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gate (1980) 갸우뚱. 스포일러 있음.
헤븐스 게이트는 범작이다.
4시간 가량 되는 영화인데, 영화가 아주 작다.
이 영화는 길기만 했지, 주인공 크리스와 여주인공 엘라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크리스토퍼 월켄의
삼각관계를 주로 다룬다. 다양한 인물들을 다룬 것도 아니고,
사회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것도 아니고, 등장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아니다.
작은 이야기를 길게 길게 늘여서 보여주느라, 영화가 긴 것이다.
이 영화는 두 시간 정도가 적당하다. 이 영화가 할 이야기는 그 정도가 다다.
가령, 영화 처음 주인공이 하버드대학을 졸업하는 장면은 30분 가량 될 정도로 길다.
엄청난 인원을 고용해서 하버드대학 졸업장면을 큰 스케일로 그려낸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 장면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장면이다. 그로부터 20년 뒤 벌어지는 일들이 본론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장면을 위해 엄청난 인원을 고용해서 큰 돈 들여 거창한 장면을 30분이나 찍은 것이다. 이런 장면들이 영화내내 반복된다. 그래서, 영화 상영시간이 긴 데도 별 하는 이야기는 없는 것이다. (이 장면 찍으려고 큰 비용 들여 하버드대학에서 나무를 뽑아 공수해다가 찍었다고 한다. 이것은 완벽주의라고 할 수도 없는 어리석은 짓이다.)
반대로, 주인공들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개성이 흐릿하게 좀 평면적으로 그려졌다. 시간을 들여 그들을 세세하게 보여주는데도, 이상하게 그들의 개성이 또렷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이클 치미노감독의 연출은 평범 그 이상을 줄 수 없다.
이 영화의 소재는, 1800년대, 부유한 권력자 목장주들이
소작농 빈민들을 자기 마음대로 학살하고, 정치권력은 목장주들에게 법적 제도적 뒷받침을 해주고
군대까지 파견하여 도와주었던 실화다. 미국역사 최고의 암흑같은 사건이다.
이것을 영화화할 생각을 하였다는 점에서
마이클 치미노감독은 용감하고 깨어있었다고 할 것이다.
크리스는 동부명문집안 아들이다. 서부 와이오밍에 와서 보안관을 한다.
그는 서부영화에 전형적으로 나오는 초인적인 총솜씨를 가진 사람이다. (실제 역사를 보여준다고 하면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초인총잡이가 주인공이다!)
그는 교수형 당할 뻔한 창녀를 구해주었는데, 나중에 이 여자와 내연관계를 맺는다.
와이오밍은 동부명문집안 사람들이 와서 자리를 잡고 대목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끼리끼리 사교를 하고
폐쇄적인 집단을 이룬다. 그런데, 이런 철옹성같은 성에 자꾸 빈민들이 들어온다.
(주로 동유럽에서 와서 이상한 천쪼가리들을 입고 머리에 걸치고 영어도 못한다.)
빈민들은 척박한 땅을 사서, 소나 말도 없기 때문에 손으로 밭을 간다. 먹을 것이 없어 쫄쫄 굶다가
목장주들의 소를 훔쳐 잡아먹는다. 목장주들은 모여서 본때를 보여주자고 한다.
소를 훔친 빈민들을 본보기로 죽이자는 것이다. 주지사와도 다 이야기가 되어 있다. "우리가 바로 법이다"라고
이야기들을 한다. 그런데, 죽이자고 하는 빈민의 숫자가 125명이다! 학살 수준이다.
하지만 목장주들은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둑 아니면 아나키스트들이기 때문에 죽여도 무방하다 하는
생각을 제멋대로 한다.
총잡이도 고용하고, 목장주들이 떼를 지어 빈민들이 모여 만든 존슨 카운티로 몰려간다.
주지사의 명령을 받고 군대들도 근처에서 주둔하고 있다. 곧 출동할 기세다.
목장주들과 총잡이들은 존슨 카운티를 완전히 초토화시킬 작정이다. 존슨 카운티의 빈민들은 대개가
상점점원들 노동자들 이런 사람들이다. 총을 쏘아본 적 없다. 하지만, 처음에는 사색이 되어 떨기만 하다가
결국 총을 잡고 일어선다. 가만 앉아있어봐야 살해당한다. 목장주들은 125명 리스트에 안 드는 사람들도 다 죽인다. 빈민들의 공포는 분노로 바뀐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총을 들고 마차를 타고 목장주들이 주둔한 곳으로 몰려가자
군대수준이 된다. 빈민들과 목장주들이 충돌하자 완전 내전 수준이다.
이들이 벌이는 전쟁을 재현하는데, 그 규모가 상당하다. 와일드 번치에 나오는 전투장면도 연상시키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 나오는 총살 장면도 연상시킨다. 즉, 개성적인 자기만의 무엇인가가 없다.
어디서 본 장면들이다.
샘 페킨파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하지만, 마이클 치미노감독의 액션연출은
샘 페킨파의 액션연출만 못하다.
빈민들은 총을 쏘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아무리 쏴대도 목장주들에게 맞지 않는다.
보안관 크리스가 가담하여 전투를 벌이자, 목장주들이 죽어가기 시작하지만, 빈민들에게는 운명이 이미 정해진 전투다.
마을사람들의 몰살로 전쟁은 끝난다. 살아남은 사람조차 절망하여 자살한다.
이 전투장면이 이 영화의 유일한 일급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딱히 다른 영화들을 능가하는 임팩트나 대가적인 걸작 퀄리티는 없는 것 같다.
이 정도는, 아니 그 이상을 보여준 영화들이 이미 존재하니까.
그런데, 목장주들은, 빈민들을 죽이면서도 크리스는 살려준다. 같은 동부명문출신이기 때문이다.
동부명문출신들의 이마에는 "빈민과 다른 종족임"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군대는 빈민들에 동정하면서도 주지사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래서, 목장주들에게 가담한다.
목장주들은 이렇게 해서 자기들의 낙원에서 빈민들을 제거해 버린다.
정부와 군대가 그들을 위해 빈민들을 몰살시키는 데 협력한다. 법도 정치권력도 이들을 위해 조직되고 운영된다.
빈민들은 도둑 아니면 사회전복세력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죽어서도 비난을 받는다. 죽어도 싸다는 것이다.
목장주들의 이런 권력은 세습된다. 목장주는 "우리 할아버지는 대통령 비서, 삼촌은 뉴욕주 주지사였다"하고 빈민들에게 말한다. 그의 특권과 권력은 조상 대대로 물려내려온 것이다.
미국이 이런 곳이라고 마이클 치미노 감독은 폭로한다.
흥행에 실패한 이유가 있다. 미국을 아무리 까도 이정도로 깐 영화는 없었다.
자유와 기회와 평등의 나라라고 자부하는 미국을 이렇게 불평등한 계급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안 그런 척해도, 자유와 민주주의조국 미국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 끝까지 솟아 가슴 속에 담겨 있는 사람들이
미국사람들이다. 이 영화, 못 보아넘긴다.
영화 후반부가 아주 강렬하다. 빈민들 중 중심인물들이 하나하나 비참하게 죽어가는 장면이 잔인하게 나온다.
빈민들과 목장주들 간에 전쟁이 일어나는 장면도 아주 긴박감 넘치면서도 잔혹하게 묘사되었다.
주제의식도 선명하게 보여진다. 이 영화가 걸작이라고 일컬어진다면, 이 후반부 때문이다.
나는 걸작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가 흠결이 너무 많다.
** 마이클 치미노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것자체는 용기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흥행이 암울한 영화를 만든다면 최소한 엄청난 돈을 여기 쏟아부어서는 안되었다. 그것도 남의 돈을......
거기에다가 이 영화의 스타일 자체가 아메리칸 뉴웨이브시네마 스타일이다. 유려하거나 보기 쾌적인 영화가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보기 괴로운 영화 스타일이 이거다. 1967년부터 시작한 것이고 1980년대 초반 끝난 것이니, 그때 이미 낡기 시작한 스타일이다. 거대한 자본을 들여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니, 그저 암울할 뿐이다. 마이클 치미노감독이 망한 것은 자업자득이다. **
** 이 영화도 실제 사건을 좀 줄여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 살해당한 빈민들의 수는 수백명이 아니라 삼만명이라고 한다. 이것은 뭐 홀로코스트 수준인가? 이런 사건이 미국역사에 존재한다는 것을 아직도 금기시한다고 한다.
이 사건은 원래 이 사건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기록한 사람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고 하는데,
그는 워싱턴대학교 초대총장이었던 저명인사였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이후 왕따당해서 시골 농장으로 쫓겨가서 거기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영화에도 이 사람이 나온다. 숨어서 뭔가 필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자꾸 나오는데, 바로 이 사람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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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지못한 영화입니다. 언젠가는 도전을.
예술혼이 아무리 불타올라도 재주가 받쳐주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