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살구 - 간단 후기
KAFA 졸업작품이었나 봅니다. 과거에 비하자면 정말 졸업 작품 수준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조명, 미술, 제반 작업, 씬의 구성이나 활용 등에서 일반적인 상업 영화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 영화였어요. 물론 이 영화에 대한 주목도나 상업성, 영화적 성취도나 예술적인 부분 등에 대한 결론에 다다르면 분명 관객에게서는 다른 답이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좋게 표현해서 '일반적인 드라마트루기를 따르지 않은 측면이 강하고, 뒤집어 말하면 감독이 하고자 하는 바를 영화에서 뚝심 있게 해냈다.'라고 평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영화는 아파트를 매개 변수로 두고, 여기에 대입한 인물들 즉 가족이었거나 가족이거나 가족이 되려는 사람들의 분화를 담았습니다. 즉 현실 세태에 대한 직관과 이를 장만민 감독 식으로 풀어낸 부조리극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주인공 정서는 비정규직입니다. 낮에는 디자이너로 상업적인 포스터나 팸플릿 등을 만들지만, 언제나 웹툰 작가를 꿈꾸며 뱀파이어 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는 경현이라는 애인이 있습니다. 사내 정규직으로 서로 연애 사실을 비밀로 하고 삽니다. 이 둘에게, 덜컥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 닥칩니다. 바로 서울 중심부에 있는 아파트 당첨이 그것입니다. 계약금만 1억4천만 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생애 최초 공급으로 당첨된 아파트도 놓치고 싶지 않을 뿐더러 아파트가 없으면 날아갈 것 같은 사랑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결국 정서는 어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린 아버지의 트럼펫을 건네며 거기에 적힌 차용증으로 돈을 받아내 쓰라고 합니다. 영화는 이렇게 심화합니다.
아파트!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어떤 의미일까요? 매개 변수를 조금 넓혀 집이라는 상징은 한국인에게 어떻게 행동을 분화하게 만들까요?
이 아파트를 청약하기 위해 벌어지는 일들이, 영화의 핵심이자 주제이고 소재입니다. 정서는 아버지 영주와 가짜 동생이라고 부르는 정해, 그리고 아줌마라고 부르는 아버지의 새 아내가 있는 묵호로 내려갑니다. 아파트라는 매개 변수가 만든 분화한 그래프를 인생의 지표라고 한다면, 정서의 상황은 이 아파트로 인해 급격하게 변화하고 맙니다.
돈 앞에서 매정하게도 변하고, 아버지의 정을 느끼는 동시에 부조화 역시 알고 맙니다. 더욱이 진심으로 동생을 대하던 상황에서 아주 쉽게 자신을 배신하던 동생의 모습에서 가족과 해체라는 격리 역시 마주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장만민 감독은 가급적 깊이 있게 들어가기보다 해학적으로 연출하려 듭니다. 이게 다가올 때도 있고 관객과 괴리할 때도 있습니다.
결국 정서는, 아파트의 노예가 될까요? 아니라면!
영화를 본 관객 상당수는 아마 당황하거나, 공감하거나,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하는 감정적인 동요를 느끼리라 봅니다. 이는 호불호와 달리 너무나 한국인에게 밀접한 정서를 들이민 주제이자 소재 때문입니다. 다만 주인공 정서의 모습을 100퍼센트 공감하거나 동조 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도 생길 겁니다.
우리는 인간이잖아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주인공 정서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거나 느꼈다면 그것으로 이 영화는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객석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영화적 만듦새 또한 추레하지 않아서 그것 그대로 만족하고 나온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