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익무의 은혜로 개봉 전 시사를 두 번이나 가게 되었는데 후기를 이제야 쓰게 되었네요. 2배로 쓰겠습니다ㅠㅠ
다만 악을 처음 봤을 때에는 영화 속에서 '신세계'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개봉 전부터 부라더들의 만남으로도 화제가 된 작품이었고 신세계를 꽤나 재미있게 본 저로서도 그 둘의 만남, 그것도 액션 영화에서 만남이 신세계의 연장선으로 생각되어 더 영화가 궁금했었어요. 그런데 영화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반에야 우리 정청 오빠가 일본에 가있구나, 했지 그 후부터는 그 전작품들의 느낌이 이어지지 않으면서 다만악의 독자적으로 케릭터와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신세계와 달라서 서운한게 아니라 유사 장르임에도 신세계에 기대지 않은 다만악만의 다른 매력을 보여주어서 좋았어요.
대신 영화를 보며 '존 윅'과' 테이큰'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비슷하다, 따라했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아닌 액션영화에서 큰 두곽을 나타냈다는 평가를 듣는 두 작품의 장점인 스타일리시함, 뚜렷한 목표 지향성, 사족들을 쳐내고 달리는 단순 묵직한 진행 같은 부분이 이 다만 악에서도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액션영화의 기본인 액션, 타격감이 좋아서 액션 보는 맛이 있었고 영상 자체도 꽤나 아름답단 인상이 들었습니다. 영화의 건조함을 매꾸어준 음악도 좋았구요. 이상이 다만악을 처음 보았을 때의 제 감상이었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에는 영화 자체의 만듦새는 좋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감정의 온도를 올려줄 정도로 괜찮다, 는 느낌은 안들어서 아쉬웠는데 두번째 감상은 첫번째와 사뭇 달랐습니다. 두번째 감상이라 선택과 집중이 가능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코엑스 돌비시네마관이라는 다만 악 보기 참 좋은 상영관이라 그런건지.. 결론은 둘 다 였던듯 합니다.
이 영화는 간결하면서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킬 줄 아는 홍원찬 감독, 국내 최고의 촬영감독인 홍경표 촬영 감독,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릴 줄 아는 모그 음악감독, 사실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액션을 만든 무술 감독, 그리고 케릭터 그 자체였던 연기자들과 연기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자신의 장기들을 영화 속에서 뽐내고 있었습니다. 연출만 잘한다, 촬영만 잘한다, 음악만 잘나왔다, 액션만 괜찮다, 연기만 잘하네.. 이런 생각이 안들게 저 요소들이 다 잘하는 신기한 영화였어요. 검증된 업계 넘버원들과 유명세를 올리고 있는 사람, 그리고 새로운 피.. 홍원찬 감독님의 안목과 능력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가장 잔상에 남았던 장면은 짧게 지나갔지만 정말 아름다웠던 노을진 인천의 풍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창백했던 일본, 왠지 비장함이 감돌던 한국, 온도와 습도가 옮겨오는듯 한 태국의 모습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잔상이 계속해서 오래 남아있었어요. 두 번째 관람에서도 역시 홍경표 촬영감독님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홍경표 감독님에 대한 찬양은 정말.. 다 하려면 손가락이 아플겁니다ㅎㅎ 이 영화를 불호로 보았던 분들이라도 홍감독님의 촬영에는 불호를 느낄 사람이 극소수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거장 촬영감독님이 (실제로도ㅋㅋ)신나게 찍은 느낌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모그 음악감독님은 이번 다만 악에서도 한 솜씨 발휘해주셨습니다. 영화 대부분의 장면에서 감정을 누르고 절제하는 인남의 심리를 음악이 대신 표출하는듯 했던 영화속 음악은 영화의 건조한 톤과 어우러져서 더욱 시너지가 올라갔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가 선택한 건조한 톤에서 나오는 의도적인 공백을 음악이 매력있게 해석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쩌면 모아니면 도가 될 정도로 무모해 보이는 신인급 무술감독의 기용은 누가 봐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할듯 합니다. 인남과 레이의 서로 다른 액션 스타일의 구축부터 액션의 공간이 작던 크던 각 액션의 특징과 타격감을 선명하게 읽을 수 있었던 속시원함, 맛깔나는 타격감, 스타일리시하되 사실적인 액션 스타일(중후반 총기액션은 빼..고?ㅎㅎ).. 액션 분량이 많은 스타일은 아니지만 액션 자체가 정석적으로 잘 뽑힌 액션영화였어요.
단순간에 해당 케릭터를 설명해버리는 연기자분들의 연기도 참 좋았습니다. 술톤이 아닌 과묵한 톤의 청부업자 인남, 너무나도 화려하면서도 또라이ㅎㅎ 같았던 레이, 되새겨보니 무섭도록 선을 잘 지킨 유이, 이 아역이 아니었으면 영화 제작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 같은 유민이, 초반의 짧은 등장만으로도 존재감이 상당했던 영주, 그리고 여러 색의 조역자 조연분들.. 좋은 연기자들이 제 몫을 톡톡히 해주어 심플한 이야기가 허전하지 않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인남과 레이, 게다가 유이까지 대역 스턴트 없이 액션 연기들을 해주었다고 하니-후반 cg는 사용했다지만 아무튼 저걸 배우가 직접? 크로마키가 아니라 배우가 연기한 후에 cg?? 총이랑 탄피도, 폭발도 진짜였다고???- 어색하지 않고 실감났던 액션 장면들에 다 이유가 있었네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레이의 그 또라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습니다ㅎㅎ 인남이 꽤나 절제되고 진중한 스타일이기에 화려하고 또 화려한 레이가 더 강렬했는데 그 강렬함이 영화 속에서 너무나 매력있고 재미있게 녹아있었습니다. 내적 박수와 함성이 절로 나오더라구요!
다만악은 촬영과 음악, 액션과 연기 모든 부분의 장인들을 선택해 한 작품으로 만들기까지 컨트롤하고 조화롭게 배치 한 감독님의 능력치가 돋보였던 영화였습니다. 좋은 소스만 사용해도 제각각 따로 놀거나 어느 한 쪽만 훅 튀어버리거나 다 너무 과해서 부담스러운 경우가 왕왕 생기는데 여러 함정에 빠지지 않고 한 편의 꽤 괜찮은 작품을 만들어낸 홍원찬 감독님의 감각이 옳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번째 감상이 꽤나 만족스러워 나름 길게 만족 포인트를 적었지만 저의 주관적 취향으로는 아쉬운 부분 또한 존재했습니다. 이 영화의 장점으로 단순한 이야기 진행을 꼽았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제일 큰 축인 인남의 복수는 마지막까지 영화를 보게 하는 좋은 서사이지만 묘하게 인남이 수동적으로 위치하고 행동하게 되어서 복수극의 쾌감이 덜했고, 또하나의 큰 축인 레이의 복수는 레이의 강렬한 또라이 케릭터와 후반부의 친절한 대사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영화를 보면서도, 복기하면서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적이면서 유려했던 인간 대 인간 액션씬에 비해 중후반주의 (레이가)돌아버린 총기 액션씬은 주인공 버프가 있다고 해도 영 비현실적이란 생각이 들어 아쉬웠습니다. 말그대로 펑펑 터지는 규모있고 박력넘치는 총격씬 자체는 시원시원하고 재미있었지만 영화 속애서 계속 쌓아온 현실적 느낌이 들어간 액션들과는 그 결이 달라 아쉬웠어요.
이미 (강연히 제 기준, 주관적)올해 최고의 상업영화는 다른 작품이지만 영화의 강렬한 잔상만은 다만악이 더 컸습니다. 이상하게 계속 생각나는 인천의 노을, 레이의 첫 액션 시퀀스, 인남과 레이의 첫만남에서의 그 살벌함, 유민이의 텅 빈듯한 눈빛, 영주의 겁먹은 표정, 감정을 내비치던 순간의 인남.. 액션 영화인데 참 아름다운 액션 영화였어요. 이시국이 아니라면 규모있는 다만악 마니아층이 이미 결성되었을 영화일텐데 참 아쉽습니다..
덧으로, 태국이 예상 외의 영화 강국이었네요. 헐리우드식 조직적인 영화 촬영 환경에 다양한 풍경과 공간을 사용하기 편하기까지 하니 코로나19가 없는 평행 우주 속 태국ㅠㅠ은 영화 산업 잠재력이 커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