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에이트 쇼 전체 후기
퇴근하고 8화까지 정주행했습니다. 방금 다 보고 짤막한 글 남겨 봅니다.
재밌습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특정한 규칙이 주어졌을 때 여덞 명이서 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경우들을 보여주는데, 하나같이 자극적이고 흥미로워서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다소 복잡할 수 있는 규칙을 적절하게 이해시키고 넘어간다거나, 금액 계산을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연출도 좋았고요. 재미있는 건 늘어질만한 부분에서 배속을 하더라고요. 어떻게서든지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집념?이 보인다고 할까요. 적어도 영상이 원작의 발목을 잡는 장면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배우들 연기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류준열 배우의 연기를 볼때면 항상 약간 넘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딱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어요. 박정민이나 이열음, 박해준, 배성우 배우 역시 제 몫을 다해주었고요. 오랜만에 본 문정희 배우도 참 반가웠네요. 그러나 제게 가장 놀라운 건 8층 역의 천우희 배우였어요. 윤리가 부재한 어른아이의 천진함과 천덕스러움을 찰떡같이 소화해내더군요. 캐릭터에 인격을 부여하지 않고, 특정한 이미지만으로 연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 방식이 작품의 설정과 너무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결국 8층이라는 캐릭터는 권력과 자본의 무심함이라는 관념을 상징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천우희라는 배우가 단순히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닌, 캐릭터 해석 능력도 탁월한 영리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놉시스와 설정만 본다면, 누구라도 오징어게임을 떠올릴 수 밖에 없을거에요. 실제로 몇몇 장면은 오징어게임을 의식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나 8화까지 다 보고 난 제 인상은 ‘전혀 다르다’입니다. 무엇보다 게임의 규칙에서 가장 큰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스포가 안 되는 선에서 말씀드린다면, 더8쇼의 핵심적인 규칙은 ‘모두가 상금을 나눠 가진다‘입니다. 반면 오징어게임은 마지막 한 사람이 상금을 독식하는 구조였죠. 두 작품에서 게임은 사실상 사회에 비유된다는 점을 미루어본다면 이 드라마가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징어게임은 통제된 게임의 규칙 안에서 펼쳐지는 참가자들의 개인적인 생존 투쟁에 중점을 두었지만, 더8쇼는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정치체제의 모티브를 끌고 옵니다. 다시 말하면, 극 중 등장하는 여덞 명의 등장인물은 사실상 특정 계급이라던가 정치집단에 가깝습니다. (작품을 끝까지 보시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겁니다.) 사회를 8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소집단으로 축소시켜놓고, 폭력, 배려, 희생, 정의 같은 가치를 인격화한 후, 그 인물들간의 역학관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더8쇼는 흡사 정교한 우화처럼 느껴지네요. (3층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의 서사를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우화적인 분위기가 강하면 주제의식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캐릭터성이 흐려지곤 하죠.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놀란 건 모든 캐릭터들의 매력이 살아있다는 겁니다. 특히 이런 이야기에는 민폐 캐릭터들이 하나씩 있기 마련인데, 그런 캐릭터조차 매력적입니다. 물론 악역을 관습적으로 다룬다거나,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의 존재감이 흐려진다는 단점도 있어요. 그럼에도 제게는 장점이 더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메시지와 플롯이 긴밀하게 연결된 작품은 자칫 잘못하면 캐릭터들이 기능적으로만 존재하는 몹시 밋밋하고 평면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리기 쉬운데, 이 작품에서는 캐릭터들의 매력으로 극복을 한 것 같네요. (물론 이는 연출뿐 아니라 배우들의 공도 클 겁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재밌습니다. 오징어게임과는 분명 다른 의미로 재미있어요. 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이 아니지만, 이정도 완성도의 드라마라면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무엇보다 한재림 감독이 생각보다 더 뛰어난 감독이고, 훌륭한 각본가라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차기작이 더 기대되네요.
sonnybonnie
추천인 1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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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오징어 게임>과 비교되는 작품이긴 한데, 글을 읽어보니 어떤 차별화 포인트가 있는지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