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9
  • 쓰기
  • 검색

[영화리뷰] <바튼 아카데미(2023)> : 그래, 클래식하다고 해두지 뭐!

바비그린
3214 6 9

 

모든 이미지 출처: 영화 <바튼 아카데미>

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매운 맛의 시대죠. 떡볶이도 매운 맛, 마라탕도 매운 맛, 심지어 요새는 김치도 더 맵게 팔더라구요;; 아 물론 세상살이도 매운 맛입니다.

언젠가부터 대중매체 역시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한때 지나치게 자극적인 플롯을 비판할 때 쓰던 말인 '막장드라마'는 어느새 그 자체로 고유명사가 되어 장르의 하나로 자리잡았고, (개연성이 모자라거나 아예 뇌절해버리는 것이 아니라면) 막드가 샘솟게 하는 미친듯한 도파민에 우리는 이제 익숙해지고 길들여져, 더 이상 어지간한 막드는 막드라고 부르기도 뭐해 졌습니다.

고백해야겠습니다. 오늘의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심심담백한 영화입니다. 졸리시다는 분들도 있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끝까지 보고 났을 때 속 편한 건강식을 먹은 것마냥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생량한"? 아우 촌스러워. 그래, 클래식하다고 하지 뭐.

아직도 제게 생생하게 남아있는 곽재용 감독의 명작, <클래식>에서 손예진 배우가 한 대사입니다. 극중 자신에게 온 러브레터에 "생량한"이라는 표현이 나오자 위의 대사를 하는데요. 읽으면서 보니 아주 촌스럽기 짝이 없는 편지지만, 클래식하다고 퉁쳐줄만큼 은근한 호감이 생겼던 거죠. 오늘의 영화 <바튼 아카데미>도 마찬가집니다. 촌스럽다는 말보다 "클래식"하다고 해주고 싶어요.

영화는 아예 오프닝의 배급사 로고(유니버설)부터 "나는 클래식하다"를 공표하고 시작합니다. 영화의 배경은 70년대. 크리스마스 휴일의 기숙학교에 가족 없이 남겨진 교사, 조리사, 학생, 그리고 일꾼의 이야기입니다.

설마 주인공들이 투닥투닥하다가 서로 유사가족이 되는 건 아니겠죠? 서로 인종도 생김새도 성격도 다르지만 갈등 끝에 공통점을 발견하고 정이 드는 거 아니잖아요? 설마 마지막에 그렇게 싫어하던 상대방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건 아니겠죠?????? 네??????? 그렇게 뻔하다구요??????? 감독님!!!!!!!!!!!!!!!!

<바튼 아카데미>는 클리셰 덩어리입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플롯, 어디서 본 것 같은 캐릭터 구성, 어디서 본 것 같은 갈등, 어디서 본 것 같은 과거사. 이런... 토마토 지수가 썩다 못해 터지겠는데요????? 아마 그렇겠죠????

당연히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튼 아카데미>의 감상 포인트는 어떻게 이 틀에박힌 이야기를 차별화했느냐가 되겠는데요. 의외로 아주 심플했습니다.

그냥 잘 만들었습니다.

거의 파묘당한 오니 저리가라 하는 수준으로 '폴 선생'이 빙의한 것 같은 찰떡 연기를 보여주는 주연 폴 지아마티를 비롯해 각자의 몫을 모두 깔끔하게 해내는 배우들.

결코 휘황찬란하지 않지만 조금도 거슬리지 않는 미술과 세트.

목표한 바를 오롯이 향해가는 성실한 플롯과 무엇보다 훌륭한 타율의 코미디.

<바튼 아카데미>는 좋은 재료를 듬뿍 넣고 끌인 정직한 백숙이자, 질 좋은 쌀을 찧어 막 쪄낸 따끈한 가래떡이고, 깊은 산골짜기 깨끗한 수원지에서 끌어올린 시원한 생수입니다. ​​

앙트레 누,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

그렇게 가족이 된다.

그렇다고 <바튼 아카데미>가 그저 기존 이야기 방식만을 따르는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 안에서 자주 언급되는 표현이 있는데요. 바로 '앙트레 누(entre nous)'라는 프랑스어 표현입니다. '우리 사이에'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영화 맥락상으로는 '우리끼리의 비밀'내지는 '퉁치고 지나갈 것, 쌤쌤'이런 느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다들 삶의 큰 문제들을 하나, 두 개. 혹은 여러 개 가지고 계신 분들도 많을 테구요. 그 문제들을 어떻게 감당하시나요? 어떤 문제들은 해결이 어려운, 아니 애초에 해결할 수가 없는 것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버티죠. 그저 안고 갑니다. 더 좋은 일들로부터 에너지를 얻으며, 그 에너지가 내 문제들을 이겨내지는 못하더라도 끌어가며 내 삶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들도 서로 안 맞는 부분 투성이인데, 그저 학교에 휴일동안 남겨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들이 쉽게 가족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각자 슬픔과 아픔을 가득 품고 있는 존재들이라면 더욱이요.

이럴 때, 어떤 문제는 그저 퉁치고, 혹은 묻고 지나감으로써 대처할 수도 있겠죠. 남몰래 앓고 있는 우울증, 슬픈 가족사, 보여주기 싫었던 나의 치부 같은 것들 말이에요. '앙트레 누'는 그저 폴 선생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아닌, 가족이 되어가는 방법, 나아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감독이 던지는 은유입니다. 우리 사이의 비밀로 하자. 우리끼리 힘을 내어 이기자. 퉁치고 지나가자. 좋은 날이 올 테니.

보스턴 여행을 마무리하는 후반부, 허넘 선생과 털리, 그리고 메리는 나름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여행의 마지막 식사를 합니다. 디저트로 '체리 쥬빌레'를 시키네요. 달콤한 체리케이크에 알코올을 뿌려 불쇼를 하는 근사한 요리입니다. 하지만 체리 쥬빌레엔 알코올이 들어가고, 털리는 아직 어른이 아니라 그걸 먹을 수 없습니다. 한참 점원과 실갱이를 하던 세 사람은 체리와 크림을 따로 주문합니다.

밖에 나와서 크림에 체리를 올리고, 위스키를 뿌린 다음 직접 불쇼를 시전하는 비범한 이들(...) 물론 망했죠. 하지만 세 사람은 웃습니다. 폭소로 디저트를 대신하죠. 근사한 정식 체리 쥬빌레 대신, 웃음과 야매 체리쥬빌레로 퉁친 웃음. 우리끼리의 이야기. 여행의 마지막 디저트는 앙트레 누 였습니다.

오늘 <바튼 아카데미>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북미지역에서 특히 평가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아마 영화 곳곳에 녹아있는 미국문화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기에 더욱 그럴테지요.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익숙한 소재와 이야기라도, '잘' 만든다면 여전히 그 이야기의 본질은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보고 나면 기분 좋아지는 영화, 영화관에 가서 보셔도 좋겠고, 혹은 고단한 한 주를 마무리하고 잠들기 전 따뜻한 담요에 우유 한 잔을 데워서 함께 보셔도 좋겠습니다.

 

 

 

 

 

 

블로그에 더 많은 리뷰가 있습니다. :)

 

https://m.blog.naver.com/bobby_is_hobbying/223366872031

 

 

바비그린
1 Lv. 819/860P

이퐁퐁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6

  • 셜록
    셜록

  • 노스탤지아
  • 해리엔젤
    해리엔젤

  • 헷01

  • 와킨조커
  • golgo
    golgo

댓글 9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앙트레누가 무슨 뜻이지? 하고 찾아보려다가 까먹고 있었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22:22
24.02.27.
2등

평론가형 영화이면서 재밌는 영화
기생충 같은 영화였네요.

22:37
24.02.27.
와킨조커
맞아요, 예술성도 있는 영화이면서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죠!
23:12
24.02.27.
3등
이런 류의 영화를 본지 상당히 오래 됐음에도
극심한 뻔함에 거부감이 몰려왔네요.
좋게보시는 분들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그래도.. 좀.. 그랬네요.
01:30
24.02.28.
굉장히 단순하고 흔한 말
"You can do this~"인데...
그 장면에 그렇게 마음에 맺히는 영화였습니다
14:49
24.03.01.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HOT 명탐정 코난시계 출시예정....마취총기능은 없다고 합니다. 1 내일슈퍼 30분 전13:50 167
HOT [무대인사] 4K 60p 침범 1주차 영등포CGV&롯데시네마 (2... 2 동네청년 동네청년 3시간 전10:25 355
HOT 경비원 시절 고로상 2 카란 카란 50분 전13:30 283
HOT 곽선영 유리 침범 무대인사 월드타워 2 e260 e260 6시간 전07:41 677
HOT 케이트 블란쳇 & 마이클 패스벤더, 섹시하고 스타일리시... 2 카란 카란 1시간 전12:38 426
HOT 뒤늦게 올리는 "존 윅 1" 수퍼플렉스 후기! 1 무비카츠 무비카츠 1시간 전12:36 274
HOT 3월 영업종료하는 CGV 7 essense 2시간 전11:48 1343
HOT (내용 추가) 디즈니 실사 '백설공주' 해외 첫 반응 2 golgo golgo 2시간 전11:47 1330
HOT [백설공주] 갤 가돗의 마녀 분장 공개 1 시작 시작 2시간 전11:27 695
HOT 라이언 쿠글러-마이클 B.조던 콤비 신작 고딕 호러 스릴러 &... 1 Tulee Tulee 3시간 전11:04 568
HOT ‘오딧세이’ 존 번살, 메넬라우스역 연기 예정 / 오늘의 세트... 2 NeoSun NeoSun 3시간 전10:56 626
HOT 시카고강에서 발견된 ‘톡식어벤저’ 모습 2 NeoSun NeoSun 4시간 전10:09 861
HOT [공각기동대] 3편 만들고 싶다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 1 시작 시작 4시간 전09:40 611
HOT 북한판 스타워즈... AI 영상 5 golgo golgo 5시간 전09:08 1062
HOT [에밀리아 페레즈] 2만 관객 돌파 4 시작 시작 5시간 전08:59 491
HOT 티모시 샬라메 연기 칭찬한 케이트 블란쳇 4 시작 시작 5시간 전08:42 926
HOT 마츠시게 유타카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3 e260 e260 6시간 전07:42 523
HOT 침범,노보케인,장난을잘치는타카키양 관람평들(사실 다괜찮... 3 이안커티스 이안커티스 10시간 전04:12 529
HOT 애냐 테일러 조이 애플TV '럭키' 시리즈 세트장샷 1 NeoSun NeoSun 13시간 전00:50 988
HOT 시네마스코어 ‘블랙 백‘ ‘노보케인‘ B / ‘지구가 폭발한 날 ... 2 NeoSun NeoSun 13시간 전00:43 924
1169881
image
내일슈퍼 30분 전13:50 167
1169880
image
카란 카란 50분 전13:30 283
1169879
image
카란 카란 1시간 전12:38 426
1169878
image
무비카츠 무비카츠 1시간 전12:36 274
1169877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2:11 183
1169876
image
essense 2시간 전11:48 1343
1169875
image
golgo golgo 2시간 전11:47 1330
1169874
image
시작 시작 2시간 전11:27 695
1169873
normal
진지미 3시간 전11:11 517
1169872
image
Tulee Tulee 3시간 전11:04 568
1169871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0:56 626
1169870
image
동네청년 동네청년 3시간 전10:25 355
1169869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0:09 861
1169868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0:01 515
1169867
normal
라인하르트012 4시간 전09:50 460
1169866
image
시작 시작 4시간 전09:40 611
1169865
normal
golgo golgo 5시간 전09:08 1062
1169864
image
시작 시작 5시간 전08:59 491
1169863
image
시작 시작 5시간 전08:42 926
1169862
image
e260 e260 6시간 전07:42 523
1169861
image
e260 e260 6시간 전07:42 420
1169860
image
e260 e260 6시간 전07:41 677
1169859
image
e260 e260 6시간 전07:39 437
1169858
image
e260 e260 6시간 전07:39 407
1169857
normal
다솜97 다솜97 7시간 전07:07 426
1169856
image
이안커티스 이안커티스 10시간 전04:12 529
1169855
image
NeoSun NeoSun 12시간 전01:24 739
1169854
image
NeoSun NeoSun 13시간 전00:50 988
1169853
image
손별이 손별이 13시간 전00:48 467
1169852
image
NeoSun NeoSun 13시간 전00:45 492
1169851
image
NeoSun NeoSun 13시간 전00:43 924
1169850
image
NeoSun NeoSun 13시간 전00:41 1784
1169849
image
뚠뚠는개미 14시간 전00:07 2202
1169848
image
golgo golgo 14시간 전00:01 1557
1169847
image
손별이 손별이 14시간 전23:52 2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