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멜번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 #2

1. I Saw the TV Glow

영화는 1996년부터 시작됩니다. 별다른 친구도 없이 아동 모험물 TV쇼 'The Pink Opaque'의 열렬한 팬으로 지내던 소년 오웬은 이 프로의 에피소드 가이드북을 보던 매디를 눈여겨 보고는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평생을 이어지는 둘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영화는 호러의 음산함을 가지고 왔지만 사실 내용을 보면 드라마입니다. 키덜트가 자라 어른이 되면서 어릴적 가졌던 꿈과 환상을 모두 포기한채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야 하는 그런 감성을 이해하신다면 이 영화가 말하려는 바를 잘 이해하실수 있을듯 합니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는 그때의 빛나는 꿈과 환상이 존재하지만 생존을 위해 마음 한쪽 구석에 묻고 살아가야하는 슬픈 어른의 이야기로, 보고 나면 웬지 모를 먹먹함과 슬픔이 차오르게 되는 영화입니다.

2. All We Imagine As Light

올해 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인도영화로는 30년만에 칸 본상 수상이라는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영화입니다. 프라바와 아누는 뭄바이의 같은 병원에서 일하고 같은 아파트에서 사는 직장동료입니다만 둘의 생활 방식은 정반대입니다. 부모가 정해준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고 남편은 얼마 후 바로 독일로 돈벌러 가버려서 연락조차 잘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리는 전형적인 전통적인 여인상을 대변하는 프라바, 자유롭게 소비하고 연애하며 전통적인 관습을 강요하는 부모와 부딪치는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아누, 이 두사람은 때로는 서로를 도와주고 때로는 충돌도 하면서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인도 대도시 중산층, 하류층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 양식을 엿볼수 있는 꽤 흥미로운 영화였네요.

3. Grand Tour

올해 칸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인데, 영화는 1900년대 초 런던에서 결혼을 앞두었던 커플 에드워드와 몰리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에드워드는 결혼 직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약혼녀를 피해 동남아 여러 나라들로 도망다니고 이런 에드워드를 몰리는 쫓아갑니다. 영화의 절반은 에드워드의 이야기로, 나머지 절반은 몰리의 이야기로 채워지는데, 이 영화가 재미있는 점은 픽션으로 촬영한 화면과 당시 기록필름들과 교묘히 합성해서 마치 영화가 그때의 동남아 국가들을 여행하는것처럼 관객들이 느껴지게 만든다는 점인데, 그런 면에서 'Grand Tour'라는 제목은 주인공들의 여정 뿐만 아니라 여행을 보는 관객들도 이렇게 1900년대의 동남아를 관광하는듯한 느낌을 준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영화가 주는 독특한 경험 이라는 측면에서 꽤 인상적인 영화네요...ㅎㅎ

4. Dying

올해 베를린 영화제 각본상과 독일 필름 어워드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금이 가서 붕괴 직전인 루니스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70대 후반인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있고, 어머니는 당뇨와 각종 질환을 달고 있는데다가 남편의 뒷수발에 점점 지쳐가는 상황입니다. 아들인 톰은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신경질적인 동료와 함께 새 공연을 성공으로 이끌어야 하고 그와 함께 전여친과 그녀의 새 아이, 전여친의 새남친에 현여친 등등 꼬인 인간관계와 일 때문에 엄청나게 스트레스 받는 중이죠. 딸인 엘렌은 알콜중독의 간호사로 유부남과 불륜중입니다. 이 영화는 가족의 이야기를 조용히 따라가면서 어떻게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가를 이야기 합니다. 이야기가 워낙 탄탄해서 3시간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가 않는데, 올해 본 영화중에 가장 탄탄한 드라마를 가진 영화가 아닌가 싶었네요. 연극적인 스타일의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가진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은 놓치면 안될 영화라 보네요. 

독일에서 활동중인 첼리스트 박새롬씨가 이 영화에서도 첼리스트로 꽤 비중있는 조연으로 괜찮은 연기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