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도마뱀 (1962) 탐미주의 괴작. 스포일러 있음.
뭐라 말해야 좋을 지 심히 난감한 영화다.
일본 최고 추리소설가 에도가와 람포 원작의 추리소설들을 합쳐서 하나의 영화를 만든 듯하다.
에도가와 람포는 에드가 앨런 포를 존경한 소설가가 그의 이름을 따서 필명을 만든 것이다. 그의 추리소설에는 일본 최고 탐정이라는
아케치 코코로가 등장한다. 에도가와 람포는 기괴한 탐미주의 소설로도 유명한데, 이 영화는 둘을 합쳐 놓은 것같다.
탐미적이고 변태적인 기괴한 세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셜록 홈즈가 뮤지컬을 공연한다고 보면 된다.
검은 도마뱀은 세계를 두렵게 만드는 여자 도둑 이름이다.
보석만을 털며 신출귀몰한 행적으로 세계를 놀라게 만든다. 아르센 루팡을 연상시킨다고? 흠, 루팡 정도는 저리 가라다.
일본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탐미주의 변태다. 보석으로 만들고 그 안의 누구도 늙지 않고 영원히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세계를
꿈꾼다고 하는데, 웃어선 안된다. 이 검은 도마뱀은 진짜 이것을 하니까. 그러려면 보석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훔친다.
이 영화는 검은 도마뱀에 찬미를 보낸다.
아르센 루팡처럼 좋은 일도 가끔 하고 어쩔 수 없는 비극 때문에 이 길에 빠져든 것이 아니다. 검은 도마뱀은 윤리를 초월한
탐미주의 때문에 이 일을 하기 때문에, 그의 절도를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하고 현실 초월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윤리나 법같은 시시한 것으로 이 예술가를 판단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검은 도마뱀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심지어는
가장 윤리적인 사람보다도 더 순수한 사람이다. 아르센 루팡이 아름다운 여자를 납치해다가 그 아름다움을 영원히 유지시키기 위해 죽여서 박제를 만들고 보석으로 정식해서 감상하면서 "너무 아름답군"하고 감탄하는 동안, 박제된 여자는 유령이 되어 나와서 영원한
아름다움을 갖게 된 것을 행복해 하는 엑스타시의 춤을 추는 것 정도는 되어야 이 영화 검은 도마뱀에 비벼볼 수 있다.
막 나가는 주제에 걸맞게 이 영화는 그냥 폭주한다. 세계최고의 에메랄드를 가진 보석상 주인은 검은 도마뱀의 협박을 받고
아케치 코코로라는 명탐정을 고용한다. 에메랄드를 노리는 검은 도마뱀은 보석상 주인의 딸 사나에를 납치해 보석을 강탈하려고 한다.
사나에는 아케치 코코로의 경호를 받으며 토쿄 어느 사치스런 호텔에 묵는다. 거기에서 수수께끼이 여인 미도리카와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미도리카와는 자기 소녀스런 꿈을 이야기해준다.
보석으로 만들어진 세계 - 심지어는 버스 손잡이도 보석이다. 그리고 거기 주민은 영원히 늙지 않고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이거 각본 쓰면서도 닭살 돋지 않았을까? 각본 쓴 사람이 미시마 유키오다. 사나에는 그런 세계가 있으면 좋겠다고 거기 머물고 싶다고
한다 (헉!). 그런데 사나에는 미도리카와에 의해 납치되어 여행가방 안에 넣어져 어디론가 보내진다. 미도리카와는 놀랄 것 없이
검은 도마뱀이다. 여행가방이 멀리 가도록 시간을 벌기 위해, 사나에 대신 다른 여자가 사나에 침대에 들어가서 머리 꼭대기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사나에 흉내를 낸다. 두 시간 정도 흐른다. 하지만 들이닥친 아케치 코코로는 검은 도마뱀 정체를 밝히고
납치되었던 사나에마저 앞에 데려다 놓는다. 아케치 코코로의 조수들이 늘 몰래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검은 도마뱀은
거길 탈출하여 남자로 변장하고 멀리 사라진다.
영화는 이런 식이다. 이거 추리영화라 하기에는 너무 허술하다. 그런데 미시마 유키오가 추리영화 만들 생각은 애초에 없다.
이것이랑 가장 닮은 영화는 놀랍게도 라라랜드다. 이 영화 뮤지칼이다. 그리고 어느새 사랑이 싹트는 검은 도마뱀과 아케치 코코로.
그런데 그들의 사랑은 속삭이는 것도 아니고 꽃을 보내는 것도 춤을 함께 추는 것도 아니다. 바로 범죄를 저지르고 이를 좌절시키는 것이
그들의 섹X다.
검은 도마뱀이 기발한 계획으로 완전범죄(?)를 저지르면 아케치 코코로가
나와서 기발한 추리(?)로 이를 해결하고 검은 도마뱀을 좌절시킨다. 그들은 이러면서 뜨겁게 사랑을 속삭이고 섹X하는 거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이것을 입밖에 내는 일 없다. 서로 도둑질하고 이를 좌절시키는 데 조금도 주저함 없다. 뜨겁게 타오르지만 세상에서 가장 차갑다는 심장을 가진 검은 도마뱀의 이해불가능한 캐릭터.
다시 한번 사나에를 납치한 검은 도마뱀은 요트를 타고 외딴 섬으로 간다.
그런데 아케치 코코로가 몰래 배에 탑승해서 이를 추적한다. 아케치 코코로가 선실 소파 안에 숨은 것을 눈치챈 검은 도마뱀은
소파를 꽁꽁 묶게 만든다. 바다에 버리려는 것이다. 검은 도마뱀은 다들 선실에서 나가게 한 다음, 꽁꽁 묶인 소파를 껴안고 키스하고
난리를 치면서 자기가 아케치 코코로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저렇게 불덩이같은 사람이 그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검은 도마뱀의 영원한 탐미주의 세계에 남녀 간의 사랑같은 것은 없다. 검은 도마뱀은 부하들을 시켜
소파를 바다에 버리도록 한다. 그러더니 돌아서서 "내가 죽이라고 했다고 아케치 코코로를 죽이다니, 너희들은 이제 내 영원한
적이다"라고 중얼거린다 (?). 이해가 잘 안간다. 하지만 이것이 미시마 유키오의 정신세계인가, 원작자 에도가와 람포의 정신세계인가,
검은 도마뱀의 정신세계인가 아리송하다.
그런데 이미 사건이 해결된 거다. 검은 도마뱀은 아케치 코코로에게 사랑을 고백한 순간, 평범한 남녀관계로 추락한 것이다.
순수하고 완벽하던 그녀의 탐미주의 세계는 이미 평범한 남녀 간 사랑에 의해 금이 간 것이다. 검은 도마뱀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엄청난 자기 모순이 발생하는데, 한낱 인간인 검은 도마뱀은 자기 파멸 외에 이 모순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검은 도마뱀은 섬으로 사나에를 데려와 그녀 앞에서 자랑스럽게 자기 수집품인 아름다운 남녀들을 보여준다. 사나에 반응은?
공포에 질려 떤다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아직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영원한 아름다움을 유지하게 된 것을 기뻐한다가 정답이다. 그러 이 박제된 시체들은? 영원하게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기뻐한다가 정답이다. 이 영화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려 해선 안된다.
그런데 검은 도마뱀의 러브 상대인 아케치 코코로는 이런 변태가 아니다. 그는 말하자면 산문적인 사람이다. 정의감이 있고 직업의식이 강하다. 아케치 코코로가 할 수 있는 맥시멈이란, 이런 검은 도마뱀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뿐이다. 이런 세계에 공감하지도 않고
검은 도마뱀이 이런 행위를 하도록 방치해두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상대를 불 같이 사랑했으니, 검은 도마뱀은 파멸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아케치 코코로는 섬에 쳐들어와서 검은 도마뱀을 체포하고 섬을 완전히 소탕한다. 검은 도마뱀은 탈출할 생각도 안하고
아케치 코코로 앞에서 독약을 먹고 자살한다.
아케치 코코로 앞에서 "소파 안에 있는 당신에게 사랑을 고백한 순간, 자기는 이미 죽은 것이다"라고 한다. 자기 모순과 남녀 간 사랑같은
잡티가 없는 순수한 탐미주의 세계가 자기 모순을 일으킨 순간, 이미 그녀는 죽은 것이다. 그렇다면
아케치 코코로가 뜨겁게 사랑을 해주기라도 해야 하는데, 아케치 코코로는 냉정하게 검은 도마뱀을 추적한다.
검은 도마뱀은 "내게 사랑은 사치야"하면서 툭 털어버릴 만큼 자기 타협적인 사람이 아니다. 너무 순수해서 차라리 죽어 버리고 만다.
검은 도마뱀은, 이 모든 것을 다 꿰뚫어보고 있던 아케치 코코로가 자길 붙잡아주지 않은 것을 원망한다. 아케치 코코로도 죽어가는
검은 도마뱀을 안고 굉장히 후회한다. 그리고 둘은 갑자기 주변 사람들을 멀찍이 하고서, 영원한 사랑과 비극의 세계로 들어간다.
주변 사람들은 감동한 눈으로 이들을 바라본다.
P.S. 미시마 유키오도 여기 등장한다. 찾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반나체로 박제된 남자 - 영원히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남자로 등장한다고 한다. 이거 하려고 이 영화 각본을 쓴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원래 연극이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미시마 유키오가 혹시 진짜
관객들 앞에 반나체로 등장해서 영원한 아름다움을 갖게 된 박제 남자를 연기한 것이 아니었을까 궁금해진다. 설정 상
완벽한 아름다움을 소유한 남자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가진 미시마 유키오가 반나체로 관객들 앞에 등장해서 자기 아름다움을 영원히
유지하겠다고 과시한다 - 이게 이 영화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이렇게까지 철저하고 탐미적으로
자기 과시를 관철하는 데에야 경의를 표할 수밖에. 예술가는 이래야 한다.
흠, 미시마 유키오는 못 찾겠지만, 아무튼 이런 자세 모습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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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명한 여장 남자 미와 아키히로 주연작이군요.
<모노노케 히메>에서 거대 늑대 '모로' 캐릭터 성우였죠.
이 영화 한번 보고 싶네요.
아.. 그렇네요. 배우 얼굴이 좀 달라보이긴 했는데.. 맨 위의 포스터가 미와 아키히로라서 같은 영환가 했습니다. 설마 몇년 간격으로 영화가 나온줄은..^^
미와 아키히로면 여장 남잔데.. 동성앤가.일설엔 미시마 유키오가 미와 아키히로를
연모했단 썰이 있었죠.그래서 각본을 써주고 출연한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