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rsemen (1971) 아프가니스탄 기수들의 이야기. 스포일러 있음.
아주 특이하게 아프가니스탄 기수들에 대한 이야기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아프가니스탄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헐리우드 자본과 헐리우드 스타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다. 오마 샤리프 그리고 잭 팔란스, 리 테일러 영 등은 헐리우드 스타배우들이다.
감독은 존 프랑켄하이머다. 역시 헐리우드 스타감독이다.
각본은 달튼 트럼보인데, 이 사람에 대해서는 영화까지 나왔다. 헐리우드 스타 각본가다.
왜 이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에 관심을 가져서 이런 영화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들이 그리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실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삶이라는 소재를 빌려서
지극히 서구적인 주제를 전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가급 배우들, 감독, 각본가가 협업한 영화답게 걸작이다.
굉장히 처절한 영화다.
잭 팔란스는 투센이라는 늙은 족장 역을 맡았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기수 - 즉, 말 타는 사람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경마대회라는 것은, 얼마나 빨리 말을 모느냐 같은 얌전한 것이 아니다.
목 자른 송아지 시체 하나를 놓은 다음, 수십명 기수들이 말을 몰아 이 시체를 가지고 가장 먼저 정해진 장소에 놓는 것이다. 규칙 없다. 채찍으로 사람을 치든, 말로 들이받든 다 허용된다. 말도 사람도 이런 격투 와중에 쓰러져 죽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신경 안쓴다.
잭 팔란스는 이런 경마 와중에서, 다른 사람들은 옷깃 한번 못 잡아볼 정도로 날쎄고 신출귀몰했다.
얼마나 경마술이 좋은 지, 송아지 시체를 갖고 정해진 장소에 가는 대신 제 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다른 사람들을 놀릴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그런 그는 이제 늙었다. 현자가 되어 마을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만, 예전처럼 패기만만하고 사나운
영웅은 아니다.
그의 아들이 오마 샤리프가 분한 우라즈다. 똑같이 명기수로 이름을 날리는 오만한 사람이지만, 아버지만큼은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경쟁심 비슷한 묘한 기류가 흐른다. 둘 모두 한계상황에 자기를 맡기고
생명과 죽음 사이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아프가니스탄적인 영웅이라기보다
서구적인 영웅들처럼 보인다. 파멸과 극한상황이라는 단어가 삶이라는 단어에 내재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잭 팔란스는, 아들 우라즈를 포함 다섯명에게 수도에서 열리는 경마대회에 참여하라고 명령한다.
죽을 지도 모르는 대회이지만, 당대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공포보다 더한 영광이다. 오마 샤리프는 이 경마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거의 승리할 뻔한다. 하지만 송아지 시체를 들고 가다가 결승점에 몇 걸음 안 남은 위치에서
안장이 풀리고 땅에 떨어진다. 그리고 다리가 부러진다.
어쨌든 마을의 다른 대표가 우승을 차지한다. 마을은 명예를 지켰지만, 오마 샤리프는 패배했다.
자존심 강한 오마 샤리프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의기양양한 우승자 곁에서 패배자로 함께 돌아가길
죽음보다 더 싫어한다. 그래서 부러진 다리를 절며 마을로 돌아간다.
그것도 넓고 편하고 빠른 길을 놓아두고 눈 내리는 험한 산을 넘어간다.
오마 샤리프는, 다리에 한 기브스를 하인더러 깨 버리라고 한다. 기브스 때문에 공기나 햇빛이 다리에 닿지 않아
회복이 더디다는 이유로. 그리고 상처 자리에다가 코란 한 페이지를 찢어 덮는다.
이런 다리로 바위길을 건너 산을 올라가니, 다리는 계속 썩어간다.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다. 왜 오마 샤리프는 부러진 다리로, 아무도 건너길 두려워한다는 험하고 눈 내리는
산을 넘어갔을까? 자기 다리가 썩어가고, 자기 생명이 서서히 꺼져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가 수도에 남아, 다리가 낫기를 기다렸다가 마을사람들과 함께
돌아왔다면, 부러진 다리 정도는 금방 나았을 것이다.
영화는 이 주제에 대해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다. 이런 해석 저런 해석이 다 가능하다.
그는 열이 심해지고 다리는 썩어가고 꼼짝없이 죽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자기를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사람이
오마 샤리프지만, 또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참 역설적이다.
그렇게 삶에 집착을 보일 것이었으면, 왜 이런 무서운 상황 속으로 자길 몰아넣었단 말인가?
그는 천행으로 다리를 잘라 목숨은 건진다.
하지만 기수로서는 끝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자기 잘린 다리를 보인 다음, 떠돌이 도박꾼을 따라 유랑의 길에 나선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어디 부족에도 속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방랑자는 불가촉천민 취급이다.
자존심 강한 부족장의 아들 오마 샤리프는 불가촉천민인 방랑자가 되어 끝없이 헤메다니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떠돌이 도박꾼 곁에서 말을 타고 산 너머 멀리 사라져가는 오마 샤리프의 뒷모습은 굉장히 처절하다.
영화가 굉장히 강렬하고 정서적이고 처절하다.
말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은 경마를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 경마대회에서 우승해서 권력과 부를 얻겠다는 것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잭 팔란스와 오마 샤리프는 다르다. 그들에게 말은 그 이상이다.
잭 팔란스는 아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같은 사람들이다. 파멸을 엿보아야 하는 처절한 사람들이다."
그는 아들을 이해한다. 불가촉천민이 되어 떠나가는 아들을 말리지 않는다.
영화는 굉장히 모호하다. 오마 샤리프가 그렇게 자기 파멸을 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잭 팔란스가
아들을 그렇게 떠나보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정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허하게 자기도 뭔지 모르는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명확하게
그 안에서 어떤 정서적 감정적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객들더러 이것이 뭔지
스스로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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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로망이 있을 것 같습니다.