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별 - 간단 후기
최근에 <정순>을 감상한 뒤 주연이셨던 김금순 배우님 필모에 <울산의 별>이 있더군요. 우선은, 제목 때문에 <강릉> 같은 조직폭력배 영화라 지레 짐작해 걸렀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반성합니다. 제목 때문에 영화를 거르는. 물론 영화를 보기 전에 제가 의식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몇몇 영화를 제외하고는 웬만해서는 영화 정보 자체를 보지 않고(알려고 하지 않고) 가는 탓이기도 했습니다. 거기다 조폭 영화는 웬만해서는 거르기 때문에, 이게 선입견을 확고한 결정으로 가게끔 만들었네요. 아주 간혹 벌어지는 일이기는 합니다만, 거듭 스스로에게 반성하게 됩니다. (제목을... 조금 변경하셨어도 됐을 건데요. 다 본 지금도 제목이 안티인 듯한.)
와 참. 벌써 몇 줄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는데요, 이 영화 참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삶의 단면이라기에는 너무 많은 우리 삶을 담았고, 이를 풀어내면 구구절절해져버리네요. 그러한 관계로 포탈에 기재된 내용을 긁어올게요.
남편의 사고사 이후 조선소에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윤화는 어느 날 급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는다. 비트 코인으로 전 재산을 날린 아들과 학업은 뒷전인 채 서울로의 탈출만 꿈꾸는 딸. 그리고 ‘남편 잡아먹은 여자’라 욕하며 땅을 빼앗으려는 친척들까지.. 각자가 직면한 자신들의 고통 때문에 서로를 배려할 수가 없는 가족. 우리 가족은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의 끝은 과연 무엇일까?
윤화는 억척같이 살아갑니다. 남편이 죽고 20년, (남편 동료들의 도움으로 조선소에 입사해) 여자라고는 보기 힘든 분야에서 홍일점으로 죽을힘을 다합니다. 그녀의 직업은 바로 용접공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회사는 퇴사를 권합니다. 시스템상 순번이라며.
윤화는 모질게 버텨왔던 삶에 잔재하는 것들에 낙담합니다. 코인으로 집을 담보 잡힌, 그것도 모자라 섣부르게 선배를 믿고 투자해 날려버린 아들과 아직 고등학생인 딸이 있을 따름입니다. 뒤집어 보면 남은 게 없는 인생이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에 '남편 잡아먹은 여자'라는 구실로 무시하기 바쁜 친척들이 남편의 제사를 빌미로 들이닥칩니다.
그날, 같은 팀원들은 조선소에서 늙은 오징어를 낚습니다. 이를 빌미로 회식을 하자고 윤화에게도 권합니다. 드세게 살며 남자처럼 변해버린 윤화는, 20년 전에 죽었음에도 자신을 형수라고 부르는 팀원들에게, 제사라는 말로 일갈합니다.
윤화의 분기탱천은, 이후 발발합니다. 아들로 인해, 친척들로 인해, 회사로 인해.
아마 영화를 보는 많은 분들은, 공감하거나 또 자문하거나 하는 지점이 생겨납니다. 회사가 나에게 해고 통보를 하면 어떻게 될까? 나도 윤화처럼 소위 진상 짓을 하며 일하겠다고 버틸까? 아니라면 깔끔하게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찾을까, 라는.
아마도 진상 짓을 하겠다, 라는 쪽은 소위 자신의 인생을 또 열정을 바친 분들일 겁니다. 그렇다고 깔끔하게 그만두는 분이 그렇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뿌리 박힌 것을 조금 더 쉽게 털어낼 수 있는 위치와 환경이 아닐까.
영화 속 윤화는, 그 어느 것도 쉽게 떨쳐낼 수가 없는 위치입니다. 남편과 살았던 집은 담보 잡힌 상태, 딸은 서울로만 가려들고, 아들은 무직에 일확천금이나 노리고 있으니.
해법이 생겨날까요?
이를 정기혁 감독은, 울산이라는 지역과 자신만 알고 가졌을 깜냥으로 풀어갑니다. 그 속에서 배우 김금순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피눈물 흐를 것 같은 삶을 찰떡같이 연기해 냅니다. 회사가 전부라고 믿고, 그것밖에는 호구지책이 없던 윤화에게 '해고'는 인생의 버팀목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인생의 실패와 다름없을 겁니다. 남편이 죽었어도 일을 할 수 있기에 살아갈 수 있었고, 아들이 사고를 쳐도 일을 할 수 있기에 버텨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 그녀에게 해고, 라는 청천벽력이 가해지자 그녀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또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사람처럼 발악합니다. 그 발악에 공감하고 그로 인해 마음 저린 관객은 한둘이 아니었을 듯합니다.
마치 켄 로치의 영화를 보는 듯했답니다. 감독 정기혁이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어갈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하나는, <울산의 별>은 켄 로치에도 뒤지지않는 페이소스를 담은 영화라는 겁니다.
비록 모든 영화적 진행 상황이 거의 끝에 다다라 OTT에 공개되고 있습니다만, 어디서든 또 어떻게든 괜찮은 영화다, 좋은 영화다, 라고 평가할 수 있는 영화라는 겁니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한, 정말 죽을힘을 다한 김금순의 연기 역시 박수 받아 마땅했습니다. 비록 뒤늦게 이 영화를 보고, 또 영화에 대한 선입견으로 관람의 기회 역시 양도했더랬지만, 지금에라도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며 이런 말씀도 던져보게 됩니다. 우리는 영화 속 윤화처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네, 물론 제 답은 네, 입니다. 다만 영화 속 윤화 같은 상황이 가급적이면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게 된다는 거지요. 늙은 오징어와 낡은 자전거로 상징될 윤화는, 적어도 영화 속에서는, 아직 나아갈 곳을 찾지 않은 채 마무리되니까요. 윤화가 앞으로 나가기를 엔딩타이틀 이후에도 바라게 되더이다. 앞서 언급한 질문처럼, 윤화의 삶은, 보통의 우리네 삶이기 때문입니다.
잘 살아라 윤화, 그리고 김금순 배우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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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뜻 보기 힘든 영화 같지만 용기를 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