되죠, 괴로운 입장이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군중의 입장에 더 강하게 이입하게 만들어서, 엑스트라들 클로즈업도 몇 번인가 있고 그러잖아요.
굉장히 안타까워 슬퍼하다가 나중에 분노하고 여기서 팍 터트리게.
그리고 총독 파티 때 약간 웃겼던 게 지금까지 람이 불이고 빔이 물이라는 걸 계속 보여주고 있었는데 근데 정말 횃불 들고 있고 호스까지 나와서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싸우다니… 그리고 람 뒤에 폭죽 터지는 거 구도를 일부러 그렇게 한 거잖아요. 멋있어 보이게.
어쨌든 자잘한 장면들도 좋았던 게 가령 빔이 말리를 찾잖아요. 찾지만 당장은 못 데려가잖아요. 애는 막 흥분하고 슬프니까 빔한테 가지 말라고 하잖아요. 경비한테 발견될 수도 있는 되게 위험한 상황인데 거기서 이렇게 애한테 소리치거나 이러지 않고 그냥 노래를 불러주는 거. 근데 그게 자장가잖아요. 자다가 일어나면 좋은 날이 올 거야 그런 내용인데 디테일이 되게 좋았고요.
힘이 세지만 동시에 다정한 인물이라는 걸 동시에 잘 보여주는 거죠
저는 그 장면 기억나더라고요. 빔이 말리를 찾기 전에 말리가 백인 총독 부인하고 다른 부인들에게 헤나 같은 걸 그려주잖아요. 그러다 밥 시간이라고 하는데 애를 쫓아내더라고요. 밥도 안 주고 쫓아!
B: 총독부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걔가 노래하는 종달새이자 헤나 그려주는 도구밖에 안 되는 거예요. 애초에 그냥 이국적인 액세서리로 두려고 데려온 거죠.
자기들 밥 먹을 때 되니까 쫓아내네요. 이런 쓰레기가 없어!
B: 아예 철창 안에 가두잖아요.
물리적인 폭력을 직접 쓰지 않고도 어떻게 폭력이 넘치는 연출을 할 수 있을까? 밥을 안 준다? 너네가 스웨덴이야?
J: 넷플릭스에 그런데 초반에 좀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 보면 넷플릭스 초반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극히 일부지만 《RRR》 처음에 엄마를 때리잖아요. 거기서 너무 폭력적이라 더 이상 못 보겠어. 어쩔 수 없지만… 근데 영등위가 이걸 제대로 끝까지 안 봤다고 깨달은 게… 말리 엄마 살아 있잖아!
M: 저도 사실은 바로 전날 ‘어쌔신 크리드’를 하면서 NPC들을 썰고 다니지 않았으면 그 장면이 되게 폭력적이라고 느꼈을 텐데, 실은 게임에서 더한 일을 하고 왔기 때문에… 은근슬쩍 충격 없이 넘어간 것도 있네요.
어색해서 수상한 영국인(?)들
J: 알리아 바트도 되게 짧게 나왔지만 제니보다 더 캐릭터가 잡혀 있잖아요.
M: 맞아! 맞아!
J: 컨텍스트가 있으니까.
B: 제니하고 시타가 나름대로 막판에 가서 활약을 했지만 그래도 남자 캐릭터들에 비해서는 그냥 성녀 포지션이고 단순한 역할이어서 아쉬웠어요. 특히 제니의 경우에는 예쁘고 착한 백인 여자의 전형이죠. 주인공의 착한 조력자가 되기 위해서 존재하는 캐릭터 같았어요.
M: 이게 진짜 이해가 안가요.
J: 그러니까요, 자기 숙부 부부 다 죽을 수도 있는 계획을 돕다니…
M: 그리고 삼촌이랑 숙모가 죽었는데 마지막에 같이 춤추고 있는 게 난 진짜 이해가 안 가. 거기서 깼어요. 다 좋았는데.
J: 그건 차라리 그냥 제니를 공산주의자로 만들었어야 했죠. 그런 사람도 있잖아요. 부잣집 사람인데 좌파 운동가 되고, 체 게바라가 그랬잖아요.
빔이 집 크기가 크다고 말했잖아요. 그러니까 제니가 아름답지만 진짜 집 같지 않다고 그러니까 약간 가족에서 좀 소외감을 느끼는구나 했는데 그거 거기서만 딱 끝나버렸기 때문에. 좀 더 가족이랑 사이가 안 좋고 그런 게 나오지도 않고…
B: 삼촌이랑 숙모가 인도인들한테 만행을 하는 걸 보고 “삼촌, 숙모,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대드는 모습도 전혀 안 보였고요. 그것도 호감을 품은 남자가 숙모 때문에 더 심한 고통을 당하게 될 상황인데.
M: 그냥 착하게 자기 좋을 대로만 하고 있는 거잖아요.
처음 보는 남자 차 타고 가는 것도 이해가 안 됐어요. 치안이 괜찮은 한국에서도 그러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텐데.
B: 그것도 지금 총독이 인도 사람들한테 잘해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못된 총독의 조카를 인도 사람들이 납치하거나 해코지하기 좋은 상황이잖아요. 먹잇감 되기 딱 좋죠.
M: 이건 제니가 인터내셔널이라도 커버가 안 됐어.
뒤에 병사들이 있잖아요.
B: 그런데 병사들이 제니랑 빔이 주차하고 나서 시장에서 장 보고 있을 동안까지도 제니를 못 찾았으니까요.
J: 근데 그것도 웃긴 게 빔이 호의를 느끼기도 하지만 되게 상냥한 여자니까, 동시에 저 여자랑 친해지면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계략을 세우기도 하고.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하지는 못하고. 생각해보면 빔의 치명적인 매력으로 결국 총독부가 폭파한 셈이니 옴므파탈인 것이죠. (두둥) 곰돌이 같지만.
그럴 수도 있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각본을 탄탄하게 안 쓰신 것 같아요.
B: 그러니까요. 이성의 로맨스 부분은 구태의연하다니까요.
J: 데바세나나 시바가미(《바후발리》의 등장인물) 같은 사례가 있다 보니까. 사람들이 여캐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것 같아요.
B: 그리고 시타의 경우에도 솔직히 《강구바이 카티아와디》 때보다는 알리아의 연기력이나 매력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연기력을 보여줄 여지 자체가 적었죠.
M: 캐릭터를 하나하나 다 살리면은 분명 람과 비마를 집중적으로 보여주기 어려울 테니까 취사 선택을 하신 것 같아요.
J: 그런데 제니는 납득이 안 가!
B: 그것도 말도 하나도 안 통하는데 그 말도 안 통하는 남자를 뭘 믿고 저러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 람이 제니가 탄 차의 타이어를 일부러 펑크 내는 걸 보고 세상에 저게 진짜로 통한단 말이야? 싶었어요.
J: 람 차란 영화에 되게 많이 나온대요.
캐릭터들이 다들 평면적이지만 너무 악역만 있으니까 숨 쉴 틈을 주고자
M: 어떻게 해야 제니가 바보가 되지 않을까? 일단 인터내셔널 말고 뭔가 더 있어야…
너무 그쪽에 집착이 심한데요?
B: 평소에 힌디어를 열심히 배워서 현지인들이랑 어울리고 다니고, 툭 하면 집을 나와서 삼촌이랑 숙모가 얘를 진짜 눈엣가시로 여기는 거예요.
M: 귀족 집안에 태어난 또라이 아나키스트 제니라면 납득이 된다.
J: 머리가 좀 비어보여… 나미꼬잖아요. 야인시대의.
이게 약간 식민지 겪은 나라들마다 다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캐릭터 유형을 제가 충분히 찾아보지 않아서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배국의 예쁜 여자, 그냥 주인공을 어쨌든 좋아하는, 식민지 남성성의 회복을 위해 존재하는 여캐…
B: 네, 맞아요. 특히 *‘Naatu Naatu’ 맛살라 시퀀스에서 제니와 다른 영국 여자들이 같은 영국 남자가 아니라 람이랑 빔을 막 응원해 주면서 예쁜 드레스를 입고 같이 춤춰주잖아요.
* 힌디어판은 ‘Naacho Naacho’
J: 재미있지만 그런 의도가 아무래도 좀 노골적이라서 깼어요.
M: 그 신은 좋았는데
J: 17-18번 찍었던가 그렇더라더라고요.
M: 아니 근데 그게 우리나라 독립 투사들이 일본 어디 연회에 갔는데 일본 여자들이 자기네 남자 싫어하고 다 같이 춤추고 있으면 너무 어색할 것 같아요.
B: 나미꼬가 김두한을 좋아하는 것처럼요?
J: 근데 그것도 잘 보면 그런 캐릭터는 대부분 끝에 잘 안 돼요. 왜냐면은 식민지 남성성 회복을 위해 적의 여자가 얘를 좋아하는 설정을 했는데, 막상 생각해 보니까 독립 투사가 좀 매국노 같아지는? 그러니까 조금 끝이 애매하고, 나미꼬랑도 잘 안 되잖아요. 그리고 그 《라간》의 여캐도…
B: 엘리자베스요.
J: 네, 그 엘리자베스랑도 잘 안 되죠.
M: 그걸 다 차치하고서라도 마지막에 춤만 안 췄어도 나는 이해했을 거야.
J: 그거야 포스트 크레딧 서비스 장면이죠… 심지어 죽은 람 아빠도 나와서 춤추잖아요.
B: 뮤지컬 끝나고 나오는 커튼콜 같은 거예요. 뮤지컬에서는 본편 안에서 죽었던 캐릭터도 악당들도 커튼콜에 다 같이 나와서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거든요.
M: 네 맞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납득이 가는데 그래도 제니는 좀 너무 캐릭터가 이상했어요.
J: 역시 공산주의자로 만들었어야 해. 그러면 다 해결이 됩니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인터내셔널이었잖아요. 애초에 제니가 너무 심하게 빨갱이 운동을 해서 강제로 삼촌 집에 보내진 거예요.
B: 삼촌 성격만 봐도 애를 확실히 잡겠다 싶어서 삼촌이랑 숙모 보고 얘를 감시하라고 삼촌네로 보내놓은 거죠.
M: 그런 노동운동을 영국에서 하길래 딸을 보내버린 거죠.
B: 그리고 힌디어도 열심히 배웠고. 제니는 끝까지 영어만 하잖아요. 인도 사람들한테 친절하긴 해도.
J: 빔한테 협력적인 것도 그런 걸 수도 있고요.
그리고 실제 인물 빔이 공산당이랑 손을 잡았어요. 인도공산당이 당시에는 불법 조직인데 부당한 권력자하고 싸우니까 약간 그것에 대한 역사적 암시랄지, 그런 것도 슬쩍 넣고 해서
M: 오! 완벽해 완벽해!
B: 저는 사실 빔이 자기 동생을 데려가려고 했고, 총독부 앞마당을 완전히 초토화해 놓은 거에 대해서 제니가 화를 내거나 뭐라고 하는 장면이 나중에 나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런 모습도 전혀 없으니까, 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M: 트로피죠 그냥 캐릭터가. 그래서 좀 그게 좀 아쉽기는 하죠.
B: 그냥 도구적인 캐릭터죠. 자기 생각이나 의지가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다른 영국인 캐릭터들처럼 대사나 행동이나 진짜 일차원적이었어요.
M: 인터내셔널 제니였으면 그 모든 단점이 해결됐을 텐데.
B: 원래 자국 영화에서는 외국인 캐릭터들의 성격, 대사, 행동이 일차원적이어서 <서프라이즈> 재연 배우들처럼 돼버릴 수밖에 없어요. 《택시 운전사》에서 그 연기 잘하는 토마스 크레치만도 <서프라이즈> 재연 배우 같아 보였을 정도였죠.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아예 영국인들의 대사 자체도 일차원적이니까 연기가 더 어설퍼 보이더라고요.
악역 캐릭터들도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 않고 코믹해 보여요. 그게 단점일 수도 있겠죠. 이 영화 속 영국인들은 종이인형같이 납작한 악역이고 연기도 되게 어설퍼 보여요.
스콧 벅스턴 역의 레이 스티븐슨
J: 근데 저는 좀 배우들 신나 보이던데
M: 그런 노골적인 악역을 하는 건 의외로 재밌지 않을까요? 캐스팅을 노골적으로 악역 같이 보이게 참 잘 했어요.
J: 아니 심지어 부인 있죠, 총독 부인은 《인디아나 존스 3》에서 여친을 사귀었는데 알고 보니 나치였잖아요. 그 캐릭터 배우였어요.
M: 그렇게 1차원적으로 표독스러운 연기도 엄청 재밌을 것 같아요.
B: 그런데 그 총독 부부로 나오는 배우들이 아일랜드 분들이에요. 아일랜드도 영국한테 식민 지배를 당해서 맺힌 게 많으니까 오히려 더 신나게 영국인 악역 연기를 했을 수도 있어요.
M: “엿먹어라 이 나쁜 놈들”이라는 기분으로 연기하는 건가요.
총독으로 나온 분은 좀 약간 인지도가 있는 배우기는 한데
J: 레이 스티븐슨
맞아요. 이 분은 되게 상남자스럽게 생겼잖아요. 이 분 필모도 보면은 주로 상남자스러운 역을 맡으셨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정말 대사를 별로 안 하시는데 하는 것마다 되게 1차원적이어서...
“당신이 그렇게 잔인한 면이 있었구만~” 이런 거
M: 그런데 그게 이 영화의 분위기에 어울렸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일차원적이고 과장된 인물이나 대사가 어울리도록 감독이 분위기를 잘 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만화에서 그런 대사가 등장하면 아무도 욕을 안 하잖아요. 근데 진지한 순문학에서 그런 대사가 등장하면 비판의 대상의 되죠. 그러니까 감독님이 나름 장르를 잘 잡은 것 같아요.
발리우드가 아닙니다
일본에서 인도영화 시대를 열었던 영화 《춤추는 무뚜》
라자몰리 같은 감독들은 뻔뻔하게 밀고 나가는 패기가 있죠. 개인적으로 나쁜 영화들은 애매한 영화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인도에는 특히 발리우드를 중심으로 소위 니맛도 내맛도 아닌 그런 영화들이 되게 많이 나왔잖아요.
최근에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발리우드 영화가 망했다’라는 말들이 많이 나오는데, 특히 요즘 들어 남인도 영화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만큼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게, 인도에 넷플릭스가 들어오기 전에도 할리우드 영화는 계속 들어왔을 거 아니에요.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주로 영화전문학교까지 다닐 수 있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일 텐데 이 사람들은 거의 다 할리우드나 서구의 작가감독의 영화 위주로 섭렵했을 거잖아요.
라자몰리 감독 역시 좋은 환경에서 자란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이 사람의 영화와 그들의 영화는 차이를 보이는 것인가. 이건 자란 환경이나 교육의 차이 같지는 않아요.
그러고 보면 아까 얘기했던 ‘어중간한 사람들’이 발리우드 영화계에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사람들이 할리우드 영화처럼 탄탄한 구성을 가진 그런 영화를 만들어야겠어 하고 영화판에 뛰어들지만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지 않은 듯하고, 심지어는 거기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도 영화에 인도색이 없냐? 저는 그렇게 안 보거든요.
이를테면은 시네필 계열의 감독으로 유명한 아누락 카쉬아프나 제가 좋아하는 《블라인드 멜로디》를 만들었던 스리람 라그하반 같은 사람들이 그런 류에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하다못해 인도의 음악적인 개성 같은 요소를 살리고 가거든요. 완전히 나는 타자라고 생각하면서 살 순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기존 틀에 반하고 새로운 걸 만들겠다고 해서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소수이고 대부분은 그렇게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하거든요. 비평적으로 보나 관객들의 평가로 보나 시원치 않아 보이는
그런데 남인도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런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냥 우리 언어권에서 유행하던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어서 춤도 많이 나오고 노래도 많이 나오는 영화들을 만들겠다고 해서 영화를 만들면 관객들이 ‘그래 이 맛이야’ 하면서 극장으로 향하게 되죠
2022년 화제가 된 또다른 남인도 영화 《K.G.F. Chapter 2》
J: 부족한 걸 채워주는
처음엔 발리우드 영화판이 기존 틀에 대한 거부와 반대로 세련된 영화를 만드는 인도영화판 중에서도 차별된 구역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무너지지 않았나 합니다. 물론 발리우드에서 그런 식으로 영화를 소위 까리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조차도 타자화를 할 수는 없고 그럴 거면 아예 잘 만들든가 아니면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만들든가.
그런 점에서 라자몰리 감독 같은 경우는… 사실 제가 남인도 영화에 관심이 많기는 하지만 그 텔루구어 영화권에서 나오는 소위 ‘뻥구라’영화들은 항마력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도 사실 중력을 거스르잖아요.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면 상영회를 준비하면서 먼저 오신 분들과 Vijay가 나온 《비스트》라는 영화를 같이 봤어요. 타밀어권 영화지만 M님이 ‘어쌔신 크리드’ 같다
M: 제가 그거를 어제 밤새 하고 왔는데, 엄청 주인공이랑 똑같은 거에요.
그 영화가 ‘어쌔신 크리드’ 영향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도에서는 그렇게 중력을 거스르는 그런 액션이 많이 나왔었잖아요. 벽타는 건 아니지만 《RRR》에서도 지형지물을 밟고 올라가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M: 인간이 떨어지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에서 ‘신뢰의 도약’을 하고 (웃음)
B: 사실 《바후발리》에서 사람들이 공처럼 모여가지고 날아가는 장면도, 실제 물리 법칙을 적용했으면 성에 떨어지는 순간 아버지 바후발리 일행은 다 죽었겠죠. 떨어졌을 때의 충격으로.
그런데 《RRR》이 그런 다른 남인도의 뻥구라 영화와 다른 게, 일단은 뻔뻔하다 못해 너무 예술의 경지로 가다 보니까 이 사람은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원래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납득을 하거든요.
그런데 인도에서는 너무 일반적이니까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볼 거 아니에요. 그런데 재밌는 점을 하나 알려드리면, 이건 《나는 파리다》 때 풀려고 했던 이야기인데, 캐나다에 있는 ‘애프터다크’라는 호러영화제에 《나는 파리다》가 초청이 됐어요.
사람들이 보고 ‘어떻게 이런 영화가 있지?’ 하면서 그 영화제에서 8개 부문을 수상했어요. (9개 부문으로 정정)
지금 쩌는 인도영화가 개봉한다면서 《RRR》로 라자몰리를 혹은 인도영화를 처음 만나 관객들도 있겠지만 라자몰리의 영화를 그 후로 틈틈이 본 관객들이라면 이 사람은 내놓는 영화마다 어떨 거라는 느낌을 가지고 지금까지 봐온 것들을 학습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토론토 애프터다크 주요부문을 휩쓴 《나는 파리다》
그의 등장은 일종의 '애매한 인도영화(특히 발리우드)'에 대한 남인도의 응답 혹은 반격으로 느껴지고요. 이렇게 라자몰리 감독은 나름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곳에서 하고 싶은 거를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게 3시간 넘는 러닝타임인데 GV 같은 걸 하면 “원하시던 걸 다 이루셨어요?” 하고 물어보고 싶어요. “그래도 아직도 배고픕니다.” 이러시지 않을까? (웃음)
J: 인터뷰 중에 많았던 게, 그리고 또 우리나라 사람들도 반응이 많았지만, 이 사람이 마블 영화 만들었으면 좋겠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인재를 왜 썩혀?’ 그런 생각을 해요. 디즈니 밑에서 일하면 자기 마음대로 만들지도 못할 거 아니에요.
예전에 라자몰리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에 《바후발리》를 들고 부산국제영화제에 왔던 적이 있는데요, 제가 GV 때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오만했던 것 같은데, 무슨 질문이였느냐면 “발리우드에서 감독 제의가 온다면 하시겠냐?”는 거였어요.
아마 라자몰리의 입장에서는 ‘쟤는 뭔데 저럴까? 쟤는 발리우드 영화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나 보지? 나는 아닌데’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고 지금도 그렇고요. 물론 당시(2015년) 저를 비롯해서 한국에서 인도영화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인도보다 발리우드 영화에 더 익숙해져 있고 실제로도 인도 내에서 큰 지분을 가졌던 영화시장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 라자몰리 감독은 오히려 발리우드 스타인 알리아 바트와 아제이 데브간을 기용해서 조연으로 앉히고 텔루구어권 영화를 드높이는 일을 한 거죠.
영화 《RRR》에 출연한 발리우드 스타 아제이 데브간
RRR과 역사물을 보는 시각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인도영화가 2022년도에 상반기에 한 편도 개봉이 안 됐고 영화제에서도 별로 선정이 안 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영화 마니아가 아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지식, ‘브로맨스가 너무 뜨거우네요.’ 이런 감상평처럼 인도영화 외의 다른 콘텐츠에서 많이 학습된 부분을 끌어들이는 그리고 우리가 식민지 지배국가였고 일본한테 압제를 많이 당했으니까 이 영화를 보면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영화라고는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까지 알게 되면 이 영화가 좀 달리 보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다시 돌아와서 라자몰리 감독의 정체성은, 정말 뻥구라를 치더라도 자기만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이 지금의 위치에 온 것 아닌지. 저는 놀랐어요. 헐리우드 평론가 협회에서 상반기 영화를 선정했는데, 이 영화가 2위까지 올랐던데요. 얘네들이 원래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 들고요.
미국의 다양한 매체에서 영화 《RRR》을 주목했다.
M: 작품을 만들 때, 남의 눈치 보고 관객 눈치 보고 평론가 눈치를 보면, 작가 혹은 감독이 남의 기준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보는 사람도 은연중에 알게 되니까, 관람자 나름의 기준으로 평가하게 되죠. 그런데 오히려 남의 기준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감독 자기의 식대로 밀고 나가면 보는 사람이 스스로의 기준으로 평가하기가 어려워지는 거죠.
왜냐하면 그건 그 사람만의 고유한 기준으로 만들어진 거니까. 보는 이의 기준을 들이대기가 애매해져 버려요. 감독의 기준에 휘말려 버렸다고나 할까. 우리도 지금 다 그런 상태인 것 같아요.
B: 심지어 엔딩 시퀀스에 감독이 나와서 같이 춤을 추고 있어도 아무도 그거에 반감을 가지지는 않잖아요.
우리나 감독인지 알지 다른 사람은 감독인지도 모를 것 같은데요.
J: 그렇죠, 보통은 “누구야 저 아저씨는?”
B: 감독인 줄 아는 사람은 ‘감독이 저기서 왜 저러고 있어?’ 할 테고 모르는 사람은 ‘저 아저씨 누군데 저기서 왜 저러고 있어?’ 하겠죠. 이런 반응이 나올 걸 본인도 알았을 텐데 상관 안 하고 그냥 뻔뻔스럽게 배우들이랑 같이 춤추잖아요.
M: 이게 바로 내 영화다 YO! 잘 봤지?
라자몰리 감독
J: 그런데 한편으로는 좀, 인도 사람들도 신기해해서 이렇게 외국에 인도영화가 히트치는 게 진짜 오랜만이잖아요. 나름대로 자기들도 분석을 하거나 그러는데 주변에 인도인 아닌 친구들한테도 물어보고, 그런데 대부분 이게 처음 보는 인도영화이니까. 인도인들은 대부분 이미 남인도의 황당 구라액션을 좀 보고 나름대로 이 컨텍스트 안에서 아는 구조잖아요. 물론 그중에서도 굉장히 특출나게 잘 만들긴 했지만. 그런데 인도영화에 관심이 없는 인도 밖 사람들은 전혀 처음 보는 거니까 굉장히 충격 경악 감동? 받을 만하죠.
M: 네, 충격적이지만, 그래도 이야기는 잘 만들어졌다.
J: 잘 따라갈 수 있게 만들어놓고 그래서 그리고 《바후발리》도 이 정도로는 국제적 인기가 없었지 하고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그건 일단 판타지니까 외국인들이 봤을 때 《300》 이런 것처럼 비슷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실제로는 완전 판타지지만 옷도 사실 시대별로 뒤죽박죽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모르고 역사물로 생각해서 《바후발리》 보려면 인도 역사를 알아야 되나? 라고 착각할 수도 있고. 사람들이 역사물이라고 보이면 좀 거부감을 느끼고 그래서 은근 허들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RRR은 현대에 걸쳐 있으니까. 20세기 초반이잖아요. 영국이 지배하는 걸 다 알고 그러는 시대기도 하니까 그래서 먹혔던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B: 우리도 식민지였던 나라였으니 제국주의 지배에 대해서 저항하는 심리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많이 공감했을 거예요. 우리나라에도 <각시탈>이 있긴 했지만 픽션이었잖아요. 이렇게 완전히 판타지스러운 상상력으로 실제 역사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되게 신선하게 사람들한테 다가왔던 것 같아요.
M: 우리나라는 대체 역사 웹소들이 소수지만 잘 팔리는…
B: 그런데 그게 완전히 대중적이지는 않잖아요. 실존 인물을 소재로 만든 콘텐츠에서 실존 인물이랑 다른 행적이나 다른 성격을 보여주면 항의가 굉장히 많이 들어오고요. 우리 조상이 언제 그랬냐, 이런 식으로.
J: 소설은 좀 그런데 드라마화가 되면 그래서 드라마화를 못하는 게 많아요.
B: 그래서 드라마 중에 대체 역사물 하나가 있었긴 했는데 그것도 매국노 드라마 소리를 들었잖아요.
M: 근데 저는 좀 신기한 게, 일본은 우리나라와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다른 건가 싶기도 해요. 제가 어릴 때 ‘은혼’을 봤었는데 은혼 보면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이런 애들을 막 엄청나게 희화화하고 똥쟁이로 만들고 난리도 아니거든요.
어릴 때 ‘은혼’ 보면서 무슨 생각했냐면, 아니 일본 사람들은 이런 거 보고 막 불매하거나 화를 안 내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J: 그런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원래 좀 인기가 없어요
M: 이에야스 뿐만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랑 오다 노부나가 3인을 귀신 온천 산장에 넣어놓고, 과격한 몸개그로 희화화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별로 인기 없는 역사 인물이라도 그렇게 만들면 문제 되잖아요.
애니메이션 '은혼'에 등장한 삼인방
B: 철종이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인기 있는 인물이 아니고 철인왕후라는 인물 자체는 심지어 드라마 시작하기 전에는 인지도도 거의 없었죠. 그런데도 그 인물들을 왜 그렇게 희화화하고 모욕하냐고, 중국 자본을 받아서 그런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매국노 드라마가 됐었죠. 그러니까 역사적 상상력을 펼칠 여지가 되게 적은 거예요.
J: 사실 저는 ‘조선 구마사’ 기사 처음 나왔을 때, 설정 자체는 재밌어 보였거든요. 처음에 뭐라고 생각했냐면 ‘카톨릭 조선? 이거 유교 대신에 카톨릭을? 이거 좋다! 재밌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 정도로 대담하게 가지도 않았고, 조선의 건국이 사실 악마와의 거래로 인한 거였다는 설정을 하니까 어중간한 것도 있고 소품 등 잘못 써서 반중심리도 자극하고. 우리나라에 제노포비아도 있고 실제로도 중국이 위협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좀 되게 예민한 상태에서 자극해버려서 결국 드라마 방영 취소까지 되어버린 것 같아요. 진짜로 문제적인 거라면 오히려 ‘설강화’ 쪽인데, 그러고보니 그 시나리오 작가는 ‘각시탈’에서도 강자 쪽 입장에 옹호적이었죠.
M: 요즘 젊은 세대들 분위기 엄청나게 반중 심하거든요. 근데 저는 좀 이해가 가기도 해요. 우리 엄마 아빠 세대는 중국이랑 잘 지내고 중국 가서 돈 많이 벌어 오고 이런 분위기였는데. 우리가 철 들어서 약간 정치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중국이 우리 게임에 판호를 안 내주는 등등 치사한 짓을 하는 게 맨날 뉴스에 나왔단 말이에요. 그러니 젊은 세대가 반중이 안 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중국의 문화 침탈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된 건 좋은 것 같아요.
J: 한복을 자기네 거라고 하잖아요. 청나라 옷도 멀쩡하게 있으면서 왜 그러나 했더니 청나라는 한족들 입장에서는 만주족한테 이렇게 당한 수치스러운 역사니까 그걸 한푸로 치고 싶지는 않고 명나라를 치고 싶은데, 명나라 것이 많이 안 남아 있으니까 대충 비슷하다고 여기는 한복을 가지고 시비를 많이 거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평범하게 한복 좋아요 하고 한복 캐릭터 그림을 그려서 올렸을 뿐인데도 이상한 악플이 달려 시달리는 상황이 많다고 하죠.
M: 제가 중국 소설, 웹소도 많이 보거든요. 근데 되게 별점테러를 많이 당해요. 중국 소설이라는 이유로. 그런데 중국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게 뭐냐하면 얘네들은 다른 주변 나라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어요.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생각이 없어요.
한국 사람들이 역사 왜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아무 생각이 없이 그냥 자기네 교과서나 뉴스에서 배운 대로 쓰는 느낌입니다. 중국인들은 정말로 다른 국가의 역사 인식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하긴 그러니까 중국 자본으로 일대일로를 했는데, 돈 들여서 오히려 욕을 먹고 있죠.
J: 베트남에다가도 그런 걸로 시비를 걸어서 베트남에서도 싫어하고.
M: 다 싫어하잖아요. 그게 자기네 돈 쓰고 자기네 세력을 넓히려고 했는데, 기본적으로 어떻게 하면 자기 나라에 긍정적인 입장을 갖게 할 지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패권 국가로서 중화라는 접근로로만 익숙해 있었지 근대적인 패권 국가로서 어떻게 타국의 환심을 사는가 그런 건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어 보여요.
J: 그건 지금 정치랑 상관이 있어서 시진핑이 이렇게 지금 최고로 오래 해먹고 있는 주석이잖아요. 그러니까 중국 내부의 드라마도 심지어 그냥 예전에는 가령 황제가 나빠서 황제를 갈아치운다 후궁이 암살한다는 내용이 됐는데, 황제=최고권력자=주석님은 다 힘으로 내용 통제가 엄청 심해요.
아니 원래도 통제가 많은데 이렇게 통제가 많아요?
J: 더 심해졌어요. 그래서 중국인들도 ‘중국 문화의 가장 큰 방해물은 중국 정부’라고 한탄하고.
한복 빼앗기를 진행중인 중국(출처: 뉴스 A)
B: 좀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나카지마 아쓰시라고 일제 강점기 때의 일본 작가가 있어요. 이 사람이 실제로 일제 강점기 당시에 조선에서 살았던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조선을 배경으로 쓴 소설들을 보면 조선인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무기력하거나 그냥 배경이거든요.
아니면 영국 작가가 쓴 소설 속 인도 사람들처럼 순박하고 아무 생각 없는 캐릭터로 나와요. 심지어 조선인 경찰이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조선인들은 왜 이렇게 다들 무기력하지.”라고 한탄하면서 같은 조선인들을 “너희 민족”이라고 해요. 일본 사람이 자기한테 경찰이라고 잘해주면 ‘내가 조선인인데 일본 사람한테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았네’ 하면서 속으로 좋아하고요.
J: 그 당시 앞잡이의 심리는 대충 알겠네요.
B: 그 소설을 보면서 이런 게 식민 지배 당시 일본인의 심리구나 싶었어요. 그 작가의 소설들이 실제 그 당시 지배국 국민의 시각은 이렇다는 걸 알 수 있다는 데서 역사적 가치는 있지만, 피지배국이었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저는 그 소설들에 반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이렇게 《RRR》처럼 지배당했던 국가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는 픽션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M: 솔직히 일본인 앞에서 일본인 욕하는 얘기를 하나요. 그러니까 일본인 입장에서는 무기력해 보이는 거지.
J: 그러니까요. 자기 입장을 생각을 안 하고.
M: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분인데, 아직도 일본 사람들 욕을 하세요. “일본놈들 우리 집에서 숟가락도 뺏고 기름도 뺏고 다 수탈해 갔다”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당시 피식민지인들이 욕을 안 했겠어요?
J: 그리고 적어도 약간 식민지마다 조금 다른데 특히 조선 살던 일본인들은 엄청나게 격리된 지역이었더라고요. 거기는 완전 별세계였달지. 자기들이 보는 조선인이란 식모, 하인 이런 사람들밖에 없었어요.
B: 심지어 그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학교 친구가 조선인인데, 주인공이 그 친구가 조선인이라는 걸 알게 되고 나서 ‘우리 학교에 어떻게 조선인이 있지?’ 이런 식으로 반응해요. 자기가 조선에서 살면서 조선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데 학교에 조선인 학생이 있다는 걸 의아해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그리고 자기나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나 걔가 조선인이라는 걸 의식 안 하려고 했다고 하는데, 그랬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의식했다는 거잖아요. 그게 더 차별적으로 느껴졌어요.
일단 이 영화를 토대로 얘기를 좀 약간 더 해보면, 주인공이 인도에서 핍박을 받는 계층의 사람이었고 결과적으로는 람도 본인의 그런 스토리가 나오면서 납득이 갈 만한 그런 부분을 얻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만약에 이 영화가 제니의 시각으로 그려졌다면 내가 사랑… 아니 관심 있어 했던 그 빔이라는 남자가 갑자기 짐승들을 풀어서… 이게 무슨 난리짝이야 이러면서 배신감 느낀다고 기술하다가도 또 얘를 잡았는데 가족들이 고문을 하네? 이건 너무 잔인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 사람의 서사로 만약에 소설이 만들어졌다면 편향된 시각과 노잼이지 않았을까? 하나만 하란 말이야 하나만!
이 영화는 왜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을까
영화 《RRR》은 12주 연속 차트 10위권 안에 머무르면서 인기를 모으는 중이다
J: 라자몰리는 해외에서도 인터뷰를 많이 받으니까 ‘당신이 마블에서 일하면 어떠냐’ 이런 걸 많이 물어보더라고요. 팬들도 궁금해하지만. 그런데 그러면 “나도 마블 영화 즐겨보고 ‘아이언맨’ 마크도 좋아하고 그러지만 아무래도 내 피 속에는 인도 신화가 있고 할리우드보다는 그냥 여기서 일하는 게 편하다. 언젠가 내 영화로 그것에 해당하는 블록 버스터로 만들고 싶다.” 그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제가 봐도 계속 그럴 것 같고요. 어떤 사람이 얘길 하더라고요 봉준호 감독도 외국 가가지고 《옥자》 이런 거 만들고 박찬욱 감독도 《스토커》 만들어서 담금질 되어 와서 지금 각각 《기생충》이랑 《헤어질 결심》 이런 거 만든 거 아니냐고
이런 논리라면 라자몰리 감독도 할리우드에서 한 번 담금질 당해야 되지 않나하는 생각도 해 보는데요, 제가 봤을 때는 라자몰리 감독이 인도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프라이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차기작도 텔루구어 영화를 만들 예정인데요, 앞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지금은 인도영화의 언어권에 대한 구역 자체를 나누는 것 자체가 좀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B: 그래서 문학 작품 중에도 영어나 프랑스어 같은 메이저 언어로 쓰였지만 자기의 원래 혈통에 속하는 나라의 언어나 음식, 전통 문화 같은 요소를 곳곳에 넣어서 자기 민족의 색깔을 내세우는 작품들도 많아졌고요
M: 문화적 색깔에 대해 생각해 보면, 왜 한국의 관객들이 왜 인도영화를 볼 마음의 여유가 없는지 좀 알 것 같기도 해요. 우리가 계속 서양이나 남의 문화를 따라가다가 이제 우리 거가 좀 인정받고 그런 시대잖아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게 아닐까요? 우리 민족의 색깔을 내세우고 보여 주기에도 바쁜 거죠, 아직은.
인도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이제 앞서 나간 나라를 따라하지 않고, 새로운 중심을 만들려고 하고 있죠. 그래서 아직은 한국인들이 탈분권화를 시도하고 있는 옆 문화권을 보기에는 여유가 없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이 방향성은 어떻게 갈지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우리나라 사람도 인도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인도 사람도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좋겠습니다.
저는 넷플릭스 코리아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인도 영화가 너무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 자체가 가져온 어떤 긍정적인 요소를 담자면 일단 한국인으로서는 국뽕 얘기를 하자면 이런 플랫폼이 전 세계에 한국의 콘텐츠를 서비스를 하면서 ‘오징어 게임’ 이런 드라마가 이제 확 떴는데요, 이것이 주는 의미가 있다면 다양한 나라들의 콘텐츠가 비슷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 되겠죠?
‘기회의 균등’이긴 하지만 이거를 받아들이느냐는 해당되는 국가에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작용해야 가능한 일인데 어떻게 《RRR》 같은 영화가 우리만 알고 끝났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넷플릭스 상위권을 차지하게 되고, 사실 《강구바이 카티아와디》 때도 놀라긴 했어요.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 영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영화가 많기는 하지만 사실상 까놓고 얘기하면 우리만 아는 감독이었을 확률이 높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는 어떤 인도영화 중 하나라는 느낌이었을텐데 ‘어쩌다 그거를 선택하셨어요?’라고 오히려 그분들한테 되묻고 싶고 입소문이 좋게 나니까 사람들이 계속 그 영화를 보게 된 것이겠죠? 《RRR》도 그렇고?
가장 독특한 케이스였던 게 폴란드에서 한국어 배우는 케이팝 팬이면서 인도영화를 좋아하는 한 팬이 슈퍼주니어의 예성이 《RRR》을 봤다고 하는 것을 포스팅을 했다고 알려주었는데요,
저는 저대로 노력하지만 솔직히 약발이 돋는 거는 예성처럼 약간 영향력 있는 사람이 얘기해 주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크거든요. 그리고 그런 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M: 문화 전파가 개개인에게 되서 그런 것 같아요. 페이스북 인스타 이런 게 진짜 크죠 그리고 개인별 추천 시스템 이런 거.
그러니까 인도에서 어떻게 전략적으로 전세계인들에게 약을 풀어서 《RRR》을 상위권에 올리겠어 이렇게 해도 안 되거든요.
그래서 어느 정도 우리나라의 관객들이 《RRR》을 보고 ‘각시탈’ 이야기를 하고 《강구바이 카티아와디》를 보고 ‘야인시대’ 이야기를 한 것처럼 굳이 코드를 찾자면 자국민들을 자극하는 이런 콘텐츠가 있었기에 가능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J: 이게 참 재밌었던 게, ‘이걸 보고 나니까 레미제라블 영화가 쓰레기로 보여’ 해서 드디어 그 영화가 못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다는 내용이었어요. 역시 훌륭한 작품을 봐야 뭐가 좋은 건지 비로소 깨닫는 것 같기도 해요. 여튼 그런 혁명적인 공유되는 감정은 어느정도 보편적으로 다 좋아하니까 딱히 제국주의적 침략, 식민지화가 안 됐던 미국 같은 데서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물론 같은 감정의 울림은 서로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아프리카, 가령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코무람 빔의 노래에 되게 감동을 받았대요. 비슷한 경험이 있으니까.
한편 영화의 ‘모든 인도인에게 무기를 쥐어줘라’ 그러니까 ‘그 모든 저항할 수 있는 사람들한테 무기를 줘라’는 뜻인데 일부 극우 미국인들은 총기 옹호하는 미국 수정 헌법에 찬성하는 제대로 된 개념 잡힌 영화라고 좋다고 해서… 어휴.
B: 아프리카 사람들이 코무람 빔의 노래에 공감했던 포인트가 뭐였는지 짐작은 가요. <뿌리>라는 드라마를 혹시 아시나요? 몇 대에 걸친 흑인 노예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인데 거기서 처음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왔던 주인공한테 원래 자기 이름이 있어요. 그런데 백인들이 주인공한테 서양식 이름을 붙여주고 성도 주인 성으로 붙여놨어요. 그래서 주인공이 계속 원래 이름이 내 이름이라고 주장을 해요. 원래 자기 이름을 쓰겠다고 우기면 백인들이 계속 폭행을 하니까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대외적으로는 서양식 이름을 쓰는데, 자기 딸한테는 아프리카식 이름을 붙여주고 아프리카 전통 의식을 하면서 너는 어떤 사람의 후손이니 그걸 잊지 말라고 얘기해요.
그래서 코무람 빔은 어느 훌륭한 가문의 자랑스러운 자손이다, 이런 가사에서 통하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것도 있을 것 같고, 이건 연출자의 의도와는 달랐을 수도 있는데, 1차원적인 폭력이기는 하지만 초반에 보여줬던 ‘더러운 인도인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게 감독의 매니페스토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는 아니었을까 싶어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백인 제국주의자들이 침략을 해서 인도를 지배를 했던 것처럼 문화 역시 서구 백인들의 것이 주류를 이루고 그 외의 것은 열등하다고 여겨졌었죠. 제3세계 사람들이 지배적인 세력권의 문화에 대한 반작용을 표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합니다. ‘RRR’ 중에서 리볼트(revolt)에 가까운? 정신이 영화에 담겨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영화를 1세계 백인들이 좋아하는지 (웃음)
J: 오히려 리버럴한 사람들이 좋아해요. 리버럴한 사람들은 약간 자기가 백인이라도 요즘은 ‘백인 제국주의 꺼져’ 이런 걸 자기가 말하면 좀 힙해보이는 그렇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미국은 액션 영화가, 특히 근래에는 거의 마블 프랜차이즈에 지배당해 왔거든요. 열성적인 팬들도 있지만 사실은 좀 되게 지친 사람들도 많아요.
마블은 좀 더 체계적으로 만들수록 액션을 먼저 찍고 거기에 스토리 맞추더라고요. 그러니까 액션에서 감독의 색이나 스토리와 잘 엮여진 맛, 《RRR》처럼 그런 맛이 거의 없는 거예요. 관객이 의식적으로 그런 걸 못 느꼈어도 무의식적으론 약간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데, 《RRR》은 완전히 그걸 다 채워주니까 좋은 거죠.
M: 액션이 각본하고 찰떡 궁합
J: 물론 보수적인 관객들의 경우, 《RRR》이 심하게 마초한 액션영화라 좋아하는 점도 있더라고요.
올 해 가장 사랑받은 영화 중 한 편인 《탑건: 매버릭》
그리고 올해 영화들의 경향을 보면 너무 꼬지 않고 기본적인 것만 잘 해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흥행 천만 넘었던 《범죄도시 2》라든지 아니면 지금 열풍을 몰고 있는 《탑건: 매버릭》이라든지 이런 영화들은 내러티브를 정리하면 되게 짧게 정리할 수 있거든요.
《범죄도시 2》 마석도 형사가 연쇄 살인범 강해상을 잡는다. 《탑건: 매버릭》 매버릭이 대원들과 비행기를 몰고 미션을 수행한다. 《RRR》 서로 다른 목적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두 사람이 만나 총독부를 폭파한다. 이렇게 한 줄로 정리가 가능하거든요.
그리고 이것들을 보여주는데 지금까지 새로운 게 나왔냐면 그런 것도 아니고. 물론 인도영화가 새롭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죠. 《탑건: 매버릭》처럼 실제로 비행기에서 찍은 걸 보는 게 처음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내러티브를 단순하게 정리하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잘 하는 것을 채워주면서 보여줬던 것. 여기서 사람들이 오히려 더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J: 《탑건: 매버릭》도 비슷한 이유로 평가하더라고요. 이렇게 오리지널하면서 강렬한 액션 영화가 한동안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RRR》은 특수효과 아티스트들이 분석한 것을 보니까. 가령 기차신도 CG도 썼지만 일부는 실제 미니어처 쓰기도 하고, 기차 한 칸 떨어지는 건 실제 크기 모형도 쓰고. 그런 부분이 의외로 진짜였더라고요. 그래서 무게감과 폭파감이 나오나 싶고. 그리고 저도 꽤 인상적인데 수신호로 소통이 되는 것도 재밌었고.
M: 말로 하지 않아도
그건 운명인 거야
J: 람이 탄 말도 CG로 했대요. 안장 같은 거 기계에다 씌우고 배우가 타고 가면 나중에 말을 CG로 넣고.
어쨌든 그 말을 타며 깃발을 들잖아요. 그래서 국뽕영화라는 건 알겠는데 그걸 왜 들지 했는데 그걸 물로 적셔서 빔한테 주잖아요. 폭발하니까 그걸로 감싸라고.
물론 국뽕과 간지 용도도 있지만 미묘한 실용성이나 저걸 왜 쓰지 하는 약간 순간적인 궁금함을 바로 답해주는
B: 국뽕과 간지와 실용성 세 가지를 다 잡았네요.
J: 한꺼번에 다 해내요
아이, 어려운 영화였구만!
J: 사실 좀 심오해요. 액션 자체 자체에 서사가 있고 그래요.
이거 단순한 영화가 아니었구만! 영화를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든 거야!
J: 완벽주의자라고 하더라고요. 장인 정신이 확실히 있고요.
B: 그래서 차기작도 되게 기대가 돼요. 생각해 보면 《바후발리》 이후에 이 사람이 과연 할 얘기가 또 있을까 했는데 《RRR》을 냈잖아요.
J: 《바후발리》를 봤기 때문에 솔직히 《RRR》에 대한 기대가 크게 높았거든요. 《RRR》도 잘 보면 액션이 처음에는 얘네는 왜 《바후발리》처럼 한 방에 날리지 못하고 계속 두들겨 맞고 있지? 보통 사람이면 벌써 죽었을테니까 그 정도도 정상인은 아니지만, 호랑이한테 긁혀서 아파하기도 하고 그니까 약간은 어느 정도 얘네가 조금 더 강도를 조절한 것 같아요.
파워랑 내구력 같은 게 좀 더 사람다워 보이게? 그래서 얘네들의 고통에 좀 더 공감을 하게?
게다가 마지막에 라마로 레벨업 하잖아요. 신으로 레벨업 하잖아요. 그럴 때는 막 무한 화살 나가고 활 하나로 활 하나로 불을 다 지르고… 그 전까지 액션은 어느 정도 사람이 할 수 있는 그러다가 서서히 레벨업을 하고. 탈옥할 때 두명이 한 몸이 되기까지 하는데, 솔직히 제가 영국병사면 도망갔어요. 무서워서.
그리고 또, 사람들 반응이 재밌는 게 영화 마치 《윈터솔져》랑 《탑건》이랑 《미드소마》도 있고… 왜 《미드소마》인지 봤더니… 춤 대결에서… 그리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있고 《레미제라블》도 있고 이게 다 들어있는 게 《RRR》이라고 하더라고요. 이게 마살라적인 거죠.
얼마 전에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를 하나 봤는데요, 우리나라 관객들은 너무 까다로워지고 영화 속에 다 담겨 있는 거를 원한다. 나 힘들다. 인도 영화 딱 좋은데 거기 춤 노래도 있는데 우리는...
B: 우리한테 친숙한 영미권이나 일본, 중국어권이 아닌 제3세계 콘텐츠는 왠지 후질 거다, 이런 편견만 걷어내면 즐길 세계가 더 넓어지는데 사람들이 그러려고 하지는 않더라고요. 자기한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피곤하고. 피곤한 와중에 시간 냈을 때 자기한테 익숙하고 재미가 보장되어 있는 걸 보고 싶어 해요.
제가 봤을 때는, 제가 아까 영화의 일반적인 서사 구조를 밥 짓는 구조라고 얘기했잖아요.
그런게 영화 구조의 정형성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조금이라도 구조가 달라지면 못견뎌 하거나 의아해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왜 감독은 《RRR》을 이런 구조로 만들었을까에 대해서, 이건 저만의 생각인데요, 지금같은 넷플릭스 세대를 만족시키려면 초장에 잡아야 합니다. 욕을 많이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녹음 당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종이의 집’ 한국판을 보면, 1회에 ‘선수 입장’ 비슷한 거 나온다고 사람들이 항마력 달려가지고 못 보겠어요. 저희 저 퇴장합니다. 이런 사람 되게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1위를 유지했지만 그 드라마를 탈출한 사람도 많았다는 것 역시 넷플릭스 코리아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알고는 있어야 돼요.
용두사미가 되더라도 1회에 시선을 사로잡는 콘텐츠들이 더 많았거든요. 또 이런 경우도 있는데, 유명한 프랜차이즈에 기대어 미끼를 던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테면 ‘오비완 케노비’라고 ‘스타워즈’ 계열의 드라마가 있는데, 걔는 좀 심각한 얘기를 들었는데요 어떤 거였냐면 원래는 그냥 극장 장편 영화 하나 분량으로 만든 걸 6회분으로 쪼개서 만든 거래요.
그러면은 시간을 들여서 각본을 디벨롭을 해서 정말 미니 시리즈처럼 만들든가 아니면 요즘은 오리지널 영화 이런 것도 많이 나오니까 그렇게 만들든가 하지 왜 그랬어라는 생각이 바로 들더라고요.
아무튼 OTT 범람의 시대에 입질만 해놓고 실망을 시키는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이건 러닝타임이 3시간인데다 이렇게 강강강강의 구조로 가긴 했지만 그래도 기승전결 다 있었던 것 같고요.
B: 신기한 게 라자몰리 감독의 영화들은 러닝타임 내내 강강강강인 것 같지만 그 와중에 은근히 강약 조절도 하고 있고 개연성도 복선도 다 갖추고 있어요.
M: 연재형인 웹소 작법의 구성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한 사건이 끝나면 바로 다음 사건이 궁금해지게 만들죠.
J: 그런데 라자몰리는 사건이 계속 터지는 식이죠. 구조적으로는 막장드라마나 텔레노벨라와 좀 비슷하죠. 사건이 계속 터지니까 다음 장면, 전개가 궁금해지고. 반면 정작 사건만 터지면서 그에 대한 수습이나 결과는 잘 보여주지 않아서 흐지부지 되는 영화, 드라마도 많아요. 그에 비해 라자몰리는 깔아둔 떡밥에 대한 payback이 확실해요. 초반에 빔이 호랑이를 잡는 장면도 나중에 어떤 용도로 호랑이를 잡는지 나오고, 람의 팔찌도 반복해서 비춰주죠. 대표적으로 악당인 영국 총독의, 인도인에겐 총알도 아깝다는 발언은 영화 초반, 중반, 마지막에 거쳐 총 세 번 나오고 그 때마다 임팩트가 점점 고조되다가 마지막에 콰광 터지며 큰 충족감을 주는 식이고요.
J: 그리고 촬영기법이나 구도 잡는 것도 대단하죠. 처음에 람이 군중속에서 이렇게 우다닥할 때 완전 사람 많잖아요. 그런데 람이 어디 있는지 되게 잘 보이잖아요. 저걸 어떻게 찍은 거지? 싶고.
M: 웹소 작법서에 이런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기승전결이 아니라 승전결기로 계속 이어지게 가야 된다고, 승전결에다가 ‘기’를 다른 이야기 속에 다시 섞어놓고, 이렇게 회차마다 자꾸자꾸 이야기를 엮어가면서. 갑자기 기승전결이 끝나서 소강 상태가 되지 않도록 이야기를 구성하는 걸 라자물리 감독이 되게 잘하는 것 같아요.
J: 근데 웹소설은 그러다가 한 200, 300회 넘어가다 보면 재미없어지기도 하죠.
M: 그건 오래 연재해야 금전적으로 이득이 되니까 그런 거겠죠? 지나치게 이야기를 늘리다 보니.
끝으로
J: RRR을 아이맥스로 개봉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영화 산업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옳소!
B: 《RRR》처럼 좀 더 호쾌하고 재기 발랄한 역사 콘텐츠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M: 역사물을 여러 가지로 시도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모여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재밌는 시간 되셨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aSpberRy
추천인 18
댓글 23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쟁쟁한 분들이 참여해주셔서 저는 정리만 했네요 ㅋㅋ
👍👍👍👍👍👍👍👍
어우 저는 상대도 안될 정도로 다들 전문가시군요 ㅎㅎ
깊은 식견들에 감탄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중간에 깨알같은 '너네가 스웨덴이야?'까지 ㅋㅋ
저는 카시모프님 글도 좋아합니다.
다양한 분들의 생각과 지식이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와 한 영화로 이렇게 긴 대화가 오고간다는게 참 멋지고 놀랍습니다 ㅎㅎㅎ 공유 감사합니다
이거 정리하는 데 엄청 걸렸을 거라는 거 아마도 저만큼 잘 이해하는 사람이 흔치 않을....^^;;
토크 참여하신 분들의 인도 영화에 대한 애정과 지식들이 대단하네요.
RRR은 근래 보기 드물게 한국서도 주목받는 작품이 됐는데, 그만큼 이 글도 많이 주목받았으면 합니다.
익무에도 이 영화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저도 덩달아 신나네요
그러나 여전히 스크린으로 보고 싶은 욕심과 미련은 남아있습니다 ㅋㅋ
스크랩 후 정독 하겠습니다 와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