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릴린 먼로를 인식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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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릴린 먼로라는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앤디워홀의 작품이나 영화 <7년 만의 외출>의 바람에 날리는 흰색 스커트를 잡는 이미지는 한 번쯤 봤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유명한 건 알겠는데 왜 유명한지는 몰랐다.
그런데 우연히 군대에서 <러브, 마릴린> 이라는 다큐 멘터리를 접하게 되었다. 당시 내가 있던 부대는 올레티비라는 IPTV를 이용 중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도 나온지 오래됐거나 대중들에게 외면 받았다 싶은 영화들은 무료 영화 카테고리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거나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영화는 유료 영화 카테고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단, 일주일에 한 번 두 세편 가량 꽤 사랑받거나 최신 개봉한 영화가 열렸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단기 무료 영화' 중 한 편이 <러브, 마릴린>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화 포스터를 보고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믿는 난 포스터를 보고 관람하기를 결심했다.
특별할 게 없다면 없지만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꽤나 사람을 이끄는 구석이 있는 포스터였다. 아마도 그건 이름만 들어본 상징적인 인물에 대한 호기심과 몽환적인 마릴린 먼로의 표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영화 자체만 놓고 보자면 재밌다거나 잘 만들었다고는 보기 힘들지 않을까. 그러나 다큐멘터리 형식 영화가 으레 그렇듯 실존 인물의 육성이나 몸짓,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녀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시피 했기에 선입견이랄 게 없었다. 그러나 당대 그녀의 불운한 어린 시절이나 평탄치 못했던 결혼 생활, 섹스 심볼이나 백치미 등의 단편적인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꽤나 많은 오해를 받으며 살아간 점을 영화는 보여주는데, 내가 다 억울하고 답답했다.
사실 섹스 심볼로 알려지기 전 뛰어난 연기력과 창의력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확고히 다진 게 그녀 본인이다. 또한 굉장한 독서광에 음악, 미술, 문학 등 교양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에 반대할 정도(지금 보면 별 게 아니지만 당시 그녀가 활동한 시기를 생각하면 대단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로 성품이 뛰어난 배우이자 인간이었는데도 되레 그녀가 만든 캐릭터에 갇힌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들은 그녀를 가볍게만 생각했으니.
그런 오해를 안고 살아간다는 건 상상만 해도 열이 뻗치는 일이다. 당연히 보통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기꺼이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내고자 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며 느낀 건 그녀가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우울한 면도 많고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굉장히 영리하며 이성적인 사람,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 창조적인 일을 했던 사람이란 것이었다. 보이는 것도 대단하고 숨겨진 이면도 대단한 사람이란 게 내가 마릴린 먼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녀를 처음 접했을 때쯤, 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율리시스>와 같은 어려운 고전 읽기가 너무 어려워 실패했지만 그녀는 그런 고전들 읽기를 즐겼다고 한다. 내가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는 이유로 마릴린 먼로는 큰 귀감이 되고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그 생각은 그때와 완전히 같지는 않되 대개 비슷하다.
그렇게 그녀는 나의 이십대 초반, 그리 크지 않은 텔레비전을 통해 내게 들어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니콜라요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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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소설을 만만히 봤던 시절이 있었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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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봤습니다.
문단을 나눠주시면 읽기 훨씬 편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