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호러 No.42] 자유와 해방의 상징 ‘마녀’ - 더 위치
더 위치 (2015)
자유와 해방의 상징 ‘마녀’
2015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더 위치>는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17세기 뉴잉글랜드를 배경으로 종교적 광신과 가족의 붕괴, 그리고 미지의 자연에 대한 공포를 섬세하게 다루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신앙의 문제로 공동체에서 추방된 윌리엄과 그의 가족이 외딴 벌판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시작됩니다. 그러던 중 막내아들이 의문스럽게 실종되면서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은 무너져 내립니다. 의심과 공포가 가족을 갉아먹는 가운데, 장녀 토마신은 점점 더 혼란에 빠지고, 가족들이 서로를 불신하기 시작하면서, 숲속에 도사린 마녀의 존재에 대한 공포는 절정에 이릅니다.
<더 위치>의 독특한 매력은 전통적인 호러 영화의 공식을 과감히 탈피한 대신 심리적 공포와 불안감에 초점을 맞춘 데 있습니다. 에거스 감독은 저급한 점프 스케어나 과도한 고어 장면 대신, 가족 구성원들의 내면에서 서서히 자라나는 공포를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17세기 청교도들에게 숲은 단순한 자연이 아닌, 악마와 마녀가 도사리는 두려움의 영역이었습니다. 에거스 감독은 그러한 시대적 배경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윌리엄 가족이 겪는 공포와 불안을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보다 깊이 있고 지속적인 공포감을 자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기술적인 면에서 <더 위치>는 기존 호러 영화들과 차별화됩니다. 자린 블리슈크의 촬영은 자연광만 사용해 음산하면서도 아름다운 뉴잉글랜드의 풍경을 담아냅니다. 특히 악마나 마녀가 존재할 수도 있는 숲의 모습은 그 자체로 불안과 공포를 자아내면서 하나의 캐릭터로서 기능합니다. 탁월한 비주얼과 함께 단조로운 불협화음의 사운드 디자인이 결합하여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키죠.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에거스 감독의 집착과 노력입니다. 그는 당시의 의상과 대사, 농경 생활에 대한 고증을 바탕으로 17세기의 모습을 재현합니다. 특히 인물들이 사용하는 영어가 독특한데, 이는 그 시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최대한 구현했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이러한 세밀한 디테일은 자연광만을 이용한 촬영 기법과 어우러져, 몰입감 있는 영상미를 선사합니다.
<더 위치>는 마녀재판이라는 역사적 소재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며, 17세기 뉴잉글랜드를 뒤흔든 마녀사냥의 광기를 한 가족의 붕괴를 통해 강렬하게 묘사합니다. 영화는 종교적 광신의 위험성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동시에, 청교도 사회가 젊은 여성들을 바라보는 편견 어린 시선과 그들이 겪어야 했던 억압, 고통을 섬세하게 다룹니다. 더불어 '마녀'라는 존재를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아닌, 사회적 규범과 억압,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하는 복합적인 의미로 해석할 여지를 제공합니다. 특히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의 결말에서 토마신의 표정은 억압된 사회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자유를 얻은 듯한 인상을 주어,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토마신을 연기한 안야 테일러조이의 압도적인 연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19세였던 그녀는 순수함과 내적 갈등, 그리고 점진적인 각성을 겪는 토마신을 훌륭하게 연기합니다. 특히 가족들한테서 의심받는 상황에서 보여주는 복잡한 감정선과 마지막 장면에서의 강렬한 변화로 깊은 인상을 남기죠. 안야 테일러조이는 이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의 주목받는 신예로 떠올랐으며, 이후 <퀸스 갬빗> <라스트 나잇 인 소호>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등의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큰 발전을 이어가게 됩니다.
<더 위치>는 오랫동안 기억될 가치가 있는 호러 영화입니다. 1회성의 단순한 자극적인 오락거리를 넘어서,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죠.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독특한 비전과 야심,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선명한 주제 의식, 그리고 세밀한 역사적 고증이 어우러져 깊이 있는 호러 영화로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임...
1. <더 위치>는 시대 고증을 위해서 많은 역사적 자료들에 대해서 연구를 했고, 당시, 언어와 의상, 생활 방식을 이야기에 반영했고, 특히 <세일럼 마녀 재판> 기록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2. 영화에 등장하는 염소 '블랙 필립'은 실제로 촬영 현장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 염소는 때때로 통제하기 어려웠고, 배우들을 향해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는군요. 결국 안전상의 이유로 제작팀은 두 마리의 염소를 번갈아 사용했는데, 한 마리는 온순한 성격이고, 다른 한 마리는 공격적인 성향이었다고.
3. 철저한 시대 고증에 걸맞게 배우들 연기의 진정성을 높이기 위해, 제작팀은 촬영 전 'Puritan boot camp'라 불리는 특별 훈련을 실시했다고 합니다. 이 캠프에서 배우들은 17세기 청교도들의 생활 방식을 직접 체험했는데, 당시의 농사법, 요리법, 옷 입는 방법 등이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4. 영화의 모든 의상과 소품은 가능한 한 17세기의 방식을 따라 수작업으로 제작되었다고. 의상 디자이너는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의 직조 방식, 염색 방법, 바느질 기술 등을 재현했다는군요.
5. 로버트 에거스 감독은 <더 위치>를 단편 영화로 기획했습니다. 그의 초기 아이디어는 뉴잉글랜드의 민간전승을 바탕으로 한 짧은 영화였는데, 제작비를 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장편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6. 영화에 등장하는 옥수수 밭은 실제로 영화팀이 직접 조성한 것이라고. 이는 기존의 밭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지만,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사실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는군요.
다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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