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스포) 추락의 해부를 보고
쥐스틴 트리에 감독이 연출한 <추락의 해부>는 남편의 추락사로 인해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아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프랑스의 외딴 산자락, 오두막으로 이사를 온 산드라(산드라 휠러)는 대학 제자와 함께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데 위층에서 갑자기 50센트의 음악이 시끄럽게 재생되고 할 수 없이 둘의 대화는 끝이 납니다. 시각 장애인인 어린 아들 다니엘은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갑니다. 1시간이 지나 다니엘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빠는 집 앞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습니다. 이미 사망한 후고요.
살인 당시 목격자도 없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산드라가 용의자로 지목됩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변호사인 뱅상이 산드라의 변호를 맡게 됩니다. 뱅상 입장에서도 자살로 보기 힘들다는 표현을 합니다. 그렇게 영화는 중반부터 본격적인 법정드라마로 흘러가게 됩니다.
검사 측과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면서 산드라 부부는 너무나 사적인 대화와 작가로서 드러내기 싫은 치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문제는 다니엘이 이를 방청하고 있다는 것이죠. 대부분의 진술이 엄마 쪽에 불리하게 진행되는 와중에 엄마의 어떤 진술로 인해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는 반면 다니엘은 오히려 이 진술의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진술에 대한 일종의 실험(?)을 해보기도 하고요.
<추락의 해부>는 오토 프레밍거의 <살인의 해부>에서 아마도 제목을 따 온 거 같습니다. 물론 두 영화의 톤이 전혀 다르고요. <추락의 해부>는 아주 진지한 법정드라마입니다. '가족' '부부'라는 키워드가 중요하게 작동되고 있는 이 작품은 사건의 범인이 밝혀가는 이야기의 진행이 표면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 과정을 통해 개인과 개인이 어떻게 서로 섞일 수 없는지와 어떻게 타협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작품입니다. 그로 인한 폭력성은 어찌 보면 인간으로선 어쩔 수 없는 마지막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아마도 영화의 백미는 다니엘의 마지막 증언이 될 것 같습니다. 어린 다니엘이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알지만 자신의 선택이 자신의 미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그를 두려움에 빠뜨립니다. 그 부분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더라고요.
전작 <시빌>이 살짝 아쉬운 작품이었는데 그 작품에서 함께 했던 산드라 휠러는 <토니 에드만>에 이어 엄청난 연기를 보여줍니다. 용의자로서 분노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하는 모습이 어찌 보면 살짝 섬뜩하기도 하더라고요. 물론 영화는 어떤 결론을 내리지만 그것이 시원한 결론은 아니고요. 깐느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한 <추락의 해부>는 오랜만에 만나는 멋진 법정 드라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