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살고개 (1966) 대하드라마 사무라이영화. 스포일러 있음.
대보살고개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많이 연상시킨다. 말하자면 대하드라마다.
사무라이 영화사상 절대악역으로 말하여지는 나카다이 타츠야 캐릭터가 너무 강렬해서, 악역이 주인공인 피카레스크 형식이라고
말들도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 외에도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가난한 소녀 오마츠와 마치 장발장처럼 그녀를 돕는 도둑도 나온다. 형을 나카다이 테츠야에게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효마, 부정을 저지른 다음 그 벌로 나카다이 타츠야와 함께 사회의 음지로 굴러떨어져 괴로워하는 오하마, 검술의 달인이자 검술은 마음을 반영한다며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도시로 미후네 등.
이들은 막부 말 혼란기라는 시기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막무발이라는 대혼란기를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다. 누구는 주연이고 누구는 조연이라고 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 영화 원작은 41권 소설이고, 이 영화만 해도 원래 3부작으로 구상되었다고 한다. 비록 1부에서 끝났지만 말이다. 의도대로 만들어졌으면 대하드라마로 출중한 걸작이 만들어졌을 것 같다.
불교적인 주제로 의도된 작품이라고 한다. 제목만 보아도 대보살고개다. 대보살고개는 실제 지명이다. 대보살고개에서 벌어진 어느 초라한 노인의 죽음이 어떻게 관련된 이들의 운명을 발전시켜나가는가 보여주는 내용이다. 사소한 악업이라도 악업은 악업으로 눈덩이처럼 부풀어나가며, 사소한 선업이라도 선업으로서 꽃을 맺고 열매를 맺는다.
나카다이 타츠야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온다. 그는 병에 걸려 몸져 누운 아버지를 떠나 도시로 나온다. 그는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
사이코패스같은 존재다. 영화가 시작하면 이미 그는 완성형 검객이다. 그는 대보살고개라는 높은 산고개에서 어느 노인을 죽인다.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가난한 노인이다. 그 노인은 오마츠라는 어린 손녀를 데리고 다닌다. 손녀가 물을 뜨러 고개를 내려간 사이, 나카다이 타츠야는 노인을 단칼에 베어죽인 것이다. 그런데 지나가던 도둑이 오마츠를 구해준다. 도둑은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온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오마츠를 구해주고 돌봐줌으로써 속죄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어느새 오마츠를 자기 손녀처럼 생각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쏟아붓는다. 나카다이 타츠야와 도둑 그 사람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악과 선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업을 지은 것이다.
이 영화는 이것에 대한 이야기다. 두 사람의 업은 영화 내내 점점 더 눈덩이처럼 부풀어오른다.
나카다이 타츠야는 어느 도장 후계자와 검술대결을 펼친다. 별 것 없는 나카다이 타츠야는 그 검술대결에서 진다고
해서 잃을 것 없다.
하지만 그 도장 후계자는 패배할 경우 모든것을 잃는다. 당연히 주변사람들은 나카다이 타츠야더러 져주라고 부탁한다.
이긴다고 얻을 것 별로 없는 나카다이 타츠야로서도, 일부러 져주고 나중에 은혜를 갚으라고 하는 것이 이익이다.
하지만 나카다이 타츠야는 그럴 생각이 없다. 사무라이가 자기 검에 충실한 것은, 여자가 정조를 지키는 것과도 같다 하고 말한다.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자기 신념을 관철시키는 나카다이 타츠야가 악인이라고 할 수 없다.
결투 전날 나카다이 타츠야에게 그 도장 후계자 부인이 찾아온다. 일부러 져달라고 부탁하러 온 것이다.
신성한 결투에서 일부러 져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이 정상이 아니다. 나카다이 타츠야는 그녀를 경멸했을 것이다.
나중에 나오지만, 그 부인이 현모양처라서 남편을 도우려고 헌신하는 것이 아니다. 도장 후계자 부인으로서 누리고 사는
화려한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속물적인 이유에서 승부조작을 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나카다이 타츠야는 그녀에게
승부조작의 댓가로 섹X해달라고 한다. 승부조작을 위해 섹X해달라는 사람이나 섹X해준다는 사람이나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작은 악업은 커다란 결과를 초래한다. 부인이 외간남자와 섹X했다는 소문을 들은 남편은, 이제 화가 나서,
나카다이 타츠야와 목숨을 걸고 대결하려 한다. 그냥 검술대결이 목숨을 건 혈투로 바뀐 것이다. 나카다이 타츠야가 이런 혈투에서 슬슬
싸울 리 없다. 도장 후계자를 단칼에 죽여 버린다. 그리고 대결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도장 사람들의 습격을 받는다.
나카다이 타츠야는 이들도 다 죽여 버린다. 검술인으로서 나카다이 타츠야는 이로서 죽어 버린 셈이다. 그는 사회의 음지에서
암살자로 추락해서 푼돈이나 벌어먹고 산다. 그것은 도장 후계자의 부인 오하마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그렇게 죽고
그녀 또한 갈 곳 없어졌다. 친정에도 못돌아간다. 나카다이 테츠야에게 염치불구하고 매달린다. 오하마는 나카다이 타츠야의 아이를 낳고
동거하면서 가난에 시달린다. 그녀의 작은 악업도 이렇게 큰 결과를 낳는다.
나카다이 타츠야에 대비되는 인물이, 대보살고개에서 고아 된 소녀 오마츠를 거두어준 도둑이다. 그는 오마츠에게 아버지 비슷한
존재가 되어 그녀의 사랑을 받는다. 고아에다가 가난한 오마츠의 일생이 행복한 것일 리 없다. 영주의 첩이었던 여자에게 맡겨졌는데, 그 여자는 재물을 바라고 오마츠를 영주에게 보내버린다. 오마츠는 변태 영주에게 죽을 뻔한다. 오마츠는 다시 교토의 유곽에 팔려간다. 오마츠를 돌봐주던 도둑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오마츠와 도둑 간 관계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장발장과 코제트 관계와 비슷하다.
나카다이 타츠야는 조직에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 원칙만 내세우는 까닭에 자꾸 추락한다. 결국 신선조 뒤치닥거리를 해주며 푼돈을 받는 아살자 신세가 된다. 신선조 조직에서 성장해서 고위급이 되면 모르겠는데, 조직에 어울리지 못하고 정치질 못하는 그는 거기에서도 아웃사이더다. 그는 검술계에서 이름을 얻고자 도장깨기를 다니는데, 이름난 검술사범들은 그와 상대도 안 해준다. 갈 곳 없는 오하마는 나카다이 타츠야와 동거를 하며 아이까지 낳는다. 과거 도장사범 아내로 호화로운 삶을 살던 그때를 못 잊고 오하마는 늘 나카다이 타츠야에게 불만이 가득하다. 오하마도 결국 자기 현재 처지가 자기가 쌓은 악업의 결과라는 것을 모른다.
운명은 아주 치밀하게 착착 나카다이 타츠야의 파멸을 구축해 나간다. 처음에는 두서 없이 나오는 듯한 등장인물들 - 오마츠, 도둑, 검술 사범 도시로 미후네, 효마 등은 결국 나카다이 타츠야의 파멸에 기여하는 식으로 한 점으로 모여든다.
하늘이 만들어놓은 천벌의 그물은 너무 촘촘해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 했던가 - 나카다이 타츠야는 자기가 술을 마시던 술집
애기게이샤가 된 오마츠를 만난다. 자기가 죽인 노인의 손녀가 게이샤가 되어 자길 만나게 되다니.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가 지은 악업의 결과가 필연적으로 그에게 찾아온 것이다.
거기에다가 오마츠는나카다이 타츠야 손에 죽은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악령으로 떠돈다고 말해준다. 나카다이 테츠야는
불교의 업과 필연의 법칙을 깨닫는다. 그는 그 법칙의 무게에 짓눌려 정신적으로 붕괴한다. 그리고 그에게 파멸이 찾아온다.
신선조 조직 내 내분이 일어나 곤도는 조장 세리자와를 죽이고 조직을 장악한다. 세리자와가 고용한 암살자가 나카다이 타츠야다.
세리자와를 죽여놓았는데, 나카다이 타츠야를 살려놓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래서 수백명이 나카다이 타츠야 한 명을 죽이려고 달려든다.
미친 나카다이 타츠야는 광기에 찬 칼을 휘둘러 백여명 가까이 죽인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칼에 맞아 넝마가 되어 간다.
그가 혈투를 벌이는 게이샤집 바깥에서는, 효마가 형의 복수를 하려고 기다린다. 오마츠와 도둑이 그를 죽이려고 기다린다.
검술사범 도시로 미후네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 이렇게 설정을 다 깔아 놓고서, 이런 설정들 다 허공에 붕 뜬 채 나카다이 타츠야가 죽어 버리는 것이다. 춘향전 마지막 장면에서 이몽룡이 암행어사 군졸들을 관아 밖에 배치해두고 암행어사 출두 준비 다 해놓고 있는데, 변학도가 갑자기 죽어버리는 격이다.
아까도 말햇듯이 이 영화는 대하드라마적으로 엄청나게 규모를 키워놓고 결말을 나카다이 타츠야가 자신의 악업의 무게에 미쳐 버린다 하고 끝난다. 감독 잘못이 아니다. 3부작으로 구성해놓았는데, 이것이 갑자기 끝나버린 탓이다. 레미제라블 식으로
엄청난 역사적 사건의 전개,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나름대로 역사에 기여하고, 불교의 선업과 악업의 법칙이 작용해서 등장인물들이 서로 연관을 맺고 하는 식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거대한 대하드라마 식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이것을 전체 소설 41권 중에서 첫3권만 영화화하고 갑자기 후다닥 끝내버렸으니 참 아쉬운 일이다.
다른 사무라이영화들과 비교해서 그 깊이나 폭에서 단연 뛰어나다. 소설 3권을 효과적으로 압축했기 때문에
영화가 허술하거나 늘어지거나 빈 틈이 없다. 아주 압축적이고 구성이 뛰어나다. 너무 밀도가 높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저자의 불교철학, 인생관, 뛰어난 성격 묘사와 시대적 팩트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어우러져 뛰어난 사무라이 영화가 나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일대 다수 검술씬들은 모두 유례 없는 명장면들이다.
추천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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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원에서 나카다이 타츠야전 할때 봤는데,그게 어언..
할복도 그렇고 이분 출연작이 버릴게 없더군요.
대보살고개 예고편
* 잔인한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