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호러 No.66] 인간 영혼의 아름다움을 그린 걸작 - 엘리펀트맨
엘리펀트맨 (1980)
인간 영혼의 아름다움을 그린 걸작
실험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작품들로 유명한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애정하는 영화를 이번 주 불금호러로 소개합니다. 호러와 드라마를 자연스럽게 오가며 인간의 본질을 깊이 있게 그려낸 <엘리펀트맨>입니다. 지난 1월 16일 세상을 떠난 그의 예술적 유산을 기리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미학으로 깊은 감동을 전하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기형적인 외모로 인해 프릭쇼에서 엘리펀트맨으로 전시되던 조셉 메릭을 외과의사 프레드릭 트레비스가 발견하고 데려옵니다. 그를 꾸준히 관찰하던 트레비스는 메릭이 지적 능력과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인물임을 깨닫죠. 병원에서 보호를 받게 된 메릭은 점차 사교계의 주목을 받으며 연극배우와 상류층 인사들과 교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구경거리가 되기를 강요받습니다.
<엘리펀트맨>은 프릭쇼의 구경거리에서 시작해 조셉 메릭이라는 한 인간의 영혼의 여정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실존 인물이기도 했던 메릭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아내는 과정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놀랍게도 이 영화의 제작자는 코미디 영화의 거장인 멜 브룩스였죠. 그는 자신의 이름을 크레딧에서 의도적으로 제외합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기 전 자신의 이름으로 인해 코미디 영화로 오해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죠. <이레이저 헤드>를 보고 린치의 비전을 신뢰했던 브룩스의 현명한 선택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도전적인 영화의 중심에는 조셉 메릭 역을 맡은 존 허트의 놀라운 연기가 있습니다. 무거운 분장 아래서도 섬세한 감정 표현을 놓치지 않은 그의 연기는 압도적입니다. 특히 매일 7시간이 넘는 고통스러운 분장 과정을 견디며, 불편한 의상 속에서도 메릭의 순수한 영혼과 고귀한 인간성을 완벽하게 표현해내고 있죠. 기차역 추격 신에서의 절규부터 연극 관람 장면과 이후의 섬세한 감정 변화까지, 그의 눈빛과 몸짓 하나하나가 메릭이라는 인물을 살아 숨 쉬게 만듭니다.
이러한 배우의 헌신적인 노력과 함께 린치 감독 특유의 미학이 더해져 <엘리펀트맨>은 호러와 드라마를 절묘하게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이 됩니다. 린치 감독은 초반부에 호러 장르의 클리셰적인 요소들을 차용합니다. 트레비스가 메릭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런던의 어두운 뒷골목의 강렬한 명암 대비, 불안정한 카메라 워크, 증기기관의 소음과 메릭의 신음이 뒤섞인 사운드는 호러 영화의 분위기를 충실하게 구현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러한 호러적 요소들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선으로 변화하게 되죠.
영화의 시작에선 메릭의 외적인 모습이 공포의 대상이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오히려 그를 구경거리로 만드는 사회의 모습이 진짜 공포임을 드러냅니다. 이는 기차역 추격 신에서 절정에 달하는데, 메릭이 군중들에게 쫓기다 절규하는 장면입니다. “나는 동물이 아니에요. 나는 인간입니다. 나는 사람이에요..”
메릭의 전율적인 외침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과연 누가 더 괴물인가? 겉모습은 기형이지만 순수한 영혼을 지닌 메릭과, 그를 구경거리로 만들며 몰려든 정상인들의 모습을 대비시키며 영화는 당시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죠.
더 나아가 영화는 메딕을 관찰자의 위치에서 바라보다가 서서히 변화를 꾀합니다. 트레비스 의사조차도 처음에는 '의학적 호기심'이라는 명목 하에 메릭을 관찰의 대상으로만 보았었죠. 그가 진정으로 메릭을 한 인간으로서 인정하게 되는 과정은, 관객들이 어떤 시선으로 메딕을 바라보며 변화하는지와 동일시됩니다.
메릭에 대한 이런 시선이 완전히 전환되는 결정적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여배우 켄달이 그와 함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관람한 후입니다. 메릭이 보여준 섬세한 예술적 감상과 순수한 반응에 깊이 감동한 그녀는 가슴 울리는 말을 건넵니다.
“오, 메릭! 당신은 엘리펀트맨이 아니에요. 당신은 로미오에요”
메릭은 그 말에 눈물을 흘립니다. 이 말은 단순히 메딕을 위로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그의 외양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을 진정성 있게 인정하는 순간이자, 괴물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 또 예술가로서 온전히 인정받는 순간입니다. 이 대사의 울림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처럼 누워 잠들기를 선택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인간다운 죽음마저 허락되지 않았던 한 영혼의 위엄 있는 결정입니다. 린치 감독은 이 마지막 시퀀스를 통해 메릭의 비극적인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입증하는 여정의 이야기였음을 강조합니다.
<엘리펀트맨>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재미와 구경거리로 삼으며 희희낙락하는 인터넷 시대에 대한 경고이자, 진정한 인간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영화를 보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브래들리 쿠퍼의 고백처럼, <엘리펀트맨>은 앞으로도 수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영원한 걸작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덧붙임...
1.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많은 사건들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 허구입니다. 메릭은 학대를 받은 적이 없으며, 병원에서 납치된 적도 없다고 합니다. 메릭은 병원에서 평온하고 특별한 일 없이, 짧지만 조용한 삶을 살았습니다.
2. 실제 조셉 메릭의 사후, 그의 신체 일부가 의학 연구를 위해 보존되었습니다. 내부 장기는 병에 보관되었고, 그의 머리, 팔, 발에 대한 석고 모형이 만들어졌다는군요.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공습으로 인해 장기들은 파괴되었지만, 석고 모형은 살아남아 런던 병원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존 허트의 메이크업은 이 석고 모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3. 존 허트는 오전 5시에 촬영장에 도착해서 7시간이 넘는 분장 과정을 거치고 촬영에 들어갔다는군요. 체력적으로 워낙 힘이 들었기 때문에, 격일로 작업을 해야했습니다.
4.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엘리펀트맨> 연출 제의를 받았을 당시, 지붕 수리공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엘리펀트맨>은 그의 첫 번째 스튜디오 영화이자, 첫 상업영화이기도 합니다.
5. 브래들리 쿠퍼는 <엘리펀트맨>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영화가 그가 배우가 된 이유라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존 허트의 연기에 매료되었고, 자신의 대학 졸업 논문 주제도 <엘리펀트맨>이었다고 하는군요. 이후 2012년 브로드웨이 연극에서 브래들리 쿠퍼는 조셉 메릭 역할을 맡았습니다.
다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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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치 감독님 타계 소식 듣고서 가장 먼저 기억에 떠오른 영화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