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녀들 (2025) 수작 이상 걸작 이하. 스포일러 있음.
송혜교는 구마의식을 행하는 퇴마 수녀다.
공식 서품을 받지 못했기에 퇴마를 할 자격이 없다. 주교는, 송혜교가 퇴마의식을 행하는 것은 교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 한다. 송혜교는 주교더러 따진다. 바티칸에 있는 장미십자회와 접촉해서 자기를 보증하게 해달라고.
주교는,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어렵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그냥 송혜교의 구마행위 그 자체가 싫다.
주교의 이런 판단에는 사실 일리가 있다.
송혜교는 무당 출신이다. 그녀는 퇴마 수녀나 귀신 들린 무당이나 뭐가 다르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무당이 굿하는 것이나 수녀가 구마의식을 행하는 것이나 똑같이 본다. 수녀인 그녀는 무당의 영빨로 구마의식을 행한다. 송혜교와 동료였던 퇴마 수녀는 아예 수녀를 그만두고 무당으로 전업하였다.
사실 무당과 수녀는 큰 차이가 있다. 무당은 기본적으로 귀신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 달래고 대화하고 모시는 사람이다. 무당이 귀신을 쫓는다는 것도, 잘 구스르고 소원을 풀어줘서 내보내는 것이지 귀신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다.
무당친구와 송혜교는 둘이 악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다가 무당친구가 말한다. "물에서 온 것 물로 돌려보내야지."
무당친구에게 구마행위는, 악마를 자연스럽게 자기 갈 길로 보내는 것이다. 억지로 내쫓는 것이 아니다.
무당친구는 악마 들린 소년을 보고 칭찬하듯 "잘 생겼다. 굿판에 올려 놓으면 펄펄 날겠네."하고 말한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악마를 퇴치해야 한다. 거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무당은 악마를 절대악으로 보지 않는다.
송혜교는 카톨릭교도로서의 종교적 신념과 무속인으로서의 무속세계의 포용을 함께 갖고 있는 혼란스러운 존재다.
미래를 꿰뚫어보는 악마는 송혜교에게 "내가 돌아와서 네 아들로 태어나주지"하고 말한다.
그녀는 결국 수녀로 남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송혜교는 악마를 쫓는 구마의식을 행하기 위해 조상신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무당을 데려다가 함께 구마의식을 행한다.
주교가 보기에, 송혜교는 분명해야 할 종교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람이다.
송혜교는 종교의 정체성보다도 "우선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할 것 아니냐?"하는 말을 내세운다.
인간적으로는 옳은 말 같지만, 종교인으로서는 아니다. 종교인으로서 넘어서는 안될 선이 있다. "무당이면 어떻고 수녀면 어때?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할 것 아냐?"
이 영화 속 캐릭터 성격 상, 송혜교는 자기 생각을 남에게 숨기고 할 사람이 아니다.
아마 모두들 송혜교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케케묵은 클리셰를 따르는 호러영화들보다 더 인상적인 영화였다.
지금까지 호러영화 쟝르에서 이런 영화를 본 적 없다.
임권택감독이 박근형을 주연으로 해서 비슷한 영화를
만든 것을 본 적 있다. 박근형은 광신도에 가까운 기독교도를 아내로 둔 평범한 남편이다.
어느날 그는 자기가 무당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점점 더 귀신이 자기에게 가까와진다.
그는 자기를 방어하려 한다. 이 사회에서 무당이 의미하는 것이 뭔지 아니까.
그가 남해 어느 해변을 가는 내용이 나온다. 낮이면 밀물 때문에 바다에 잠기고 썰물이면 모래해변이 드러나는
장소다. 그 해변 한쪽에서는 무당이 신나게 굿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모세의 기적"이라며 기독교도들이 와서 바다에 대고 기도를 하고 있다. 박근형 눈에는 그냥 다 똑같이 보인다.
그런데, 어느 젊은 미모의 무당이 박근형에게 접근한다. 박근형은 무속의 세계에 매혹되기 시작한다.
이 영화가 검은 수녀들과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임권택 감독 영화 속 박근형에 해당하는 사람이 이 영화에 나온다. 젊은 미카엘라 수녀다.
그녀는 무당이었던 어머니가 무당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낳은 귀태다.
그녀는 무당이 되기 싫어서 수녀가 되었고 또 병원에서 일한다. 그녀도 영빨이 강해서 귀신을 본다.
수녀들 사이에 숨어사는 그녀를 송혜교가 한 눈에 알아본다. 송혜교는, 싫다는 그녀를 쫓아다니며 아우팅을 시킨다.
미카엘라수녀가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갈 지는 분명하다. 카톨릭교단에서 소수자의 소외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송혜교가 어느 소년에게 붙은 악마를 마침내 쫓아냈을 때, 그녀는 수녀복을 벗고 해변을 거니는 환영을 본다.
악마를 쫓아냈는데, 왜 수녀복을 벗지? 수녀복이 질곡이라는 이야긴가?
송혜교는 자신에게 붙은 악마를 끌어안고 불길 속으로 걸어간다. 이것이 성스럽거나 숭고한 희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그렇게 묘사되지도 않는다. 송혜교는 아마 자기 내부의 혼란을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종교적 순교라는 곳으로 도망쳐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검은" 수녀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가 재미없다는 것은 의도된 것이다.
뭐가 자꾸 터지는데, 지리멸렬해서 재미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예 재미를 위해 사건을 만들려는 생각보다는,
그냥 송혜교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속의 혼란을 집중조명하는 데 시간을 바친다.
송혜교는 이미 대배우의 풍모를 갖고 있다. 송혜교가 어떤 영화에 나오든, 그녀를 보러 극장에 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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