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하나하나가 심장 속에 박히는 듯, <헌트> 스포일러 리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익스트림 무비> 시사회에서 좋은 기회를 얻어 이렇게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음에 감사를 표합니다.
이정재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것보다 이정재, 정우성이라는 뛰어난 배우들의 합을 기대했는데, 두 배우의 합은 물론 감독 이정재의 뛰어난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던 걸작입니다. 제가 이정재, 정우성 두 배우를 눈앞에서 봤다는 것보다 이정재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더 믿기지가 않을 정도입니다 ㅎㅎㅎㅎㅎ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어느 순간 왔다갔다하는 대사들이 마음 속에 들어와 아려오더군요. 격동의 시기를 지나는 1980년대의 한국이라는 설정에서 뽑아낼 수 있는 건 다 뽑아낸 듯한 그런 영화입니다.
시사회를 하기 몇시간 전 저는 이곳 영화수다에 게시물을 올렸었죠. <헌트>에서 다룬 사건들의 목록을 보고 올리며 익무 여러분들께 공부를 권유드렸었습니다. 하지만 보고 나니 그 사건들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본 게 조금은 후회되더군요. 그렇다고 공부를 하지 않고 봤으면 그 사건들이 어떤 사건들인지 알 수도 없었을 듯 합니다. 제 한국사 지식들에 대해 조금 반성하게 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1983년 워싱턴, 차 안에 앉아 있는 안전기획부 1팀 차장 박평호(이정재)를 비추며 영화가 시작합니다. 대통령의 순방 일정이 있었는데, 가는 곳마다 교민들이 들고일어났다고 합니다. 워싱턴에서도 다르지 않았죠. 그곳에서는 전두환 대통령의 전신 브로마이드에 "살인자"라고 써놓고는 불로 태우기까지 하죠. 하지만 정식으로 허가받은 시위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안기부 1팀 요원이자 평호를 따르는 방주경(전혜진)은 평호와 함께 분주히 경호를 준비합니다. 대통령 안기부 2팀 차장 김정도(정우성)와 장철성(허성태) 또한 분주히 경호를 준비합니다. 그때 대통령을 암살하는 계획이 있다는 첩보가 들려오고, 그들은 첩보가 무슨 내용인지 알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닙니다. 그때 평호와 정도가 마주치게 되는데, 정도는 평호에게 빨리 가지 않고 뭐하시는 거냐며 대놓고 꼽을 줍니다. 이때부터 관객들은 둘의 사이가 껄끄럽다는 것을 눈치채게 됩니다. 암살범들과 안기부 요원들은 총격전을 벌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암살범이 평호를 인질로 잡게 됩니다. 그걸 본 정도는 경호원들 사이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고는 손을 들라고 소리치죠. 그 과정에서 평호는 기지를 발휘해 탈출하고, 정도는 암살범을 쏴서 제거합니다. 정도와 평호는 악에 받친 눈빛 교환을 하고, 걸어가는 정도를 평호가 붙잡으며 소리치죠. 우리가 예고편에서 수없이 들었던 대사죠. "인질을 사살하면 어떡해?" 인질이 되지 말았어야죠!"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정도에게는 다른 이유가 있었죠.
그 후 워싱턴 사건 때문에 고위급 간부로 보이는 송영창에게 까이던 평호와 정도는 겨우겨우 문 밖으로 나오죠. 그때 정도는 뜻밖에도 평호에게 호의적이고 깍듯하게 대합니다. 많이 배우겠다고 꾸벅 인사를 하지 않나. 저녁 식사에 초대하지 않나. 평호는 뭔가 불편한 듯 보이지만 어쨋든 수락하죠. 그렇게 마련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정도의 아내는 말씀 많이 들었다면서 과거에 이미 두 사람이 만났었고, 정도는 평호를 다시 만나게 되자 말까지 하게 되죠. 그 말을 들은 정도는 아내에게 들어가 있으라고 하지만, 평호는 호탕하게 웃더니 과거의 일을 스스럼없이 꺼내죠. 알고 보니 정도는 10.26 사태 관련 인물을 잡아들였을 때 평호를 고문했던 사람이었죠. 평호는 그때 이 친구랑 열흘 정도 같이 있었는데, 아직도 손가락 마디가 나갔다고 자랑스럽게(또는 비꼬듯) 말하죠. 정도는 평호에게 "차장님, 그때 일은 제가...." 라고 하며 곤란함을 표출하고, 그런 정도를 평호는 분노에 찬 눈길로 바라봅니다.
이 두 장면은 평호와 정도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완벽히 보여줍니다. 정도는 10.26 이후 평호를 고문했고, 평호는 그런 정도를 아니꼽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정도 또한 평호를 좋아하지 않게 됐지만 평호에게 죄책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둘의 사이를 좀 풀기 위해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호의를 베풀었던 거죠.결국 둘 사이는 갈수록 악화됩니다.
<헌트> 즉 사냥은 박평호와 김정도가 서로에게 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결국 자신의 신념에 사냥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송영창 배우가 연기한 안기부 부장이 떠나고 난 후 새로 온 안기부 차장(김종수)이 서로의 빤스를 벗기라 지시하죠. 이렇게 서로를 사냥하게 된 둘은 각각 오랜 친구를 잃고 자신과 같은 목표를 가진 폭탄에 의해 목숨을 잃는가 하면, 자신과 같은 목표를 가졌던 사람과 자신이 딸처럼 생각한 아이에 의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과정이 어떻건 결과는 이토록 참담하고, 이는 격동의 현대사의 영향이겠죠. 박평호는 남파 간첩으로 내려온 이유가 대통령을 암살해서 북한이 적화통일을 하는 것이죠. 결국 국가의 평화를 위해서였습니다. 김정도가 대통령 암살을 계획했던 것은 독재와 무자비한 탄압을 멈추기 위해서, 다시 말해 그의 목표 또한 평화였죠. 하지만 그 둘은 마지막에 세계를 뒤흔들지도 모를 딜레마에 사로잡힙니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결국 다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애초부터 서 있는 길이 달랐기 때문이죠. 그들은 결론적으로 평화를 가져왔지만 그들은 사냥당함으로서 영화는 끝납니다.
이정재 감독은 신인 감독답지 않은 당돌한 패기와 과감한 각색으로 관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gv에서 언급하신 매직 미러를 보며 싸우는 장면이나 총기 액션 장면, 사소한 대화 장면들마저 꽉꽉 공들인 것이 보이고, 빠른 템포로 관객을 멱살 잡고 끌고 가는 동시에 안정적인 연출력으로 집중을 잃지 않게 합니다. 또한 비극적인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물 흐르듯 전달시키며 관객들에게 묵직하고 서글픈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그가 연기한 박평호라는 캐릭터는 일생에 긴장감만 가득 차있는 인물일텐데, 그 긴장감을 표현하는 것은 이정재 배우가 적격이었습니다. 언제나 선보였던 훌륭한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다른 글에도 썼지만, 정우성 배우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작이자 최고의 연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우성 배우는 <아수라>, <증인>등 훌륭한 연기를 했던 배우이지만 그의 연기에 대한 불호 평은 존재했습니다. 당장 오늘 헌트 예고편에도 있더군요. 하지만 이번 <헌트>에서 선보인 연기는 정우성 배우를 혐오하여 그가 어떤 행동을 해도 싫어하실 분들 말고는 다 호평을 할 연기였습니다. 신념에 가득 찬 김정도라는 인물을 정말 괴물같은 연기력으로 소화해냅니다.
조연 배우들도 훌륭합니다. 허성태 배우는 80년대에 분명히 존재했을 듯한 안기부 요원을 묵직하고 살벌하게 표현해냈고, 전혜진 배우는 그동안 경찰 역으로 차갑지만 정이 많은 그런 인물로 나왔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역할이지만 훨씬 가볍고 매력있는, 하지만 진중한 캐릭터를 만나신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고윤정 배우는 <스위트홈>에서 처음 봤었는데 그때도 연기가 좋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극을 이끌고 가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안기부에서 고문당할 때 "유정"의 그 매서운 눈빛이 잊히지 않더군요.
황정민, 박성웅, 김남길, 이성민, 주지훈, 오정세, 조우진 등 이름을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주연급 배우들이 특별출연을 많이 하셨는데, 확실히 그 배우들이 나올 때 워낙 연기들을 잘하시는 분들이니까 존재감들이 엄청나더군요. 하지만 황정민 배우를 제외하고는 정말 단역들처럼 처리를 해서 순식간에 존재감이 사라지더군요. 감독으로서 옳은 판단이었다고 봅니다.
음악감독을 지망하는 사람으로서 조영욱 음악감독의 음악도 꽤나 인상적으로 들었는데, 처음엔 음악감독이 누군지 모르고 봤다가 음악에서 묘하게 <헤어질 결심>의 느낌이 나더라고요. 특히 엔딩의 음악이요. 그래서 "혹시....?"하고 엔딩크레딧을 확인해 보니 진짜 조영욱 님이셔서 놀라기도 했고 뿌듯하기도 했답니다. 감독님의 음악은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음악과 처연함을 이끌어내는 음악의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순식간에 밀도가 바뀌는 마법이 있습니다. 이병우 음악감독님과 함께 한국 영화음악감독 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찍은 사진들입니다!
갤럭시 화질;;;;;
jjh0711님이 제작/나눔해주신 비공식 헌트 오티입니다!
앞면 진짜 개간지 아닙니까 ㅠㅠ
익무인들 단체 사진까지!(다크맨님 게시글에서 퍼왔습니다)
이정재 감독의 야심찬 데뷔작인 <헌트>는 관객의 열광적인 지지, 평론가들의 찬사를 동시에 이끌어낼 걸작 영화입니다. 한국 현대사를 마치 물 흐르듯 표현한 적이 인상적이었고, "헌트"의 주체와 대상이 달라지는 순간 영화가 이끌어내는 변주의 효과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마도 다크맨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이번 한국영화 빅4 중 가장 높은 평을 받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4.5/5
총알 하나하나가 심장 속에 박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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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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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맞아요 ㅋㅋㅋㅋㅠㅠㅠ
좀 나이들어 보이긴 합니다 ㅎㅎ...
오징어게임 혹평 받을 것으로 예상했고, 헌트도 감독의 연출 능력이 문제가 될 것이다라고 예상을 했었는데 와 ~ 전부 어긋나네요. 대단합니다. ^^
좀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