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치 미츠루의 <터치>는 전형적인 80년대 스포츠 근성물 만화였다
'여름의 고시엔'이 만화에 미친 영향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 이른바 '여름의 고시엔'이 취소된 것은 올해가 사상 세 번째라고 한다(참고로 이전 두 번은 쌀 소동과 태평양 전쟁의 영향으로 취소된 바 있다). 이번 취소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TV 뉴스 등에서 보도된 눈물을 흘리는 고교 야구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원래 스포츠에 관심이 별로 없는 필자조차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었다. 아마 내년 이맘때쯤에도 인류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떤 형태로든 이 대회가 다시 개최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 '여름의 고시엔'은 만화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 매력에 사로잡힌 스포츠 만화의 거장들에 의해 지금까지 수많은 '고교 야구 만화'의 명작이 그려져 왔다. <도카벤>이나 (그 이름 그대로) <대고시엔>의 미즈시마 신지의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겠지만, 80년대에서 90년대에 걸쳐(주1) <주간 소년 선데이>의 '얼굴'로 활약했던 아다치 미츠루도 '고시엔의 매력'에 사로잡힌 만화가 중 한 명이다.
(주1) 10년대 이후 아다치는 <소년 선데이>에서 <겟산>으로 주요 집필의 장을 옮겼다.
그래서라고 해야 할까. 올해 5월, '여름의 고시엔 중지' 소식을 접한 아다치는 연재 중인 작품 <MIX>의 연재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각 매체를 통해 공개된 '<MIX>연재 중단 소식'에서 아다치는 먼저 “만화가 아다치 미츠루에게 있어 가장 큰 행운은 이 일본에 고시엔(고교야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라며 운을 뗀 뒤, “선수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면 정말 할 말을 잃습니다. (중략) 앞이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서 대환호, 대관중의 야구 만화를 계속 그려도 되는 걸까?”라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래도 계속 그려주길 바라는 팬들도 당연히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고교 야구와 고시엔이라는 존재에 대한 거장의 순수한 마음을 지지하고 싶다(참고로 <MIX>는 10월 발매되는 '겟산 11월호'부터 연재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터치>는 '러브코미디 만화의 명작'인가?
--서론이 너무 길어졌지만, 본 원고에서 필자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아다치 미츠루의 대표작 <터치>이다. 국민적인 히트작이기 때문에 이제 와서 그 내용을 자세히 소개할 필요는 없겠지만, 죽은 쌍둥이 동생과 사랑하는 소꿉친구 소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시엔을 목표로 하는 우에스기 타츠야라는 소년의 성장을 그린 <터치>는 <주간 소년 선데이> 1981년 36호부터 1986년 50호까지 연재된 야구 만화의 금자탑이다.
그렇다-- 이 작품은 틀림없는 '야구 만화의 금자탑'이지만, 의외로 이 작품을 '러브코미디 만화의 명작'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만화 비평적으로는 <터치>라는 작품이 새로웠던 점으로 '소년만화의 스포츠물에 소녀만화의 요소(연애 요소)를 도입한 것'을 들 수 있는데, 이는 거의 같은 시기에 '스포츠의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그린 타카하시 요이치의 <캡틴 츠바사>와 함께 '땀냄새 나는 스포츠 근성물붐을 종식시킨 작품'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또한 여주인공 아사쿠라 미나미는 80년대 미소녀의 대명사가 되었고, 그 이미지도 한몫하여 <터치>라는 작품이 왠지 모르게 화려한 연애만화처럼 인식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실제로 당시 <소년 선데이>는 같은 시기에 인기를 얻고 있던 타카하시 루미코의 <시끌별 녀석들>의 여주인공 라무와 함께 아사쿠라 미나미를 잡지의 '간판녀'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러브코미디(연애만화) 이전에 <터치>라는 작품은 꽤나 뼈가 굵은 야구만화다(기존의 스포츠 근성물 만화에 비해 연애의 요소가 크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주인공 우에스기 타츠야는 고시엔에 가기 위해 귀신 감독의 '복수'를 위한 무리한 압박을 견디고 손가락에서 피를 흘리며 투구를 하는 등, 이러한 하나하나의 묘사는 ('마구'는 등장하지 않지만), ‘스포츠 근성물 만화를 끝냈다’라기보다는 오히려 전통적인 스포츠 근성물 만화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어떤 의미에서 그는 영원히 이길 수 없는 상대(=죽은 동생 카즈야)에게 승부를 걸고 있는 셈인데, 그런 근성 있는 한 남자의 성장을 그린 이야기를 단순히 '러브코미디'로 치부해 버리는 것에 나는 위화감을 느낀다(주2).
(주2) 만화 원작자 부론손도 <터치>문고판 1권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애초에 나는 그저 ‘실속’이 없는 러브코미디를 싫어합니다. 그런 것들과 아다치 미츠루의 세계를 똑같이 여기지 말라고, 내심 조금은 혐오하고 있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총 26권(소년 선데이코믹스판)에 걸친 긴 이야기 속에는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명승부'가 그려지지만, 개인적으로는 야구 만화로서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고시엔 진출권을 건 메이세이 학원과 스미공업과의 지구 대회 결승전이 백미라고 생각한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경기는 일진일퇴의 공방전 끝에 연장전(10회)에 돌입한다(스코어는 4 대 4). 선공에 나선 메이세이 학원은 10회 초에 투수 우에스기 타츠야가 홈스틸을 성공시키며 승기를 잡았지만, 단 1점 차이로 스미공업의 상위타선(1번 타자부터)을 맞이하게 된다. 그 결과, 10회말 투아웃 2루 주자를 남겨둔 상태에서 타츠야는 최강 라이벌인 4번 타자 닛타 아키오와 대결하게 된다.
당연히 이걸 피하고 다음 5번 타자를 잡아서 승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고시엔에 가고 싶다'는 카즈야와 미나미의 꿈을 실현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정말? 만약 카즈야가 살아있다면, 이 강타자와 승부를 겨루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것이 운동선수의 본능이 아닐까? 이에 대해 닛타 역시 이전에 타츠야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번 더 우에스기 카즈야와 대결하게 해줘. 너라면 할 수 있어. 우에스기 카즈야를 넘어서라."라고. 그리고 애초에 본인은 무엇을 위해 야구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여러 가지 생각이 타츠야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쫓고 쫓기는 상황에서 그는 잠시 '정석'대로 고의사구를 선택하려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락을 함께 해온 동료들에게 고시엔의 흙을 밟게 해주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며, 자신보다 가까운 타인을 우선시하는 이 성격은 타츠야의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파트너' 포수 마츠다이라 코타로와 다른 팀원들은 그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부터의 전개는 정말 뜨거웠다.
타츠야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유격수는 3루 쪽으로 다가갔고, 외야 3명은 깊숙이 뒤로 물러나 닛타의 타구에 대비했다. 코타로가 외쳤다. “앞으로 하나! 힘차게 가자!"라고 외친다. 그리고 타츠야는 입으로는 “한 명 정도는 머리 좋은 녀석이 있어도 좋을 텐데...”라고 말하면서도 뒤에서 지켜주는 동료들을 믿고 라이벌인 닛타를 향해 전력투구할 각오를 다진다.
자, 여기서 이 승부의 결말을 쓸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내가 이 글의 마지막에 쓰고 싶은 것은 우에스기 타츠야가 닛타 아키오와 진지한 승부를 하는 장면에서 그의 옆에 카즈야(라고 생각되는 소년)의 환상이 불쑥 나타나는 묘사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터치>는 원래 슈퍼내추럴 요소가 있는 만화는 아니지만) '카즈야의 환영이 타츠야에게 힘을 줬다'는 것을 표현한 것일 것이다. 실제로 타츠야도 나중에 '카즈야의 집념'이 스미공업과의 승부를 결정지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의 해석은 조금 다른데, 여기서 그려지고 있는 것은 '우에스기 타츠야의 성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 닛타가 원했던 것처럼 '카즈야를 넘어'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2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타츠야는 카즈야와 대등한 투수로 성장한 것이다. 동생의 유지를 잇는다? 미나미를 고시엔에 데려간다? 물론 그것도 타츠야가 야구를 하는 데 큰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에게 '나'가 없다는 말이 된다. 물론 그런 것은 아니며, 애초에 이 닛타 아키오와의 뜨거운 싸움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한 명의 사랑스러운 '야구 바보'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우에스기 타츠야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야구를 선택했다. 동생 카즈야는 '노력하는 천재'였지만, 형인 그는 '노력하지 않는 천재'였다. 그런 못난 천재가 2년 동안 피땀 흘리는 노력을 통해 동생과 대등한 투수로 성장했다. 그래서 어쩌면 - 여기서는 굳이 비현실적인 해석을 하자면 - 그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나타난 카즈야의 환영은 지쳐있는 형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히려 드디어 진심이 된 '형'과 함께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동생의 마음에 거의 힘이 남아있지 않았던 형도 끈질기게 응수한 것이다.
나 우에스기 타츠야가 아니면 안 돼. 너와 함께 갑자원에 가지 위해서는--.
아다치 미츠루 <터치> 23권(쇼가쿠칸/소년선데이코믹스)에서
역시<터치>라는 작품은 '스포츠 근성물 만화를 끝냈다'가 아니라 지극히 80년대적인 스포츠 근성물 만화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시마다 카즈시
1969년생. 작가, 편집자. <九龍> 전 편집장. 최근에는 쇼가쿠칸의 <만화가 책>시리즈를 기획. 저서 및 공저로 <악당의 만화술><만화가, 영화를 말하다><만화의 현재!> 등이 있다.
원문
https://realsound.jp/book/2020/09/post-613430.html
터치의 재미있는 점이라고 한다면 아다치 미츠루의 과도기가 보이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흔히 말하는 아다치 스타일이 확립된 다음에 나온 <러프>, <H2>, <카츠!>, <크로스 게임> 등의 작품들과는 다른 감상이 나올 법한 포인트가 이겁니다. 어떻게 말하면 덜 다듬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저 같은 경우는 여기에서 묘한 역동감이 느껴졌습니다.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들 중에서 터치를 제일 좋아하는데 이런 과도기적인 면이 보이는 것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 기사의 경우 흔히 말하는 '터치는 스포츠 근성물을 끝냈다'와 정반대인 의견을 냈다는 점에서 재미있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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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치면 외인구단처럼 그림에서 땀내날 정도는 아닌 산뜻한 느낌이라서 근성물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