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천(2024)> 감상평 - 촌극의 연출을 맡아달라 했더니…
홍상수 감독님의 작품은 <수유천>으로 처음 접해봤는데...
정말 재밌었습니다!
여운이 남는다기보다는 여흥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도 저 혼자 낄낄거렸네요😁
촌극(寸劇)
1. 아주 짧은 단편적인 연극.2.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우발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줄거리
어느 여대, 학과별로 촌극을 공연하기로 했는데 전임(김민희 분)이 맡은 학과 내에서 스캔들이 벌어집니다.
연출가(하성국 분)의 3다리 애정행각이 들통난 겁니다.
10일밖에 남지않은 때 여학생 3명이 떠나가는 위기가 발생한 것이죠.
이에 전임은 자신의 외삼촌 시언(권해효 분)에게 연출을 부탁합니다.
40년 전 이 학교에서 연출을 맡은 기억이 있는 시언은 흔쾌히 수락합니다.
그런데 전임의 교수, 정 교수(조윤희 분)는 시언의 팬임을 자처하며 유혹해옵니다.
한편, 이전 연출가는 포기하지 않고 학교와 여학생에게 다시 찾아오기까지 합니다.
연출을 맡은 시언은 나머지 학생들을 데리고 무사히 촌극을 끝낼 수 있을까요?
시언, 전임, 정 교수의 첫 삼자대면.
앉아있는 위치와 카메라 구도는 영화가 흐를수록 바뀌게 된다.
※ 스포일러 주의 ※
해당 포스트는 영화 내용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관찰자 전임과 배우 김민희
전임은 자연과 인간을 관찰합니다.
매일 수유천 둑에 앉아서 풍경을 관찰하고, 영화 속 인간사(事)들도 목격하죠.
촌극을 연습하는 학생들, 3다리를 걸친 연출가의 재방문, 외삼촌과 정 교수의 첫 만남부터 술자리까지 목격합니다.
저는 이것에 '김민희란 분이 배우이자 홍상수 감독의 최혜 대우를 받는 영화 속 관객'으로 풀이 해보았습니다.
이 영화로 로카르노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김민희 배우가 "당신의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한 것이 더욱 그렇게 느껴지게 하니까요.
섬유예술학과 강사이자 텍스타일 디자이너란 역할은 또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시 영화 속 전임으로 돌아가보면 '지금이 너무 편하다'는 말을 합니다.
이를 김민희 배우의 처지와 홍상수 감독 사이로 알레고리를 엮을 수 있어 보입니다.
신세 한탄도 들어주고, 관객으로서 가장 최고의 위치인 영화 속에서 관람하게끔 해줌과 동시에
과거와는 너무나도 다른 편안함을 만들어준데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감사함의 표현이지 않나 싶습니다.
“평화롭고 깨끗해요. 지금이 좋아요. 평화롭게 일하는 게 제일 재밌어요.
매일 집중할 수 있고 일하는 게 재밌어요.”
감독의 생각인듯한 작품 속 대사들
촌극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던 중 총장이 촌극을 정치적으로 평가했다고, 관객들도 야유를 퍼부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분위기 싸해진 이 때, 별안간 시언이 학생들에게 "너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고 외치며 이를 시(詩)로 표현할 것을 제안합니다.
처음엔 머뭇거리던 학생들이 '할 수 있다'는 시언의 격려 속에 저마다 한 수(?) 짓습니다.
(조선일보 기사의 도움을 받아 보다 정확하게 전달해드렸습니다.
링크 타고 들어가셔서 볼드체로 되어있는 대사들을 찾아 읽어보시면 더욱 재미있으실 겁니다..ㅎㅎ)
“사람한테 완전히 안길 수 있는 사람. 이 삶을 솔직한 삶으로 살고 싶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서 진짜로 사랑하는 하루를 살아가고 싶습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마음에 드는 길이 나타날 때까지 찾아볼 겁니다.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전 남을 찌르지 않습니다. 저도 사람입니다.
당하고 당하고 또 당해도. 구석에서 작은 불이라도 켜고 그렇게 지키겠습니다.
저도 사람임을 잊지 않고서.”
가장 압권은 후반부 대사들이죠.
“나이가 드니까 편한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
근데 저 사람이 나한테 너무 편해.
진짜 아무것도 신경쓰이게 해준 적 없는 사람이야.”
“나 이혼했어. 작년에.
10년 넘게 별거했더니 하게 해주더라.”
홍 감독님의 진심인지, 그저 작품 속 캐릭터의 진심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오랫동안 꼬리표가 붙고 다닌 것에 대한 감독의 피로감이 농축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전에 전임의 대사들, 지금이 평화롭고 편안하다는 그 대사들까지 합쳐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감독과 배우 커플이 말하고 싶은 진심을 예술작품으로 승화한 것으로 정리해야할 듯 싶네요.
천을 거슬러가보니…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전임은 수유천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의욕을 상실했다기보다는 상류의 근원을 보다 날 것(?) 그대로 파악하고 싶었나봅니다.
때는 외삼촌이 다시 강릉으로 돌아가려할 때 이미 정 교수와 술을 마셔버린지라 전임에게 운전을 부탁합니다.
자연스럽게 전임도 식사에 참여합니다.
전임은 잠깐 식후땡(?)을 핑계로 내천 위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뭐 볼 거 있냐는 외삼촌의 물음에 나오는 마지막 대사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여기엔 제가 생각한 몇 가지 해석들이 있습니다.
1) 홍 감독이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거슬러보니 정말 허무한 것이였더라.
2) 이전 인간관계들이 무의미했다. 앞으로 배우 김민희와 의미있는 작품활동 하겠다.
3) 이 영화는 정말 아무 의미없다, 관객들아! 속았냐? 이제 그만 좀 괴롭혀라 ㅋㅋ
뭐가 맞을진 모르겠으나 꽤나 벙찌면서도 인상적인 마지막 대사였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영화는 프레임 안이 전부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언이 이전 연출가를 데리고 잠깐 대화하자며 프레임 바깥으로 빠진다던지,
정 교수와 시언이 복층 계단으로 올라가며 프레임 위쪽으로 빠진다던지 등등
바깥으로 빠져나간 인물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관객으로서 추리, 상상하는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그리고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 배우가 자신들을 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피로감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이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선악의 기준과 그로 인한 불쾌감마저도 작품을 평가하는 데는 영향을 줄 순 없겠죠.
영화 자체는 재밌었고, 또 저 두 분이 어떤 삶을 살든 자신들이 만족하는 삶의 영위로 좋은 작품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작성에 도움이 되어 감사한 컨텐츠들
[그 영화 어때] 홍상수 감독은 결국 이혼에 성공한 걸까, 영화 ‘수유천’
조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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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하고 당하고 또 당해도. 구석에서 작은 불이라도 켜고 그렇게 지키겠습니다. 저도 사람임을 잊지 않고서."
대사도 정말 좋았고, 그 장면 자체가 진짜 자주 떠오를 것 같네요. 후기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