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 솔직히, 이 영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네이버 영화)
제목부터 예술영화의 냄새를 풍긴다.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어떤 악을 말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악에 대한 내용을 어떤 식으로 풀어냈을까. 포스터 속 소녀는 무언갈 바라보고 있다. 괴물을 본 것인가. 드라이브 마이카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라서 엄청 느린 영화겠지 생각했다. 영화 보기 전엔 호기심이 충만했다. 영화를 보면서는 느린 속도와 싸웠고 끝나고선 끝없이 생겨나는 물음표와 시름했다. 물음표가 뒤통수를 세게 치는 영화였다.
순수하고 파랗게 거친
영화의 배경은 눈 덮인 벌판과 호수 그리고 숲속의 마을이다. 이를 휘감는 색상은 낮은 채도의 푸른색이다. 연남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보통 자연은 아름답다고 일컬어지지만 여기선 그렇지 않다. 차갑고 거친 느낌이 든다. 주인공 타쿠미와 하나의 옷 색상도 파랗다. 차가운 색상에 어울리게 타쿠미의 말투도 차갑다. 아니꼽게 느껴지기도 한다. 글램핑 사업을 위해 마을을 찾아온 타카하시와 마유즈미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 태도도 비슷하다. 그렇다고 이들의 인간성이 악하다는 것은 아니다.
반면, 글램핑 사업을 위해 동네에 찾아온 타카하시는 다르다. 주인공과 1:1 대조가 될 만큼 외투 색상부터 주황색이다. 반말을 쓰는 주인공과 달리 비즈니스적이지만 말투에는 예의도 묻어있다. 적극적인 모습도 보인다.(물론, 사업을 성공시켜야 하는 입장이니.) 타카하시와 타쿠미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면 원주민과 이주민들 사이의 흔한 갈등 구조로 볼 수도 있다. 수용과 배척 그 사이 어딘가에서 오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네이버 영화)
타쿠미와 하나 그리고 자연에서 풍겨지는 파란색은 깨끗하거나 순수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유해한 느낌이기도 하다. 친환경적 입장에 가까운 타쿠미와 마을 사람들을 보면 응당 푸른색의 배치가 어울린다. 그리고 이들을 설득시켜 사업을 성공시키려는 타카하시를 보면 주황색이 어울리고. 색감의 대비를 통한 연출이 눈에 띈다. 이들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뉘어져 보이기도 한다. 사실은, 일개 회사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직원일 뿐인데 말이다.
사업설명회에서 타쿠미는 글램핑 업체의 제대로 된 설명이 있다면 협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도 한다. 마을 회장은 친환경 같은 거창한 건 둘째치고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한다. 환경을 걱정하고 위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들도 자연을 이용해 생존하고 있다. 목적은 다르지만, 자연환경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는 업체처럼 말이다. 그래서 타쿠미와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이중적이기도 하다. 외부 세계 시각에선 이들이 오점 하나 없는 순수한 집단으로 보이기도 하겠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들이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기준을 스스로들에게 한 번 비춰봤었는지는 영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아름답고 순수하면서 차갑고 거친 모습을 가진 자연처럼 타쿠미와 마을 사람들도 이중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색상의 대비와 색상의 이중적 측면을 잘 연출했다.
오염수
글램핑 사업설명회 장면에서 언급된 ‘오염수‘, ’정화조’, ‘지하수’, ‘식수’ 단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2023년 8월 24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방사능 오염수가 해양에 방출된 사건이 떠올랐다. 작년에 지금까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오염수 방출에 대한 과학과 비과학의 논쟁이 벌어졌었다.(논쟁거리로 되어버린 것이 어처구니없지만.) 방사능 핵종이 알프스라는 장비를 통해서 100% 안전하게 걸러져서 방출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다, 현존하는 기술로는 방사능 물질을 안전하게 거를 수 없다는 의견들이 지금까지 충돌하고 있다.
(네이버 영화)
글램핑 장소의 정화조가 오물을 완벽하게 정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식수까지 문제가 생긴다는 주민들. 소량의 오염수 배출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타카하시. 이들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현재 상황이 오버랩된다. 실제로 영화에서 이들의 사업설명회 장면을 보면, 볼품없어 보이기도 한다. 마을 주민들의 이의 제기와 허점 가득한 타카하시의 답변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안전 문제에 있어 한국, 중국 등 타국 정부와 국민에 대한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대응과 똑같아 보였다. 심지어는 일본 자국민에게까지
타쿠미는 업체의 제대로 된 설명이 있다면 협력할 의사도 있음을 말한다. 마을 회장은 업체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한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반응으로 보인다. 이들의 입장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며 이것이 감독의 메시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럴까? 이에 대한 확답은 보이지 않았다. 언급한 각자의 입장을 보여줄 뿐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느끼도록 연출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방관도 아니고 관조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뭐, 단순히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방사능 오염수 방출을 결정한 일본 정부를 까는 연출일지도 모르겠다.
무위, 당위, 인위 그리고 악
영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이나 낮과 밤 같은 자연의 모습을 천천히 보여준다. 당위적이고 무위적이다. 더불어 인위로 가득한 사건들과 인간들의 행동으로도 가득차 있다. 무위, 인위, 당위는 끊임없이 번갈아가며 상호작용한다. 서로 관련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자연에서 뛰놀던 사슴이(무위) 인간의 총에 의해(인위) 사냥 당하거나. 이에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는 내용. 글램핑과 오염수 발생으로 인한 식수와 사슴들의 터전에 영향이 미치는 당위적 결과가 그러하다. 인위적 개입으로 인해 당위적인 일의 발생으로 무위는 이전과 다르게 된다.
(네이버 영화)
전후 개척 세대는 마을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자연을 이용했다. 좋은 말로 포장하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환경 파괴가 정확하다. 그렇다면, 개척 세대는 자연에 대한 악의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 자연을 이용하는 건 생존을 위해 당연한 일이었다.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사용하거나 집을 짓고 물을 길어 식수로 이용하는 것, 사슴을 사냥해 식량으로 하는 행위들이 그렇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니 일정 정도 자연을 파괴한 것으로 보이는 거다. 악의적 행위는 없었으나 악의적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글램핑 회사 역시 자연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고자 한다. 마찬가지로 환경 파괴가 맞다. 이들이 마을 주민들 보다 더 환경을 파괴하게 될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 보조금 수령을 위해라고 적고 회사의 수익을 위해 마을 주민의 마음을 설득하면서 글램핑 사업을 성공시켜야 하는 사업체로서의 당위가 있다. 기업의 목적은 이익 창출이니까. 그래서 그들 본연의 목적을 위해 발버둥 치는 그들을 악하다고만 할 순 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초래할 피해를 생각하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들을 두고 마을 회장은 (애초에 당신들도 악한 마음을 가지고 그런 것은 아닐 테니,) 대신에 책임 있는 태도는 필요하다면서.
해변의캎흐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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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는 너무 안맞는 작가주의 감독중 한명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