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봤던 것 중 가장 이상한 공포 <서스페리아> 후기
1977년에 이탈리아에서 만들고 독일을 배경으로 영어를 쓰는 해괴한 국적을 가진 공포영화 <서스페리아>가 만들어집니다
지금 봐도 섬뜩한 오프닝과 알록달록한 색감에서 오는 불안감과 후반부에 공포가 폭발하는 영화라서 당시 큰 호평이었다죠
아마 이렇게 별 생각없이 잘 만든 웰메이드 영화가 68운동으로 어지럽던 당시 유럽에게 일말의 오락거리가 되어줬을테죠
그리고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뒤 <콜미바이유어네임>으로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내시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에 의해 새롭게 리메이크됩니다만...
사실 마녀가 운영하는 발레학원에 들어온 신입생이라는 소재를 제외하면 전혀 다른 내용을 펼치는 별개의 작품입니다
1977년 사회운동으로 어지럽던 서독의 심리상담가 요제프 박사는 한 여학생이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찾아와 자기가 다니는 학원에 있는 마녀 때문에 피폐해졌다는 말을 듣습니다
마담 블랑이라는 마녀가 가르치는 발레학원은 정말로 마녀들의 본거지였고 이들은 어떠한 거대하고 장대한 의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심상치 않는 발레 실력을 가진 전학생 수지 배니언이 학원을 찾아옵니다
1977년 원작 영화는 알록달록한 색감의 판타지 호러였다면 리메이크는 칙칙한 채도를 가진 차가운 사회비판 스릴러입니다
1977년 당시 독일의 극좌파단체 바더 마인호프가 작품의 전반적으로 언급이 되는데 이들은 사회적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여러가지 작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도 언급되는 루프트 한자 비행기 납치사건도 그렇고 당시 서독 경제인연합 회장이었던 한스 마르틴 슐라이어를 납치하는 사건도 있었죠
바더 마인호프의 이러한 행동의 근간은 바로 전후 구세대와 신세대의 대립이었습니다
2차대전 당시 차마 입에 담기도 수치스러운 악랄한 짓을 일삼았던 나치 부역자들 모두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계속 권력을 잡고 있는 경우도 있었죠
자신들의 부모 세대가 이러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세대임을 알게 된 신세대는 구세대를 향한 역사적인 혐오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제대로 된 나치 청산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세워진 단체가 바로 바더 마인호프입니다
위에 말했던 서독의 경제인연합의 회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던 슐라이어도 한때 나치 부역자였습니다
영화는 바더 마인호프를 배경에 깔음으로서 영화 속 악한 짓을 자행하던 마녀들을 이러한 과거 청산이 되지 않은 구세대에 은유합니다
영화에서 최종보스급으로 언급되는 마녀들의 우두머리 마르코스는 죄 없는 젊은이의 삶을 망가뜨리고 자신의 추한 삶을 이어나가려하는 늙은이로 표현됩니다
이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악행에 청산을 받지 않고 대신 죄 없는 이들이 분단국가로 인한 이산가족이 되거나 과거의 상처로 인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등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영화 속 루츠 에버스도르프가 연기한 요제프 박사가 이러한 피해자이며 클로이 모레츠가 연기한 마녀에 의해 비참한 삶을 맞이하게 된 학생이 이러한 아픔을 가진 신세대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영화는 클라이맥스가 가서 이러한 구세대에게 통렬한 처벌을, 이러한 신세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영화 속 연기에 대해선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마녀들 사이에서 새로운 체재를 만들려는 반동인물 마담 블랑을 연기한 틸다 스윈튼은 신비함 속에 불안감을 악착같이 숨기려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연기해냈습니다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배우 루츠 에버스도르프가 연기한 이산가족이 된 아픔을 가진 한 늙은 남자는 같은 아픔을 가진 우리 민족에겐 더 와닿는 연기였습니다
루츠 에버스도르프가 꼭 인공성기를 붙인 틸다 스윈튼이 남자로 분장한 것 같이 생겼지만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닙니다
이 영화는 정말 이상한 영화입니다
미칠듯한 기괴함을 뽐내며 공포영화로서 불안하고 찝찝한 분위기를 이어나가면서 폭탄 안에 화약을 계속해서 넣는 서스펜스를 이어나가다가 마지막에 도화선에도 아닌 화약에다 불씨를 직빵으로 넣어서 터트리는 듯한 클라이맥스로 끝을 맺습니다
스릴러가 이어져서 지루한 부분은 없지만 공포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겐 당황스러운 장르 비틀기입니다
클라이맥스에서 벌어지는 피의 참극은 극도로 잔혹하며 섬뜩하면서 어떤 면으로는 통쾌하지만 동시에 서글픕니다
이런 영화가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복합적인 감정이 단 하나의 시퀀스에서 휘몰아칩니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로 분류해야 할까요?
아니면 사회비판 드라마로 분류해야 할까요?
그것도 아니면 통쾌한 판타지?
아니면 서글픈 역사를 은유한 영화?
그 어느쪽으로도 분류하지 못하기에 이 영화는 정말 이상합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8.5점입니다
작성자 한줄평
"악인이었던 구세대의 피로 쓴 신세대를 향한 위로의 글씨"
*안타깝게도 이 영화 이후 루츠 에버스도르프 배우님은 볼 수가 없더군요
틸다 스윈튼이 인공성기를 달고 분장한 것 처럼 생긴 것만 빼면 정말 훌륭한 배우셨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셨나봅니다 ㅠ
스누P
추천인 4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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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괴하고 칙칙한데 한편으로는 황홀해서 계속 보고싶은 그런 영화였습니다.
후반기는 건너띈듯 한데요...이렇게 잘 리뷰깔끔하게
정리해 주혀서 감사드립니다.다시 찾아서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