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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이 기사부로 감독의 8년의 방랑생활과 복귀에 대한 이야기

중복걸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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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의 저서에 언급된 내용입니다. 어차피 한국에 발매될 일이 없는 책이라 한국의 시청자들은 정보를 접할 수가 없는 게 아닐까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손에 꼽힐 만한 특이한 이력이라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을 버리고 여행을 떠날 것을 결심하다

 

 토에이 동화를 스타트로 커리어를 쌓아간 나는, 조금씩 자신이 나아가야 할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를 목표로 해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후 나는 35세가 되었을 때 애니메이션을 떠날 결단을 했다. 그만두기로 결정하기 직전에 한 일은 <잭과 콩나무>(1974년)다. 제작사는 당시 내가 몸담고 있던 그룹 택. 자체 제작 중편영화일 줄 알고 시작한 이 작품은, 곧 자금난에 빠져 제작이 중단될 뻔 했다. 그러나 배급회사 등과 협상하고, 예매권을 발행하는 목표도 붙여서 제작을 재개하게 되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극장 개봉할 수 있는 길이를 가진 작품으로서 중편에서 장편으로 늘어나게 되어, 음악 장면을 넣은 뮤지컬로 스케일이 업되었다. <잭과 콩나무>의 당초 목표는 디즈니를 넘어선 새로운 표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태프로부터 이견이 나왔다. 스기이는 토에이 동화에서 풀 애니메이션 경험을 쌓았지만, 자신들은 무시 프로덕션에서 일본식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으로밖에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디즈니를 넘으라고 해도 무엇을 넘으라는 건지 모른다, 라는 것이다.

 

 그것은 지적대로였다. 그래서 나는 재차 "이번에는 캐릭터 그리는 방법부터 배경에 이르기까지 전부 디즈니식으로 해라"라고 주문을 내렸다. 예를 들어, 이 작품에서 채용한 캐릭터마다 담당 애니메이터를 정하고 도안을 통일한다는 제작체제는 디즈니의 방식을 모방한 것이었다.

 

<잭과 콩나무>, 1974년 개봉. 유명 동화를 원작으로 하여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음악 구성을 아쿠 유, 작곡을 토쿠라 슌이치, 미키 다카시, 이노우에 다다오 등 유명 작곡가가 담당했다. 원화 매수가 4만 6000장을 넘는 등, 풀 애니메이션을 고집한 작품.

 

 <잭과 콩나무>가 개봉한 뒤 한 기업에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가지려 하는데 스태프들 전체가 참가하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나는 거절했지만, 함께 일해 온 멤버의 상당수가 그 스튜디오에 참가하기 위해 떠나갔다. 그 스튜디오가 제시한 높은 월급도 동료들이 떠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다양한 프로페셔널이 자유자재로 모여 작품을 만드는 프리 집단이라는 것에 과대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원하지 않는 작품을 만들 바에는, 화가니까 스스로 그림을 그려서 팔아서 생활하는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발언을 스태프에게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풋풋한 이상론은 생활의 안정이라는 안심 재료를 위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일은 TV 애니메이션 <만화 일본 옛날이야기>(1975년)이었다. 30분에 2화를 방송하는, 이른바 '이층건물'로 방송하는 것. 몇화에 어떤 옛날 이야기를 방송할 것인가 하는 시리즈 구성. 모든 캐릭터의 목소리를 두 명의 캐스트가 연기할 것. 그림에 대해서도 작가의 개성이 나타나는, 풀애니메이션적이지 않은 스타일이 바람직하다는 것... 

 

 그런 식으로 프로그램의 기본이 되는 요소를 정하자, 무시 프로덕션 이래의 일 동료인 마에다 츠네오 군에게 뒤를 맡기고 나는 여행을 떠났다.

 

 

애니메이션을 그만두기로 했다

 

 <오공의 대모험>으로 감독 데뷔하고 나서 <루팡 3세>의 파일럿 필름 제작에 참가하거나 <도로로>의 감독, 그리고 무시 프로덕션의 <아니메라마> 3부작의 스페셜 장면들 담당하기도 하던 중, 돌연 내가 이렇게 되는 대로 애니메이션을 생업으로 해도 좋은가 하는,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생각이 솟구쳐 올랐다. 그다지 큰 계기가 있었다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라는 것 말고는 전혀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유도 분명하지 않은 이사, 해결도 되지 않는 자문자답을 한동안 계속한 결과, 나는 당분간 일을 떠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나는 무시 프로덕션에서 독립하여 동료와 만든 아트 프레시를 사임한 후, 무시 프로에 음향부를 만들어 애니메이션 업계에 음향감독이라고 하는 섹션을 창립한 타시로 아츠미와 함께 그룹 택이라는 회사를 설립, 그곳에 자리를 두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뮤지컬 판타지 잭과 콩나무>라는 극장용 영화를 다 만들어가던 참이었다.

 

 그룹 택에서 연출가로서 일했던 적도 있고, 내 멋대로 일을 떠날 수도 없고,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일본의 민담을 TV시리즈로 프로그램화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거론되었다. 이것이 이후 20년이나 계속되는 <만화 일본 옛날이야기>의 기획이었다. 나는 조속히 기획의 플래닝에 들어가, 2쿨(TV계에서는 13화를 쿨이라고 부르고 있다)의 라인업을 구성, 각본을 담당한 영화감독인 오키시마 이사오 씨와 조립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의 일 파트너이기도 한 마에다 츠네오 군에게 치프 디렉터를 부탁하고 그룹 택을 떠나기로 했다.

 

(<철완 아톰>을 작업할 당시의 스기이. 타이머를 들고 콘티를 작성하는 사람이 젊은 시절의 스기이 기사부로)

 

 일을 떠나서 조금 여행이나 하려 생각하고 있었다. 17살에 업계에 들어와 지금까지 줄곧 애니메이션 일을 해왔는데, 그 반생의 총괄을 할 생각이기도 했다. 이렇게 여행을 시작했지만, 설마 그 여행이 긴 여행의 시작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조금 일에서 벗어나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 보자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행이라고 해서 일도 안 하고 그저 빈둥거리기만 할 정도의 금전적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래서 그림을 팔면서 여행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그림재료 도매상으로부터 100매 정도의 싼 흠집이 있는 색지를 넘겨받아, 붓으로 그림을 그려 팔면서 여행을 해보려고 도쿄를 출발했다. 그림은 한 장에 500엔에 팔기로 했다. 색지만 해도 그냥 사면 200~300엔 정도 한다. 게다가 손으로 그림을 그려서 500엔이라면 비싸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나중에 그림을 팔면서 여행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순진하고 무모한 계획이었는지 알게 되는데, 일단 그림을 다양하게 그리는 것도 힘들고 일단 오니 아이 그림을 그리며 다니기로 결정했다.

 

 왜 오니 아이인가 하는 이유를 깊이 생각한 것은 아니다.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그리기 쉬웠다는 정도다. 색지의 오니 아이 위에 "오니 아이는 강해. 감기 따위에 지지 않아"라는 말을 첨부해 아이의 방에 장식해 달라고 생각했다. 한 장에 500엔이라는 가격을 정한 근거는 당시 민박집이라면 1박에 2500엔 정도였으니 하루 팔고 다녀서 10장이나 팔리면 5000엔이 된다. 하룻밤 숙박비와 교통비와 약간의 식사비가 나오면 여행은 계속될 수 있다는 이론이 된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제멋대로인, 마치 만화와 같은 계획이지만 당시에는 나름대로 진지했다. 일단, 일에서 잠시 떨어져 다른 곳에 자신을 두지 않는다면 자신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것을 슬럼프나 인생의 벽이라고 말하는 걸까? 아니, 그런 느낌과도 다르다. 마음대로, 제멋대로 일을 해왔다. 무시 프로에서 <아톰>을 하고 아트 프레시에서 <오공의 대모험> <도로로>, 그리고 그룹 택에서 자체 제작에 가까운 형태로 <잭과 콩나무> 등을 만들어 왔다. 그동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라기보다는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고 달려왔다는 느낌이다. 당시에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지만, 말하자면 너무 많이 달렸다는 것이 실태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갑자기 뭔가 멈춰서 흐름을 바꾸지 않는 이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그 자리를 떠난다는 것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림을 그려 팔면서 여행을 해보려고 한 데는 이유도 있다. 일찍이 스태프들과의 잡담을 하던 중, 자신들의 일의 경제적 불안정성에 대해 "너희들은 그림 그리기라도 할 수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마을에 나가서 그림을 팔아서라도 먹고 살 수 있잖아." 등을 말한 적이 있었다. 말한 이상 스스로 해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하루 10장 정도의 그림은 팔릴 것이라는 과신도 거들었다. 여행은 일단 태어난 고향이기도 한 누마즈의 마을에서 출발하려 생각했다. 어쩐지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림을 팔고 다니는 방법도 단순하게 생각했다. 흔히 마을에서 볼 수 있는, 그림을 늘어놓고 길거리에서 파는 방법도 있지만, 색지에 그린 오니 그림을 20장 정도 작은 가방에 채워서, 어느 집을 찾아가 방문판매하는 것이 빠를 것이라 생각해서 일단 누마즈의 지인의 집에 폐를 끼치는 약속을 잡고 다음 날부터 마을에 나갔다. 정말이지 편한 발상이지만, 그때는 그런 것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생각도 정지상태에 있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이것저것 귀찮은 생각하지 않고 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림을 파는 것이 쉽지 않은 것 정도는 상정하고 있었지만, 대량의 그림을 계속 그려온 내 그림은 색지라 해도 500엔에 사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희미한 자신감도 있었다. 게다가 내 오니 아이 그림을 어떤 사람이 사줄까 하는 흥미도 있었다. 마을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상점가에서 그림 방문판매를 시작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림을 팔러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에 10장의 그림을 팔면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는 계획이 얼마나 무른 철부지 발상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대체로 하루에 100채 정도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하루 돌아다녀서 잘 파는 날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7장 정도밖에 팔지 못한다. 즉 93채에서는 거절당한 채 돌아다니게 된다. 뭐, 그림이든 무엇이든 세일즈라는 것은 그러한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화가의 색지 같은 건 500엔조차 비싸다. 사줄 리도 없지만, 시작한 이상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돌아다녔다. 어딘가에서는 이런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지금은 어쨌든 애니메이션에서 떨어져 본다.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중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색지 그림을 팔며 돌아다니는 행상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할머니에게 300엔으로 되겠느냐며 가격을 깎인 적이 있다. 내가 "이건 계속 500엔에 팔아왔으니까 할머니만 300엔으로 할 수는 없어요."라고 대답하자 "나는 아들로부터 하루 용돈 500엔을 받았어요. 만약 당신의 그림을 500엔에 사면 용돈이 다 떨어져서 간식을 먹을 수 없게 돼요. 당신이 200엔어치 참고 내가 300엔어치를 참으면 서로 좋게 되잖아요."라고 주장했다. 할머니의 논리였지만 나는 여행 도중 이런 교류를 몇 번이나 경험하면서 '그림에 돈을 지불하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가격이 아니라 오니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인해 논란이 되는 일도 있었다 상대는 그림을 팔려고 뛰어들어간 찻집의 주인이었다. 할아버지라 해도 좋을 것 같은 나이의 주인이 '오니 아이 이외의 그림은 없느냐'고 물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오니 아이밖에 그리지 않기로 결정하고 여행을 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더니 "왜 오니야"라는 식으로 논란이 되어 버렸다. 찻집이라 족자가 있고, 무샤노코지 씨의 그림과 '친한 것은 아름답다'고 하는 사필이 곁들여져 있었다. 그것을 할아버지가 가리키며 '이런 것을 왜 그리지 않느냐. 이런 건 잘 팔릴 거다. 오니 같은 걸 그려도 팔리지 않는다'고 이었다.

 

 내가 "아니, 할아버지는 오니를 악으로 생각하시는 건지도 몰라요. 하지만 일본의 오니라는 것은 서양의 사탄과는 달리 단순히 나쁜 것은 아니겠죠. 나쁘다 생각하고 상대를 하면 해를 끼치지만, 어떤 때는 남을 돕기도 해요. 인간의 생각에 따라 변하는 게 오니에요."라고 대답하자 "그건 니 논리겠지."라며 주인도 물러서지 않았다. 

 

 급기야 주인은 "네가 내일, 오니 말고 다른 그림을 그려오면 몇 장을 갖다 줘도 다 사주겠다"며 약속하기까지 한다. 할아버지도 말하기 시작한 이상 고집을 부렸다. 그런 어조로 반나절 가까이 있었는데, 전혀 보지 못한 할머니가 안쪽에서 미닫이문을 열고 나와서는 "영감, 오니 아이니까 사서 세쓰분에 장식하면 어떨까요"라며 도움을 주어서 이야기는 가라앉았다. 반나절이 걸려서 마침내 한 장. 웃기지 않은 웃음거리 같은 전말이었다.

 

 

그림을 사줄 사람, 사지 않을 사람

 

 색지를 들고 다니는 방문판매 모습은 어떤 마을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그 마을에서 여행비를 벌어 다음 동네로 옮겨간다. 그 반복이었다. 그리고 100개의 집을 돌아다녀도 팔리는 그림은 10장이 안 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히피가 아직 있어서, 철사를 구부려 손님의 이름을 로마자로 만든 펜던트를 팔곤 했다. 그것도 대략 500엔이었다. 가끔 나란히 가게를 내면 히피 펜던트는 날아갈 듯이 팔리는데, 이 그림은 전혀 팔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마지막에는 히피가 손님에게 "저기, 옆에 그림도 귀여워니까 좀 봐줘."라고 말해주는 식으로 동정을 받기도 했다.

 

 팔 만한 집을 고를 수도 없어서 중간부터는 모두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관공서에 들어가 버린 적도 있었다. 직원한테 "너, 꽤 편한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말을 듣고 "아니, 그렇지도 않은데요."라고 말하자 "이거 팔리면 500엔이 되겠지? 이런 걸 그려서 돈이 된다니, 좋은 일 아니야?"라는 대답이 왔다. 그래서 사줄 거냐 하면 이런 사람이 그림을 사준 적은 없다. 

 

 번화가 길거리에 그림을 나란히 놓고 팔기도 했다. 그런 어느 마을에서 저녁이 되었을 무렵 현지인한테 말을 걸렸다. 누구한테 허락받고 여기서 그림을 팔고 있는 거야 라는 말을 들어버려서 "저는 이 땅을 잘 모르는데, 누구에게 허락받으면 좋을까요? 그림을 팔면서 여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팔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어요."라고 말하자 "그건 이 마을을 다스리는 위대한 사람이지"라고 했다. "저, 높은 사람은 모르는데 소개해 주시겠어요?"라고 묻자 "그런 건 할 수 없어"라고 거절하면서도 "나라서 다행이지, 조금 더 어두워지면 우리 마을의 젊은 사람들한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그만 장사를 접어라"라는 충고를 해 주었다. 

 

 치우려고 하는데 "이거 뭐 하는 거야?"라고 물어서 '액자에 넣어서 아이 방에 장식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 현지인 남자는 흠 하고 중얼거리며 "한 장 줘"라며 500엔을 주고 한 장의 그림을 사주었다. 분명 누군가 아는 아이에게라도 줄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교류를 하면서 그림을 파는 체험도 꽤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여행을 하고 있는 가운데, 그 밖에도 인상적인 손님은 있었다. 미에현의 시마에 있는 백화점을 소개받아 그 앞에서 그림을 팔던 때의 일이다. 실연판매였기 때문에 그때만큼은 오니 아이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그림을, 붓을 사용해 탁탁 그려갔다. 그리기 시작하면 사람이 붐비긴 하지만, 정작 중요한 그림을 일제히 팔리지 않는다. 그 인파 속에 중학생 정도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다음날도 그녀는 와서 가만히 선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너, 그림은 좋아하니?"라고 말을 걸자 "네,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300엔이 아니면 돈이 없어서 그림을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늘 그래왔듯이 "너한테 300엔에 팔아주고 싶은데 나는 계속 한 장에 500엔이 팔아왔어. 그러니 여기서 너에게만 싸게 하면, 모두에게 불공평하겠지?"라고 설명을 했다. 그런데 그녀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왔다. 이것은 곤란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일주일밖에 안 팔 테니까 마지막 날에 와. 그러면 너한테만 특별히 300엔이 팔아줄 테니까."라고 말해주었다.

 

 마지막 날, 그녀가 왔기 때문에 "특별히 해주는 거야. 마음에 드는 걸 골라."라고 말했더니 툭툭 세 장을 골랐다. "어? 세 장?"하고 놀라서 "너 500엔이면 돈이 부족한 거 아니었어?"라고 묻자 "그렇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예산은 1000엔. 그런데 갖고 싶은 그림은 세 장 있다. 500엔으로는 2장밖에 살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그래서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 집착심이라고 할까 고집에 한판 잡혔다고 생각해, 900엔으로 세 장을 팔아줬다.

 

 다른 마을에서 마찬가지로 실연판매를 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이때는, 그림 위 공백에 주문한 말을 그려준다는 설명서를 세워놓고 팔았다. 가만히 실연을 보던 5살쯤 된 여자아이를 데리고 온 할머니가 인파가 떠난 뒤 다가와 그림을 가리켰다. "이 그림이네요. 알겠습니다. 빈 곳에 원하시는 말을 적을 테니, 뭔가 있으면 말해주세요."라고 했더니 할머니는 입을 다문 채 다시 그림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나는, 혹시 말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말 몇 개를 초안으로 작성할게요.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골라주세요."라고 설명하며 할머니에게 "이 아이에게 줄 건가요?"라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내가 쓴 것들 중에서 "이 그림은 할머니가 당신을 위해 정성껏 보내준 그림이니 평생 소중히 여기세요."라는 말을 골라 그림을 사갔다. 그 아이에게 평생의 보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손님과의 교류 경험은, 다시 한번 다양한 사람들에게 그림이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나는 도쿄에서 일하고 있을 때, 출판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일러스트를 그린 적도 있었다. 그때는 월급이 대략 3만엔에서 5만엔 정도였다. 그것은 출판사가 출판물을 만들 때 필요하기 때문에 의뢰를 하는 것이고, 돈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럼 그런 '출판물에 그려진'이라는 요소를 뺐을 때, 보통 사람에게 있어 그림을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적어도 그림의 매력과 그림값이 대등하지 않으면 사주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상황에서 눈앞의 사람에게 하나하나 그림을 판다는 체험을 해보면, 결국 그림의 가치라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받는 방법, 사는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당연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산 사람이 그 그림 속의 무언가를 느끼면 그 그림은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그리는 그림에 스스로 가치판단을 한다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도쿄에서 일러스트 일을 하거나 할 때에는 방 전체에 그림을 어지럽혀 가면서 그렸고, 조수가 밟거나 하면 "너, 발밑 조심해. 내가 그린 그림이 있어."라고 불평하기도 했다. 그랬던 것이 여행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설령 남에게 그림을 밟히더라도 '뭘요, 흙을 치우면 깨끗해지니까 괜찮아요.' 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덧붙여서, 여행을 떠나고 한두 달이 지나자, 나는 방문한 집이 그림을 사줄지에 대해 초인종을 울리기 전에 알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어떤 집 앞에 선다. 주인의 이름이 적힌 훌륭한 문패가 장식되어 있어서 돈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집에서는 대개 안 된다. 그림을 사줄 만한 집은 대부분의 경우, 문패에 가족 이름이 모두 적혀있어야 확률이 높다. 게다가 정원을 들여다 봤을 때 세발자전거가 있다고 하자. 그 핸들이 털실로 아이의 손이 차갑지 않게 커버되어 있거나 하면 이미 확실하다. 그런 집에서는 백발백중으로 그림을 사준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집이 얼마나 아이를 생각하고 있느냐는 거다. 문패에 전원의 이름이 있는 것은 가족애의 증거이고, 세발자전거에 털실 커버도 아마 엄마가 아이를 위해 만든 것일 거다. 그런 집이라면 아이들을 위해 500엔짜리 그림을 사준다는 것도 모를 일이 아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 할 수 없는 사람

 

 여행지에서 내가 배운 것은 그림을 사주는 손님뿐만이 아니었다. 여행지에서 밤이 와도 근처에 숙소가 없거나 돈이 없어 머물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그 근처에서 장사하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재워달라고 하곤 했다. 어느 날, 숙소에 머물 돈도 없고 어느 호숫가에서 하고 있는 가게에 재워달라고 협상을 벌였다. 가게를 하는 부부에게 그림을 그리며 여행을 하는 것, 돈이 떨어진 것을 설명하고 1000엔으로 그 가게 한 구석의 다다미방에 눕혀줄 수 없느냐고 부탁했다.

 

 그 건물은 가게뿐이어서 거주지는 없고, 부부는 자택으로 돌아가 버렸다. 내가 도둑이라면 밤중에 가게의 상품을 훔쳐 달아날지도 모른다. "만약 나를 믿어준다면, 재워주세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부부는 나를 믿고 묵게 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약속한 1000엔을 내며 "이게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의 전부고, 이걸 지불해 버리면 여행비도 없어지는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숙박비 대신 제 그림 두 장 받아주시겠어요?"라고 부탁했다. 부부는 웃으면서 그림을 받아 주었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하다가 고객에게 장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인품을 꿰뚫어 보는 힘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실감하게 되었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오카야마까지 도달했을 때, 싼 숙소를 찾아 보부상이 묵는 보부상 숙소에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그때, 드물게 도쿄와 전화로 연락을 할 필요가 있었다. 장거리 전화는 휴대전화 같은 것이 없던 시대라서 숙소의 전화를 빌리게 된다. 그 당시에는 시외통화의 통화요금을, 나중에 전화국이 전화를 걸어서 알려주는 구조가 있었다. 숙소에서는 연락이 오면 그 요금을 숙소 사람이 듣고 그 요금을 지불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전화를 하고 있자 카운터의 아주머니가 어디론가 가버렸다. 전화가 끝나고, 전화국으로부터 요금 통보 전화를 내가 받게 되었다. 그때 마침내 아주머니가 돌아왔다. 내가 "아줌마, 전화요금 160엔이래요."라고 말하자 아주머니는 그것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서 160엔을 받았다. "아줌마, 내가 만약 거짓말을 해서 요금을 적게 내면 어떡해요?"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묻자 아주머니는 "너는 괜찮아."라고 단언했다.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질문하자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이런 장사를 하고 있으니까, 대체로 사람을 보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바로 알수 있어."라고 단언했다.

 

 아주머니가 어떻게 그런 판별을 하는지 물어봤다. 아주머니는 내가 숙소에 선금을 지불할 때, 내 지갑에 몇 장의 1000엔권이 똑바로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돈을 제대로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런 점에 꼼꼼한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주머니에서 구겨진 지폐를 내밀었다면 아주머니는 나를 믿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로부터 "우리 장사라는 건 그런 점을 무의식적으로라도 제대로 보고 있는 거야."라는 말을 듣고 과연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호숫가 상점 부부도 내 어딘가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믿고 하룻밤을 묵게 해 주었을 것이다.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여러가지 시각으로 인품을 꿰뚫는 힘을 갖추고 있구나 하는 공부가 되었다.

 

 

잊을 수 없는 '선인'과의 만남

 

 여행 중에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코마치선인'이다. 어느 변두리의 산속에서 1년 가까이 나는 그 선인과 함께 살았다. 선인과는 만남부터 드라마틱했다. 갈 곳 없는 여행을 계속하고 있던 내가 그 마을을 방문한 것은, 오래된 마을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 관광지였기 때문에 그림도 팔릴 것이라는 예상마저 있었다. 그런데 예전 동네에서 만난 적이 있는 히피 장사꾼들이 가게를 많이 차려놓고 있어서 도저히 그림이 팔릴 분위기가 아니었다.

 

 잠시 머무르는 사이에 얼마 안되는 저축도 없어졌기 때문에 슬슬 그 마을을 나가기로 했다. 그때, 숙소 주인이 변두리 산에 거대한 짚신을 봉납하고 있는 절이 있으니 보고 오라며 권했다.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나는 숙소를 나서서 변두리의 산을 올라갔다. 잠시 산을 오르다 보니 코마치 온천이라고 적힌 화살표가 있어서 잠시 들여다보려고 그 옆길로 들어갔다. 전혀 온천다운 것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산속을 거닐었는데, 저건 분명 누군가의 장난이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가려던 참에 갑자기 눈 앞이 열리며 성벽 같은 돌담이 나타났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광경이지만, 5월이 막 되었을 무렵의 햇살이 비스듬히 비치는 돌담에 자라고 있는 바위취가 반짝반짝 햇빛을 받아 빛나며 하얀 꽃을 돌담에 가득 피우고 있었다. 거기에 갑자기 곰같이 큰 개가 얼굴을 내민 것이다. 들개인가 싶어서 움직이지도 않고 끙끙대고 있었더니 그 후에 배우 히가시노 에이지로 씨 같은 의기양양한 할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서 나에게 "올라오세요."라고 말을 걸었다.

 

 초대받은 대로 돌담 계단을 올라갔더니 그 위에는 오두막이 세워져 있었고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그 아래에는 항아리를 뒤집은 의자와 그루터기 같은 테이블이 있었고 아까의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너는 이런 곳에서 뭐하는 거냐?"라고 물었길래 '그림을 그리면서 여행을 하고 있는데, 돈도 없어졌고 슬슬 마을을 떠날 생각이다'고 설명을 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너는 화가냐? 꽃 그림을 그릴 때 꽃을 얼마나 보냐?"라고 갑자기 물어왔다. 나는 "여행을 하고 있어서 여유가 있기 때문에 꽃을 스케치할 때는 두세 시간은 보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는 "나는 꽃을 볼 때, 가만히 꽃을 봐. 이 꽃은 국화다. 꽃잎은 흰색이다. 꽃잎은 몇 장 있다. 그런 걸 뻔히 바라보고 있으면, 이윽고 내가 꽃에게 보낼 말이 없어질 때가 오지. 그때 꽃 쪽에서 훅 돌아오는 경우가 있어. 그게 진짜 꽃의 모습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어떤가?" 나는 두근두근했다. "나는 그렇게까지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과연 그런 게 있는 걸까요?"라고 대답했지만 내심 이 사람이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선인과의 만남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선인은 네가 괜찮다면 우리 집에 네가 편한 요금으로 묵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이제 청소를 할 생각이니 그 사이에 이 개의 안내를 받아 산 정상에 있는 공원이라도 보고 오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때까지 자고 있던 개가 벌떡 일어나 걸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시키는 대로 그 개를 따라갔고 공원에 도착했다. 산 정상에서의 전망을 잠시 보고 돌아가려고 하자 다시 개가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고, 안내하는 것처럼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개 안내로? 하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게 생각했지만 이 개는 실로 똑똑해서 나를 능숙하게 리드하며 산길을 걸어갔다. 개는 내가 따라가는 길과 다른 길을 내려갔다. 개의치 않고 뒤에 도착하니 산속에 시커먼 문이 나타났다. 개가 제멋대로 열려있는 통용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황급히 말리려고 문을 지나니 앞에 조금 전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네? 여기가 할아버지 집인가요?"하고 물으면 "그렇지 않아."라는 대답.

 

 나중에 차차 알게 되었는데, 이 산에는 광천이 솟아서 그곳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넓은 터에 단독주택이 몇 채 세워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화가나 스님이나 다도가나 잠시 머물러 가는, 그런 숙소였다. 때로는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었던 부인이 도망쳐 오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이곳의 주인으로, 아까 본 굴착 오두막에 살면서 이곳의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지 내의 한 채를 나에게 빌려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은 낼 수 없어요."라고 하자 네가 낼 수 있는 만큼이면 된다고 했다.

 

 결국 나는 이 할아버지의 신기한 매력에 이끌려 이 숙소에 묵게 되었다. 내가 체류하는 동안, 다른 손님을 만난 적이 없는 것도 신기했다. 무엇보다 내가 묵게 해준 방이 산 위에 있었던 점도 있어 아래의 모습은 알 수 없었다. 신기한 이 할아버지는 자신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름도 말하지 않았다. 나이는 몇 살인지 물어봐도 너랑 똑같지 않겠냐며 얼버무렸다. 그런 상태였으므로 나는 선인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선인과 나날을 보내다

 

 아침에 일어나서 산 위에 있는 내 숙소로부터 선인이 사는 오두막으로 내려가서 가끔 같이 식사를 한다. 그런 날들이 시작되었다. 선인과의 생활은 자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선인은 내가 명명한 그 호칭대로 하는 일이 상식을 넘어섰기 때문에 나에게는 뭐든지 재미있었다. 선인과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나는 어느 날 밤, 우연히 물리학자이자 수필가인 나카타니 우키치로의 책에서 번개에 관한 부분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선인에게 갔더니 갑자기 선인이 피뢰침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우연이라고는 해도 깜짝 놀랐다. "지금 세상에서 피뢰침이라고 불리는 것. 나는, 저걸 피뢰침이라 부르는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저건 분명히 천둥을 불러와. 나한테 진정한 의미의 피뢰침을 만들라고 하면, 도쿄 타워의 몇 배 높이로 가파른 걸 지어서 구름 속에 쌓인 전기를 분해할 거야. 그런 걸 피뢰침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어떤가?" 나에게는 대답할 방법이 없지만, 선인이 갑자기 어젯밤 읽고 있던 나카타니 우키치로의 <천둥>과 같은 이야기를 해서 놀랐다.

 

 이런 일도 있었다. 오두막 앞까지 가면 큰 화분에 많은 꽃이 아무렇게나 담겨 있다. "선인, 산에서 꽃을 따왔군요."라고 말하자 "그렇지." "이제 꽃을 살릴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아니, 이미 살리고 있어."라고 말했다. 보기만 해도 쾅 하고 들어간 것들 뿐이라 "이게 살리고 있는 건가요?"라고 묻자 "그렇지. 이게 내 살아있는 꽃이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또 어떤 때는, 선인이 "건축에 대해 내가 생각한 게 있는데"라고 말하기 시작한 적이 있었다.

 

 "어째서 일본의 건축가라는 것들은 건물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진정한 건축이란, 지은 후에 주위에 어떤 경치가 남는지, 그게 가장 중요한 거라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말했다. 내가 "그것은 즉, 그림에 비유하면 그림 주변의 공간을 생각하라는 건가요?"라고 답하자 "뭐, 비슷한 거지."라는 것이 선인의 대답이었다.

 

 다른 날의 일. 나와 선인이 나무 아래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여자가 두 명 산을 올라온 적이 있다. 화장품 판매를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았는데 온천 숙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왔겠지. 선인이 "어서 오세요."라고 응대하자, 한 사람이 "주인은 계신가요?"라고 물었다. 확실히 선인은 평소 농사가 한창인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온천의 주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주인은 없다'고 응한 선인에게 "아, 부재중이신가요?"라며 주변상황을 살피듯 둘러보았다. 선인은 "이곳의 주인은 지구다"라고 대답하며 웃었다. 나는 역시 선인, 재미있는 대응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또 한 명의 여성이 눈치채고 "할아버지가 주인님이셨군요."라며 팔로우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사람이 없는 온천에서 화장품이 팔릴 리도 없고, 두 사람은 그대로 산을 내려갔다. 선인이 왜 나를 저렴한 가격에 묵게 해줬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어슬렁어슬렁 여행을 하고 있는 남자에게 조금 자기 미학을 열어주고 싶어서 였는지도 모르겠고, 혹은 단순히 차를 마실 상대를 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밤, 식사 후에 선인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상담을 제안했다.

 

 '지금, 나에게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는 문제가 있고 거기에 해결책이 두 가지 있다. 다만 그 해결책 중 어느 쪽이 좋은지, 어느 쪽이 나쁜지 좀처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선인의 대답은 "너, 매사에 좋고 나쁜 게 있나? 모든 것이 좋다/나쁘다, 오른쪽/왼쪽, 남/녀, 아(阿)/운(吽)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지. 그걸 한 쪽으로만 생각하고 좋다/나쁘다의 답을 내려고 하면 평생 걸려도 답이 없지 않겠나?" "그런 말을 들으면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잖아요."라고 하자 선인은 "너 말이야, 좋고 나쁨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야. 좋은 것과 나쁜 것은 한 쌍이기 때문에 나눌 수 없어. 오른쪽도 왼쪽도 남자와 여자도 모두 같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당신이 결정할 것. 거기에는 좋고 나쁨도 없어. 당신이 결정했다는 것뿐이야."

 

 후에 애니메이션 제작 현장에 돌아와서도 이때의 선인의 말은 가슴속에 되살아난다. 예를 들어 제작 스튜디오 안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자. 하지만 나는 어느 쪽에도 붙지 않는다.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틀렸다는 전제 하에 서면 절대로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럴 때는, 언뜻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요소가 사실은 둘 다 필요하다 생각하면 전혀 다른 답에 도달할 수 있다. 그것은 논쟁의 당사자들이 내려고 하는 답이 아니다. 하지만 쌍방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 버리는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감독이란 여러 가지 문제를 심판하는 것이 일이기 때문에 특히 이 선인의 말은 깊이 가슴에 박혔다.

 

 자신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는 선인이었지만, 그래도 1년 가까이 있으면 뚝뚝 그 과거가 비쳐지기도 했다. 가을이 되어 나는 감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뒤에서 "어이, 스기이 군."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땅은 마른 잎뿐인데 발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놀란 내가 "발소리도 나지 않아서 선인이 온 걸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이상하네요."라고 말하자 선인은 "나는 지금, 너에게 해를 끼치려던가 그런 기색을 내뿜지 않았어. 그래서 너는 내 기색을 느끼지 못한 거야."라고 말해 예시로 전쟁 중의 체험 이야기가 됐다.

 

 젊은 날의 선인에게는 스승(무슨 스승인지는 말하지 않았다)인 사람이 있었는데, 선인이 출정인사로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스윽 가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윽고 전장에서 선인의 부대는 소련군 진여의 한가운데를 통과해야 한다는 곤경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문득 "스윽 가라"는 스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선인은 자신의 부하들을 모아, 지금부터 소련군 사이를 돌파해야 하는데 발견되지 않도록 스윽 가자고 호소해, 그 말대로 전원이 스윽 통과했다는 것이다.

 

 낌새 이야기와는 별개로 소련군에 붙잡혀 수용소에 들어갔을 때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수용소에는 식량이 부족하다. 그 때문에 굶어 죽어가는 인간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선인은 자신의 부하들을 모아 "공기라는 것은 음식이다"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물을 먹지 않아도 바로 죽지는 않지만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죽는다. 이것은 공기에 인간을 지탱할 만큼의 영양분이 있기 때문이다. 공기만 마시면 목숨은 지킬 수 있다. 이를 믿어라."라고 했다 한다.

 

 이야기로 들으면 엉망진창인 이론이지만, 수용소라는 것은 그렇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장소였을 테고 선인으로서는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선인은 날이 갈수록 그것을 믿을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았고,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야기에 살짝 그런 전쟁 체험을 말하는 것은 있어도 내가 약간 자세하게 묻거나 하면 바로 말을 바꿔버리고 그대로 일절 말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말의 끝마다 선인이 꽤 많은 사람들의 생사를 지켜봐 온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 선인과의 문답에는 언제나 깊이를 느꼈다.

 

 

선인과의 이별

 

 선인과 한동안 살고 있던 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선인에게 떠나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선인은 내가 질문을 던지면 그것에 전부 대답해 준다. 그 대답은 굉장히 명확했지만, 내 안에서는 그걸로 괜찮을까 하는 생각도 생겼다. 애초에 인간이란 선인처럼 정답을 딱 내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선인과 같은 특이한 인생 경험을 가진 사람만이 터득하는 경지가 아닌가. 많은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살지 않는다.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더라도 연속된 번뇌 속에서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고, 인간의 사회라는 것은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인에게 '나는 산을 내려가려고 한다'고 털어놓았다. 그것을 들은 선인은 '슬슬 말할 줄 알았다. 내일 여기를 나가라'고 말했다. 다음날 짐을 싸서 "여러가지로 신세를 졌습니다. 선인과의 모처럼의 만남을 저는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자, 선인은 "나는 잊을 거야."라고 담백하게 말했다. "오래된 것을 남기면 남길수록 새로운 게 들어가지 않아. 그러니까 나와 보낸 날들은 모두 잊어라. 잊음으로써 네 안에 새로운 게 들어올 테니까. 나는 네가 산을 내려갈 때까지 여기서 계속 보고 있을게. 계속 보고 있겠지만, 너의 모습이 사라진 순간에 너에 대해서는 전부 잊어버릴 테니까 너도 잊어라." 마지막까지 멋진 사람이었다.

 

 이윽고 나는 우연한 계기로 방랑여행을 마치게 되는데, 그 몇 년 후에 단 한 번 선인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선인은 '잘 왔다'고 맞아주면서 지금 마을에 미야모토 무사시의 한산습득도가 전시되어 있으니까 보고 오라고 했다. 내가 그만 "정말 무사시가 그렸나요?"라고 말하자 즉시 '그런 건 상관없다'고. 나는 바로 '선인은 무사시가 그렸는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좋은 그림이니까 보고 오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확실히 그 한산습득도는 훌륭했다. 선인은 여전히 선인이었다. 그것이 선인과 만난 마지막이 되었다.

 

 

하루뿐인 '여행'으로의 초대

 

 그러나 지금, 애니메이션 제작 현장으로 돌아와 이렇게 자신의 여행을 되돌아보면, 제멋대로인 방랑여행일 뿐이고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여행은 내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한창 일할 나이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마음도 드는 것이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여행을 한 것으로 나는 가치관도 크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림을 사준 사람, 1박 숙소를 제공해 준 사람, 그리고 선인. 그런 만남을 통해 나는 그때까지의 일상에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가치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만남만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일상에서 멀리 거리를 두었던 나날을 보낸 것도 가치관에 다양한 변화를 낳았다.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어렵다. 분명히 특별한 사건이 있어 가치관이 바뀌는 경우는 있지만, 그것을 스스로 원해서 일으키기는 어렵다. 그런 가운데 여행은 자신의 가치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젊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할 때, 여행이라는 것은 하루라도 좋다는 것을 말한다. 쉬는 날에 전철을 타고 여기다 싶은 모르는 동네에서 내린다. 그리고 휴대폰도 헤드폰 스테레오도 사용하지 않고 그 마을을 빙글빙글 둘러본다.

 

 목적이 없기 때문에 조용히 있는 그대로 볼 수 밖에 없다. 거기에 공원이 있으면 느긋하게 앉아 봐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목적을 가지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것. 그렇게 보내는 하루라는 것은 여행의 하루와 같다. 모르는 마을에서 그저 그 마을의 풍경을 보는 것. 그로 인해 그 하루는 비일상적인 시간이 되어, 여러 가지 발견이나 변화를 가져다 준다. 여행이라는 것은 그것의 연속에 불과하다. 여행의 본질이라는 것은 하루의 여행이라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만약 지금 자신의 일에 무언가 벽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휴일을 이용해 여행을 떠나 보면 좋을 것이다.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조금 바깥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사고방식의 힌트를 찾는 것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포기하고 여행을 떠난 나였지만, 1983년에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돌아왔다. 다만, 내 안에서는 여행이 끝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우연히 다시 일을 시작했다는 것뿐이었고 나는 아직 여행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여행은 아마 평생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다시 돌아왔을 때 나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방법은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아다치 미츠루 작품과의 만남

 

 내가 다시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돌아오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다치 미츠루 선생님 작품과의 만남이었다. 아다치 미츠루 선생님의 원작과 만난 것으로 10년 이상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정서를 느끼게 하는 드라마를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다치 미츠루 씨의 작품과 만난 것은 1982년의 일이다. 여행을 계속하고 있던 나는 그 무렵 교토의 기타야마에 체류하고 있었다. 가끔 나가는 교토 거리의 서점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잡지에 아다치 작품이 게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기로 치면 <미유키>나 <터치>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구체적인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임팩트는 충분히 있었다.

 

 우선, 상당히 상쾌한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읽는 동안 '왜 아다치 선생님은, 젊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말로 표현되지 않는 마음을, 만화라는 정지된 그림밖에 없는 매체로 비비드하게 표현할 수 있지?'라는 의문이 점점 떠올랐다. '그렇다면 애니메이션으로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도 애니메이션을 은퇴한 지 벌써 오래되었다. 뭐, 애니메이션으로부터는 완전히 발을 씻었으니까 하고 정신을 차린 다음 서점을 떠났다.

 

 그 2~3일 후의 일이다. 별로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오사카 덴츠의 오하시 유키치라고 하는 구면인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여행 중에도 나는 아주 가끔 그룹 택의 마에다 군과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마에다 군은 내가 산에 있을 때에 놀러온 적도 있었고, 나도 여행지에서 도쿄에 남겨두고 온 가족의 생활비를 위해 몇 편인가 아르바이트로 <만화 일본 옛날이야기>의 그림 콘티를 도운 적도 있었다. 

 

 마에다 군은 나와 애니메이션 업계와의 좁은 접점이 되어 있어서, 아마 오하시 씨도 마에다 군 쪽의 정보로 나의 연락처를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오하시 씨의 첫마디는 "스기이 씨 교토에 있다면서요?" "네, 우연히 교토에 있어요."라고 대답했더니 뭔가 용건이 있으니 오사카까지 나와달라고 한다. 이쪽은 특별히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권유를 받는 대로 오사카로 나갔다. 그 때 오하시 씨는 <일생 패밀리 스페셜>이라는 애니메이션 특집을 담당하고 있었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게 됐지만, 당시에는 특별 프로그램으로 90분 정도의 애니메이션을 TV 방송하는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었다. 

 

 오하시 씨는 나를 불러 그 <일생 패밀리 스페셜>의 기획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스기이 씨는 모르겠지만, 아다치 미츠루라고 하는 만화가가 있어요. 그의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 생각하고 있어요. 단지, 너무 수수하기 때문에 스기이 씨에게 의견을 듣고 싶어서 오늘 와 달라고 했어요." 나는 놀랐다. 설마 며칠 전에 읽은 아다치 만화의 애니메이션화가 검토되고 있고, 게다가 나에게 상담의 목소리가 들어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오하시 씨, 아다치 만화를 정말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나요? 할 거면 저에게 감독을 시켜주지 않겠어요?" 아다치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하시 씨는 내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해서 놀란 모양이었다. "스기이 씨, 감독 하실 건가요?" "네, 이건 좀 해보고 싶어요. 단지 조건이 있는데, 모든 걸 나에게 맡겨줬으면 좋겠어요." 오하시 씨는 그 자리에서 나의 조건을 받아주었다. 그래서 나는 <나인>을 만들기 위해 그룹 택으로 돌아왔다.

 

<나인>, 1983년 방송. 아다치 미츠루가 1977년부터 1980년에 걸쳐 그린 동명만화의 애니메이션화. 아다치 작품 중에서는, 지금까지의 소녀지에서 소년지로 활동의 축이 바뀌어간 시기의 작품에 해당한다. 세이슈 고등학교 야구부를 무대로 고교생들의 졸업까지의 청춘상을 그린다. 원작의 대화 간 여백을 살린 템포, 억제된 연출은 원작팬으로부터도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시청률도 높아, <나인2 연인선언>(1983년) <나인 완결편>(1984년)으로 속편이 제작됐고, 최종적으로 원작의 모든 에피소드가 애니메이션화 됐다.

 

 그때 내 머릿속에 있었던 것은, 아다치 선생님이 그리고 있는 감정을 영상으로 그릴 수 있는지 그것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시도된다면, 다시 여행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여행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첫 번째 <나인>을 완성한 후에 나는 곧바로 여행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행히 이 <나인>은 호평을 받으며 팬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두 번째 기획이 바로 세워졌다. 이렇게 되면 이쪽도 첫 번째에서 잘 하지 못했던 것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두 번째 이야기가 나오면 역시 감독해 보고 싶다. 그러다 <나인2 연인선언> <나인 완결편> 연속으로 세 편을 감독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제1작은 아다치 선생님의 원작에 다가가려고 열심히 만든 느낌이 난다. 한편, 두 번쨰 작품 <연인선언>은 조금 정서를 드라마틱하게 너무 높여 버렸다. 영화적이기는 하지만, 억제가 잘 된 아다치 선생님의 세계로서는 조금 발을 내디뎌 버렸나 하는 반성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역시, 연출적으로 가장 세련된 것은 <완결편>일 것이다. 그렇게 세 작품을 연출해 보니 애니메이션이라는 미디어에서도 아다치 씨의 세계를 제대로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체험은 나에게 있어서는 매우 큰 사건이었다. 나는 글이 아닌, 내면을 느끼게 하는 캐릭터로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애니메이션이 움직임에 따라 설명적으로 그려져야 한다는 생각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외형의 움직임이 아니라 마음의 움직임이다. 마음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만화 컷 분할을 구사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표현한다. 그때야말로 캐릭터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고, 거기에 감정이 생기고 드라마를 그릴 수 있다.

 

 아다치 세계를 하게 됨으로써 '애니메이션에서도 내면을 그리는 것이 가능하구나' 하는 감촉을 얻을 수 있었다. 

 

 

아다치 작품의 매력은 긴장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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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다치 선생님 작품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 중 하나가 그 세련된 말투에 있는 것은 틀림없다.  아다치 선생님은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를 자주 소재로 선택하지만, 지금까지의 스포츠물과는 그 그리는 방법으로 선을 그었다. 이른바 열혈이라는 요소는 매우 얕아서, 예를 들어 홈런으로 점수를 얻는 순간조차 대부분의 경우 정말 황당한 유머를 느끼게 하는 식으로 그린다. 그럴 때의 아다치 만화는 정말 멋스럽다. 그리고 그 말투는, 드라마 부분에서는 곧바로 날카로움을 더한다. 아다치 씨의 만화는 그 말투 때문에 긴장감이 있어, 그 긴장감이 빠져버리면 아다치 작품은 아다치 작품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아다치 작품은 항상 몇 안 되는 대사와 몇 안 되는 샷의 축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짜여진 대사와 샷이니까 거기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으로 할 때, 아무것도 없는 일상의 정경이라 생각하고 연출하면, 감정은 전해지지 않는다. 캐릭터가 중얼거리는 '헉'이라는 한 마디 뒤에 있는 긴장감을 어떻게 그릴 수 있는지, 그것이 승부다. <나인>에 이어 <터치>를 총감독으로 연출했을 때 각본가에게 요구한 것도 그 긴장감이었다. 리테이크를 낼 때 "네 대사에는 긴장감이 없어"라고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것은 아다치 만화가 영화적이라는 것이기도 하다. 애초에 영화라는 표현은 상영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내에 모든 것을 응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요점이 있다. 그래서 대사는 날카롭고 긴장감이 거기에 생긴다. 설령 수다스러운 대사가 있다 해도, 거기에는 일부러 수다를 떨기만 하는 이유가 있다. 그저 왠지 모르게 긴장감 없는 말이 흘러나오는 것만으로는 영화의 대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작은 외침 하나라도 '앗'인지 '어'인지 '오'인지. 그런 음미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긴장감은 나오지 않는다.

 

 <나인>에서 그러한 아다치 작품의 감각을 파악한 내가 다음으로 감독하게 된 것이 같은 아다치 작품인 <터치>였다.

 

<터치>, 1985년 방송. 1981년부터 연재되고 있던 아다치 미츠루의 원작을 애니메이션화했다. 쌍둥이 형제인 우에스기 타츠야・카즈야와 소꿉친구 아사쿠라 미나미의 은은한 삼각관계와 고교야구가 얽힌 이야기. 도중에 카즈야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미나미를 고시엔에 데려간다'는 약속을 타츠야가 이어받게 된다. 애니메이터인 마에다 미노루, 애니메이션 감독인 마에다 츠네오 등 <나인>과 공통되는 스태프도 많다. 최고 시청률이 30%를 넘는 등 대히트작이 됐다.

 

 

 

 

<터치>에서는 <나인>에서 실험적으로 채택한 수법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 중 하나가 매우 느린 카메라 이동이다. 예를 들어 타츠야의 업이 있다. 타츠야가 말을 해도 아다치 선생님의 대사이기 때문에 매우 응축되어 있고 짧다. 그 때에 카메라를 천천히 옆으로 이동시키면서 타츠야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동속도는 한 컷당 0.125mm. 1초에 3mm라고 하는, 당시의 애니메이션용 촬영대에서 가장 느린 속도다. 

 

 더 이상 못할 정도로 느린 속도로 가만히 카메라를 움직이면, 거기에 타츠야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드러난다. 캐릭터는 아무 것도 연기를 하지 않아도 카메라의 움직임만으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느린 카메라의 이동은 이제 애니메이션 업계 전체에 퍼져, 속칭 じわPAN이라고 불리며 활용되고 있다. 또 하나 <나인>으로 도전해서 <터치>에 채용한 것이 白飛ばし다. 이는 곧 배경을 화면 전부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주요한 요소만 그리고 그 이외를 노출 오버한 듯한 분위기로 하얗게 그려버리는 방법이다.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은 그림이기 때문에 화면의 구석구석까지 그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필요한 것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그 대신 주위의 잡다한 정보를 배제해 나가면 눈은 자연스럽게 필요한 곳으로 유도된다. 덧셈이 아닌 뺄셈에 의해 정보량을 컨트롤함으로써, 마음에 호소하는 화면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터치>는 <나인>과 비교해도 매우 드라마성이 강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과 궁합이 좋은 작품이었다.

 

 <나인>이나 <터치>는 아다치 작품의 세계관, 매력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려 했지만 원작을 꼭 닮으려고 한 것은 아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그 표현기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단순히 만화를 따라가려고 하면 영상작품으로서 힘이 없는 작품이 되어 버린다. 원작 그대로를 따라가려는 실패 중 하나가, 만화의 컷 분할에 얽매여 버리는 것이다. 만화를 읽다보면 컷 분할에 의해 이미 컷이 분할된 것처럼 착각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컷 분할은 어디까지나 만화의 연출 수단. 컷 분할 순서 같은 것도 독자가 자신의 페이스로 읽는 것을 상정하여 그려져 있다.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할 경우에는, 이 만화가 컷 분할을 통해 전하는 것을 영상언어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나의 지론이지만, 영상이라고 하는 것은 전달 기능을 가진다고 하는 의미에서도 언어와 비슷하다. 같은 영상이라도 사용법에 따라 그것이 가지는 의미성이라는 것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멈춰 있는 그림. 이것만 보면 멈춰있는 그림을 뿐인데 사용법에 따라 보고 있는 쪽은 움직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드라마 속 아톰이 악당에게 궁지에 몰렸다고 하자. 거기에 정지그림으로 아톰을 업하는 장면이 들어가도 아이들은 아톰이 멈춰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멈춰 있는 그림은 멈춰 있을 뿐이라는 것은 단순한 기술론. 그것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 것을 상정해 그리는 것으로 전하고 싶은 언어가 된다. 물론, 모든 것이 멈춰버리면 그것은 종이연극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표면적인 캐릭터의 움직임이 아닌 내면의 움직임을 느끼게 하는 그림을 구성해 나갈까? 그것이야말로 애니메이션의 연출이라는 것이다.

 

 じわPAN이나 배경의 白飛ばし은 모두 그것을 위한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덧붙여서, 자주 그 이유를 묻는데, 애니메이션 <터치>의 만화판과의 차이도 애니메이션만의 연출과 무관하지 않다. 가장 큰 차이는, 만화판에서는 타츠야가 미나미와 얼굴을 맞대로 고백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고시엔에 있는 타츠야가 전화로 도쿄의 미나미에게 고백을 한다.

 

 이것은 원작의 라스트가 아다치 선생님이 당초 생각했던 것과 다른 형태가 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아다치 선생님이 생각하고 있던 당초의 아이디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단지 아이디어만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아다치 씨의 드라마 속의 긴장감을 만드는 방법, 그리고 영상언어의 사용법을 생각하면 얼굴을 보지 않고 고백한다고 하는 상황이 영상으로서 보는 클라이맥스에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야자와 겐지의 애니메이션화라는 난제에 도전하다

 

 <나인> <터치>를 제작해 나가는 것과 병행하여 다른 기획도 부상하고 있었다. 그것이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이었다. 그룹 택의 사장 타시로 씨는 <은하철도의 밤>의 기획에 매우 고집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여행을 떠났을 때도, 한 번은 상담이라고 하며 일부러 기획을 가져온 적이 있었다. 다만 그때는, 나는 도저히 애니메이션으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시원하게 거절했다. 

 

 어째서 <은하철도의 밤>은 애니메이션화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미야자와 겐지는 퇴고를 거듭해, 구체적인 세부를 추상화해 가는 것으로 조반니나 캄파넬라라고 하는 캐릭터에 어떤 종류의 의미를 주고 있다. 추상적인 존재로서 문장으로 쓰여져 있는 캐릭터인 이상, 어떤 얼굴을 그려도 원작과는 달라져 버린다. 구체적인 얼굴을 주면 안 되는 것이 <은하철도의 밤>의 조반니인 것이다. 그 부분을 잘못 보면 <은하철도의 밤>이라는 영화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이 작품은 영화로 만들지 않는 편이 좋다.

 

 그것이 그때의 나의 결론이었다. 그런데 타시로 씨는 다시, 이 어려운 <은하철도의 밤>이라는 기획을 나에게 가져왔다는 것이다. 마스무라 히로시 씨가 고양이 캐릭터를 사용해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만들었다고 말하며 마스무라판의 <은하철도의 밤>을 보여주었다. 고양이로 <은하철도의 밤>을 만든다. 여기에는 허를 찔린 기분이 들었다. 고양이라면, 인간의 얼굴이 아니기 때문에 원작이 가진 추상성을 깨뜨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영화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생겼다.

 

 그래서 나는 <은하철도의 밤>을 애니메이션 영화화하는 일을 맡기로 했다. 그 당시에 나는 스태프들을 위해 이런 메모를 썼다. 기획의 시작에 있어서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보겠다.

 

 

고양이극단 <은하철도의 밤>

-연출 스케치

 

 1985년 여름,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을 영화로서 공연해 보자는 기획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치바의 카와마라는 곳에 마스무라 히로시라는 사람이 있고 고양이 배우를 많이 키우고 있다 들었다. 그래서 그 고양이 배우를 빌려 '고양이극단'을 결성한 다음, 그 '고양이극단'에 의한 <은하철도의 밤>이라는 연극을 상연해 보기로 했다. 애초에 <은하~>는 어려운 테마가 내재된 작품이지만, 그 어려움을 감싸는 아름다운 환상세계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기는 명작으로, 그 환상세계를 '고양이극단'이 연기함으로써 신기한 판타지 세계가 전개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고양이극단'에 의한 <은하철도의 밤>에 기대하는 바이다.

 

 마스무라 히로시의 고양이들은 <아타고올 이야기>나 몇몇 연극을 연기하고 있다. 그러한 극세계 속에서는 고양이들은(고양이 외에도 인간배우나 정체불명의 배우가 있지만) 사실 기묘한 자유를 발휘하고 있다. 상당한 배우들이 있다. 그렇지만, 이 고양이들에게 <은하~>의, 그 암시적인 극을 어떻게 연기시키면 좋을지 현재로서는 명료한 이미지가 알려져 있지는 않다. 일단, 고양이 배우들이 스튜디오에 나오게 한 다음 줄줄이 서서 봐달라고 한다. 

 

 각자가 꽤 버릇이 있는 배우들이 많기 때문에, 이쪽이 역할을 맡기면 마음대로 연기해 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주역인 조반니 역에 대해서는 조금 주문이 있다. 이 작품은 조반니가 '별축제'의 밤에 경험한 것으로, 그것도 강에서 오이과 식물이 떠내려간다. 기껏해야 8시인가 9시쯤까지, 1시간도 안 되는 이야기. 이 사이에 극은 조반니의 생활을 그리고, 그 내면에 파고든다. 이 밤, 캄파넬라라는 소년의 수사라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조반니는 이 일을 통해 자아를 해방시킨다는 매우 내면적인 연극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조반니의 내면 변화가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이 극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조반니에는 버릇이 강한 고양이 배우를 기용하고 싶다. 이 작품의 성공의 열쇠는 조반니가 잡고 있기 때문에 차분히 오디션을 한 후, 더 나아가 조반니 역을 만들어 주고 싶다. 왠지 몸집이 작고, 소년에 비해 어른스러운, 빈약한 풍모에 눈만 섬세하게 반응하는 듯한 소년을 이미지하고 있다. <은하~>에서는 이 조반니의 내면세계를 '환상4차'라는 형태의 파노라마로 볼 수 있는 장면이 극의 주요 무대가 된다.

 

 여기서 조반니는 자신의 일상을 둘러싼, 아니 둘러쌌던 다양한 인간이나 사물들을 비일상생활 속에서 다시 한 번 만난다. 여기서 조반니가 알게 되는 것은 일상의 시간 속에서는 의식된 적이 없었던 그러한 것들과 자신의 관계이다. 거기에는 캄파넬라가 등장하고 만난 적이 없는 카오루라는 소녀까지 등장한다. 환상4차여행에서 조반니는 자아의 진정한 존재를 알게 된다. 말로 써버리면 이 극의 내용은 어려워진다. 하지만 파노라마화의 목적은 이러한 것들을 시각적으로 음악적으로 그려 관객의 감성에 부응하는 데 있다. 어렵게 그려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무대이지만, 극의 주축이 조반니라는 한 소년의 내면극이라는 수수한 구성으로 이야기되어 간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간(이 작품에서는 조반니라고 하는 고양이가 연기한다)의 내면이라는 것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고 그 깊이가 광활한 것인지를 이 작품에서 보여준다. 이것이 이 작품의 무대 세계의 주제이다. 자, 이 이미지를 '고양이극단'이 연기하는 무대로 되돌려 보자. 이 극의 주연은 조반니라고 하는 고양이 배우이다. 왜 고양이냐라기보다, '고양이극단'이라고 하는 기묘한 배우들에게 이 <은하~>의 극을 연기시킨다는 '연극'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물론 원본(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은 인간의 이야기이고, 이 '고양이극단'이 연기하는 극도 당연히 인간의 드라마인 것에는 틀림이 없다. 즉 '연극'으로서의 표현이라고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고양이극단'이 연기하는 것으로 자아낼 수 있는 신기한 분위기를 작품에 살리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고양이극단'과 '고양이'를 구분하고 있는 것은, '고양이극단'이라고 해도 고양이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인 것을 설명해 두고 싶다. 마스무라 히로시라는 사람은 고양이 배우 외에도 '고양이 같은 사람'인 배우도 먹고 살게 하고 있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고양이도, 그러한 사람도 변함없는 '배우'인 것 같다.

 

 그러니까, 고양이 배우를 모아달라고 부탁하면 다른 배우도 아랑곳하지 않고 섞어서 보내줄 거다. 그래서 개의치 않고 '고양이극단'이라고 묶어서 다루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연극에는 고양이 배우도 인간 배우도 상관없이 섞여 등장한다. 그것에 구애받지 말고 '고양이극단'의 연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야기는 조금 빗나갔지만, 이 기묘한 배우들이 극을 연기하는 무대는 상당한 장치를 필요로 한다. 즉 기묘한 배우들이 기묘하게 비춰져 버리면 연극이 되지 않는 셈이니 나름의 현장감을 느끼게 하고 싶다.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가라앉는 세계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또, 그 무대 세계 자체도 기묘한 신기함이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무대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이 작품은 생활극이 아니다. 조반니라는 인물의 내면을 파노라마화함으로써, 이 한 소년의 정신적 변화를 볼 수 있다는 극세계이며, 이를 통해 동화세계인 부분에 무대를 고집하고 싶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로, 이 '고양이극단'에 의한 <은하~> 세계의 환상을 관객과 함께 공명하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 이 작품에서 음악이 완수하는 정서에 의한 전달은 중요하다. 

 

 이상, 현재의 거친 연출 스케치를 나열해 보았는데, 이후 조금 구체적으로 등장인물들의 성격 설정이나 무대 색조의 문제, 장면의 처리 등에 대해 스케치해 보고 싶다. 이 '연출 스케치'의 포인트는 내가 <은하철도의 밤>을 '고양이극단'에 의한 연극이라고 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화면에 비치는 것은 리얼리즘과는 다른 '연극의 세계'라고 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조금 전에 적은 캐릭터의 추상성과 깊게 결부되어 있다. 캐릭터가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조반니라 해도 조반니와 같은 소년의 삶의 모습은 볼 수 없다. 

 

 

 

 

 관객은 고양이라는 가면 너머에서 그 존재를 느낄 뿐이다. 그에 따라 원작에서 그려졌던 캐릭터의 추상성은 지켜지게 된다. '고양이극단'에 의한 연극은 캐릭터의 추상성을 지키면서 느낌을 주기 위한 필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양이라는 가면극에서 표현하는 것은 조반니의 마음의 움직임이다. 고양이 가면은 그다지 표정이 풍부하게 움직이는 일은 없다. 그저 가만히 이쪽을 그 인상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그러니까, 거기에 감정을 느끼게 하려면 그것은 카메라를 움직이거나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은하철도의 밤>을 감독하는 것에 있어서 애니메이션으로서 매력적이라고 하는 것 이상으로 영화로서 영상언어에 의해 이야기되는 작품으로서 미야자와 겐지에게 다가가려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은 <나인>에서 반응을 느낀, 내면을 느끼게 하는 캐릭터 그리는 방법을 발전시키면 미야자와 겐지가 가진 정서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미야자와 겐지가 탄식한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고 하는 깊이까지도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모든 동기였다.

 

 의인화된 고양이를 캐릭터로 사용한다고 해서 미야자와 겐지를 어린이용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자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미야자와 겐지라는 작가를 다룬다면 '동화' 같은 그림 해설을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겐지의 세계를,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것만이 테마였다. 결과적으로 <은하철도의 밤>은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돌아가게 되었다. '고양이극단'은 이번 <구스코부도리의 전기(부도리의 꿈)>에서도 건재하다.

 

 이렇게 돌이켜보면, 내가 다시 애니메이션 일을 하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다치 선생님과 미야자와 겐지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목표였던, 애니메이션으로 인간 내면의 정서를 그려내는 것. 아다치 선생님은 만화를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는 힌트를 주었다. 그리고 미야자와 겐지는, 아다치 원작의 애니메이션화로 획득한 방법론을 더욱 발전시켜, 이른바 애니메이션의 틀을 넘어선 영화표현의 높이를 요구하는 기회를 주었다. 이 두 사람의 작품과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 여행의 하늘에서 오니 아이의 그림을 팔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45살이 되어서야 겨우 20대 때 꿈꾸던 표현에 도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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